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5205 vote 0 2004.09.02 (17:24:47)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쓴 글이어서 지금 상황에 맞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문장 일부는 고쳤습니다. .』

4. 선생의 자유사상

나의 이념은 한마디로 자유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자유의 나라여야 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개인이 멋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고 하면 이는 나라가 생기기 전이나, 나라가 소멸된 뒤에나 있을 일이다. 국가생활을 하는 인류에게는 이러한 무조건의 자유는 없다. [나의 소원]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라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의사결정의 1단위요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1단위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가 없다는 것은 개인 차원에서의 의사결정이 없다는 것이요,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의 단계적 접근과정에서의 문제해결이 없다는 것이요, 시스템에 있어 피드백의 가역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는 하나의 조직이요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궁극적인 요소는 개인이다. 자유란 시스템의 오류를 인지하고 시정하는 1단위가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문제의 발견, 대책의 강구, 오류의 시정이라는 가역과정이 1개인을 단위로 하여 이루어지므로서 문제해결을 용이하게 하자는 것이다.

이를 생물체에 비유할 수 있다. 생물의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세포 하나하나가 각각의 DNA를 가진다. 즉 세포는 인체의 조직과 기관의 하부단위로 존재하면서 동시에 능동적인 문제해결의 1단위로 존재하는 것이다.

예컨대 백혈구도 하나의 세포이다. 백혈구는 하나의 세포에 지나지 않지만 병원균을 발견하고 처치함에 누구의 자문을 구하거나 지시를 하달 받지 아니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개인이 문제해결의 1단위로 설 때 그 국가라는 시스템이 생명체처럼 건강하게 보전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가 없다면 발견된 문제는 상부에 보고될 뿐 자체적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상부의 지시가 내려질 때까지 누구도 문제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는다. 그러한 생명체는 외부에서 병원균의 침입에 극히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유가 없으면 이러한 오류시정이 1개인을 단위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 경우 한 개인의 문제가 그 소속집단 모두의 문제가 된다. 이는 곧 조직의 붕괴, 국가의 붕괴, 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 이 상황에서 집단이 자기방어를 위해서는 그 조직의 하부단위인 개인을 희생시키는 수 뿐이다.

만약 생명체가 전체주의국가와 같이 시스템의 보호를 위해 하부단위를 희생시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간 조직 일부에 병원균이 침범했다면 인체는 생존을 위해 간 전체를 제거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는 생명이 살아남을 수 없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듯이 조직이 자기방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이 곧 파시즘이다.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조직이 자기보호를 위해 조직의 하부단위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발상을 하는 즉 파쇼주의라 볼 수 있다.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를 기초로 하는 계급 독재다. 개인이 휘두르는 독재는 그 개인만 제거하면 그만이나, 한 계급이 독재를 휘두를 때는 그보다 큰 국제적 압력이 아니고는 깨뜨리기 어렵다. [나의 소원]

선생의 말씀하신 바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 독재』는 표면적으로 공산주의와 유교주의를 겨냥하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더 폭 넓은 의미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는 선생이 서민계급 출신으로 세상의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 혹 실패하고 혹 좌절하면서 정립된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에 관한 것이다.

한마디로 현실의 경험이 없이 책상머리에서 나온 먹물들의 지적 편협에 대한 불신과 비판이라 할 것이다. 선생은 사회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철학을 기초로 한 독재』를 그 생명체의 편식에 비유하고 있다.

세상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농부는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수확한다. 흔히 우리는 말한다. 흙은 정직하다고! 과연 그럴까? 천만에! 흙은 거짓말을 한다.

심은 농작물은 봄의 가뭄에, 여름의 홍수에, 가을의 서리에 사라져 버린다. 흙은 늘 농부를 배신한다. 철저하게 패배해 본 자, 역경을 극복해 본 자, 시행착오와 오류시정을 경험해 본 자가 전모를 볼 수 있다.

백범은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듯이 빈손으로 시작해 본 사람이다. 온갖 시행착오를 경험하면서, 세상이 그리 입맛대로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터득하면서, 책상머리에서 나온 지식을 불신하게 된 것이다.

밑바닥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외부에서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주의주장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선생은 외국에서 수입된 제도와 체제를 불신하는 한편 자주와 자유의 원칙 하에 다원주의, 실용주의, 합리주의적 태도로 신학문을 수용하고 있다.  

우리가 세우는 나라는 유교도 불교도 예수교도 자유롭게 발달하고, 인류의 위대한 사상이 다 들어와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비로소 자유의 나라라고 할 것이다. [나의 소원]

중국의 등소평이 실용주의자일 수 있는 것은 프랑스 유학시절 장사를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맨주먹으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보아야 한다. 설사 수천억원의 자본을 가진 대회사를 운영해 보았다 할지라도 구멍가게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 본 경험이 없이는 결코 전모를 볼 수 없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외부에서 주입된 철학은 진짜가 아니다. 백범의 학문은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다. 서당에서 배운 구학문, 인천의 감옥에서 배운 신학문, 승려생활을 하면서 배운 불교철학, 기독교활동을 하면서 배운 서구사상, 교사 강습을 받으면서 배운 신문물, 이런 자투리 지식들이 짜맞추어져 거대한 사상이 되었다.

나는 정치에 있어서 너무 인공을 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전지전능할 수 없고 학설은 완전무결할 수 없다. 한가지 원리로 국민을 통제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빠른 진보를 보이는 듯하더라도 반드시 큰 탈이 나고 만다. [나의 소원]

백범은 유교, 동학, 불교, 기독교를 섭렵한데 이어 임시정부에 참여하면서 서구식 민주주의를 배웠고 좌파와 합작하면서 사회주의와 무정부주의도 배웠다. 농촌운동을 하면서 새로운 농사기술을 배워와서 보급하는데도 앞장섰고 심지어는 감옥에서 도적의 괴수로부터 비밀결사의 조직방법도 배웠다. 이처럼 다양하게 폭넓게 배운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철학은 총체적인 인식이다. 폭 넓은 지적 편력이 없이 총체적 인식은 성립하기 어렵다. 선생의 사상은 한마디로 중재와 조정과 제어라 할 수 있다. 어떤 정해진 공식에 맞추어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운전수가 좁은 길에서 위태롭게 운전하듯이 전후진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조정해가며 효율의 최적화에 도달하여가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국민의 의사를 알아보는 방식일 뿐 그 내용이 아니다. 즉 언론의 자유, 투표의 자유, 다수결에 복종, 이 세 가지가 곧 민주주의이다. 어느 개인이나 당파에 의해 국론이 좌우되지 않고 언론의 활동으로 국론이 결정되는 것이 미국식 민주주의다. [나의 소원]

민주주의는 어떤 길을 가느냐가 아니라 어떤 길을 가더라도 반드시 지켜야될 교통법규와 같은 것이다. 선생의 사상이 중재와 조정과 제어라면 그 중재를 가능케 하는 것은 실용주의요 그 조정을 가능케 하는 것은 다원주의요 그 제어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합리주의다.

선생은 모든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어느 사상에도 절대적으로 의존하지는 않는다. 운전사가 믿는 것은 이념이라는 지도가 아니라 자신의 운전실력이다. 그 운전실력을 가능케 하는 것은 첫 번째가 자주요, 두 번째가 자유요, 세 번째가 교육이다.

사회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는 이념타령은 그 자동차 운전자의 운전실력은 논외로 하고 오로지 외부에서 얻어온 도로지도에만 의존하라는 주장과 같아서 만의 하나 오류가 밝혀지면 시정할 방법이 없다. 피드백과정이 없는 것이다.

선생의 자주사상은 남이 가져다준 지도일랑 믿지 말고, 곧 나의 자동차에 의존하라는 말이요, 선생의 자유사상은 남의 운전사를 믿지 말고 내가 직접 그 자동차를 운전하라는 말이요, 선생의 민주주의는 곧 교통질서를 지키라는 말이요, 선생의 합리주의는 그 자동차의 클러치요, 실용주의는 그 자동차의 엑셀레이터요, 다원주의는 그 자동차의 기어장치와 같은 것이니 이 모든 것이 고루 갖춰지고서야 국가라는 시스템이 원활하게 운전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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