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하나다 진리는 하나다. 둘이면 진리가 아니다. 하나는 집합이고 둘은 원소다. 단순히 숫자 하나 둘을 말하는게 아니다. 보편성과 특수성의 문제다. 집합과 원소의 관계에서 원소는 진리가 아니다. 모든 개별적인 것은 그저 낱낱의 사실일 뿐, 인류에게 해답을 제공하는 진리가 아니다. 답은 언제라도 진리의 보편성을 따르는 집합에 있다. 원소를 가리키는 소승적 태도는 진리가 아니다. 집합을 가리키는 시스템적 구성이 진리다. 진리의 리理는 결이고, 결은 사건의 시공간적인 진행이다. 진행이면 반복되므로 집합한다. 진리는 집합이며 그것은 사건에서 시스템의 작동이다. 진리를 찾는다 함은 보이지 않는 배후의 집합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원소개념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원자개념이나 입자개념 혹은 입체개념의 개별적 접근으로 사유를 출범시킨다. 자연의 의사결정이 입자단위로 일어나는듯이 착각되기 때문이다. 틀렸다. 입자는 자연에서 의사결정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노아가 방주에 동물을 한 쌍씩 짝지워서 태운 것과 같다. 어떤 하나는 자연의 존재가 아니다. 자연에서 어떤 하나의 단일한 개체는 의사결정 단위가 아니다. 자연에는 항상 산과 바다나 혹은 하늘과 땅이나, 밤과 낮처럼 한 세트단위로 존재한다. 원소가 아니라 집합으로 존재한다. 연필과 종이는 쌍이다. 노트만 바꾸거나 연필만 바꾸지만 여행을 갈 때는 둘 다 갖고가야 한다. 사막을 여행할 때는 자동차에 기름통을 싣고 가야 한다. 주유소가 있다고? 천만에. 주유소는 인간이 머리를 써서 대비한 것이며 이는 인간의 꼼수이지 자연의 실제가 아니다. 이 때문에 착각하는 거다. 자연의 모든 것은 세트 단위로만 작동한다. 인간이 머리를 써서 개체만으로도 작동하도록 시스템을 고쳐놓았기 때문에 짝짓기 단계를 건너뛰다가 오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전자제품을 들여오는 실패다. ◎ 자연은 집합의 세트 단위로만 존재하지만 인간은 머리를 써서 원소만 빼서 쓰는 방법으로 효율을 꾀한다. 그러다가 반드시 세트로 가야 하는 중요한 변화의 순간에 결정적인 오판을 저지른다. 물질의 최종적인 집합은 에너지다. 우리가 목격하는 자연의 사실은 그 에너지의 활동에 공간과 시간의 단위를 지정한 것이다. 그런데 왜 공간과 시간 뿐인가? 더는 없는가? 당연히 더 있다. 왜 진리는 하나인가? 다섯 간들 때문이다. 존재는 곧 간이다. 간은 어떤 둘이 아니고 그 어떤 둘의 사이다. 그런데 우리가 공간과 시간의 간間은 알지만 입자나 원자가 간이라는 사실은 모른다. 자연의 존재는 쌍으로만 존재하므로 개체도 간이다. 의사결정으로 보아야 한다. 과장이나 부장이 혼자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과장이나 부장도 윗선과 말단 사이에서 간間이다. 점원이 결정하지만 실제로는 회사와 고객 사이에서 간間이다. 이렇듯 따지고 보면 자연에 간이 아닌 것은 없다.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의 간이다. 하늘도 우주와 지구 사이에서 간間이다. ◎ 의사결정으로 보면 모든 존재는 간間이다. 연필은 사람과 종이 사이에서 간이다. 종이도 누군가에게 정보를 전하는 간이다. 컴퓨터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간이다. 네트워크도 간이다. 그 컴퓨터 안의 정보도 간이다. 모두가 간이다. 지구도 중력으로 보면 간이다. 공간이나 시간은 단위다. 그런데 모든 단위는 의사결정단위에서 파생된다. 같은 시간에서 다름은 공간이고 같은 공간에서의 다름은 시간이다. 다름은 원소다. 집합은? 상부구조다. 시간의 집합은 공간이다. 공간이 반복되면 시간이다. 같은 시공간에서의 다름은? 시공간은 연속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가 중첩되어 있는 불연속적 존재임을 안다. 간間은 항상 연속적인가? 불연속적인 간을 떠올려도 좋다. 그것은 의사결정단위다. 대칭과 비대칭의 관계에서 단위는 중첩되어 있다. 국회의장처럼 집합이면서 원소인 존재가 중첩이다. 구조론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라는 다섯 간이 있다는 거다. 칼라의 수는 무한이다. 이는 양의 간이다. 자연수의 숫자도 무한이다. 이는 입자의 간이다. 질은 양자의 중첩되어 있는 간이다. 힘과 운동의 간은 공간과 시간의 간이다. 우리는 공간과 시간만을 간으로 치고 입자를 의사결정단위로 친다. 그러나 자연은 양자적으로 중첩되어 있으며 언제나 쌍으로 있다. 개체는 없다.
◎ 질은 중첩의 간이다. 우리는 다름의 변화를 보고 이를 원소로 삼아 집합을 찾는다. 빨강과 파랑이 있다면 다른 것이며, 이를 원소로 삼아 백인종과 흑인종으로 분별한다. 거기서 인류라는 집합을 찾아내면 지知다. 진리는 하나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추적할 수 있다. 만약 진리가 둘이라면? 모든 생물은 산소로 호흡한다. 불소로 호흡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구조의 중첩에 따른 충돌문제 때문이다. 우주 어딘가 다른 별에는 불소로 호흡하는 생명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미노산은 두 종류가 있는데 모든 생명체는 그 중에 하나를 쓴다고 한다. 왜? 진리의 보편성 때문이다. 충돌의 문제다. 진리가 둘이면 그 둘은 만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는 하나다. 여기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어떤 하나의 의사결정이 다른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것이다. 개별적인 것은 뒤섞일 수 있다. 빨간 것이 있으면 파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쌍으로 있는 것은 섞일 수 없다. 이미 중첩되어 있으므로 중첩될 수 없다. 쌍이면 이 남자의 부인이면서 동시에 저 남자의 부인일 수 없다. 2인삼각과 같다. 혼자면 이리 갈 수도 있고 저리 갈 수도 있다. 섞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의 존재는 양자적으로 엮여 있다. 2인삼각처럼 발이 묶여서 외길로만 가게 되어 있다. 진리는 하나다.
진리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어떤 둘 사이에서 하나를 찾으면 곧 진리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커다란 하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의사결정은 언제라도 근원의 하나에서 일어납니다. 답은 뻔합니다. 자연은 감추는 것이 없습니다.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그것, 진리를 깨닫는 즐거움에 빠져봅시다. |
MP3만 주고 음원은 알아서 들으라던 아이리버와 달리
애플은 아이튠즈로 음원까지 제공해서 시장을 휘어잡았죠
모든건 세트로 있는건데
올해 발표한 애플페이의 경우도 이런 개념과 통해요
NFC , 지문인식 장치 들어있으니깐 알아서 쓰라는 기타 스마트폰 업체와 달리
애플은 애플페이를 만들어서 꼭 쓸 수 있도록 했죠
더 놀라운 건 미국 정부치원에서 신용카드 보안 문제로 카드승인단말기를
NFC도 되는 신형으로 최근에 교체하는중이란거
아무리 애플페이가 개념이 좋아도 카드 단말기에서 지원이 안 되면 무쓸모인데
이 또한 세트로 엮여있는걸 제대로 타이밍 맞췄죠
존재는 전제다. 전제가 없는 존재는 없다. 존재가 있으면 전제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전제가 없는 존재는 있을 수 없다. 원인이 없는 결과가 없듯이, 배후가 없는 사물은 없기 때문이다. 원소가 있으면 집합이 있고 선수가 있으면 팀이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의 배후에는 자연이 있다. 존재의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인식할 때, 안전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존재는 얽힘이다. 연필은 종이를 위한 것이고 종이는 연필을 위한 것이다. 쓸수 없으면 연필이 아니고 적힐 수 없으면 종이가 아니다. 만나있지 않은 존재는 없고 만날 수 없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는 만남이고 만남은 오로지 하나이며 만남을 탐구하는 것이 진정한 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