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지는 8번째 글입니다. 알고보면 백범 김구는 원칙가가 아니라 실용주의자입니다. 우리는 김구를 오해하므로 하여 노무현도 오해하고 있습니다.! |
제 2 장, 우리가 노무현을 오해하고 있는 16가지 이유
김구를 모르고는 노무현을 말할 수 없다! 노무현은 김구에게서 배웠다. 노무현을 모르고 김구를 논할 수 없다. 노무현은 김구에게서 링컨을 보았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노무현이 김구에게서 보았던 링컨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아뿔사! 우리는 김구를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김구를 오해하고 있으므로 노무현도 오해하고 있다. 스스로 링컨이 되므로서 미완성의 김구를 완성시키려는 노무현의 야심찬 계획을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노무현이 즐겨 사용하는 단어를 두개만 꼽으라면 ‘신뢰’와 ‘노하우’를 들 수 있다. ‘노하우(know-how)는 경험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신뢰는 대화와 토론을 통한 정보의 공유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로서 노무현의 실용주의자 다운 면모를 알 수 있다. 그는 이론가가 아니라 실천가였던 것이다.
1. 노무현이 링컨을 말하는 이유
나는 감히 말한다. 역경 속에서 연마한 건전한 상식을 가진 링컨이 없었다면 미국의 정치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낮은 사람이, 겸손한 권력으로, 강한 나라를 만든 전형을 창출한 사람, 그가 곧 링컨이다. [노무현어록]
노무현은 잘못 알려져 있다. 노무현은 고집 센 원칙주의자가 아니다. 노무현을 겪어본 사람들은 세상에 노무현만큼 설득하기 쉬운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물론 그 주장이 옳을 경우에 한해서이다. 옳지 않은 주장으로 노무현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사람은 아직 없다.
백범 김구 선생도 잘못 알려져 있다. 선생의 자주노선은 현실을 모르는 선비의 순진한 판단이 아니다. 김구선생은 상해 임정에서 좌우합작을 성공시켜본 경험이 있다. 김구는 좌파와 우파에 무정부주의까지 가세하여 이전투구를 벌이는 가운데 임시정부를 지켜내는데 성공한 중재와 타협의 달인이다.
김구선생이 임시정부에서 좌우합작을 성공시켜본 경험에서 얻은 노하우를 활용하기 위해 김일성과 회담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노무현이 정몽준과 후보단일화를 한 것은 원칙을 굽혔기 때문이 아니라, 오랜 변호사 생활의 경험으로 어떻게 해야 승리하는지를 알고 승부사의 솜씨를 발휘하여 상대방을 막판 초읽기에 몰아붙인 끝에 승리를 얻어낸 것이다.
노무현은 부산에서 여러 번 낙선한 바 있다. 우리는 노무현을 오해하고 있다. 노무현은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사람으로 원칙만을 고집하다가 패배한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천만에! 노무현은 승부사다. 변호사 노무현은 재판마다 이겨서 한 때는 돈도 많이 벌었다.
정몽준과 타협이 가능했던 데는 변호사시절 재판에서 승리한 경험과 국회의원 시절 노조와 재벌을 중재한 경험이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알고 보면 그는 밀고 당길 줄 아는 수완 좋은 협상가이다. 그가 원칙가인 척 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를 꺾어놓고 들어가는 변호사의 노하우이다.
노무현이 부산에 출마한 것은, 제갈량이 낙양에서 멀리 떨어진 서촉을 근거지로 삼아 나라를 세운 것과 같다. 권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근거지를 세우므로서 DJ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숨어있는 것이다.
노무현은 김구노선의 계승자이다. 우리는 김구를 오해하고 있으므로 노무현도 오해하고 있다. 노무현은 이러한 오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일부러 링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백범노선은 강고한 원칙주의가 아니라 유연한 실용주의다.
2. 여의도의 부시맨 노무현
80년대 초에 ‘부시맨’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아프리카의 칼라하리 사막에는 지금도 원시 생활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 부시맨들이 있다.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 하나 때문에 부시맨 사회는 갈등과 내분에 휘말린다.
영화는 소동의 주범인 콜라병을 하느님께 돌려주므로서 마을의 평안을 되찾기 위하여 문명사회로 여행을 떠나는 부시맨 족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제 부시맨이었던 니카우씨를 주연으로 내세워 통렬한 문명 비판을 가한 코미디 영화이다.
국회에 처음 등원한 초선의원 노무현은 본인의 표현대로 여의도 부시맨이었다. 투박한 촌놈 노무현과 세련된 도시민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온갖 소동이 일어난다. 천만에! 자서전 ‘여보 나좀 도와줘’의 행간에 감쳐둔 노무현의 메시지를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성장을 멈춘 양철북의 소년처럼 노무현은 의식적으로 자기 신분의 성장을 멈추어버렸다. 엘리트사회에 동화되지 않기 위하여, 서민적 정체성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자기 앞에 드리워진 출세의 사다리를 애써 외면해 버렸다. 의도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한 인간의 인격은 열다섯살을 전후로 하여 완성된다. 그 이후로는 열다섯살에 얻어놓은 것을 반복적으로 표절하고 복제하는 것이다. 그 이후의 성장은 열다섯살에 완성된 뼈대에 점차 살을 붙이고 내용물을 채워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열다섯살 노무현은 세상에 불만을 품고 사고나 치고 돌아다니는 당돌한 소년이었다. 그는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 너무 일찍 세상을 알아버렸다. 양철북의 소년이 의식적으로 성장을 멈추어버리듯이 촌놈 노무현은 열다섯에서 의도적으로 성장을 멈추어버렸다.
천만에! 속지 말아야 한다. 성장을 멈춘 척 연기를 하는 것이다. 타고난 쇼맨십이다. 그 밑바닥에 숨은 분노와 열정과 야심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지점에서 세상과 각을 세우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스스로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일 수 있다.
촌놈 노무현? 천만에! 노무현은 무서운 사람이다. 일생을 두고 연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기의 삶을 하나의 장편소설처럼 하루에 한 페이지씩 써 가는 사람이다. 사이사이에 복선을 깔고 갈등을 심고, 극적인 반전까지 미리미리 준비해두는 사람이다.
필자는 노무현이 자신의 삶 속에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무수한 복선과 트릭과, 갈등과, 극적인 반전을 한 꺼풀씩 벗겨내어 폭로하고자 한다. 그렇다! 우리는 그간 노무현을 오해해왔다. 그의 진면목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하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