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6046 vote 0 2004.09.07 (22:55:23)

14. 독립정부의 문지기를 소원한 백범

나는 내무총장 안창호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문지기를 청원하였다. 도산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음날 도산은 나에게 홀연히 경무국장 사령서를 교부하여 취임하기를 힘써 권한다. [백범일지]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김구는 상해로 탈출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에 참여한다. 임시정부는 주로 해외에서 활동하던 명망가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시골에서 서사삼경이나 읽었던 백범에게 있어 미주에 유학하여 신지식으로 무장한 젊은이들과 함께 일한다는 결정을 내리기에는 매우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안창호에게 정부의 문지기를 하겠다고 고집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겠다.

백범은 고향에서 교육운동에 종사하던 시절 도산 안창호선생의 누이동생이자 날 나가는 신여성이었던 안신호씨와 결혼할 뻔했던 인연도 있다. 이후 안창호가 주도한 신민회에 참여하였다가 옥고를 치르게 된다. 이런 이유로 백범은 일단 안창호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안창호는 1897년 이승만, 이상재, 윤치호 등과 독립협회(獨立協會)를 조직하였고 평양에서 만민공동회(萬民共同會)를 개최하는 등 개화파 독립운동 1세대에 속한다. 같은 시대 동학의 접주로 활동하다 왜를 타살하고 인천의 감옥에 갇혀 있었던 김구는 상해임시정부를 주도한 개화파를 중심으로 볼 때 현저하게 위상이 떨어지는 입장이다.

당시 임시정부의 자금줄은 안창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직한 흥사단(興士團) 등 미주와 하와이의 교민들에게 있었으므로 임시정부는 해외파가 주도하게 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백범은 나이로는 안창호보다 2살 위이나 내무총장 안창호 아래에서 활동하게 된다.

백범 김구를 고리로 하여 국내에 조직기반을 가지고 있었던 도산 안창호의 내무총장 취임은 해외파 및 개화파를 중심으로 조직된 상해 임정에 있어 국내 조직의 건설이 시급한 과제였으며 국내파에 속하는 경무국장 김구가 그 중심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3.1만세 이후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중요한 사실이 많으나 독립완성 이전에는 비밀로 할 것이므로 너희들에게 알려주지 못함이 유감이다. 이해하여 주기 바라고 이만 그친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넘은 1929년 5월 3일에 종료하였다. 임시정부 청사에서. [백범일지]

요즘으로 치면 경찰청장에 지나지 않는 초대 임시정부 경무국장 백범이 10년 후 임시정부의 주석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두 떠나가고 김구만 홀로 남았기 때문이다. 임시정부는 수립되었지만 해외의 명망가들은 모두들 떠나갔다. 갈곳 없는 김구만 끝까지 남았다. 쟁쟁한 명망가들은 다 어디가고 왜 김구 혼자만 남았을까?

백범일지에서 우리는 김구선생의 앞에 놓여진 세 가지 큰 전선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국내파로서 해외파와 대립하고 있다. 둘째 범개화파로서 조선왕조의 부활을 꿈꾸는 수구파와 대결하고 있다. 세째 서민 출신으로 조선왕조500년을 말아먹은 양반 출신들과 대립하고 있다.

본질은 정통성이다. 일본에 유학한 이광수 등은 전공을 살려 친일파가 되었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 등은 역시 자신의 전공을 살려 나라를 미국에 팔아넘길 생각까지 하였다. 김원봉 등 좌파 이념에 물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전공을 살려 나라를 러시아에 들어다바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백범일지 상권은 1929년 54세까지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형식은 개인의 자서전으로 되어 있으나 그 이면을 보면 중요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백범이 누누이 강조한 바는 우리민족의 나아갈 바이며 이는 곧 민족의 정통성이다.

백범일지는 우선 명망가 위주로 구성된 해외파에 대해 국내파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둘째 조선왕조의 부활을 꿈꾸는 수구세력에 대해 신문물을 받아들이자는 범개화파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셋째 양반출신에 대해 서민계급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김구는 곧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친미사대주의, 자치를 주장하는 친일파 등에 대해 우리 민족 자주노선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많은 독립투사들은 왜 하나같이 자주노선을 버리고 미국이나, 일본이나,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에 의존하였는가?

우리 민족의 가능성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를 말아먹은 양반계급을 불신하고 그 양반의 압제를 받아온 즉 양반보다 더 한심한 상놈계급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양반도 안되고 상놈도 안되므로 외국의 사상인 공산주의에 의존하거나 힘센 나라인 미국이나 일본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백범일지는 인(仁), 신(信) 두 아들에게 주는 유서 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실로 우리 민족에게 주는 큰 가르침이라 할 것이다. 백범일지의 가르침은 우리민족의 나아갈 바 자주노선의 정통성에 관한 것이다.

선생의 자주독립노선은 동학농민항쟁으로 봉기하면서부터 상해 임시정부의 활동에 이르기까지 온갖 수난을 겪으며 몸소 경험한 바 우리민족의 저력에 대한 신뢰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구는 도무지 우리민족에게서 무엇을 보았길래 민족의 저력을 신뢰하게 되었는가?

이를 김구 개인의 사상편력에서 찾자면 첫째 고능선선생에게 배운 도학의 정신이 그 바탕이 되고, 둘째 상놈의 출신으로 양반계급에 도전한 동학의 정신이 그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세째 농촌계몽운동에 종사한 경험에서 본 바 서구의 신문물을 부담없이 받아들이는 상민계급의 실용주의적 태도에서 그 저력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다. 공산주의로, 무정부주의로, 친일로, 친미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의 공통점은 상민계급과 부대껴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 민족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책상 앞에 앉아서 외국에서 가져온 책이나 읽었을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답은 우리민족의 저력에 있다. 그 저력은 이 민족을 구성하는 상놈들, 농민들, 장사치들, 학생들 개개인에서 나온다. 외국에서 번역한 책이나 그 책으로 옮겨지는 이념쪼가리에서 답이 찾아지는 일은 결단코 없다.

선생은 3천만 겨레와 직접 부대끼며, 대화하며, 가르치며, 배우며, 조직하며, 투쟁하며, 우리민족의 저력을 확인하고, 그 저력을 바탕으로 우리민족 중심의 자주노선을 확립한 것이다. 백범일지에서 이 점을 발견하였다면 제대로 읽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1919~ 1932년]

44세  3.1만세운동 직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취임한다.

 ★

51세, 임시정부 국무령(國務領)에 취임한다. 이봉창의사와 윤봉길의사 등의 의거를 앞두고 백범일지 상편을 쓴다. 이동녕・이시영・조완구・조소앙・안창호 등과 함께 한국독립당을 결성하고 당수를 맡는다.

57세, 이봉창의사를 동경에 파견하여 왜왕에게 수류탄을 던지게 한다. 윤봉길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축하 겸 상해사변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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