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점원리 존재가 동적상태일 때 1점에 의해 계 전체가 대표된다. 사실 미시세계로 볼 때 우주 안의 모든 존재는 동적상태이며 정적상태는 없다. 제 자리에 가만이 있는 것도 미시세계에서는 1초에 9조번쯤 진동하고 있다. 그런데 거시세계에서는 대칭원리에 의해 이 성질이 안으로 감추어진다. 둘이 대칭을 이루고 나란히 움직이면 둘은 상대적인 정적상태가 된다. 우리가 보는 세계의 모습이다. 대칭의 밸런스가 깨지고 내부의 동적상태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에너지다. 돌고 있는 팽이는 가만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팽이가 힘이 다하여 쓰러질 때 비로소 그동안 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내부에 잠재된 에너지가 쏟아져 나오면 대칭이 소멸하므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존재는 내부적으로 대칭을 이룰 때만 통제가능한 상태가 된다.
◎ 대칭 – 내부에 긴장된 동적상태를 감추고 있다. 동적상태일 때 존재의 내부는 균일하다. 균일한 상태는 외부에서 전해져오는 힘이 계 전체에 곧바로 전달되는 상태이다. 이는 우주유영을 하는 것과 같고 물 위에 떠서 허우적거리는 것과 같다. 살짝 건드려도 크게 흔들린다. 이때 1점을 타격하여 계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 반면 정적상태는 다른 것에 빌붙어 있는 상태이며 외부에서 타격하면 빌붙은 연결지점에서 힘이 굴절된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으므로 대상을 통제할 수 없다. 만약 적이 단단한 성곽에 의지하여 농성전을 펼친다면 정적상태다. 이때는 타격해봤자 성벽을 때릴 뿐 그 힘이 적군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그러나 농성하고 있는 적을 밖으로 유인하여 끌어낸다면 적이 동적상태가 된다. 이때 적은 급소를 드러내게 되며 타격하여 이길 수 있다. 동적상태는 내부적으로 대칭되어 있다. 체조선수의 모든 동작이 상하좌우전후의 대칭을 따라가는 것과 같다. 이때 대칭의 축을 이루는 1점이 있다. 그 1점을 통제하는 방법으로 대상을 지배할 수 있다. 1점은 아군과 적군 사이에도 있고 적군 내부에도 있다. 적군의 상체와 하체사이, 머리와 꼬리 사이에 1점이 있고 적군의 선봉대와 보급부대 사이, 후방지휘부와 일선부대 사이에도 그 1점이 있다. 움직이는 적은 반드시 약점을 노출한다. 구조론은 사건으로 본다. 하나의 사건은 5회의 의사결정 단위를 가진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5회에 걸쳐 1점을 성립시킨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적의 1점을 타격하여 파괴할 수 있고, 아군의 1점을 연결하여 승리할 수 있다. 1점이 끊어지면 전기제품의 전원이 꺼지듯이 동적상태가 깨진다. 반대로 1점이 보호될 때는 어지간히 타격받아도 오뚝이처럼 일어선다. 공격이냐 수비냐에 따라 약한 고리의 대응방법은 달라진다. 수비 때는 약점을 보호해야 하지만, 공격 때는 강점을 강화해야 한다. 공격은 가장 강한 한 명이 승패를 결정하고, 수비 때는 가장 약한 한 명이 승패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아군의 내부가 균일하면 수비에 치우치는게 맞고, 아군의 내부가 불균일하면 공격으로 이겨야 한다.
◎ 공격할 때 1점은 강점이며 그 1점은 선두에 있어야 한다. 쇠사슬은 약한 고리 하나가 전체의 운명을 결정한다. 100개의 쇠사슬 중에서 99개의 고리가 튼튼해도 단 하나의 고리가 부실하다면 조직은 한꺼번에 붕괴한다. 수비할 때는 특히 약한고리를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공격할 때는 상관없다. 공격을 위주로 하는 군대라면 병사 중에 한 명이 약해도 무방하다. 프로야구라면 약팀은 공격 위주로 가야 한다. 약팀은 선수들의 능력이 불균일하기 때문이다. 고르게 다 못하는 팀은 없다. 대개 상위타순과 하위타순간에 전력차가 크다. 몇 명이 못할 때는 번트를 대지 말고 공격위주로 가서 점수차를 크게 벌려야 수비에러를 해도 버틸 수 있다. 반면 진짜 강팀은 수비로 이긴다. 그러나 약팀이 수비위주로 가서 1점차 승부를 하면 매경기마다 오늘은 누구 때문에 졌다는 식의 말이 나온다. 정치판도 그렇다. 야당은 공격포지션이고 여당은 수비포지션이다. 야당은 무조건 공격을 강화해야 한다. 야당이 수비를 못해서 욕을 먹거나 지지율이 떨어져도 상관없다. 야당 주제에 1 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태에서 계속 수비만 하다가 망한 예가 안철수, 김한길의 수비정치다. 강팀은 수비로 재미를 보고 약팀은 공격으로 재미를 보는 것이 동서고금의 법칙이다. 소실점의 발견 약한 고리의 1점은 그림의 원근법에서 말하는 소실점과 같다. 화가와 모델은 캔버스를 두고 대칭을 이룬다. 둘의 시선이 만나는 지점이 소실점이다. 모든 존재는 대칭에 의해 통제되므로 반드시 피아간에 대칭을 형성시키는 1점이 있다. 모델 자체에도 내부를 통제하는 1점이 있다. 자동차라면 핸들이 운전기사와 차를 연결하는 1점이다. 가속할때는 엑셀레이터 페달이 1점이고 멈출 때는 브레이크 페달이 1점이다. 마찬가지로 자동차 자체에도 엔진이 1점이 된한다. 사건의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전개에 따라 다섯 개의 1점이 있다. 100마리의 양이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다면 그것은 1이 아니라 100이다. 1점의 대표성이 없으므로 그것은 하나의 존재가 아니다. 사건이 일어날 수 없는 상태이다. 지나가는 행인이 양떼를 부르면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러나 목동이 양떼를 불러모으면 100마리 양들은 1그룹으로 행세한다. 사건의 1을 성립시키므로 양떼라는 하나의 존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자연에는 많은 애매한 상황들이 있다. 그러므로 1을 발견하려면 기술을 써야 한다. 아기는 분명히 1의 존재다. 그러나 때때로 아기는 1로 반응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탈 때 엄마는 아기의 표를 끊지 않는다. 아기는 엄마에게 종속되며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 사건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매표원이 모르고 아기에게 입장권을 내라고 요구하면 실패한다. 상대방에게 에너지가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는 엄마를 통제해야 한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실상 동적상태이며, 동적상태는 1점에 의해 대표되며 그럴 때 두 방향에서 동시에 작용할 수 없다. 날아가는 비행기는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미끄러지는 스케이트 선수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런 점을 간과한다. 두 방향에서 날아가는 비행기를 통제하려고 시도한다. 이는 매표원이 아기에게 돈을 받으려는 시도를 하는 것과 같다. 실패다. 물론 정적상태로 있는 바위는 두 방향에서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바위라도 움직일 때는 한 방향에서 작업해야 한다. 통나무를 벨 때는 여러방향에서 도끼질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통나무를 넘어뜨릴 때는 한 방향에서 타격해야 한다.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 가면서 동시에 옆으로 갈 수 있다고 착각한다. 게는 앞으로 가거나 옆으로 갈 뿐 비스듬히 못간다. 디자인에서 특히 이 점이 중요하다. 한 부분을 강조하고 다른 부분을 의도적으로 날려버려야 한다. 상의와 하의를 동시에 강조한다든가 하는 식이라면 곤란하다. 포기할 부분을 포기해야 살릴 부분을 살릴 수 있다. 이것 저것 다 욕심낸다면 곤란하다. 세상의 많은 오류들은 움직이는 것을 두 방향에서 통제하려다가 실패하는 것이다. 강공작전이든 번트작전이든 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물론 움직이지 않고 농성하는 적군은 두 방향에서 타격할 수 있다. 1점타격 일점을 공격하여 무너뜨리는 전술로는 종심을 타격하고 각개격파하는 나폴레옹의 1점포격이 대표적이다. 구스타프 아돌프의 밀집사격도 그렇다. 산발적으로 각자 쏘는게 아니라 대장의 지휘에 따라 일제히 적진의 한가운데에 포화를 집중시킨다. 나폴레옹의 방법은 이 전술의 포병버전이라 하겠다. 알렉산더도 일점타격에 능하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복잡한 전장에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밸런스를 주시하고 있다가 순간적으로 느슨해져 있는 적의 1점을 발견하고 그곳에 공격을 집중시킨다. 돌파에 능한 초패왕 항우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의 방어가 견고할수록 그 1점을 파괴했을 때 적의 기세는 크게 꺾인다. 보통은 적의 약산 곳을 치므로 적이 물러나서 재집결 하지만 적의 강한 곳을 치면 적은 스스로 자멸한다. 반대로 그 일점을 방어하는 전술로는 한니발의 포위전과 이순신의 학익진, 한신의 십면매복을 예로 들 수 있다. 한니발은 스페인부터 따라온 카르타고 정예를 양날개로 붙이고 가운데는 주변에서 모아온 약한 용병을 배치한다. 그리고 그 뒤에 직속부대를 한 겹 더 붙인다. 그리고 기병을 양 날개 끝에 붙인다. 양쪽이 일자진을 치고 평원에 대치한 상태에서 로마군은 곧 한니발군의 중앙이 약한고리임을 꿰뚫어본다. 그쪽에 전력을 집중하여 중앙을 돌파하면 로마군의 승리가 된다. 실제로 가운데가 뚫려 카르타고군의 진영이 붕괴되려고 하는 찰나 뒤에 있는 한니발의 정예가 투입되어 약한고리를 보호한다. 로마군은 이미 학익진의 날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상태가 되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속임수는 매우 자연스러워서 로마군은 꼼짝없이 속는다. 전투에서 이기려면 예비병력을 편성해 놓았다가 아군의 약한고리에 예비병력을 투입하여 보강하는 전술을 써야 한다. 게티스버그에서도 한때 남군이 북군진영을 돌파할 뻔 했지만 북군이 신속하게 예비병력을 투입하는 바람에 남군이 궤멸되고 말았다. 반면 이소스 전투에서는 알렉산더가 기병을 휘몰아 페르시아 중갑병부대 사이의 틈새를 찌르고 들어왔을 때 막아낼 예비병력이 다리우스에게 없었다. 전통적으로 평원에서의 회전은 우익을 두텁게 하고 적의 약한 좌익을 치는 관습이 있어서 알렉산더의 종심돌파를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 질 - 진형의 1점.. 적을 포위하면 이길 수 있다. 전투는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로 전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전투의 양상은 반대로 된다. 먼저 양에서 틈새를 발견하고, 운동에서 그 틈새를 기습하고, 힘에서 적진을 둘로 쪼개고, 입자에서 적장을 죽이고, 질에서 적의 진형을 파괴하여 대량살상을 벌인다. 그러므로 서툰 지휘관은 양≫운동≫힘≫입자≫질의 순서로 가려고 한다. 대부분 이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병법이 있어야 한다. 질로 좋은 진형을 만들고, 입자로 종심을 두터이 한 후, 힘으로 좌군과 우군을 벌리고, 운동으로 적의 배후를 돌아 기습하며, 승부처에서 순간적인 양의 우위를 전면화 하여 이기는 것이다. 착각하는 이유는 아군이 질≫입자≫힘≫운동≫량으로 가야 적이 양이나 운동에서 허점을 보이는데 그 허점이 당연히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적이 그런 빈틈을 보일 리가 없다. 아군이 질로 압박하면 적이 양에서 빈틈을 보인다. 그러나 적의 빈틈을 기대하면 적은 절대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상대가 수비실수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작전을 내면 작전은 모두 실패한다. 그러나 아군이 정공법으로 나가면 적은 실수한다. 그러므로 전쟁을 꼼수로 이기려 하는 자는 절대 이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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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을 멈추라는 사설을 싣고, 맞불집회(?)가 열렸다는 기사는 쓸 수 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롱과 악의적인 비방과 유언비어를 비판하는 기사가 조중동에 실리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긴 TV 조선도 김영오씨의 이웃주민, 외할머니와의 인터뷰는 실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딸과의 인터뷰가 없는 것도 결과를 짜맞추기 위한 악의적인 편향보도이지요.
이것이야 말로 방통위 징계감인데, 방통위도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의 편파 심판이 된지 오랜지라...
싸우기는 싸우되, 인간 이하의 모습에 대해서는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의지 없다면,
대한민국호의 전진은 커녕 퇴보만 할 것입니다.
이터븀은 1초에 518조2천958억3천659만865번 진동합니다.
초등학교 수학시간에 배운 점-선-면의 원리가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니... 새삼 깨닫습니다.
강자의 입장에서 져줄 수는 있어도 약자의 입장에서 이겨줄 수는 없다.
수준을 높여라. - 질로 승부하라.
약점을 보완하라.
강점으로 일하라.
핵심을 꿰뚫라.
본진을 약점을 보고 그 약점을 쳐라.
약점을 보이지 마라. - 내가 죽은 것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특히 세월호 관련 여야, 정치인, 시민들의 동향을 보면서
약점을 보호하는 모습,
그리고 그 약점을 공격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유민아빠 김영오 씨를 대하는 미디어, 시민, 정치인의 태도도 이와 무관하지 않네요.
이런게 인생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