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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6310 vote 0 2014.12.07 (13:32:55)

 

    존재의 중첩


    세상은 구조와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구조가 발전하면 시스템이 되고 시스템을 쪼개면 구조가 된다. 시스템은 기승전결로 이어가는 일의 단위를 이루고, 구조는 세부적인 의사결정의 단위를 이룬다.


    ◎ 구조 – 의사결정의 1 단위.
    ◎ 시스템 – 일의 1 단위.


    5회의 세부적인 의사결정이 모여 1회의 일을 이룬다.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는 간단한 동작이라도 뇌의 차원에서는 에너지 공급, 담당자, 공간의 방향, 시간의 순서, 에너지 회수까지 5번 결정해야 한다.


    ◎ 결정 1 - 에너지 공급
    ◎ 결정 2 - 담당자 지정
    ◎ 결정 3 - 공간적 방향의 결정
    ◎ 결정 4 - 시간적 순서의 결정
    ◎ 결정 5 - 에너지 회수


    존재론은 자연 입장에서 ‘배경≫실체≫연관≫이행≫귀결’의 5회 의사결정으로 하나의 일을 구성한다. 반면 인식론은 인간 입장에서 ‘지각≫수용≫분석≫종합≫응용’의 5회 의사결정으로 이를 추적한다.


    인식론은 존재론의 순서를 뒤집어놓은 것에 불과하며 실제로 둘은 완전히 같다. 존재론이 자연의 진실이다. 다만 인간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 전에는 존재론을 알 수 없으므로 인식론을 쓰게 된다.


    ◎ 존재론 - (전체)배경≫실체≫연관≫이행≫귀결(부분)
    ◎ 인식론 - (부분)지각≫수용≫분석≫종합≫응용(전체)


    존재론은 전체에서 부분으로 가고, 인식론은 부분에서 전체로 간다. 자연의 사건은 외부 에너지 조달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에 엔트로피의 법칙에 맞게 항상 전체에서 부분으로만 가며 예외는 없다.


    양이 어떤 한계에 도달하면 질로 도약한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양질전화는 없다. 이는 감추어져 있던 상부구조가 개입한 것이다. 인식론은 상부구조를 보지 못하는 오류에 빠진다.


    위에서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상부구조를 파악하지 못했을 때는 미지수 X로 처리하고 빈 칸으로 두었다가 나중에 이를 채워넣으면 된다. 이는 수학자가 쓰는 방법이다. 훈련받지 않으면 이렇게 못한다.


    사람들은 결국 인식론으로 가게 된다.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부터 사유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류는 필연적이다. 관측에 의지하면 사건은 항상 부분에서 전체로 파급되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커진다는 것이 인식론이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 관찰이며, 실은 아이싸움이 있기 전에 이미 갈등이 잠복해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이미 냉전상태가 조성되어 있다.


    ◎ 인식론 – 우연히 몸이 스쳐서 싸움이 났다.
    ◎ 존재론 – 좁은 공간에 둘이 있으면 싸움이 난다.


    좁은 우리에 개 두 마리를 넣어두면 싸움이 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식론은 우연히 몸이 닿았고 그걸로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났다고 말하고 존재론은 공간이 좁으면 싸움날 확률이 높다고 말한다.


    원인은 무엇인가? 몸이 닿았기 때문인가? 공간이 좁았기 때문이다. 공간을 넓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존재론이 정답을 제시한다. 인식론은 언뜻 보기에 맞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안 맞는 주장이다.


    존재론은 정확한 답을 찾는 방법이고, 인식론은 상부구조를 모를 때 임시방편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다. 둘 다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무조건 인식론으로 기울기 때문에 존재론의 훈련에 주력해야 한다.


    인식론을 쓰면 편견이 개입하기 쉽다. 미리 정해놓은 답안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작위적인 분석을 한다. 인식론의 방해를 차단할 의도로 ‘질≫입자≫힘≫운동≫량’이라는 보다 중립적인 개념을 만들었다.


    ◎ 질≫입자≫힘≫운동≫량 - 질은 중첩되고, 입자는 독립하고, 힘은 교섭하고, 운동은 변화하고, 양은 침투한다.


    질은 결합한다. 학생들을 결합시키는 것은 담임이다. 담임은 월급을 받는다. 월급이 에너지가 되어 학생들을 교실에 불러모으는 것이 질의 결합이다. 반드시 에너지를 주어 결합시키는 상부구조가 있다.


    그런데 외부 에너지의 공급에 의한 질의 결합개념을 독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포착하고 대신 중첩개념을 쓰기로 했다. 담임은 교무회의와 학급회의에 양다리를 걸친다. 중첩되어 있다.


    부장님이 간부회의와 사원회의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소대장은 참모회의와 사병회의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도 원리는 그렇다. 왕은 귀족원과 민회에 양다리를 걸쳐야 한다.


    일의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헤겔의 변증법은 틀렸다. 그 반대다. 정과 반이 다투어 이윽고 합이 나오는게 아니라, 합 속에 정과 반의 중첩이 있다. 뒤늦게 상부구조에 숨어있는 합을 발견하는 것이다.


    정과 반이 대립했다가 마침내 화해하여 뒤늦게 합을 이루는게 아니라 반대로 원래부터 있던 합을 뒤늦게 발견하는 것이다. 합은 정과 반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그것이 질의 중첩이며 일의성이다.


    ◎ 구조의 일 – 외부의 에너지를 시스템 내부로 받아들여 처리하고 다시 외부로 배출한다.


    구조는 일을 한다. 일은 외부의 에너지를 가져와서 내부에서 처리하고 다시 외부로 배출한다. 질은 일을 시작하기 전의 에너지 중첩이다. 질에 이어지는 입자, 힘, 운동은 설명 안해도 쉽게 알 수 있다.


    내부에서 에너지를 처리하는 과정이다. 입자는 일을 하는 주체이고 힘은 일의 공간적 방향, 운동은 시간적 순서다. 질이 재료를 도마에 올리면, 입자의 칼로, 힘의 방향과 운동의 순서대로 칼질한다.


    양은 일이 끝나고 구조가 깨지면서 에너지가 다시 외부로 침투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받은 것을 내부에서 처리하고 다시 외부로 돌려준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5회 일처리로 시스템은 완결된다.


    구조의 5단계는 수학의 4차원, 3차원, 2차원, 1차원, 0차원과 같다. 5차원으로 시작하고 0차원 다음은 없다. 원래는 5, 4, 3, 2, 1차원이라고 해야하지만, 수학자들이 기준을 잘못 정해버려서 어쩔 수 없다.


    차원은 에너지의 중첩이다. 에너지가 중첩되면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에너지의 중첩이 풀리므로 4차원을 넘어서는 차원이나 0차원 이하의 차원은 없다. 수학자들이 많은 차원을 쓰지만 다른 개념이다.


    5차원부터는 에너지의 중첩이 아니므로 차원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달리 명명해야 한다. 에너지의 중첩이 차원개념의 핵심이다. 지렛대에 가속적으로 힘을 부여하여 계속 누른다면 마침내 어떻게 될까?


    지렛대의 받침점에 부가되는 에너지를 계속 증가시키면? 한 점에 에너지가 무한히 집적된다. 블랙홀처럼 에너지가 끝도 없이 계속 쌓이게 된다. 에너지가 한 점에 무한대로 집적되는 것이 4차원 밀도다.


    ◎ 질≫입자≫힘≫운동≫량
    ◎ 4≫3≫2≫1≫0차원
    ◎ 밀도≫입체≫각≫선≫점


    수학은 크기를 쓰지만 크기는 중복이다. 구조론은 중복을 배제한다. 구조는 뼈대고 뼈대는 살을 제거했기 때문이다. 1센티나 5미터나 간에 크기는 인간의 상대적인 관념일 뿐 자연의 사실이 아니다.


    인간이 자기 몸뚱이와 비교한 것이며 우주에 절대크기는 없다. 그러므로 구조론의 3차원, 2차원, 1차원, 0차원도 모두 크기가 없다. 3차원이라 하면 부피를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서리를 보아야 한다.


    4차원은 에너지의 중첩이며 3차원은 이를 쪼갰을 때 대칭의 성립이다. 두 돌멩이가 공중에서 충돌했을 때 충돌지점의 뾰족한 모서리들이 이루는 ><부분이 입체다. 이는 육면체를 뒤집은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구조론의 각角은 수학의 면面 개념과 다르다. 면은 크기가 있다. 구조론의 각은 입체 ><를 쪼갠 것이다. 기하학은 눈금없는 자를 사용한다. 크기 개념은 자에 눈금을 기록한 바 가짜다.


    ◎ 에너지는 중첩되고, 입체는 중첩을 쪼개고, 각은 입체를 쪼개고, 선은 각을 쪼개고, 점은 선을 쪼갠다.


    질은 에너지의 중첩이고 입체는 에너지의 대칭이다. 대칭은 중첩을 쪼갠다. 각은 대칭을 쪼갠다. 선은 각을 쪼개고, 점은 선을 쪼갠다. 각 <를 쪼개면 선 ━이 되고 선 ━를 쪼개면 점이 된다.


    ◎ 밀도의 중첩 - ○
    ◎ 입체의 대칭 - ><
    ◎ 각의 방향 - <
    ◎ 선의 순서 - ━
    ◎ 점의 종결 - ●


    수학의 차원개념은 이와 반대로 되어 있다. 수학은 점을 더해서 선을 구하려 한다. 실패다. 점을 더하면 다점이다. 그러므로 수학은 용어를 바르게 정의하지 못한다. 공리라고 해서 대략 얼버무리는 거다.


    선을 더하면 면이 되는게 아니라 다선이 되고, 면을 더하면 입체가 되는게 아니라 다면이 된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자연에 플러스는 없으므로 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오직 마이너스 뿐이다.


    수학의 점, 선, 면, 입체개념은 자연의 사실과 맞지 않다. 에너지는 지렛대의 받침점에 무한한 힘이 밀집하듯이 중첩된다. 이를 시간의 칼로 잘라 대칭을 얻은 것이 입체다. 그 입체는 크기나 부피가 없다.


    입체를 자르면 각이 되고, 각을 자르면 선이 되고, 선을 자르면 두 점이 얻어진다. 점은 선이 끊긴 점이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자연이다. 그것은 일의 진행에 의해 저절로 꼬임이 풀려가는 것이다.


    ◎ 마이너스 원리 – 일의 진행은 에너지 소비를 필요로 하므로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전체에서 부분으로 갈 뿐 그 반대는 없다.


    에너지는 꼬여 있고 놔두면 풀린다. 에너지가 풀리는 순서대로 질≫입자≫힘≫운동≫량이 얻어진다. 이를 기승전결로 표현할 수 있지만 기승전결은 과학의 사실이 아니라 한시 작법이므로 논외다.


    서양에도 도입introduction, 전개development, 결말conclusion의 3단계가 있고 논문에도 서론, 본론, 결론이 있다. 소설작법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은 구조론과 유사하다. 근본은 인과율이다.


    ◎ 원인(시작) <- ? -> 결과(끝)
    ◎ 질≫입자≫힘≫운동≫량
    ◎ 입력≫저장≫제어≫연산≫출력
    ◎ 받기≫쌓기≫틀기≫풀기≫주기
    ◎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 기≫승≫전≫결
    ◎ 도입introduction≫전개development≫결말conclusion
    ◎ 서론≫본론≫결론
    ◎ 문제≫해답


    시험문제라도 주관식 문제라면 문제풀이 과정을 요구한다. 답만 찍는다면 꼼수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와 답이 원인과 결과라면 그 사이에 풀이과정으로 세 가지 포지션이 추가되어야 한다.


    ◎ 문제≫공식≫대입≫풀이≫해답


    먼저 수험생은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다음 그 문제에 맞는 공식을 가져와야 하고 다음 공식에 대입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다음 문제를 순서대로 풀어낼 줄 알아야 하고 마지막에 답을 적는 것이다.


    하나의 문제는 반드시 다섯 단계의 절차를 요구한다. ‘1+1은?’ 하고 물었는데 ‘일 더하기 일은 귀요미.’ 이런 거 곤란하다. 이게 산수문제임을 알아야 ‘한 덩이 + 한 덩이는 큰 한 덩이’라는 오류를 피한다.


    주어진 문제에서 답을 찾는게 아니라 근본모형에서 복사해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물 한 컵 더하기 한 컵은 큰 한 컵이라는 오류를 피한다. 원형에서 복사해 오므로 물이나 컵과 관계없다.


    물이나 진흙을 셈하는게 아니라 우주가 공유하는 원형과 겹치는 부분을 복제해서 대입하는 것이다. ‘너는 순이를 사랑하느냐?’ 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질문이라도 답은 우주의 원형에서 복사해온다.


    그냥 내가 사랑의 감정을 느꼈으니까 사랑한다는 식이면 성폭행범이 피해자 앞에서 뭔가 느꼈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느낀건 개인사정이고 우주의 원형인 사랑과 일치하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인 거다.


    우주의 원형은 존엄≫자유≫사랑≫성취≫행복이라는 일의 메커니즘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며 그 사랑은 존엄과 자유가 전제되어야 한다. 존엄은 같은 집단으로 끼워주고 자유는 독립적인 역할을 준다.


    개를 잘 길러서 잡아먹으면 그것은 사랑일까? ‘나는 정말 그 개를 좋아했다. 그래서 잘 먹었다.’ 이거 사랑일까? 존엄의 원칙과 자유의 원칙에 어긋나므로 가짜다. 사랑을 빙자한 폭력이 얼마나 많은가?


    ◎ 비대칭 원리 - 원인과 결과, 시작과 끝, 문제와 해답, 입력과 출력, 진보와 보수의 형식으로 대칭되는 두 포지션만으로는 순환의 오류에 빠지게 되므로 복잡한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 반드시 비대칭이라야 한다.


    원인과 결과, 시작과 끝, 문제와 해답, 입력과 출력, 진보와 보수는 사건 안의 두 포지션만으로 복잡한 세상을 설명할 수 없다. 대개 순환의 오류에 빠지게 되는데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패턴이다.


    아베노믹스의 오류와 같다. 아베는 통화정책≫재정정책≫성장정책이라는 세 개의 화살을 준비했다. 통화를 늘리고 재정을 확충한 것 까지는 좋았는데 소비세 인상에서 막혔다. 세 번째 화살이 빗나갔다.


    구조개혁을 먼저 하고 다음 통화와 재정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거꾸로 한 것이다. 경기가 축소된 상황에서 환자를 수술해야 하는데 먼저 죽은 환자를 살려놓고 치료한다며, 달리고 있는 사람을 수술했다.


    뻗은 환자를 일으켜놓고 수술한다는게 언뜻 맞는 말 같지만 눕지 않고 수술한 사람은 관우 밖에 없다. 먼저 경기를 살려놓으면 개혁에 저항하는 시장의 힘이 커져서 개혁에 실패하는게 순환의 오류다.


    개혁≫성장의 순서가 맞는데 거꾸로 된 것이다. 속도를 줄인 다음에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해야 하는데 속도를 올린 다음에 그 힘으로 우회전을 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대개 이런 오류에 빠진다.


    ◎ 진실 – 개혁을 해야 경제가 살아난다.
    ◎ 거짓 – 경제가 살아나야 개혁을 할 수 있다.


    원인과 결과, 시작과 끝, 문제와 답, 입력과 출력, 진보와 보수, 선과 악은 절대로 대칭적이지 않다. 그러나 대개 이를 대칭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데서 비극이 시작된다. 순환의 오류에 빠지는 거다.


    경제를 살려놓은 결과가 다시 경제개혁을 방해하는 원인이 되는 아베노믹스 식의 무한순환에 빠지지 않으려면 입력과 출력 사이에 저장≫제어≫연산을 추가해야 한다. 비가역구조를 탄생시켜야 한다.


    일의 시작과 끝, 사건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세 번 의사결정이 더 있다. 모두 합쳐서 5번 의사결정을 해주어야 하나의 사건이 완성된다. 이에 완전성 개념이 생겨난다. 과연 어떤 것이 완전한가이다.


    ◎ 완전성 – 완전하면 소통한다. 완전하면 짝 짓고 낳는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건축이든, 패션이든, 문학이든, 결국은 사건의 완전성을 지향한다. 그 완전성은 미리 예비되어야 한다. 모든 존재는 복제단계에서 이미 완전해야 한다. 불완전≫완전은 자연에 없다.


    불완전한 것이 점차 완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완전하지만 감추어져 있는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춘향이 몽룡을 만나서 좋은 사람이 된게 아니라 원래 좋은 사람이었는데 나중 인정받은 거다.


    ◎ 틀린 생각 – 나쁜 사람이 어떤 계기로 좋아진다.
    ◎ 바른 생각 –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오해되다가 오해가 풀린다.


    씨앗 속의 배아에 미래의 떡잎과 꽃이 예비되어야 한다. 싹 트고 난 다음에 적당할 때 잎과 가지와 줄기와 꽃을 장만하겠다는 식이면 실패한다. 구조론은 마이너스이므로 외부에서의 플러스는 안 된다.


    소설을 써도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대결하는 식이면 곤란하다. 한 인물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해야 한다. 입체적인 캐릭터라야 한다. 음악이라도 한 프레이즈 안에 고저장단을 다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림은 되도록 심플해야 한다. 인간의 시각으로 단번에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전부가 눈에 들어와야 한다. 완전성은 구조론의 질≫입자≫힘≫운동≫량에서 질 안에 나머지 모두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완전해야 타자와 결합되고 결합되어야 낳는다. 완전하지 않은 씨앗은 싹 트지 않는다. 한 개인이 인류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류 모두가 동시에 가져야 한다. 모든 세포가 유전자를 가지듯이.


    머리는 머리의 일을 하고, 팔은 팔의 일을 하고, 다리는 다리의 일만 하는 식은 곤란하다. 귀족과 상놈으로 분별되면 곤란하다. 하나 안에 왕에서 병사까지 있어야 한다. 구조론의 핵심인 중첩개념이다.


    어떤 나라가 전쟁에 져서 모든 국민이 죽고 단 한 명만 살았다면 그 한명은 왕이면서 장관이면서 장군이면서 사병이다. 역할이 중첩된다. 그 한 명이 살아있다면 아직 그곳에 국가는 존재하는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예술에 대한 관점이 하나가 전체를 대표하는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 역할분담은 곤란하다. 분업은 효율성을 얻기 위한 편의적인 수단일 뿐 의사결정은 완전성에 근거해야 한다.


    의사결정은 대칭을 거친다. 처음 일자가 존재하며 이를 시간의 칼로 자르면 자기복제가 일어나 자신과 대칭된다. 이 방법으로 최초의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이는 크로노스가 가이아를 낳은 것과 같다.


    최초의 탄생은 자기 자신과 결혼해서 낳는 것이다. 의사결정은 대상의 통제를 전제로 하며 통제하려면 1로써 2를 장악해야 한다. 일의성이다. 어떤 둘이 하나를 공유할 때 그러한 일의성이 성립한다.


    두 사람이 한 배를 탄 것과 같다. 둘이 하나를 공유할 때 하나가 결정되면 다른 것도 결정된다. 연동의 원리다. 형제가 아버지를 공유하는 상황에서 형이 부친상을 당하면 아우도 부친상을 당한다.


    이 방법으로 엔트로피를 극복한다. 어떻게든 일하면 에너지를 소모한다. 에너지를 외부에서 끌어들이면 일이 2회다. 하나의 일은 주사위를 한 번 던진다. 주사위를 놓았을 때 에너지 입력은 끝난다.


    다음부터는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조달해야 한다. 자기 안의 에너지를 써야 하므로 둘이 하나를 공유하는 대칭을 쓰는 것이며, 자연의 모든 의사결정은 이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 일의성 원리 – 대칭≫비대칭의 순서로 간다.


    정과 반, 음과 양, 남과 여, 낮과 밤, 하늘과 땅처럼 대칭되어 있어야 계가 통제되고 일은 진행된다. 대칭되지 않으면 에너지의 추가투입이 필요하고 사건은 2회가 되어 실패다. 연동되려면 1회여야 한다.


    문제의 답을 찾는 것은 그 문제를 주물로서 답을 도출하는게 아니라 원형에서 복제해 오는 것이므로 원형과 연동되어야 하고 그러므로 사건은 1회라야 한다. 우주 안의 모든 사랑은 1회라야 한다.


    아이가 탄생될 때 남자이면서 여자인 지점이 있고 그 지점을 통과한다. 해가 뜰 때 낮이면서 밤인 지점이 있다. A이면서 B인 지점이 있다. 시소의 중간지점과 같다. 이 부분을 장악하면 대상이 통제된다.


    ◎ 틀린 관점 – 남자는 높고 여자는 낮다.
    ◎ 바른 관점 – 남자와 여자가 중첩되어 있다가 역할을 나누었다.


    남자와 여자가 분별된 것은 일이 상당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 파트너를 찾아간 것이다. 남자는 전쟁을 하고 여자는 양육을 하는 식으로 각자 자기의 일을 정해서 상당히 진도나간 것이다.


    ◎ 구조론은 일원론이다. 하나의 방향성만을 가진다.


    모든 존재는 본래의 탄생지점에서 남자도 여자도 아니며, 낮도 밤도 아니며, 진보도 보수도 아니며, 오직 진보하여 나아가는 하나의 방향성만을 가진다. 모든 분별은 근원에서 틀린 것이다. 대신 연동된다.


    구조론은 일원론이며 강자와 약자, 빈자와 부자, 선과 악을 별개의 두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화살이 가지는 앞과 뒤로 본다. 그리고 그 화살은 정지해 있지 않고 계속 진행하여 나아간다. 멈추면 죽는다.


    선은 있고 악은 없다. 선은 화살의 머리이고 악은 화살의 꼬리다. 둘은 하나다. 한 인간 속에 선과 악이 중첩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선만 있고 악은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면 실상 선도 없는 사람이다.


    선과 악이 내 안에 공존되어 있는데 적극적으로 의사결정하여 선을 취하고 악을 제압해야 진짜 선이며, 악은 없고 선만 있는 사람은 사이코패스다. 선과 악 사이에서 하나의 방향성을 찾는게 구조론이다.


    선과 악, 참과 거짓, 밤과 낮, 남과 여, 플러스와 마이너스, 고와 저, 장과 단들은 두 단어로 되어 있다. 이를 별개의 둘이 아니라 하나의 방정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구조론이다. 모든 대칭이 그러하다.


   111.JPG


   원인과 결과, 선과 악, 진보와 보수, 성공과 실패같은 대칭적 개념들은 엄밀히 따지면 전혀 대칭이 아닙니다. 이 단어들을 짝지을 때는 반드시 순서가 있고 순서대로 가야 하는데 이를 대칭적으로 이해하여 그 순서를 무시하면 아베노믹스와 같은 순환의 오류에 빠집니다. 살린 다음에 살찌워야 하는데 살찌운 다음에 살리기로 하다가 암이 더 빨리 살쪄서 망한 것이 아베노믹스죠. 살찐 결과가 다시 암의 발병원인이 된 순환입니다. 진보와 보수는 절대 대등하지 않습니다. 좁은 공간에 둘이 있는데 몸이 스쳐서 싸움이 난게 아니고, 좁은 공간에 둘이 들어가는 순간 이미 확률적으로 싸움은 일어난 것입니다. 원인 속에 결과는 이미 잠복해 있으므로 둘은 절대 대등하지 않습니다. 문제 속에는 답이 이미 들어있습니다. 답 속에는 문제가 없고 결과 속에는 원인이 없습니다. 삶 속에는 죽음이 있지만 죽음 속에는 삶이 없습니다. 씨앗 속에는 꽃이 있지만 꽃 속에는 씨앗이 없습니다. 비대칭원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레벨:5]yhy

2014.12.07 (17: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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