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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7986 vote 0 2009.09.22 (23:58:14)

인생에 정답은 있는가?
‘지난주 동영상 강의 해설입니다.’

인생에 정답이 있는가? 물론 정답은 있다. 그러나 그 정답이 당신이 원하는 답이라는 보장은 없다. 인생에 지름길은 있는가? 당연히 지름길이 있다. 그러나 그 지름길은 당신이 원하는 길이 아닐 수 있다.

예수의 길, 전태일의 길, 백범의 길이 정답이라면 어떨까? 답을 알아도 그 길을 회피할 사람이 많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이 글은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더 읽지 마시길.

소수의 참된 사람이 있으므로 나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인생에는 정답이 있고, 지름길도 있다고 분명히 말한다. 위험하다! 이 미성숙한 나라에서는 인생에는 정답도, 지름길도 없다고 말해야 안전하다.

‘천재는 1프로의 영감과 ’99프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고 겸손하게 말해야 한다. 이 척박한 땅에서 안전하려면. 에디슨은 그렇게 말하고 살아남았다. 그러나 테슬라는 용기있게 진실을 말했다.

‘헛간에서 잃은 바늘을 찾기 위해 지푸라기를 하나하나 들어낼 바보가 에디슨이라고.’ 테슬라는 정답도 있고, 지름길도 있다고 말했다. 헛간의 바늘은 자석으로 찾는게 정답이다. 그게 지름길이다.

그게 더 현명하고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인생은 어땠는가? 교류전기를 발명하여 인류에 기여하였으나 불행해졌다. 그 테슬라를 쫓아다니며 괴롭힌 에디슨은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었다.

과연 누가 성공했는가? 신 앞에서의 성공은 테슬라의 것이었다. 에디슨의 성공이랬자 군중 앞에서의 우쭐거림에 불과하다. 타인과 비교된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열등의식의 보상일 뿐이다.

나는 정답을 말하고자 한다. 잘 먹고 잘 사는 정답은 아니다. 예수처럼 성공하고 전태일처럼 살아나는 길이다. 우쭐하는 성공을 찾는 사람은 퇴장하시고 말귀 알아듣는 상위 1프로만 진도 나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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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성공은 무엇일까? 존재는 있을 존(存) 그리고 있을 재(在)다. ‘존’은 쓰임새가 명사에 가깝고, ‘재’는 동사에 가깝다. ‘있음’과 ‘있다’가 다르다. 하나의 존재는 'A=B', 곧 ‘A면 B다’의 방정식으로 성립한다.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은 시공간상에서 자기를 보존하고 외력의 작용에 대응하는 그 방정식을 내부에 세팅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림 속의 떡과 같이 다른 것에 빌붙어 있는 것은 존재가 아니다.

‘그림 속의 떡’은 그림에 빌붙어 관념으로 있다. 외력의 작용에 독립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 집을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다. 그것은 ‘있다’의 동사로 있으나 ‘있음’의 명사로는 없다.

명사로서의 ‘존재’는 ‘(전제)=(진술)’이고 동사로서의 ‘존재하다’는 거기서 전제를 생략하고 남은 ‘(   )=(진술)’다. 인생의 전제가 실존이면 진술은 일상이다. 우리는 일상을 존재로 치는 거다.

소로우가 찾으려 했던 진정한 삶은 다르다. 전제를 찾아야 진짜다. 인생은 하나의 커다란 질문이며, 삶은 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라면, 인생의 성공은 존재의 근원적인 물음에 답해내느냐에 있다.

예수는, 전태일은, 백범은 자기 방법으로 그 물음에 답하였다. 그러므로 인류의 살아있는 역사의 호흡 안에서 부활했다. 예수를, 전태일을, 백범을 죽인 자들은 살았으나 숨쉬는 시체에 불과했다.

그들은 자기 삶을 살지 못했다. 그림 속의 떡이 그림에 빌붙어 있듯이 그들은 빌붙어 단역으로 살았다. 숙주가 죽으면 죽는다. 이렇게 핵심을 찍어놓고 보면 인생의 성공은 실로 간명하다.

돈과 권세와 명성을 탐하는 이는 그 인생의 물음에 답하지 못한 자다. 그러므로 그들은 불안하다. 그래서 무언가 자꾸만 내부에 채워넣으려 한다. 바닥이 뚫린 것처럼 속이 허하기 때문이다.

돈으로 채우고, 권세로 채우고, 명성으로 채우려 한다. 그러나 고흐는 진정한 그림을 그렸을 때 만족했고, 소로우는 진정한 삶을 얻었을 때 만족했다. 딱 하나 필요한 것은 알아주는 친구다.

피어난 꽃은 향기를 퍼뜨리고, 성숙한 열매는 맛을 남긴다. 완성된 정원은 친구를 초대할만 하고, 완성된 작품은 독자를 감염시킨다. 그 인생보고서를 사회에 전해줄 한 명의 친구는 있어야 한다.

고흐는 그 친구를 죽고 난 다음에 만났지만 상관없다. 삶이 시간 안에 가두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인생의 성공은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삶이라는 실천을 통하여 답할 수 있다. ‘A면 B다’ 논리칙의 ‘(전제)=(진술)’ 방정식을 완성시킬 수 있다. 그 길은 간명하다. 그 성공의 증거는 향을 남기고, 친구를 초대하고, 세상에 전하는데 있다.  

그 향을 남기기 어렵지 않고 그 친구 초대하기 어렵지 않다. 그 삶의 ‘(   )=(진술)’에서 빈 괄호 채워넣을 신을 친구삼으면 성공이다. 신의 실험에 의미있는 데이터를 보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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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두 갈래다. 객관의 길과 주관의 길이 있다. 빌 게이츠의 길과 스티브 잡스의 길이 있다. 에디슨의 길과 테슬라의 길이다. 과학에 의거한 집단적 성취의 길과 미학에 의거한 독립적 성공의 길이다.

어느 길이든 신의 실험 안에서 의미있는 데이터를 내는 것은 같다. 서권기, 문자향을 남김은 같다. 문제는 둘러가는 길이냐 지름길이냐다. 집체창작이냐 독립창작이냐다. 오답이냐 정답이냐다.

집체창작은 과학의 둘러가는 길이요 독립창작은 미학의 지름길이다. 전자는 확률적으로 맞는 답이요 후자는 정답이다.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지름길을 선택했다. 정답을 선택했다. 모험이었다.

신과의 정면승부를 택했다. 그 결과 지금의 나가 되었다. A면 B다’의 논리칙에 근거한 ‘(전제)=(진술)’ 방정식에서 왼쪽을 채우고 오른쪽을 비웠다. ‘(   )=(진술)’에서 삶을 채우는 일상이 진술이다.

그 전제는? 인생의 근원적인 질문은? 그것은 신의 실험이다. 인생은 그 실험에 대답을 제공하는 데이터다. 나는 거꾸로 그 반대편을 채워버렸다. 내 인생 그 자체를 질문으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에서 쳐준다는 부와 권세와 명성은 멀어졌지만, 내 존재의 근원적인 물음에는 답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내가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안다.

연대기와 열전이 있다. 연대기는 여러 사람이 관계된 여러 사건들의 집합에서 의미있는 데이터를 수집하여 완성의 모습을 끌어내는 방법이다. 그 방법으로 역사의 호흡을 찾아내는 것이다.

에디슨이 헛간에서 지푸라기를 걷어내고 바늘을 찾는 것이다. 열전은 다르다. 한 사람의 삶 안에서 그 시대정신의 정수를 끌어낸다. 무엇인가? 연대기가 하드웨어면 열전이 소프트웨어다.

연대기가 육체라면 열전은 정신이다. 결국 정답은 정신에 있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다. 김수현 드라마는 하드웨어다. 왜냐하면 집체창작이기 때문이다. 요즘 뜬다는 드라마 선덕여왕과 같다.

헐리우드 흥행공식과 같다. 관객은 작가를 상대로 조건을 내건다. ‘요 정도 도달하면 웃어주지.’ 작가는 응답한다. ‘그거야 쉽지. 이래도 안웃을래?’ 그러한 주거니 받거니의 연속으로 되어 있다.

집체창작이다. 진짜가 아니다. 에디슨의 성공은 그 흥행공식에 충실히 응답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에디슨은 성공했지만 그 성공은 에디슨 혼자 것이 아니라 그 공식을 일군 동시대 사람 모두의 것이다.

에디슨은 남의 성공에 자기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신문, 잡지, 소문에 뜬 아이디어는 전부 수집해놓고 발명회사 직원 3천명을 동원하여 실험에 실험을 거듭한 끝에 자기 이름으로 특허출원했다.

빌 게이츠가 그 방법을 썼다. 헐리우드가 그 방법을 썼다. 성공했다. 그러나 헐리우드의 성공은 인류의 집체창작이다. 그 흥행공식은 수요와 공급법칙에 따라 동시대인이 함께 만들어낸 것이다.

인식론 - 연대기 - 객관 - 과학 - 배제의 시스템- 알려진 사실- 빌 게이츠 - 다른 사람의 힘을 이용 - 줄서기

존재론 - 열전 - 주관 - 미학 - 뛰어난 이에게 질문 - 새로운 사실 - 스티브 잡스 - 자신의 힘을 이용 - 컨셉잡기

동전을 잃었다면 어떻게 찾을까? 과학의 방법은 에디슨처럼 지푸라기를 걷어내는 것이다. 동전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까지 수색한 곳 빼고 나머지 부분에 있다. 수색을 계속할수록 정답에 근접한다.

미학은 추리를 진행한다. 동전이 굴러간 방향을 추적한다. 동전은 떨어진 곳에 있다. 이 방법은 쉽게 찾는다. 그러나 한번 실패하면 영원히 못 찾는 수가 있다. 에디슨은 느리지만 언젠가 찾는다.

테슬라는 빠르지만 처음 방향을 잘못 짚으면 영원히 못찾는다. 과학의 방법은 정답을 제시하지만 그 정답은 이미 알려져 있다. 빌 게이츠의 방법으로 빌 게이츠를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헐리우드의 방법은 남들이 이미 써먹고 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지? 빌 게이츠처럼 하면 되지만 그 알려진 방법은 이미 남들이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방법을 써야 한다. 모방이 아니라 창조다.

과학은 집단적 모방의 방법이다. 미학은 독립적 창조의 방법이다. 우리는 미학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물론 당신은 스티브 잡스 만큼의 창의력이 없으므로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이곳에 희망이 있다.

민주당이 가는 길은 과학의 방법이다. 그 방법으로는 한나라당이 이긴다. 2등을 해서야 소용없지 않은가? 어차피 빌 게이츠가 못될 바에야 스티브 잡스가 낫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일구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과학의 방법, 객관의 방법, 빌 게이츠의 방법이 먹힌다. 후발주자이기 때문이다. 공부 못하는 애가 10등 안에 들어가는 데는 암기식, 주입식, 벼락치기가 최고다. 모방이 최고다.

2등이 1등으로 올라서는 데는 모방이 아니라 창조여야 한다. 빌 게이츠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여야 한다. 에디슨이 아니라 테슬라여야 한다. 첨단분야에서 객관식 정답은 의미없다. 왜?

정답이 공개되어 있으므로 객관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모두가 알고 있다. 주관식은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이다. 미공개된 지식에는 미학적 접근이어야 한다. 양자역학이나 줄기세포 같은 첨단분야 말이다.

디자인, 패션과 같은 예술분야는 객관적 지식이 공개되어 있지 않으므로 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창의가 필요하고 깨달음이 필요하다. 지름길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답을 알고 가야 한다.

과학은 하나의 정답이 있으므로 한 넘이 다 먹게 되어 있다. 지푸라기를 하나하나 걷어내서 찾는 방법은 하다다. 미학은 여러 개의 정답이 있다. 자석으로 찾을 수도 있고, 추리로 찾을 수도 있다.

과학은 인류 전체를 성공시키는 방법이므로 답이 하나이고 미학은 60억 인류 개인을 낱낱이 성공시키는 방법이므로 60억개의 답이 있다. 그러므로 미학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앞서가는 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

구조론은 당위의 문제다. ‘(   )=(진술)’에서 빈 괄호를 채우는 것이다. 정답이 나와 있다. 그런데 왜?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자석이 없기 때문에 테슬라가 알려줘도 헛간에서 바늘을 찾지 못한다.

나는 언어를 만들었다. 구조론의 주요 개념들은 국어사전에 나오는 풀이와 다른 새로운 언어들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은 관계망의 집합론 안에서 단어의 개념을 새로 정의한 것이다.

조선왕조 산술은 처음부터 문제로 바로 간다. 홍수로 땅이 휩쓸려 갔는데 김판서네 동그랗고 네모진 땅이 몇 평이냐 계산하라는 식이다. 사냥꾼이 오소리와 꿩을 잡았는데 다리가 몇에 머리가 몇이면 각각 몇 마리냐는 식이다.

문제와 풀이와 답을 제시할 뿐 공리가 없다. 애초의 출발점이 되는 집합론이 없다. 이래서야 수학이 발전할 수가 없다. 21세기 현대도 마찬가지다. 공리가 없다. 언어가 없다. 집합론이 없다.

산업을 일구는 데는 과학이 필요하고, 객관이 필요하고, 모방이 필요하고, 학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생의 정답을 찾는 데는 그렇게 미련해서야 못쓴다. 미학이 정답이다. 지름길로 바로 가야 한다.

구조론은 계산기와 같다. 자석이 있으면 지푸라기를 걷어내지 않아도 바늘을 찾아낼 수 있고 계산기가 있으면 종이와 연필이 없어도 계산할 수 있다. 정답으로 바로 갈 수 있다. 완성할 수 있다.

그 도구가 없다면? 구조론이 없다면? 언어가 없다면? 자석이 없다면? 집체창작을 해야 한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사회시스템 안에서 부품역할을 가지고 기여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보고할 수 있다.

작가는 독립적으로 기여할 수 있지만, 배우는 파트너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작가로 살 것인가 배우로 살 것인가? 과학이라면, 산업이라면, 사회라면 집체창작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집체창작 한다면 실패다. 타인의 평가에 의해 자기 삶이 좌우된다면 곤란하다. 구조론이라는 사이트는 집체창작이고 과학이고 객관이다. 그러나 그 사이트 안에서 게시물은 독립과제다.

사회는 과학이지만 삶은 미학이다. 사회는 하드웨어지만 삶은 소프트웨어다. 사회는 육체지만 삶은 정신이다. 산업은 객관이지만 삶은 주관이다. 진정한 삶은 창조이고 예술이어야 한다.

타인의 평가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 파트너와 호흡을 맞출 필요가 없고 누구에게 인정받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혼자 가야 한다. 깨달음이어야 한다. 깨어있는 매순간의 완성이어야 한다.

그대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작가가 될 것인가 배우가 될 것인가? 자기 삶을 살 것인가 사회의 짜고치기 역할게임, 포지션게임에 빠져들 것인가? 존재의 근원적인 물음에 응답할 수 있어야 진짜다.

사회의 정답은 과학이지만 인생의 정답은 미학이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22]id: ░담░담

2009.09.23 (15:18:48)

과학의 언어가 수학이라면,
    미학의 언어가 구조론이라 할 수 있는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9.23 (21:50:08)

리플로
짧게 이야기할

성질의 것은 아니고
길게 쓸테니 기둘리주오.
[레벨:7]꼬레아

2009.09.23 (16:41:10)

쥐바기의 정답은 사기강도 !

" 강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고..."  - 단재의 조선혁명선언서 -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주기야 하는 것처럼
강도 쥐바기도 주기야 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7]젬마

2009.09.23 (21:41:53)

적어도 애플의 ipod은 음원호환성과 베터리부분에서 낙제점을 주고싶다.
마치 SONY제품의 A/S고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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