마음의 해결 마음의 병은 대부분 외부에서 온다. 내부에 원인이 있다 해도 외부에 그것을 격발하는 방아쇠가 있다. 내부의 종북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외부에 있는 북한을 무서워하는 것이다. 내 얼굴의 화장이 마음에 안 든다면 사실 외부의 시선을 신경쓰고 있는 거다. 내 안의 배가 아프다면 사실은 외부의 사촌이 논을 산 것이다. 먼저 외부를 해결해야 한다. 외부의 개입은 잘 포착되지 않는다. 개미가 스스로 결정했다 해도 동료 개미가 내뿜는 호르몬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리듯이 집단의지에 영향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관계설정이다.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고 외부의 침범을 방어하려는 자세로 가면 끝이 없다. 자신을 강자로 규정하고 선제대응하여 외부의 환경을 연주하려고 하면 답이 나온다.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진리라는 악보를 읽을 수 있고, 역사라는 곡을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라는 팀에 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진보의 편에 서야 한다. 진보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데 반해 보수는 제각기 끊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일베와 일본 넷우익이 친하기 어려운 것과 같다. 보수의 편에 들면 강자가 될 수 없고 선제대응할 수 없다. 보수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힘은 그러한 연결에서 나오는데 보수는 연결되지 않으므로 힘이 없다. 재벌과 관료를 업은 보수세력의 정치적 힘은 있으나 최종적으로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것은 문화다. 문화의 힘은 보수에 없다. 의사결정으로 보면 인류사의 거의 모든 결정은 진보가 하는 것이며 보수는 진보가 이미 결정한 것을 늦추거나 조절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복지시책을 펴도, 그것은 진보가 오래 전에 결정한 것을 보수가 뒤늦게 집행한 것이므로 결국 진보의 결정이다. 돈이나 권력과 같은 껍데기를 배제하고 순수한 의사결정으로 보면 언제나 진보가 결정한다. 의사결정의 힘은 지식에서 나오고 보수의 폭력은 안 쳐주는 거다. 마음은 결정하고 몸은 집행한다. 마음이 의사결정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 마음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몸은 각자 떨어져 있다. 자연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자연의 에너지는 화석연료나 돈이나 권력의 형태로 존재한다. 인간은 의사결정하고 자연은 그것을 집행한다. 인간의 결정이 자연에 전파되기까지 시간이 지체되며 보수는 그 부분을 반영한다. 인간이 달나라에 가기로 결정하면 자연은 ‘돈이?’ 하고 태클을 건다.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진보와 보수가 대립한다. ◎ 진보와 보수의 대립은 인간과 자연의 대립을 반영한다. 언제나 진보가 옳고 보수는 단지 시간을 끌 뿐이다. 마음은 진보의 편이다. 진보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진보는 그러한 연결에 의해서만 달성되기 때문이다. 보수는 물질을 앞세운 마음의 적이다. 이를 대립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상호작용이 정답이다. 연주자와 악기는 대칭적이나 악기가 말을 안 듣는 데서 연주자가 악기를 탓할 이유는 없는 것과 같다. 마음은 일한다 마음은 언제라도 일하고자 한다. 마음의 일은 진리라는 악보를 보고 세상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다. 자연의 진리와 세상을 나의 몸통으로 삼아야 문제가 해결된다. 마음이라는 운전사가 ‘나’라는 자동차를 운전하여 세상이라는 도로를 달리는 셈이다. 핸들과 기어와 클러치와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 페달을 만질 줄 알아야 한다. 마음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
◎ 정신≫의식≫의도≫생각≫감정 마음은 정신과 의식과 의도와 생각과 감정이라는 다섯가지 수단을 조직하여 통제할 수 있다. 정신은 시동을 걸고, 의식은 핸들을 잡고, 의도는 변속기를 D에 놓고, 생각은 가속페달을 밟고, 감정은 브레이크페달을 밟는다. 중요한 것은 반드시 순서대로 조작해야 한다는 거다. 미처 시동이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밟아봤자 차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잠이 든 상태에서 생각을 해봤자 꿈 속일 뿐이다. 먼저 잠을 깨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일단 시동부터 걸어야 한다. 차는 달린다. 마음은 일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이 마음의 일이다. 마음은 눈과 귀와 코로 신체 바깥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할 뿐 아니라 몸으로 신체 안에서 들어오는 정보도 처리한다. 몸도 뇌의 밖이기 때문이다. ◎ 마음의 일은 바깥에서 주어진다. 정신은 마음에게 일거리를 준다. 정신차린다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상대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상대하든, 업무를 상대하든, 환경을 상대하든 뇌는 무언가를 마음이라는 도마에 올려놓고 처리한다. 도마에 올린 생선이 잘 토막나지 않는다면 해동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내 칼이 무딘 때문은 아니다. 마음의 병은 외부원인을 내부원인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야구시합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 아니고 우승팀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팀을 갈아타면 된다. 우리편을 갈아타면 된다. 대개 우리편을 좁게 규정하고 상대편을 넓게 규정하므로 마음이 괴롭게 된다. 그 이유는 어린이 때는 사실 우리편이 좁기 때문이다. 아기에게 내 편은 엄마 밖에 없다. 원래 우리편이 좁았는데 내 활동무대가 넓어진 것이다. 왕조시대의 시골 젊은이는 평생 백리 바깥을 나가보지 못하고 죽는다. 옛날에는 외부인이 마을에 들어오면 당연히 죽여버렸다. 특히 일본은 농노들이 봉건영주가 다스리는 번의 경계를 넘어갈 수 없었다. 상인은 상단을 구성하고 선비는 세력을 일구어 경계를 넘을 수 있으나 평민은 마을 경계를 넘지 못했으며 장날에 장보러 가는게 가장 멀리 가는 거였다. 원래 인류는 부족민이었고 부족민의 활동범위는 100리 안쪽이다. 행정구역으로는 사또가 다스리는 군 정도가 활동범위가 되고 젊은이 혼자서는 이웃마을도 못 갔다. 결혼식 정도의 행사가 있어야 큰 무리를 이루어 넘어가는 것이며 아니면 설날에 투석전을 하면서 이웃마을을 살짝 침범해 보는 것이다. 장사치나 사당패도 무리를 이루어 사전교섭을 했다. 사회가 발달하면서 그 경계가 터무니없이 커졌다. 보수꼴통들이 다문화를 미워하는 이유는 경계가 커진데 따른 본능적인 공포심 때문이다. 괜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역사교육을 받지 못했고 사회과목 수업에 졸았기 때문이다. 현대는 내가 감시해야 할 영역이 너무 넓어졌다. 좁은공간으로 숨어드는 퇴행심리가 나타난다. 일본 부라쿠민은 외부인이 오면 죽인다. 그러한 옛날 관습을 빌미로 차별을 행한다. 이는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다. 한국의 지역주의도 타고난 본능이다. 실제로 그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신과 다르기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게 아니라, 자신이 감시해야할 영역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왜 감시하느냐고? 본능이다. 교육받지 못한 탓이다. 사회가 커져버렸으므로 마음도 그만큼 키우는 수 밖에 없다. 아기는 엄마만 우리편이었다, 유년은 가족만 알았다. 소년은 마을까지 안다. 천하를 품어야 인간이 된다. 스스로 규정한 자기 자신의 활동범위에 따라 내가 상대하는 대상이 달라진다. 자동차가 시동을 건다면 목적지가 있다. 그 자동차의 운행범위가 자신의 그릇에 맞게 정해진다. 그러한 자신의 무의식적 활동범위, 감시범위를 확인해야 한다. 정신차리기다. ◎ 정신차리기 – 무의식이 정한 나의 활동범위, 감시범위를 확인한다. 정신차린다는 것은 내가 상대하는 대상을 포착하는 것이다. 모르고 남의 땅에 들어온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졸지에 칼 맞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뒤에 호랑이가 나타났는데도 눈앞에 있는 강아지만 상대하고 있다면 아직 정신 못차린 것이다. 수구꼴통들은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등 뒤의 호랑이는 자신이 없어서 눈 앞의 강아지만 상대하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의 상대를 작게 규정한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실제로는 상대해야할 범위가 크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회피하고자 퇴행행동을 한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격으로, 등 뒤의 호랑이에게 뺨 맞고 눈 앞의 강아지에게 분풀이하는 것이 퇴행행동이다. 멀리있는 부시에게 얻어맞고 가까이에 있는 정은이에게 화풀이 하는 거다. 내부의 배가 아프다는 사람은 실상 외부의 사촌이 논을 산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라. 등 뒤의 호랑이를 정면으로 바라보라. 그리고 그 호랑이를 상대하여 이겨내야만 한다. 정신차렷! 여기서 마음의 큰 승부는 결정된다. 호랑이의 존재를 인정하면 이기고, 현실을 부정하며 도피하여 강아지탓을 하면 진다. 내가 고통받는 것은 세상 때문이다. 내 탓이 아니고 내 친구나 내 가족 탓도 아니다. 가까운 경상도나 전라도 탓도 아니고 가까운 남한이나 북한 탓도 아니다. 인류 전체를 상대해야 한다. 그것이 진보의 방법이다. 세상과 정면승부 하는 방법 밖에 없다. 한국인이 힘든 진짜 이유는 내부의 박근혜 때문이 아니고 실상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교육열이 원인이다. 일본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다. 일본은 무역의존도가 15퍼센트 밖에 안 된다. 한국은 50퍼센트다. 한국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신세라 세계로 뻗어나가려고 하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 것이다. 일본은 포기했기 때문에 편안하다. 이러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누구나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교육이 너무 잘 되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인정하라. 포기하면 차라리 편한데 포기하지 못하게끔 한국은 잘 나가고 있다. 똥차라면 차라리 괜찮은데 씽씽 잘 나가니까 막히는 도로가 짜증난다. 경운기를 타고 있다면 도로가 막힌데서 화가 나겠는가? 0점 맞으면 속이 편할텐데 딱 한 문제 틀리니까 스트레스 받는 거다. 인정할건 인정하자. 이런 때는 그럴수록 장기전을 하고 목표치를 더 높이는 수 밖에 없다. ◎ 정신은 외부를 상대하고 의식은 내부를 통제한다. 의식은 내부를 통제하는 것이다. 정신은 내가 상대하는 적이 누구냐를 포착하는 것이다. 의식의 통제범위도 그 적의 규모가 결정한다. 적이 여우라면 내 한 사람만 통제하면 된다. 적이 호랑이라면 가족까지 지켜야 한다. 적이 산적떼라면 가족과 이웃까지 지켜야 한다. 적이 오랑캐라면 국가를 다 지켜야 한다. 그 상황에서 나에 속하는 전체가 장악되었느냐다. ◎ 정신은 긴장하고 의식은 주목한다. 호랑이가 나타나서 가족을 지키려 하는데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면? 의식분열이 일어난다. 가족을 불러모아야 한다. 어디로? 의식이 있다는 것은 그 불러모을 구심점이 있다는 것이다. 정신은 밖을 보고 의식은 안을 본다. 정신은 외교를 맡고 의식은 내치를 맡는다. 정신은 바깥을 상대하여 긴장타면 되고, 의식은 내부를 상대하여 한 곳을 주목해야 한다. 오늘 중요한 여자친구 생일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정신이고, 생일선물을 사러가야 한다고 작심하고 있는 것은 의식이다. 까먹으면 큰 일 난다. 정신은 바깥을 폭넓게 감시하지만 의식은 한 점에 집중한다. 언제라도 정신이 먼저다. 마음수련 한다면서 집중하는 것은 의식이다. 그러나 정신이 윗길이기 때문에 의식훈련은 효과가 약하다. 집중보다 비움이 먼저다. ◎ 정신은 집중하기보다 비우기가 앞선다. 마음을 비우라니까 그냥 멍청하게 있으려고 하는데 바보짓이다. 마음은 집중할 수 있어야 하며 정신차려야 집중할 수 있고 정신차리려면 바깥을 보아야 하고 그 바깥은 진리와 자연과 역사와 문명과 진보와 인류와 신이다. 진리를 모르고 자연을 모르고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하루종일 명상을 해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다. 외부에서의 충격 한 방에 무너진다. 막연히 비우는게 아니고 외부를 감시하는 것이다. 외부에 있는 것은 역사의 흐름이다. 그 흐름에 저항하면 자빠지고 그 흐름에 올라타고 연주하면 순조롭다. 그것이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멍하니 있는게 아니라 진리와 세상과 자연의 목소리를 듣고 거기에 내 마음을 연동시키는 것이다. 세상이 슬피 울 때 내가 함께 우는 것이 마음 비우기다. 내가 세상을 연주하려면 세상이 나를 연주하게 자리를 비워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신은 비우고 의식은 모은다. 그러나 둘이 아니며 비우면 모아진다. 비우되 사실은 비우는게 아니다. 방을 텅 비워야 촛불의 불빛이 그림자 하나 없이 온 방알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작은 마음을 비워 큰 마음을 끌어들인다. 작은 나를 비워 큰 나를 이룬다. 그것이 진짜다.
◎ 정신은 비워서 바깥과 연동시킨다. 내 마음을 천하의 마음과 연동시키는 정신의 비우기와 의식의 모으기를 통과하면 다음 차례는 의도의 몰아주기다. 정신은 비워서 악기가 바깥의 연주자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의식은 피리의 리드 하나에 소리를 모으는 것이며, 의도는 리드를 통과한 바람을 피리의 구멍 하나로 몰아주는 것이다. 의도는 구체적인 타겟을 겨냥한다. 마음에 겨냥이 있어야 한다. ◎ 비우고 모으고 겨냥한다. 사격을 한다 해도 그렇다. 일단 숨을 멈추고 마음을 텅 비운다. 다음 가늠자와 가늠쇠를 나란히 모은다. 그리고 표적지의 한 점을 겨냥한다. 정신의 비우기와 의식의 모으기에 성공하면 의도의 겨냥하기부터는 일사천리로 쉽다. 언제나 그렇듯이 상부구조의 해결이 어려운 것이다. 바깥문제가 어렵지 내부장악은 쉽다. 외부의 침범이 마음을 해치는 것이다. 의도 다음은 생각, 그리고 감정이 있다. 정신≫의식≫의도는 외부의 에너지를 들여와서 내 안의 한 점을 때리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상부구조다. 의도≫생각≫감정은 다시 이를 외부로 배출하는 것이다. 상부구조가 해결되면 하부구조는 따라간다. 생각은 의도를 시간에서 진행시키고 감정은 종결짓고 다시 되먹인다. 피드백이다. 결과를 뇌에 보고하는 것이다. 대개 마음이 괴로운 것은 이 순서를 반대로 가기 때문이다. 일단 감정을 해결하려고 한다. 화가 났다면 화를 가라앉히려고 한다. 이는 실패한다. 눈앞에 호랑이가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호랑이를 쫓지 않고 스트레스가 해결될까? 밥을 먹지 않고 배고픔이 가라앉을까? 감정을 다스리려는 시도는 무리수다. 감정은 결과다. 먼저 사건의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원인은 외부에 있으므로 외부를 해결해야 한다. 외부에서 침범하는 적을 내편으로 만들지 않으면 해결방법은 없다. 스님처럼 가만이 앉아서 묵상하는 것은 대개 시간낭비에 불과하다. 조금 효과가 있다해도 그 스님의 앉은 공간이 공기 좋고 물 좋은 자연이기 때문이다. 즉 외부환경을 도시환경에서 자연환경으로 바꾸어서 약간의 진정효과를 얻어낸 것이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는 명상할 수 없다. 누가 뒤에서 떠밀기 때문이다. 결국 바깥이 문제다. 정신으로 바깥과 나를 연동시키고, 의식으로 조율사가 피아노줄 조이듯 내부를 조율하고, 의도로 한 순간의 한 지점에 몰아주면 마음은 편해진다. 그리고 생각을 술술 풀어내면 되고 감정은 받아들여야 한다. 슬프면 울면 되고 기쁘면 웃으면 된다. 억지는 좋지 않다. 슬픈데 웃거나 우스운데 울면 안 된다. 감정을 다스릴 수도 있지만 그 역시 대체재를 투입하여 바깥 환경을 바꿈으로써 해결된다. 슬픈 상황에도 코미디는 우습다. 이때 바깥 환경이 바뀐 것이다. 대체재가 투입된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제에 정답은 언제나 바깥에 있다. 슬플때는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라. 아플 때는 대화하라. 괴로울 때는 여행을 떠나라. ◎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대체재를 투입하라. 마음은 일한다. 정신은 일거리를 찾고 의식은 생선을 도마에 올리고, 의도는 칼로 생선을 내려치고, 생각은 일을 계속 진행하고, 감정은 결과를 뇌에 보고한다. 뇌는 어디에 있는가? 천하에 있다. 무의식은 상부구조를 찾는다. 감정은 실상 내 마음을 온 천하에 보고하려는 것이다. 나의 슬픔을 온 천하가 같이 해주기를 바란다. 그렇다. 천하에 보고하면 된다. 보수꼴통들은 곤란하다. 천하를 적으로 설정했으므로 보고할 수 없다. 적군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천하인이 되어야 감정을 극복할 수 있다. 두려움도 슬픔도 괴로움도 내 마음을 온 세상에 알리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천하와 한 편이 되었을 때 자연히 해결된다. 천하가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감정은 세상과 하나가 되라는 명령이다.
마음의 답은 바깥에 있습니다. 명상한다면서 눈 감고 앉아있는건 바보같은 짓입니다. 사유의 절대량은 당연히 많아야 하지만 그것을 격발하는 방아쇠는 바깥에 있습니다. 책을 읽든, 여행을 하든, 농사를 짓든, 영화를 보든, 만화책을 보든 수백가지 에피소드가 뇌에 주입되어야, 비로소 머리 속이 와글거리면서 명상을 해도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생각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꼼짝 않고 다섯시간 흥분된 상태로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밥 먹을 시간도 아깝게 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아깝게 되는 것입니다. |
우린 일본처럼 깔끔하지만,
중국처럼 혼잡스러움을 동시에 가지는 유일한 민족.
이거 2개 동시에 가지기 힘듬.
지정학이 이 2문화를 흡수했고, 세계사의 조류가, 이를 만들어감.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 추세인데, 문제는...
통일에 거세 반응 느끼는 노인세대의 평균수명. 일본도 마찬가지.
깨달음의대화 참 좋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
또 읽어야지~~~~~~~~
이 글이 깨달음의 대화 3000번째 글 이네요. 3000번째를 맞아 특집으로 쓰신 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게 정말 필요한 글 이었습니다. 요근래 궁금한 점 몇가지들을 게시판에 질문해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이 글 한 방으로 정리된 느낌입니다. 완전히 이해될 때 까지 읽고 또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