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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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5364 vote 0 2014.11.08 (17:54:24)

    곽정은 옳고 마광수 그르다


http://media.daum.net/entertain/culture/newsview?newsid=20141106221807258


    정상에 서야 전모가 보인다. 인류의 대표자 마음을 품어야 정답이 보인다. 자신을 사회의 약자나 피해자 또는 평범한 대중으로 규정하면 답이 안 나온다. 신과의 일대일 상황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기계적 형평성을 뛰어넘는 동적균형의 관점을 얻어야 한다. 밸런스의 원리, 인류의 진보원리로 보아야 한다. 기계적 형평성 주장은 보수주의 법이론이고 인류의 진보를 보는게 진보주의 법이론이다.


    인간은 어떤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이분법적 대칭구조를 만든다. 그러므로 본능적으로 오판하게 된다. 첫 번째 패는 바꾸라고 했다. 당신의 첫 번째 판단은 보나마나 오판이다.


    흑인이 잘못을 저지르면 누가 비판해야 할까? 백인이 흑인을 비판하면 아무리 말조심을 해도 인종차별이 된다. 흑인의 잘못은 흑인 사회의 지도자가 비판해야 한다. 가해자인 백인은 발언권이 없다.


    흑인 지도자가 없다면? 성공한 부자 흑인이 흑인 커뮤니티를 이탈한 것이 흑인문제의 본질이다. 이렇듯 문제의 본질은 은폐된다. 세상의 모든 것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므로 갈피를 잡아야 한다.


    남자가 성개방 문제를 거론하면 본의 아니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의 진보를 위해 어차피 누군가는 말을 꺼내야 한다면, 여자가 주도하는게 맞다. 우리사회의 성은 더 개방되어야 한다.


    그런데 마광수는 안 된다. 백인이 흑인을 바로잡으려다가 도리어 말썽만 일으키는 것과 같다. ‘옳으냐 그르냐’ 논리 뒤에 숨으면 안 된다. 옳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3류 지식인의 방자한 행동이다.


    대중의 역린을 건드리면 안 된다. 나치의 만행은 무식한 대중들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무식한 지식인이 대중의 역린을 건드렸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지식인은 정밀제어를 해야 한다.


    ‘옳고 그름의 논리’ 위에 ‘경중의 논리’가 있다. 사건은 복잡하게 엮여 있으며 벼리와 갈피를 잘 구분해야 한다. 성희롱 문제 위에 성차별 문제가 숨어 있고 성차별 문제 위에 권력중독 문제가 있다.


    강용석의 발언은 성희롱 범죄이지만, 여자가 같은 말을 하면 성희롱이 아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어떤 발언을 해도 남자는 불쾌감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 남자가 불쾌감을 느꼈다면 그 남자의 문제다.


    남자 화장실에 여자 청소부가 와서 밀대로 막 밀어대면 곤란하다. 변기에 앉아있는데 문짝 밑으로 거침없이 들어온다. 오른발 들고, 왼발 피하고 그러다 자칫 나오던 똥이 도로 들어가는 수가 있다.


    ‘불쾌감을 느꼈다. 성희롱이다.’ <- 왜 아무도 이런 고발을 하지 않을까? 가끔 외국인들이 기겁을 하지만 말이다. 이런 불쾌감은 자체해결 해야 한다. 수치심을 느낀 사실 자체는 이유가 안 된다.


    ‘안 느끼면 되잖아! 왜 느껴?’ 강용석의 발언도 피해자가 ‘이 정도야 암것도 아니지.’ 하고 넘어가면 그냥 넘어가는 거다. 돈 받는 직업여성이라면 사건이 안 된다. 그런데 왜 이게 문제가 되었을까?


    인류의 진보방향 때문이다. 인류가 기준이다. 그 인류는 변한다. 그러므로 지식인이 기계적 형평성을 추구하면 안 된다. 지식인은 강자와 약자를 분별하고 핸디캡을 감안해서 밸런스를 잡아야 한다.


    여자의 19금 발언은 되도록 허용하고 남자의 19금 발언은 적절히 제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광수의 ‘야한 여자 타령’은 곤란하고 곽정은의 ‘야한 남자 타령’은 무방하다. 강자냐 약자냐가 중요하다.


    흑인이 백인에게 ‘야 이 흰둥이 놈아!’ 하고 인종차별 발언을 해도 그것은 전혀 인종차별이 아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므로 도리어 강자와 약자를 구분한다. 구분은 개인단위가 아닌 집단 단위다.


    그러므로 백인 하층민이 특히 불만이 많은 것이다. 백인의 우월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면서 흑인에게 기회를 뺏기니까. 언제나 그렇듯 본질은 따로 있다. 강용석은 자신이 권력자임을 과시한게 범죄다.


    강자가 약자를 바로잡으려고 하면 더 어긋나게 된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조선인은 게을러. 우리 일본인이 바로잡아줄께.' <- 이거 폭력이다. 절대 안 된다. 가해자인 일본인은 일단 발언권 없다.


    조선인은 조선인만 비판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 노동자, 하층민, 소수자의 잘못은 약자, 노동자, 하층민, 소수자 중에서 지도자가 비판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그런 지도자가 없는게 문제다.


    노조를 만들든가 노숙자단체를 만들든가 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성문제는 성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관계의 문제다. 직장상사의 성희롱은 보복문제가 따르므로 피할 수 없다. 그래서 범죄가 구성된다.


    약자의 자기방어적인 언어폭력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므로 욕쟁이 할매는 당당하게 국밥을 팔지만 욕쟁이 할배는 국밥을 팔 수 없다. 권력관계가 범죄를 구성하는 본질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아내가 남편이 먹는 밥에 쥐약을 탔어도 무죄판결이 난다. 불능범이다. 요즘 쥐약은 인체에 해가 없으니까. 옥동자가 장동건에게 ‘이 못생긴 놈아.’ 하고 모욕을 줘도 모욕죄가 성립이 안 된다.


    장동건은 잘 생겼으니까. 대낮에 열려있는 공적 공간에서 아는 남자가 여자에게 휘파람을 분 사건과 밤중에 으슥한 곳에서 모르는 남자가 여자에게 휘파람을 분 사건이 같은 사건일 수는 없다.


    범죄냐 아니냐의 판단은 '위력적'인 상황이냐가 중요하다. '위력적'이라는 말은 검색해도 안 나오는 필자의 표현이다. 피해자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위력'은 법률용어로 많이 쓰이니까.


    소설책에 묘사된 내용이 음탕하다면 그것은 독자 본인이 선택한 독서이므로 위력적인 상황이 아니다. 독자가 소설내용을 시비하여 작가를 고발한다면 그것은 무리수다. 싫으면 안 읽으면 되잖아?


    그러나 독자가 그러한 선택능력이 없는 다섯 살 어린이라면? 위력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다. TV도 케이블 방송은 시청자의 선택에 달려있지만 종편이나 공중파는 위력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


    성이 문제가 아니고 '위력'이 문제다. 소문이 난다거나 평판이 나빠진다거나 하는 가능성이 위력이 된다. 다양한 형태로 '겁준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성차별과 성희롱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성차별을 먼저 없애야 성희롱이 사라진다. 그 이전에 선후배 따지고 나이 따지고 위계서열 따지는 권력중독 현상이 진짜 원인이다. 범죄의 본질은 권력의 위력행사다. 그래서 마광수는 틀렸다.


    우리사회의 권력중독을 고발하고, 다음 성차별을 고발하고, 그 다음에 성개방을 주장해야 한다. 마광수의 행동은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고 표피를 건드리는 점에서 진정성이 없는 행동이 된다.


    ◎ 이 문제는 사회의 권력관계로 판단해야 한다.
    ◎ 강자의 약자에 대한 위력행사가 범죄의 본질이다.
    ◎ 위력은 뒷소문이나 평판 등 다양한 형태로 잠복해 있다.
    ◎ 성희롱은 성차별에 파생되며 성차별이 더 본질적인 범죄다.
    ◎ 성차별 이전에 권력에 의한 차별이 더 본질적인 범죄다.


    성차별이 본질이므로 남자는 일단 발언권이 없다. 남자가 피해자일 경우는 성희롱이 아니라 권력에 의한 희롱이다. 직장상사가 부하에게 별명을 부르며 '야 등신아 그것도 못해' 하고 모욕을 주면?


    보통 '두고보자. 승진하면 되갚아주마.' 이러고 만다. 잘 문제삼지 않는다는 말이다. 위력적 상황이 아니면 문제삼을게 못 된다. 여자가 다수이고 남자가 소수인 직장인데 여자가 남자 부하를 놀리면?


    위력적인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남자가 성희롱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위력적인 상황은 우리 사회에 많지 않다. 이런 문제는 막 떠들면 안 되고 지식인 입장에서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 남편의 밥에 쥐약을 타면? - 무죄.
    ◎ 옥동자가 장동건의 외모를 놀리면? - 무죄. 

    ◎ 흑인이 백인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하면? - 무죄.
    ◎ 여자가 남자에게 성희롱을 하면? - 대부분 무죄.

    ◎ 욕쟁이 할매 가게의 욕쟁이 할배는? - 구속


    약자가 강자의 위력행사에 대항하는 수단을 갖추게 하는게 이 논의의 본질이다. 강자와 약자간의, 남자와 여자간의, 억압과 개방간의 미묘한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게 중요하다.


     P.S.

     본문에서 '위력'은 강자와 약자의 권력관계에 기반을 두고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제압하는, 억누르는, 위축시키는 일체의 것을 말합니다. 



   111.JPG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므로 법은 도리어 평등하지 않습니다. 법의 평등은 식물의 평등이 아니라 동물의 평등입니다.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 균형을 잡고 항해를 지속하는 동적균형의 평등입니다. 법은 표피를 보고 판단하는게 아니라 배후을 들추어 판단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배후에는 권력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려면 꼭대기를 건드려야 합니다. 



[레벨:6]sus4

2014.11.08 (19:43:01)

세상에 2는 없다.
예외가 없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다.
왜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고 하는걸까.
어릴적부터 그걸 이상하게 생각했다.
남자는 여자로부터 생겨났다고 한다.(진화론적 메커니즘은 잘 모르겠지만.)
즉 여자는 있고 남자는 없다.
남자와 여자는 대칭관계가 아니다.
불평등한 관계다.
불평등한 관계에는 불평등한 대접이 필요하다.
[레벨:3]파워구조

2014.11.08 (23:53:29)

그래서 한국 20대들 연애판도에서도 더치페이란 용납될 수 없는 것이군요. 


1.

데이트 상황에서, 

마광수가 곽정은에게 밥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 

마광수가 곽정은에게 밥을 얻어 먹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곽정은이 마광수에게 밥을 사는 건 뭐가 잘못된 것이다. 

마광수가 곽정은에게 밥을 얻어먹는 것은 쪽팔리고 수치스러운 것이다. 


2.

사회 생활에서,

존대말 듣는 선배사람이 존대말하는 후배사람에게 매번 밥을 사는 것은 당연하다. 

존대말 듣는 선배사람이 존대말하는 후배사람에게 밥을 얻어먹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쯤으로 쭉쭉 응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레벨:3]귤알갱이

2014.11.09 (09:15:55)

여성을 적대시하는 일베들의 심리가 백인 하층민의 그것과도 닮은 점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11.09 (11:03:18)

그렇죠.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14.11.09 (10:05:18)

예 동일. 콘트롤 안되니, 짜증내는겁니다. 


\미국에서도, 외부인이 콘트롤안되니, 짜증내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떠납니다.

[레벨:8]상동

2014.11.09 (10:13:44)

강한 남자는 여자가 자기를 사랑하게 만들수 있으니 호의적이고

약한 남자는 그렇게 못하니 분통터져서 음해하는 겁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6]id: 15門15門

2014.11.10 (13:41:33)

1Minimum_law.png



약한 고리 즉 (여성, 노약자, 노동자, 흑인등)가 그 사회수준을 결정짓기에

발언권 즉 의사결정에 대한 권리는 그들에게 있을 수 밖에 없다


즉 약한 고리가 아닌 다른 계층이 아무리 발언권을 행사해도 사회의 수준을

높이는 진보란 결국 약한 고리의 비약으로서만 연동되므로 약한 고리의 발언권

(의사결정권)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4.11.13 (15:09:53)

정답은 문제가 해결되어 편안한 상태가 아니라

시끄럽게 문제가 제기되어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입니다. 


자본주의-공산주의 대결이라는 냉전구도가 해소된 지금 

이 시대의 문제제기-문제해결의 상호작용은

 

서구열강과 제 3세계의 대결 이런 것도 있지만

사회적 소수자와 사회작 강자 사이의 대결구도 이런 것도 있습니다. 


문제제기를 환영하고 그것을 연주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를 즐길 의도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문제라는 나쁜 녀석을 때려죽일 생각을 갖고 있어요. 


문제를 해결하지 말고 계속 키워가는 겁니다. 

사행성 게임금지, 19금 방송 금지.. 이렇게 문제를 때려죽이면 


어케 IT강국이 되느냐고요.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식의 독선은 문제를 때려죽일 의도를 전제하는 겁니다. 


문제 좋은 애거든요. 때리지 마세요.

법이나 정의 개념에는 문제를 키워서 인류의 문제해결능력을 키운다는 전제가 들어가야 함다.


나는 판결만 공정하면 돼. <- 이건 정의가 아니죠.

그니까 문제를 일으켜 사회를 시끄럽게 할 의도를 깔아야 정답이 보인다는 거. 


장애인, 소수자, 약자, 빈자의 존재가 

언제든 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꿀단지라는 거죠. 


15間 님의 말씀이 맞지만 문제해결이라는 전제를 깔면 곤란하다는 거. 

잘못 가는 사회를 통제하는 다양한 수단의 획득이라는 관점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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