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금추설화(金錐說話)'라고도 한다. "내 코가 석자" 라는 속담도 이에서 기인한 것이다.
신라시대에 방이형제가 살았는데 형인 방이는 몹시 가난하여 구걸을 하며 살았고, 동생은 부자였다.
어느 해인가 방이가 동생에게 누에와 곡식 종자를 구걸했는데 심술이 사납고 포악한 아우는 누에알과 종자를 삶아서 주었다. 이를 모르는 형은 누에를 열심히 치고 씨앗도 뿌려 잘 가꾸었다. 알 중에서 누에 한 마리가 생겨나더니 황소만큼 커졌다.
질투가 난 동생이 와서 누에를 죽였지만 사방의 누에가 모두 모여 들어 실을 켜 주어서 형은 누에 왕이 되었다.
또한 종자에서도 이삭이 하나만 나와 한 자가 넘게 자랐는데 어느 날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이삭을 물고 달아나자 방이는 새를 쫏아 산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밤을 맞은 방이는 난데 없는 아이들이 나타나 금방망이를 꺼내어 돌을 두드리니 원하는 대로 음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숨어 있다가 아이들이 헤어진 후 놓고 간 방망이를 주워서 돌아와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심술이 난 아우도 형처럼 행동하여 새를 쫏아가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금방망이를 훔쳐간 도둑으로 몰려 연못을 파는 벌을 받고 코끼리처럼 코를 뽑힌 후에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속을 태우다가 죽고 말았다.(다른 책에 의하면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방이가 이소식을 듣고 달려와 병 구완을 하여 병이 나았다.)
그리고 방망이는 후손에게 전해졌는데, 어느 후손이 "이리 똥 내놓아라."고 희롱했더니 갑자기 벼락이 치며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신라 사람 방이에 대한 설화. 형과 동생 사이의 갈등을 통하여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보여 주고 있다.
[출전] 당나라의 단성식(段成式)이 지은 '유양잡조(酉陽雜俎)' 권 1과 태평어람' 권 481
【수삽석남(首揷石枏)】
신라 최항(崔伉)은 자를 석남(石枏)이라 했다.
그가 사랑하는 첩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아 만나지 못하더니 몇 달 후 죽고 말았다. 8일 후에 최항의 혼이 첩의 집에 갔는데, 첩은 최항이 죽은 줄 모르고 반가이 맞았다.
항이 머리에 꽂은 석남가지를 나누어 첩에게 주며 말하기를
"부모가 그대와 살도록 허락하여 왔다."
고 하기에 첩은 항을 따라 그의 집까지 갔다. 그런데 항은 담을 넘어 들어간 뒤로 새벽이 되어도 다시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그 집 사람이 그녀가 온 까닭을 물으매 그녀는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집에서는
"그게 무슨 말이냐. 항이 죽은지 이미 8일이 지났으며 오늘이 장사날이다."
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석남가지를 나누어 머리에 꽂았으니 가서 확인해 보라."
하였다. 이에 관을 열고 보니 정말 항의 머리에 석남가지가 꽂혀 있었다.
그리고 옷은 이슬에 젖어 있었고 신발이 신겨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첩이 죽으려 하자, 항이 다시 살아나서 백년해로 하였다.
[출전] 설화집 '수이전'에 수록되었던 것인데, '수이전'은 지금 전하지 않고 이 설화는 '대동운부군옥' 제 8권에 전하여짐.
【두견새(杜鵑)】
촉(蜀:지금의 四川省) 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 (望帝)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는 해 말 망제가 문산(汶山)이라는 산 밑을 흐르는 강가에 와 보니, 물에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내려 오더니 망제 앞에서 눈을 뜨고 살아났다. 망제는 이상히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돌아와 물으니
"저는 형주(刑州) 땅에 사는 별령(鱉靈)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해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것이다. 망제는 '이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하늘이 내게 어진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별령에게 집을 주고 장가를 들게 하고, 그로 하여금 정승을 삼아 나라 일을 맡기었다.
망제는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약한 사람이었다. 이것을 본 별령은 은연중 불측한 마음을 마음을 품고 망제의 좌우에 있는 대신이며 하인까지 모두 매수하여 자기의 심복으로 만들고 정권을 휘둘렀다.
그때에 별령에게는 얼굴이 천하의 절색인 딸 하나가 있었는데, 별령은 이 딸을 망제에게 바쳤다. 망제는 크게 기뻐하여 나라일을 모두 장인인 별령에게 맡겨 버리고 밤낮 미인을 끼고 앉아 바깥일은 전연 모르고 있었다.
이러는 중에 별령은 마음놓고 모든 공작을 다하여 여러 대신과 협력하여 망제를 국외로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망제는 하루 아침에 나라를 빼았기고 쫏겨나와 그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어서 두견이라는 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어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
뒷사람들은 그를 원조(怨鳥)라고도 하고 두우(杜宇)라고도 하며, 귀촉도 (歸蜀途) 혹은 망제혼(望帝魂)이라 하여 망제의 죽은 넋이 화해서 된 것이라고 하였다.→ 귀촉도, 망제혼, 소쩍새, 불여귀, 자규
오영수의 [소쩍새]는 이 설화를 원용한 소설이다.
【문전신(門前神) 본풀이】
이 이야기는 재생설화(再生說話)의 일종으로 죽은 어머니를 환생꽃을 구해다가 살리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는 서사무가(敍事巫歌)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남선비가 식구는 많고 흉년은 들어 오동국으로 쌀을 사러 갔는데 삼년을 돌아오지 아니하니 그 부인이 남편을 찾아 오동국으로 간다. 그리하여 남편은 만났으나 노일저대귀의 딸을 첩을 삼아 살며, 눈이 어두워 세상을 분별치 못하고 지내는 것을 안다.
그러나 노일저대귀는 남선비의 본부인이 온 것을 알고 샘터에 밀어 넣어 죽이고 본부인의 옷을 입고 남선비의 본집으로 간다.
한편, 남선비의 아들 칠형재는 어머니가 자기의 친어머니가 아닌 것을 알고 이상히 생각한다.
노일저대귀는 아들 칠형제를 죽이려고 거짓으로 병들은 체하고 남편 보고 점을 쳐 보라고 하여 아들 칠형제의 간응뻗禿杵?자기 병이 낫는다는 것으로 알게 한다.
남선비가 아들들을 죽이려고 칼을 가니 막내 아들이 꾀를 내어 자기가 형님들의 간을 꺼내 오겠다 하고 산돼지 여섯 마리를 잡아 그 간 여섯 개를 내어다 주니 노일저대귀는 먹는 척하고 자리 밑에 넣어 버린다.
이것을 안 아들이 노일저대귀를 죽이겠다고 칼을 가니 노일저대귀는 겁이 나서 도망가다가 죽고 남선비도 겁이 나서 도망가다 역시 죽는다.
일곱 형제는 오동국에 들어가 자기 모친의 시신을 찾고 울고 있으려니 곽새가 날아와서 말하기를 쇠고지 포육을 열두 개를 떠 가지고 자기 들에 타고 있으면 서천 꽃밭에 가서 환생(還生)꽃을 구하여 올 수 있다고 하였다.
작은 동생이 포육을 떠 가지고 곽새 들을 타고 서천 꽃밭에 가서 환생꽃을 구해다가 죽은 모친을 살린다.
【박타는 처녀】
몽고설화. 일설에 의하면, 원대(元代)에 몽고에 귀화한 고려 여성들을 통해 유입되었다고 한다.
옛날 어느 처녀가 바느질을 하다가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살던 제비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실로 다리를 동여매 주었다.
이에 그 제비가 살아났다. 이듬해 그 제비는 강남에서 박씨 하나를 가져다가 뜰에 떨어뜨렸다.
그 처녀는 박씨를 심었더니 가을이 되어 커다란 박이 하나 열렸다. 그 박을 타 보니 온갖 보화가 쏟아져 나왔다. 이로 인하여 그 처녀는 매우 큰 부자가 되었다.
이웃집에 사는 심술궂은 처녀가 이 말을 들었다. 그 처녀는 자기 집에 가서 제비를 잡아다가 일부러 다리를 부러뜨려 실로 동여매 주었다. 그 제비는 이듬해 박씨를 가져와 주었다.
그 처녀는 좋아라고 박씨를 심고 가을이 되기를 기다렸다. 큰 박이 하나 열렸다. 따서 타 보니 수많은 독사(毒蛇)가 나와 그 처녀를 물어 죽였다.
【뱀신랑】
어떤 늙은 부부가 아이를 낳았는데 뱀이었다. 그 아들은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김정승의 달과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정승의 딸들에게 의사를 물어보자 첫째와 둘째딸은 뱀이라서 싫다고 했다. 그러나 셋째는 아버지의 뜻이라면 따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뱀신랑과 결혼을 했다. 혼인하던 날 신랑은 허물을 벗고 잘 생긴 선비가 되었다.
어느날 남편이 길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자기의 허물을 주면서 잘 보관하라고 하였다. 만약 없애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단단히 일렀다.
이 비밀을 알아챈 두 언니는 몰래 그 허물을 훔쳐다 태워 버려서 남편은 돌아 올 수 없게 되었다. 아내는 남편을 찾아 바위 속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이미 딴 부인이 있었다. 남편은 몇 가지 문제를 내어 통과하는 사람을 진짜 아내로 삼겠다고 하였는데 찾아간 아내(김정승의 딸)가 시험에 통과하였다.
【뱀과 까치(혹은 꿩)의 설화】
이 이야기는 흔히 '뱀이 미녀가 된 이야기[蛇化爲美女]'에 속하는데, 사원 (寺院)의 종소리를 곁들인 것이다.
다음은 강원도 치악산 상원사의 전설을 소개하겠다.
강원도 치악산중에 어떤 젊은이(활을 잘 쏘는)가 두 마리의 꿩이 뱀에게 잡히어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 뱀은 곧 꿩을 잡아 먹으려고 했다.
젊은이는 활을 쏘아서 뱀을 죽이고 꿩을 구해 주었다. 해가 져서 젊은이는 산중의 작은 절에 들렀다.
예쁜 여자가 안내했다. 밤이 깊어서 잠을 깨니 큰 뱀이 젊은이를 잡아 먹으려고 한다. 처녀가 그 뱀인 것이다. 그 뱀은
"나는 아까 길가에서 너의 화살에 맞아 죽은 뱀의 아내"
라고 말하며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 그 때 절의 종소리가 두 번 울려왔다. 그러자 뱀은 도망을 갔다.
날이 새자 절에 가보니 두 마리의 꿩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그는 그곳에 절을 세우고 중이 되었다. 그 절이 상원사다. 그 뒤부터 적악산 (赤岳山)을 치악산(雉岳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성조(成造)풀이-서사무가(敍事巫歌)】
서천국(西天國) 천궁대왕(天宮大王)과 옥진 부인(玉眞夫人)은 나이 40이 가깝도록 혈육이 없어 불전(佛前)에 아이를 낳는 정성을 드리고 태몽을 얻은 후에 잉태한다.
옥진부인은 10개월이 찬 후에 옥동자를 낳아 이름을 성조(成造)라고 짓는다. 성조는 15세가 되어 옥황께 상소하여 솔씨 서말 닷 되 7홉 5작을 받아 지하궁 공산(地下宮空山)에 심는다.
성조가 18세 되었을 때 결혼하나 아내인 계화씨(桂花氏)를 박대하고 주색에 방탕하여 나라 일을 돌보지 않는다.
대왕이 성조를 황토섬에 귀양 보내니 고생이 막심하여 성조가 무인도에서의 곤경을 혈서(血書)로 써 보내니 대왕이 귀양을 푼다. 성조는 귀양에서 돌아와 부인과 정회(情懷)를 풀고 5남 5녀를 낳아 키운다.
성조가 나이 70에 열 자식을 데리고 자신이 심은 나무들을 돌아본 뒤 온갖 연장을 마련해 재목을 베어 국궁(國宮), 관사(官舍) 및 백성의 집을 짓는다. 집짓기를 마친 성조는 입주 성조신이 되고, 부인은 몸주 성조신이 되며 , 아들 다섯은 오토지신(五土之神)이, 딸 다섯은 오방부인(五方夫人)이 되었다.
무가(巫歌)의 문학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구조는 신화와 영웅소설의 구조를 매개하는 위치에 놓이는 것으로 중요하다.
【아기 장수 이야기】
옛날 어느 곳에 평민이 살았는데, 산의 정기를 받아서 겨드랑이에 날개(혹은 비늘)가 있고 태어나자 이내 날아다니고 힘도 센 장수 아들을 기적적으로 낳았다.
그런데 부모는 이 아기 장수가 크면 장차 역적이 되어서 집안을 망칠 것이라 해서 아기 장수를 돌로 눌러 죽였다. 아기 장수가 죽을 때에 유언으로 콩 닷섬과 팥 닷섬을 같이 묻어 달라고 하였다.
얼마 후 관군(官軍)이 와서 아기 장수를 내놓으라고 하여, 이미 부모가 죽였다고 하니 그들은 무덤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아기 장수의 무덤에 가 보니, 콩은 말이 되고 팥은 군사가 되어 아기 장수가 막 일어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군은 아기 장수를 다시 죽였다. 그런 후 아기 장수를 태울 용마 (龍馬)가 근처의 용소(龍沼)에서 나와서 주인을 찾아 울며 헤매다가 용소에 빠져 죽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있다.
【아랑각 전설】
아랑의 성은 윤(尹), 이름은 정옥(貞玉)이었으며, 그는 부친이 영남(嶺南) 밀양태수(密陽太守)로 부임하였을 때에 수행하여 밀양에 갔다.
그 고을 통인(通引- 관리명)과 그의 유모 음모에 빠져서 아랑은 어떤 날 밤 영남루의 밤 경치를 보러 갔다가 통인 백가(白哥)에게 욕을 당하였다.
그것은 아랑이 달 구경을 하고 영남루 위에 있을 때, 별안간 유모는 없어지고 기둥 뒤에 숨어있던 백가가 뛰어 나와서는 아랑에게 연모의 정을 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랑은 그것을 거절하였다. 백가는 아랑을 죽여 강가 대숲 속에 던져 버렸다.
다음 날 태수는 여러 조사를 하여 보았으나 아랑을 찾지 못하고 마침내는 자기 딸이 야간 도주한 것이라 믿고 양반 가문에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 이상 근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벼슬을 하직하고 한양 본가로 갔다.
그 뒤로 신관 사또가 부임할 때마다 그 날 밤에 처녀귀신이 나타나서 신관은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때문에 밀양태수를 원하는 사람이 없어 지원자를 구하게 되었는데 이 상사(上舍- 지난날, 생원이나 진사를 가리키던 말)라는 사람이 지원하여 그 날 밤에 촛불을 키고 독서를 하고 있을 때 별안간 머리를 풀어 헤치고 목에 칼을 꽂은 여귀가 나타났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앉아 있었는데 여귀는 그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애원하였다. 날이 밝자 그는 통인 백가를 잡아 족쳐 자백을 받아내고 아랑의 원혼을 달래 주었다. 그 때부터 사또의 객사에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설화는 매우 많다.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동일 인물명을 사용한 박종화의 [아랑의 정조]라는 소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설화를 원용하여 변형시킨 소설로는 정한숙의 [해랑사의 경사]라는 소설이 있다.
【야래자(夜來者) 전설】
처녀(유부녀일 수도 있다)가 밤마다 찾아오는 정체 불명의 남자와 함께 동침을 한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알 수도 없다(사랑의 감정은 나타나지 않는다). 처녀는 임신을 한다.
그 아버지가 이유를 캐 묻자 딸은 사실대로 고백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바늘에 실을 꿰어 그의 옷에 찔러 두라고 이른다.
이튿날 그 실이 간 곳을 찾아가서 바늘이 꽂힌 주인공을 찾는다.
그것은 대체로 지렁이나 뱀(용이나 수달피도 있다.) 등이다. 처녀는 애기를 낳는다.그 아이는 견훤과 같이 비상한 능력을 가진다.
【예성강곡(禮成江曲)】
옛날에 당나라 상인인 하두강(賀頭綱)이라는 사람이 바둑을 잘 두었다.
그가 한 번은 예성강에 갔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는 탐나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그녀의 남편과 바둑을 두어 거짓으로 지고는 많은 물건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내를 걸고 바둑을 두자고 하였다.
남편은 이로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상인은 실력을 다하여 단번에 이기고는 그의 아내를 빼앗았다. 그리고는 그의 아내를 배에 싣고 떠나가 버렸다.
이에 남편은 후회와 한(恨)에 차서는 이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전해지기는, 그 부인이 떠나갈 때에 몸을 매우 죄어 매번 하두강이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배가 바다 가운데에 이르자 뱅뱅 돌고 가지 않으므로 점을 쳤더니 지조가 굳은 여인에게 감동이 되었으니 그 여인을 돌려 보내지 않으면 배가 파선되리라 하였다.
그래서 뱃사공들이 두려워하며 하두강에게 이 일을 고하자 하두강은 그녀를 돌려보내 주었다고 한다. 그녀가 또한 노래를 불렀는데 이것이 후편이다.
[출전] '고려사 악지(高麗史樂志)' 속악조(俗樂條)
【오봉산(五峰山)의 불】
옛날에 어떤 사람이 시집을 가서 재미있게 살았는데 남편이 문둥병에 걸려 헤어지게 되었다.
여인은 남편을 위해 약이란 약은 다 써보아도 효험이 없자 매일 남편의 병이 낫기만 기도하고 있었다.
어느 해 말 스님 한 분이 찾아와서 오봉산에 불을 놓고 남편을 찾아가면 낫는다고 하여 백 날 동안 오봉산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남편 옆에 가서 죽으려고 남편을 찾아가다가 도중에 쓰러지고 말았다.
서산으로 지는 해를 보고 제발 남편을 찾아갈 때까지 넘어가지 말라고 손을 휘젓다가 보니 자기 손이 오봉산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섯 손가락에 불을 켜서 붙이고 남편을 찾아갔는데, 남편은 이미 병이 다 나아서 둘은 동리로 내려와서 행복하게 살았다.
【용원설화(龍猿說話)】
바닷속에 용왕이 살았는데, 그의 왕비가 잉태하여 원숭이의 염통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용왕은 원숭이의 염통을 구하기 위하여 육지로 나와 나무 위에서 열매를 따 먹고 있는 원숭이를 만났다. 용왕은
"그대가 사는 이곳은 좋지 못하니 아름다운 수목이 있고 먹을 열매가 많은 바닷속으로 안내하겠다."
고 제안하였다. 이에 솔깃한 원숭이는 기뻐하여 용왕의 등에 업혀 물 속으로 갔다. 도중에서 용왕은 그만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그 말을 듣고 놀란 원숭이는 용왕을 보고
"염통을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왔으니 얼른 다시 가지러 가자."
고 하였다. 용왕은 원숭이의 말을 곧이 듣고 다시 육지로 업고 나왔다.
원숭이는 육지에 나오자마자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고 용왕을 보고 조소만 하였다. → 구토지설
[출전] 인도의 불경 '자타가 본생경(本生經)'
【일월산 황씨 부인당 설화(日月山黃氏夫人堂說話)】
오랜 옛날, 일월산 아랫마을에 살던 황씨 성을 가진 처녀는 동네 총각과 혼인을 하게 되었다. 워낙 아름다운 규수라 두 젊은이가 서로 탐내어 다투었었는데, 그 중 한 총각이 행운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혼 첫날밤이었다. 원앙금침에 들기 전, 뒷간에 갔다가 신방(新房) 문 앞에 선 신랑은 기겁을 하고 놀랐다.
신방 문 창호지에 칼날 그림자가 얼씬거린 것이다. 그 그림자가 분명 연적(戀敵 다른 총각)의 것이라 여긴 신랑은 그 길로 아무 말없이 달아나버렸다.
칼날 그림자란 실은 문 앞에 있던 대나무잎의 그림자에 대한 착각이었지만, 신랑은 그것을 알 길이 없었다.
그 길로 영영 달아나버린 신랑을 기다리던 신부는 조바심을 내며 신랑을 기다리다가 몇 날, 몇 밤을 새웠는지 모른다. 침식을 전폐하고 오직 기다림에 몸을 바치던 신부는 마침내 한을 품고 구천(九天)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삭을 줄을 몰랐다. 살아 생전 꽂꽂했던 몸가짐도, 앉음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돌부처인 양 시신은 언제나 신방을 지키는 듯 보였다.
한편, 도망간 신랑은 외지에서 다른 색시를 만나 장가를 들었다. 그리고 아이까지 낳았으나 아이는 낳는 대로 이내 죽곤 하는 것이었다.
점장이에게 알아보았더니 바로 황씨 규수의 원한 맺힌 원혼(寃魂)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괴로움에 빠진 신랑은 그를 일월 산정에 묻어주고, 그리고 그를 섬기도록 하여 보라는 어떤 승려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신랑은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지금의 부인당 자리에 시신을 옮기고 작으나마 사당(祠堂)을 지어바쳤다. 그 때야 시신은 홀연히 삭아 없어지더라는 것이다.
【장자못 전설】
옛날 전북 옥구군 미면(米面) 지금의 미제지(米堤池)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욕심이 많고, 포악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중이 와서 시주를 권하자 그는 심술궂게 시주 대신 소의 똥을 잔뜩 자루에 담아주었다.
때마침 그 광경을 보던 부인이 몰래 중을 불러 쌀을 주면서 남편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중은 그 부인에게 '부처님의 심부름으로 남편을 벌주기 위해서 왔다' 하고 내일 아침 그 집을 피해 뒷산으로 달아나되 무슨 소리가 나도 뒤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튿날 부인은 어린아이를 업고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므로 금기(禁忌)를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조금 전까지 있던 집은 간 곳이 없고 그곳에 물이 괴어 있었다.
여인은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어린아이와 함께 돌로 화하고 말았다 한다. 이후로부터 큰 부자집은 큰 못이 되어버렸다.
【조신(調信)의 꿈】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조신이 나중에 깨달은 바 있어 정토사란 절을 세웠다고 하는 사원연기설화(寺院緣起說話)이기도 하다.
조신은 지금의 강릉 지방에 있는 세규사(世逵寺)의 중이었다. 그는 명주 날리군 태수 김흔(金昕)의 딸을 좋아했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낙산대비(洛山大悲)라는 관음보살 부처님에게 그 소원을 하소연했다.
그러나 그런 보람도 없이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고 말았다. 조신은 절망 끝에, 어느 날 대비(大悲)의 앞에 가서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것에 대하여 원망하며 슬피 울다가 너무 지쳐서 얼풋 잠이 들었다.
홀연히 꿈에도 잊지 못하던 김소저가 나타나서 웃으며,
"저는 마음 속으로 그대를 몹시 사랑했으나 부모님의 영으로 부득이 출가했다가 이제는 함께 살려고 왔습니다. 나를 용납하여 주시겠습니까?"
하였다. 조신은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서 40년을 함께 살았다. 그러나, 너무도 가난하여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십여 년을 문전 걸식을 하다가 15세 되는 큰 아들은 굶어서 죽었고, 조신과 그 아내는 늙고 병들어 누워 있고, 열 살짜리 딸이 구걸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쓰러졌다.
두 부부는 목이 메었다. 이 때에 그 아내는 의연히 단좌하여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가 처을 당신을 만났을 때, 우리는 나이도 젊었고 얼굴도 예뻤습니다.
그리고 사랑도 두터워서 헝겊 하나로, 또는 밥 한 그릇으로 나누어 먹으면서 살아 왔으나, 이제 50년을 살다 보니 몸은 늙어서 병들었고 아이들은 굶고 추워서 죽기도 하고, 마냥 구걸을 하려고 해도 집집이 문을 굳게 닫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어느 여가에 부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홍안의 미소[紅顔微笑]는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의 약속[約束芝蘭- 친구 사이의 약속]은 광풍 앞에 버들꽃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니 헤어지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것도 다 운수가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조신도 옳게 여기고, 부부는 두 아이를 하나씩 맡아가지고 헤어지기로 했다. 서로 손을 잡고 이별하려고 할 때에 잠이 깨었다. 한바탕 꿈이었다. 대비 앞의 등불은 여전히 깜박거리고 밤은 고요히 깊어만 가고 있었다.
이튿날 깨어보니 머리가 하얗게 세어있었다. 조신은 열다섯 살 아들이 굶어 죽어간 언덕에 찾아가서 그 시체를 파묻은 곳을 파 보았다. 거기서 돌미륵이 나왔다고 한다.
조신은 인간의 일생이 물거품같이 허무함을 느끼고 다시는 인세(人世)에 뜻을 두지 않고 불도(佛道)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출전] '삼국유사' 권 3 '조신조(調信條)'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地下國大敵退治說話)】
옛날 지하국에 사는 아귀(餓鬼)라는 도적이 지상 세계에 나타나 왕의 세 공주를 잡아갔다.
한 무사가 공주를 구출하겠다고 자진해 나섰다. 그러나 왕은 공주를 구하면 막내딸과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몇 사람의 부하를 데리고 지하국의 입구를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꿈에 산신이 나타나서 지하국의 입구를 가르쳐 주었다. 입구에 다다른 무사는 부하들을 지상에 남겨두고 광주리를 타고 지하국에 이르렀다. 세 공주 중 하나가 물을 길러 왔다가 무사를 만난다.
무사는 수박으로 변하여 아귀의 집으로 들어갔다. 세 공주는 아귀에게 독주를 권하여 아귀를 잠들게 하고, 그의 힘의 근원이 되는 옆구리의 비늘 두 개를 제거하고 그 목을 잘라서 죽여버렸다.
무사는 세 공주를 지상으로 올려 보냈으나 부하들이 무사는 올리지 않고 그대로 궁으로 돌아갔다. 지하국에 남은 무사는 처음 나타났던 산신의 도움으로 말을 타고 무사히 지상으로 나온다.
한편, 궁궐에서는 부하들이 공주를 데리고 왕 앞에 나아가 자기들이 구한 양 거짓말을 하여 큰 잔치가 베풀어지고 있었다. 공주들도 자신들이 살아오게 된 기쁨에 무사에 관한 일을 잊고 있었다.
잔치가 베풀어지고 있는데 무사가 나타나 자초지종을 고하자 왕은 크게 노하여 부하들을 죽이고 막내딸과 무사를 결혼시켰다.
【홍수설화(洪水說話)】
옛날 이 세상에는 큰물이 져서 세계는 전부 바다로 변하고 한 사람의 생존자도 없게 되었다.
그 때에 어떤 남매 두 사람이 겨우 살게 되어 백두산같이 높은 산의 상상봉에 표착하였다.
물이 다 걷힌 뒤에 남매는 세상에 나와 보았으나 인적이라고는 구경할 수도 없었다. 만일 그대로 있다가는 사람의 씨가 끊어질 수밖에 없으나 그렇다고 남매간에 혼인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얼마 동안을 생각하다 못하여 남매가 각각 마주 서있는 두 봉우리에 올라가서 계집아이는 암망(구멍 뚫어진 편의 맷돌)을 굴려 내리고 사나이는 수망을 굴려 내렸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하느님에게 기도하였다.
암망과 수망은 이상하게도 산골 밑에서 마치 사람이 일부러 포개 놓은 것같이 합하였다. 남매는 여기서 하느님의 의사를 짐작하고 결혼하기로 결심하였다.
사람의 씨는 이 남매의 결혼으로 인하여 계속하게 되었다. 지금 많은 인류의 조선(祖先)은 실로 옛날의 그 남매라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이 이야기는 인류의 시조, 천지개벽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중국과 불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서양의 경우 구약에 나온다.
【달팽이 각시(우렁 색시)】
가난한 노총각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이 농사를 지어 누구랑 먹고 살아." 하자,
"나랑 먹고 살지 누구랑 살아."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다시 말하자, 대답도 역시 같았다. 총각이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니, 우렁이 하나가 나왔다. 우렁이를 집에 가져와 물독 속에 넣어 두었는데, 그 뒤부터는 매일 들에 갔다 오면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이상히 생각한 총각이 하루는 숨어서 살펴보았더니, 우렁이 속에서 예쁜 처녀가 나와서 밥을 지어 놓고는 도로 들어갔다. 총각이 처녀에게 같이 살자고 하자, 처녀는 아직 같이 살 때가 안 되었으니 좀더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총각은 억지로 함께 살았다. 하루는 우렁각시가 들일을 나갔는데, 지나가던 관리가 보고는 자기 처로 삼으려고 데려오게 하였다.
우렁각시는 자기를 데리러 온 관리의 하인에게 반지, 비녀, 옷고름, 겉옷을 차례로 내주면서 이것밖에 없더라고 말해 달라고 하였으나, 끝내 관리에게 붙잡혀 가게 되었다.
이를 안 총각은 애를 태우다가 마침내 죽어서 파랑새(靑鳥)가 되고, 우렁 각시도 죽어 참빗이 되었다는 설화이다.
여기에서 나타난 파랑새는 자신의 정당한 배필을 빼앗긴 억울함을, 여자의 필수품인 참빗은 성취되지 못한 애정을, 우렁이는 여자의 성기를 각기 상징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설화는 남녀의 만남조차도 쉽사리 이룰 수 없었던 하층민들의 운명적인 슬픔이나 현실적인 고난이 담겨 있다. 새가 된 총각이 우렁각시를 향하여 불렸다는 민요도 전해지고 있다.
신라시대에 방이형제가 살았는데 형인 방이는 몹시 가난하여 구걸을 하며 살았고, 동생은 부자였다.
어느 해인가 방이가 동생에게 누에와 곡식 종자를 구걸했는데 심술이 사납고 포악한 아우는 누에알과 종자를 삶아서 주었다. 이를 모르는 형은 누에를 열심히 치고 씨앗도 뿌려 잘 가꾸었다. 알 중에서 누에 한 마리가 생겨나더니 황소만큼 커졌다.
질투가 난 동생이 와서 누에를 죽였지만 사방의 누에가 모두 모여 들어 실을 켜 주어서 형은 누에 왕이 되었다.
또한 종자에서도 이삭이 하나만 나와 한 자가 넘게 자랐는데 어느 날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이삭을 물고 달아나자 방이는 새를 쫏아 산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는 밤을 맞은 방이는 난데 없는 아이들이 나타나 금방망이를 꺼내어 돌을 두드리니 원하는 대로 음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숨어 있다가 아이들이 헤어진 후 놓고 간 방망이를 주워서 돌아와 아우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심술이 난 아우도 형처럼 행동하여 새를 쫏아가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금방망이를 훔쳐간 도둑으로 몰려 연못을 파는 벌을 받고 코끼리처럼 코를 뽑힌 후에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고 속을 태우다가 죽고 말았다.(다른 책에 의하면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방이가 이소식을 듣고 달려와 병 구완을 하여 병이 나았다.)
그리고 방망이는 후손에게 전해졌는데, 어느 후손이 "이리 똥 내놓아라."고 희롱했더니 갑자기 벼락이 치며 어디론지 사라지고 말았다.
신라 사람 방이에 대한 설화. 형과 동생 사이의 갈등을 통하여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보여 주고 있다.
[출전] 당나라의 단성식(段成式)이 지은 '유양잡조(酉陽雜俎)' 권 1과 태평어람' 권 481
【수삽석남(首揷石枏)】
신라 최항(崔伉)은 자를 석남(石枏)이라 했다.
그가 사랑하는 첩을 부모가 허락하지 않아 만나지 못하더니 몇 달 후 죽고 말았다. 8일 후에 최항의 혼이 첩의 집에 갔는데, 첩은 최항이 죽은 줄 모르고 반가이 맞았다.
항이 머리에 꽂은 석남가지를 나누어 첩에게 주며 말하기를
"부모가 그대와 살도록 허락하여 왔다."
고 하기에 첩은 항을 따라 그의 집까지 갔다. 그런데 항은 담을 넘어 들어간 뒤로 새벽이 되어도 다시 나오지 않았다.
아침에 그 집 사람이 그녀가 온 까닭을 물으매 그녀는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 집에서는
"그게 무슨 말이냐. 항이 죽은지 이미 8일이 지났으며 오늘이 장사날이다."
라고 대답하자, 그녀는
"석남가지를 나누어 머리에 꽂았으니 가서 확인해 보라."
하였다. 이에 관을 열고 보니 정말 항의 머리에 석남가지가 꽂혀 있었다.
그리고 옷은 이슬에 젖어 있었고 신발이 신겨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첩이 죽으려 하자, 항이 다시 살아나서 백년해로 하였다.
[출전] 설화집 '수이전'에 수록되었던 것인데, '수이전'은 지금 전하지 않고 이 설화는 '대동운부군옥' 제 8권에 전하여짐.
【두견새(杜鵑)】
촉(蜀:지금의 四川省) 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 (望帝)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는 해 말 망제가 문산(汶山)이라는 산 밑을 흐르는 강가에 와 보니, 물에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내려 오더니 망제 앞에서 눈을 뜨고 살아났다. 망제는 이상히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돌아와 물으니
"저는 형주(刑州) 땅에 사는 별령(鱉靈)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해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것이다. 망제는 '이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하늘이 내게 어진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별령에게 집을 주고 장가를 들게 하고, 그로 하여금 정승을 삼아 나라 일을 맡기었다.
망제는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약한 사람이었다. 이것을 본 별령은 은연중 불측한 마음을 마음을 품고 망제의 좌우에 있는 대신이며 하인까지 모두 매수하여 자기의 심복으로 만들고 정권을 휘둘렀다.
그때에 별령에게는 얼굴이 천하의 절색인 딸 하나가 있었는데, 별령은 이 딸을 망제에게 바쳤다. 망제는 크게 기뻐하여 나라일을 모두 장인인 별령에게 맡겨 버리고 밤낮 미인을 끼고 앉아 바깥일은 전연 모르고 있었다.
이러는 중에 별령은 마음놓고 모든 공작을 다하여 여러 대신과 협력하여 망제를 국외로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었다.
망제는 하루 아침에 나라를 빼았기고 쫏겨나와 그 원통함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죽어서 두견이라는 새가 되어 밤마다 불여귀(不如歸)를 부르짖어 목구멍에서 피가 나도록 울었다.
뒷사람들은 그를 원조(怨鳥)라고도 하고 두우(杜宇)라고도 하며, 귀촉도 (歸蜀途) 혹은 망제혼(望帝魂)이라 하여 망제의 죽은 넋이 화해서 된 것이라고 하였다.→ 귀촉도, 망제혼, 소쩍새, 불여귀, 자규
오영수의 [소쩍새]는 이 설화를 원용한 소설이다.
【문전신(門前神) 본풀이】
이 이야기는 재생설화(再生說話)의 일종으로 죽은 어머니를 환생꽃을 구해다가 살리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는 서사무가(敍事巫歌)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남선비가 식구는 많고 흉년은 들어 오동국으로 쌀을 사러 갔는데 삼년을 돌아오지 아니하니 그 부인이 남편을 찾아 오동국으로 간다. 그리하여 남편은 만났으나 노일저대귀의 딸을 첩을 삼아 살며, 눈이 어두워 세상을 분별치 못하고 지내는 것을 안다.
그러나 노일저대귀는 남선비의 본부인이 온 것을 알고 샘터에 밀어 넣어 죽이고 본부인의 옷을 입고 남선비의 본집으로 간다.
한편, 남선비의 아들 칠형재는 어머니가 자기의 친어머니가 아닌 것을 알고 이상히 생각한다.
노일저대귀는 아들 칠형제를 죽이려고 거짓으로 병들은 체하고 남편 보고 점을 쳐 보라고 하여 아들 칠형제의 간응뻗禿杵?자기 병이 낫는다는 것으로 알게 한다.
남선비가 아들들을 죽이려고 칼을 가니 막내 아들이 꾀를 내어 자기가 형님들의 간을 꺼내 오겠다 하고 산돼지 여섯 마리를 잡아 그 간 여섯 개를 내어다 주니 노일저대귀는 먹는 척하고 자리 밑에 넣어 버린다.
이것을 안 아들이 노일저대귀를 죽이겠다고 칼을 가니 노일저대귀는 겁이 나서 도망가다가 죽고 남선비도 겁이 나서 도망가다 역시 죽는다.
일곱 형제는 오동국에 들어가 자기 모친의 시신을 찾고 울고 있으려니 곽새가 날아와서 말하기를 쇠고지 포육을 열두 개를 떠 가지고 자기 들에 타고 있으면 서천 꽃밭에 가서 환생(還生)꽃을 구하여 올 수 있다고 하였다.
작은 동생이 포육을 떠 가지고 곽새 들을 타고 서천 꽃밭에 가서 환생꽃을 구해다가 죽은 모친을 살린다.
【박타는 처녀】
몽고설화. 일설에 의하면, 원대(元代)에 몽고에 귀화한 고려 여성들을 통해 유입되었다고 한다.
옛날 어느 처녀가 바느질을 하다가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살던 제비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실로 다리를 동여매 주었다.
이에 그 제비가 살아났다. 이듬해 그 제비는 강남에서 박씨 하나를 가져다가 뜰에 떨어뜨렸다.
그 처녀는 박씨를 심었더니 가을이 되어 커다란 박이 하나 열렸다. 그 박을 타 보니 온갖 보화가 쏟아져 나왔다. 이로 인하여 그 처녀는 매우 큰 부자가 되었다.
이웃집에 사는 심술궂은 처녀가 이 말을 들었다. 그 처녀는 자기 집에 가서 제비를 잡아다가 일부러 다리를 부러뜨려 실로 동여매 주었다. 그 제비는 이듬해 박씨를 가져와 주었다.
그 처녀는 좋아라고 박씨를 심고 가을이 되기를 기다렸다. 큰 박이 하나 열렸다. 따서 타 보니 수많은 독사(毒蛇)가 나와 그 처녀를 물어 죽였다.
【뱀신랑】
어떤 늙은 부부가 아이를 낳았는데 뱀이었다. 그 아들은 점차 나이를 먹어가면서 김정승의 달과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김정승의 딸들에게 의사를 물어보자 첫째와 둘째딸은 뱀이라서 싫다고 했다. 그러나 셋째는 아버지의 뜻이라면 따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뱀신랑과 결혼을 했다. 혼인하던 날 신랑은 허물을 벗고 잘 생긴 선비가 되었다.
어느날 남편이 길을 떠나면서 아내에게 자기의 허물을 주면서 잘 보관하라고 하였다. 만약 없애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단단히 일렀다.
이 비밀을 알아챈 두 언니는 몰래 그 허물을 훔쳐다 태워 버려서 남편은 돌아 올 수 없게 되었다. 아내는 남편을 찾아 바위 속의 세계로 들어갔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이미 딴 부인이 있었다. 남편은 몇 가지 문제를 내어 통과하는 사람을 진짜 아내로 삼겠다고 하였는데 찾아간 아내(김정승의 딸)가 시험에 통과하였다.
【뱀과 까치(혹은 꿩)의 설화】
이 이야기는 흔히 '뱀이 미녀가 된 이야기[蛇化爲美女]'에 속하는데, 사원 (寺院)의 종소리를 곁들인 것이다.
다음은 강원도 치악산 상원사의 전설을 소개하겠다.
강원도 치악산중에 어떤 젊은이(활을 잘 쏘는)가 두 마리의 꿩이 뱀에게 잡히어 고생하는 것을 보았다. 뱀은 곧 꿩을 잡아 먹으려고 했다.
젊은이는 활을 쏘아서 뱀을 죽이고 꿩을 구해 주었다. 해가 져서 젊은이는 산중의 작은 절에 들렀다.
예쁜 여자가 안내했다. 밤이 깊어서 잠을 깨니 큰 뱀이 젊은이를 잡아 먹으려고 한다. 처녀가 그 뱀인 것이다. 그 뱀은
"나는 아까 길가에서 너의 화살에 맞아 죽은 뱀의 아내"
라고 말하며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 그 때 절의 종소리가 두 번 울려왔다. 그러자 뱀은 도망을 갔다.
날이 새자 절에 가보니 두 마리의 꿩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그는 그곳에 절을 세우고 중이 되었다. 그 절이 상원사다. 그 뒤부터 적악산 (赤岳山)을 치악산(雉岳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성조(成造)풀이-서사무가(敍事巫歌)】
서천국(西天國) 천궁대왕(天宮大王)과 옥진 부인(玉眞夫人)은 나이 40이 가깝도록 혈육이 없어 불전(佛前)에 아이를 낳는 정성을 드리고 태몽을 얻은 후에 잉태한다.
옥진부인은 10개월이 찬 후에 옥동자를 낳아 이름을 성조(成造)라고 짓는다. 성조는 15세가 되어 옥황께 상소하여 솔씨 서말 닷 되 7홉 5작을 받아 지하궁 공산(地下宮空山)에 심는다.
성조가 18세 되었을 때 결혼하나 아내인 계화씨(桂花氏)를 박대하고 주색에 방탕하여 나라 일을 돌보지 않는다.
대왕이 성조를 황토섬에 귀양 보내니 고생이 막심하여 성조가 무인도에서의 곤경을 혈서(血書)로 써 보내니 대왕이 귀양을 푼다. 성조는 귀양에서 돌아와 부인과 정회(情懷)를 풀고 5남 5녀를 낳아 키운다.
성조가 나이 70에 열 자식을 데리고 자신이 심은 나무들을 돌아본 뒤 온갖 연장을 마련해 재목을 베어 국궁(國宮), 관사(官舍) 및 백성의 집을 짓는다. 집짓기를 마친 성조는 입주 성조신이 되고, 부인은 몸주 성조신이 되며 , 아들 다섯은 오토지신(五土之神)이, 딸 다섯은 오방부인(五方夫人)이 되었다.
무가(巫歌)의 문학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구조는 신화와 영웅소설의 구조를 매개하는 위치에 놓이는 것으로 중요하다.
【아기 장수 이야기】
옛날 어느 곳에 평민이 살았는데, 산의 정기를 받아서 겨드랑이에 날개(혹은 비늘)가 있고 태어나자 이내 날아다니고 힘도 센 장수 아들을 기적적으로 낳았다.
그런데 부모는 이 아기 장수가 크면 장차 역적이 되어서 집안을 망칠 것이라 해서 아기 장수를 돌로 눌러 죽였다. 아기 장수가 죽을 때에 유언으로 콩 닷섬과 팥 닷섬을 같이 묻어 달라고 하였다.
얼마 후 관군(官軍)이 와서 아기 장수를 내놓으라고 하여, 이미 부모가 죽였다고 하니 그들은 무덤을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아기 장수의 무덤에 가 보니, 콩은 말이 되고 팥은 군사가 되어 아기 장수가 막 일어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군은 아기 장수를 다시 죽였다. 그런 후 아기 장수를 태울 용마 (龍馬)가 근처의 용소(龍沼)에서 나와서 주인을 찾아 울며 헤매다가 용소에 빠져 죽었다. 지금도 그 흔적이 있다.
【아랑각 전설】
아랑의 성은 윤(尹), 이름은 정옥(貞玉)이었으며, 그는 부친이 영남(嶺南) 밀양태수(密陽太守)로 부임하였을 때에 수행하여 밀양에 갔다.
그 고을 통인(通引- 관리명)과 그의 유모 음모에 빠져서 아랑은 어떤 날 밤 영남루의 밤 경치를 보러 갔다가 통인 백가(白哥)에게 욕을 당하였다.
그것은 아랑이 달 구경을 하고 영남루 위에 있을 때, 별안간 유모는 없어지고 기둥 뒤에 숨어있던 백가가 뛰어 나와서는 아랑에게 연모의 정을 말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랑은 그것을 거절하였다. 백가는 아랑을 죽여 강가 대숲 속에 던져 버렸다.
다음 날 태수는 여러 조사를 하여 보았으나 아랑을 찾지 못하고 마침내는 자기 딸이 야간 도주한 것이라 믿고 양반 가문에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 이상 근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여 벼슬을 하직하고 한양 본가로 갔다.
그 뒤로 신관 사또가 부임할 때마다 그 날 밤에 처녀귀신이 나타나서 신관은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때문에 밀양태수를 원하는 사람이 없어 지원자를 구하게 되었는데 이 상사(上舍- 지난날, 생원이나 진사를 가리키던 말)라는 사람이 지원하여 그 날 밤에 촛불을 키고 독서를 하고 있을 때 별안간 머리를 풀어 헤치고 목에 칼을 꽂은 여귀가 나타났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앉아 있었는데 여귀는 그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애원하였다. 날이 밝자 그는 통인 백가를 잡아 족쳐 자백을 받아내고 아랑의 원혼을 달래 주었다. 그 때부터 사또의 객사에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설화는 매우 많다.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있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동일 인물명을 사용한 박종화의 [아랑의 정조]라는 소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설화를 원용하여 변형시킨 소설로는 정한숙의 [해랑사의 경사]라는 소설이 있다.
【야래자(夜來者) 전설】
처녀(유부녀일 수도 있다)가 밤마다 찾아오는 정체 불명의 남자와 함께 동침을 한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알 수도 없다(사랑의 감정은 나타나지 않는다). 처녀는 임신을 한다.
그 아버지가 이유를 캐 묻자 딸은 사실대로 고백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바늘에 실을 꿰어 그의 옷에 찔러 두라고 이른다.
이튿날 그 실이 간 곳을 찾아가서 바늘이 꽂힌 주인공을 찾는다.
그것은 대체로 지렁이나 뱀(용이나 수달피도 있다.) 등이다. 처녀는 애기를 낳는다.그 아이는 견훤과 같이 비상한 능력을 가진다.
【예성강곡(禮成江曲)】
옛날에 당나라 상인인 하두강(賀頭綱)이라는 사람이 바둑을 잘 두었다.
그가 한 번은 예성강에 갔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는 탐나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그녀의 남편과 바둑을 두어 거짓으로 지고는 많은 물건을 건네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내를 걸고 바둑을 두자고 하였다.
남편은 이로운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상인은 실력을 다하여 단번에 이기고는 그의 아내를 빼앗았다. 그리고는 그의 아내를 배에 싣고 떠나가 버렸다.
이에 남편은 후회와 한(恨)에 차서는 이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전해지기는, 그 부인이 떠나갈 때에 몸을 매우 죄어 매번 하두강이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배가 바다 가운데에 이르자 뱅뱅 돌고 가지 않으므로 점을 쳤더니 지조가 굳은 여인에게 감동이 되었으니 그 여인을 돌려 보내지 않으면 배가 파선되리라 하였다.
그래서 뱃사공들이 두려워하며 하두강에게 이 일을 고하자 하두강은 그녀를 돌려보내 주었다고 한다. 그녀가 또한 노래를 불렀는데 이것이 후편이다.
[출전] '고려사 악지(高麗史樂志)' 속악조(俗樂條)
【오봉산(五峰山)의 불】
옛날에 어떤 사람이 시집을 가서 재미있게 살았는데 남편이 문둥병에 걸려 헤어지게 되었다.
여인은 남편을 위해 약이란 약은 다 써보아도 효험이 없자 매일 남편의 병이 낫기만 기도하고 있었다.
어느 해 말 스님 한 분이 찾아와서 오봉산에 불을 놓고 남편을 찾아가면 낫는다고 하여 백 날 동안 오봉산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남편 옆에 가서 죽으려고 남편을 찾아가다가 도중에 쓰러지고 말았다.
서산으로 지는 해를 보고 제발 남편을 찾아갈 때까지 넘어가지 말라고 손을 휘젓다가 보니 자기 손이 오봉산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섯 손가락에 불을 켜서 붙이고 남편을 찾아갔는데, 남편은 이미 병이 다 나아서 둘은 동리로 내려와서 행복하게 살았다.
【용원설화(龍猿說話)】
바닷속에 용왕이 살았는데, 그의 왕비가 잉태하여 원숭이의 염통이 먹고 싶다고 하였다.
용왕은 원숭이의 염통을 구하기 위하여 육지로 나와 나무 위에서 열매를 따 먹고 있는 원숭이를 만났다. 용왕은
"그대가 사는 이곳은 좋지 못하니 아름다운 수목이 있고 먹을 열매가 많은 바닷속으로 안내하겠다."
고 제안하였다. 이에 솔깃한 원숭이는 기뻐하여 용왕의 등에 업혀 물 속으로 갔다. 도중에서 용왕은 그만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그 말을 듣고 놀란 원숭이는 용왕을 보고
"염통을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왔으니 얼른 다시 가지러 가자."
고 하였다. 용왕은 원숭이의 말을 곧이 듣고 다시 육지로 업고 나왔다.
원숭이는 육지에 나오자마자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고 용왕을 보고 조소만 하였다. → 구토지설
[출전] 인도의 불경 '자타가 본생경(本生經)'
【일월산 황씨 부인당 설화(日月山黃氏夫人堂說話)】
오랜 옛날, 일월산 아랫마을에 살던 황씨 성을 가진 처녀는 동네 총각과 혼인을 하게 되었다. 워낙 아름다운 규수라 두 젊은이가 서로 탐내어 다투었었는데, 그 중 한 총각이 행운을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신혼 첫날밤이었다. 원앙금침에 들기 전, 뒷간에 갔다가 신방(新房) 문 앞에 선 신랑은 기겁을 하고 놀랐다.
신방 문 창호지에 칼날 그림자가 얼씬거린 것이다. 그 그림자가 분명 연적(戀敵 다른 총각)의 것이라 여긴 신랑은 그 길로 아무 말없이 달아나버렸다.
칼날 그림자란 실은 문 앞에 있던 대나무잎의 그림자에 대한 착각이었지만, 신랑은 그것을 알 길이 없었다.
그 길로 영영 달아나버린 신랑을 기다리던 신부는 조바심을 내며 신랑을 기다리다가 몇 날, 몇 밤을 새웠는지 모른다. 침식을 전폐하고 오직 기다림에 몸을 바치던 신부는 마침내 한을 품고 구천(九天)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삭을 줄을 몰랐다. 살아 생전 꽂꽂했던 몸가짐도, 앉음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돌부처인 양 시신은 언제나 신방을 지키는 듯 보였다.
한편, 도망간 신랑은 외지에서 다른 색시를 만나 장가를 들었다. 그리고 아이까지 낳았으나 아이는 낳는 대로 이내 죽곤 하는 것이었다.
점장이에게 알아보았더니 바로 황씨 규수의 원한 맺힌 원혼(寃魂)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괴로움에 빠진 신랑은 그를 일월 산정에 묻어주고, 그리고 그를 섬기도록 하여 보라는 어떤 승려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신랑은 전날의 잘못을 뉘우치고, 지금의 부인당 자리에 시신을 옮기고 작으나마 사당(祠堂)을 지어바쳤다. 그 때야 시신은 홀연히 삭아 없어지더라는 것이다.
【장자못 전설】
옛날 전북 옥구군 미면(米面) 지금의 미제지(米堤池)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욕심이 많고, 포악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중이 와서 시주를 권하자 그는 심술궂게 시주 대신 소의 똥을 잔뜩 자루에 담아주었다.
때마침 그 광경을 보던 부인이 몰래 중을 불러 쌀을 주면서 남편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중은 그 부인에게 '부처님의 심부름으로 남편을 벌주기 위해서 왔다' 하고 내일 아침 그 집을 피해 뒷산으로 달아나되 무슨 소리가 나도 뒤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이튿날 부인은 어린아이를 업고 뒷산으로 올라가던 중,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나므로 금기(禁忌)를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조금 전까지 있던 집은 간 곳이 없고 그곳에 물이 괴어 있었다.
여인은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어린아이와 함께 돌로 화하고 말았다 한다. 이후로부터 큰 부자집은 큰 못이 되어버렸다.
【조신(調信)의 꿈】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주제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조신이 나중에 깨달은 바 있어 정토사란 절을 세웠다고 하는 사원연기설화(寺院緣起說話)이기도 하다.
조신은 지금의 강릉 지방에 있는 세규사(世逵寺)의 중이었다. 그는 명주 날리군 태수 김흔(金昕)의 딸을 좋아했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낙산대비(洛山大悲)라는 관음보살 부처님에게 그 소원을 하소연했다.
그러나 그런 보람도 없이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고 말았다. 조신은 절망 끝에, 어느 날 대비(大悲)의 앞에 가서 자기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은 것에 대하여 원망하며 슬피 울다가 너무 지쳐서 얼풋 잠이 들었다.
홀연히 꿈에도 잊지 못하던 김소저가 나타나서 웃으며,
"저는 마음 속으로 그대를 몹시 사랑했으나 부모님의 영으로 부득이 출가했다가 이제는 함께 살려고 왔습니다. 나를 용납하여 주시겠습니까?"
하였다. 조신은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서 40년을 함께 살았다. 그러나, 너무도 가난하여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십여 년을 문전 걸식을 하다가 15세 되는 큰 아들은 굶어서 죽었고, 조신과 그 아내는 늙고 병들어 누워 있고, 열 살짜리 딸이 구걸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쓰러졌다.
두 부부는 목이 메었다. 이 때에 그 아내는 의연히 단좌하여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가 처을 당신을 만났을 때, 우리는 나이도 젊었고 얼굴도 예뻤습니다.
그리고 사랑도 두터워서 헝겊 하나로, 또는 밥 한 그릇으로 나누어 먹으면서 살아 왔으나, 이제 50년을 살다 보니 몸은 늙어서 병들었고 아이들은 굶고 추워서 죽기도 하고, 마냥 구걸을 하려고 해도 집집이 문을 굳게 닫고 받아들이지 않으니, 어느 여가에 부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홍안의 미소[紅顔微笑]는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의 약속[約束芝蘭- 친구 사이의 약속]은 광풍 앞에 버들꽃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으니 헤어지는 도리 밖에 없습니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것도 다 운수가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조신도 옳게 여기고, 부부는 두 아이를 하나씩 맡아가지고 헤어지기로 했다. 서로 손을 잡고 이별하려고 할 때에 잠이 깨었다. 한바탕 꿈이었다. 대비 앞의 등불은 여전히 깜박거리고 밤은 고요히 깊어만 가고 있었다.
이튿날 깨어보니 머리가 하얗게 세어있었다. 조신은 열다섯 살 아들이 굶어 죽어간 언덕에 찾아가서 그 시체를 파묻은 곳을 파 보았다. 거기서 돌미륵이 나왔다고 한다.
조신은 인간의 일생이 물거품같이 허무함을 느끼고 다시는 인세(人世)에 뜻을 두지 않고 불도(佛道)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출전] '삼국유사' 권 3 '조신조(調信條)'
【지하국 대적 퇴치 설화(地下國大敵退治說話)】
옛날 지하국에 사는 아귀(餓鬼)라는 도적이 지상 세계에 나타나 왕의 세 공주를 잡아갔다.
한 무사가 공주를 구출하겠다고 자진해 나섰다. 그러나 왕은 공주를 구하면 막내딸과 결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몇 사람의 부하를 데리고 지하국의 입구를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꿈에 산신이 나타나서 지하국의 입구를 가르쳐 주었다. 입구에 다다른 무사는 부하들을 지상에 남겨두고 광주리를 타고 지하국에 이르렀다. 세 공주 중 하나가 물을 길러 왔다가 무사를 만난다.
무사는 수박으로 변하여 아귀의 집으로 들어갔다. 세 공주는 아귀에게 독주를 권하여 아귀를 잠들게 하고, 그의 힘의 근원이 되는 옆구리의 비늘 두 개를 제거하고 그 목을 잘라서 죽여버렸다.
무사는 세 공주를 지상으로 올려 보냈으나 부하들이 무사는 올리지 않고 그대로 궁으로 돌아갔다. 지하국에 남은 무사는 처음 나타났던 산신의 도움으로 말을 타고 무사히 지상으로 나온다.
한편, 궁궐에서는 부하들이 공주를 데리고 왕 앞에 나아가 자기들이 구한 양 거짓말을 하여 큰 잔치가 베풀어지고 있었다. 공주들도 자신들이 살아오게 된 기쁨에 무사에 관한 일을 잊고 있었다.
잔치가 베풀어지고 있는데 무사가 나타나 자초지종을 고하자 왕은 크게 노하여 부하들을 죽이고 막내딸과 무사를 결혼시켰다.
【홍수설화(洪水說話)】
옛날 이 세상에는 큰물이 져서 세계는 전부 바다로 변하고 한 사람의 생존자도 없게 되었다.
그 때에 어떤 남매 두 사람이 겨우 살게 되어 백두산같이 높은 산의 상상봉에 표착하였다.
물이 다 걷힌 뒤에 남매는 세상에 나와 보았으나 인적이라고는 구경할 수도 없었다. 만일 그대로 있다가는 사람의 씨가 끊어질 수밖에 없으나 그렇다고 남매간에 혼인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얼마 동안을 생각하다 못하여 남매가 각각 마주 서있는 두 봉우리에 올라가서 계집아이는 암망(구멍 뚫어진 편의 맷돌)을 굴려 내리고 사나이는 수망을 굴려 내렸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하느님에게 기도하였다.
암망과 수망은 이상하게도 산골 밑에서 마치 사람이 일부러 포개 놓은 것같이 합하였다. 남매는 여기서 하느님의 의사를 짐작하고 결혼하기로 결심하였다.
사람의 씨는 이 남매의 결혼으로 인하여 계속하게 되었다. 지금 많은 인류의 조선(祖先)은 실로 옛날의 그 남매라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퍼져있는 이 이야기는 인류의 시조, 천지개벽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중국과 불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서양의 경우 구약에 나온다.
【달팽이 각시(우렁 색시)】
가난한 노총각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이 농사를 지어 누구랑 먹고 살아." 하자,
"나랑 먹고 살지 누구랑 살아."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다시 말하자, 대답도 역시 같았다. 총각이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니, 우렁이 하나가 나왔다. 우렁이를 집에 가져와 물독 속에 넣어 두었는데, 그 뒤부터는 매일 들에 갔다 오면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이상히 생각한 총각이 하루는 숨어서 살펴보았더니, 우렁이 속에서 예쁜 처녀가 나와서 밥을 지어 놓고는 도로 들어갔다. 총각이 처녀에게 같이 살자고 하자, 처녀는 아직 같이 살 때가 안 되었으니 좀더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총각은 억지로 함께 살았다. 하루는 우렁각시가 들일을 나갔는데, 지나가던 관리가 보고는 자기 처로 삼으려고 데려오게 하였다.
우렁각시는 자기를 데리러 온 관리의 하인에게 반지, 비녀, 옷고름, 겉옷을 차례로 내주면서 이것밖에 없더라고 말해 달라고 하였으나, 끝내 관리에게 붙잡혀 가게 되었다.
이를 안 총각은 애를 태우다가 마침내 죽어서 파랑새(靑鳥)가 되고, 우렁 각시도 죽어 참빗이 되었다는 설화이다.
여기에서 나타난 파랑새는 자신의 정당한 배필을 빼앗긴 억울함을, 여자의 필수품인 참빗은 성취되지 못한 애정을, 우렁이는 여자의 성기를 각기 상징 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설화는 남녀의 만남조차도 쉽사리 이룰 수 없었던 하층민들의 운명적인 슬픔이나 현실적인 고난이 담겨 있다. 새가 된 총각이 우렁각시를 향하여 불렸다는 민요도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