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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7228 vote 1 2014.08.05 (23:20:57)

     전에 쓴 글을 고쳤습니다.   


    철학은 삶의 의미를 찾는다. 껍질을 까면 알맹이가 나온다. 밤송이를 까면 밤톨이 나온다. 삶을 까면 의미가 나온다. 의미를 까면 가치가 나온다. 이렇듯 계속 사색해 들어가면 최종적으로 무엇이 나올까? 허무주의라는 절벽을 만난다.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정해야 한다. 양파껍질을 까면 무엇이 나올까?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인생은 양파와 같다.


    인간을 까면 무엇이 나올까? 인간 알맹이가 나온다. 인간 알맹이는 무엇인가? 영혼이다. 과연 그러한가? 인간을 해부해서 영혼을 핀셋으로 집어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대답하면 종교가 된다. 철학은 그 반대로 생각한다. 씨앗을 심으면 무엇이 나오는가? 꽃이 나온다. 씨앗은 껍질 속의 알맹이다. 철학은 껍질에서 알맹이를 찾는게 아니라 반대로 알맹이를 심어서 껍질을 얻는다. 그렇게 피어난 꽃은 껍질이다. 인간이 열매라면 껍질이 되는 꽃은 무엇인가?


    ◎ 사물로 보는 관점 : 껍질(원인) -> 알맹이(결과)
    ◎ 사건으로 보는 철학 : 알맹이(결과) -> 꽃 (원인)


    원인 다음에 결과다. 껍질 다음에 알맹이다. 철학은 그 순서를 뒤집는다. 열매보다 꽃이 먼저다. 결과보다 원인이 먼저다. 결과에 집착하는 태도는 사물로 보는 관점이다. 이 방법으로는 양파껍질을 계속 까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사물로 보기 때문에 영혼을 찾는 것이다. 철학은 결과로부터 원인을 찾는다. 결과가 행동이면 원인은 의사결정이다. 인생이라는 결과로부터 의사결정권이라는 원인을 찾는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인간은 과연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가? 내게 의사결정권이 있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역할이다. 포지셔닝 게임이다. 왕이라면 왕노릇 해주면 된다. 엄마는 엄마답게, 아빠는 아빠답게 각자 역할을 해주면 된다. 소는 밭 갈면 되고, 개는 집 지키면 되고, 닭은 알 낳으면 되고, 노예는 일하면 된다. 그게 껍질 속의 알맹이다. 만족하는가?


    엄마역할과 아빠역할의 구분, 왕과 노예의 구분은 누가 했는가? 누구에게 의사결정권이 있는가? 역할은 열매다. 철학은 열매로부터 꽃을 묻는다. 인간을 까면 무엇이 나오는가? 의사결정권리를 무엇으로부터 도출하는가? 안흥찐빵에 팥소가 들어있고, 호두과자에는 호두가 들어 있다. 인간에게 영혼이 들어있는가? 과연 의사결정권이 있는가?


    ◎ 종교의 영혼설.. 인간을 까면 영혼이 나온다.
    ◎ 칸트의 이성설.. 마음을 까면 이성이 나온다.
    ◎ 니체의 권력의지설.. 권력의지가 행위의 근거다.
    ◎ 샤르트르의 실존설.. 사회관계 안에 답이 있다.
    ◎ 노자의 무아설.. 신과의 일대일에 답이 있다.


    철학의 역사는 이 물음에 다양하게 답해온 역사다. 영혼설≫이성설≫권력의지설≫실존설≫무아설로 발전할수록 사고의 범위가 확장된다는데 주목해야 한다. 나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그렇다. 인간 행동의 최종적인 근거는 내 안에 들어있는 어떤 알맹이나 엑기스나 신묘한 기운이 아니라 바깥에서 주어진 미션이다. 인간의 근거는 사회로부터 주어진다. 인간은 열매이며 꽃은 사회다. 한 인간이 인류를 대표하여 의사결정을 할 때 그 꽃은 활짝 피어난다.


    영혼설은 종교가 지어낸 구라다. 어쨌든 영혼 개념은 인간 행위의 최종근거를 모색한 것이다. 칸트의 이성설은 종교의 영혼을 고상한 용어로 대체한 것이다. 어감이 다를 뿐 본질은 같다. 이성도 영혼과 마찬가지로 실체가 없다. 니체의 권력의지설은 의사결정권을 찾는다는 점에서 구조적 핵심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로 개념을 확대하지 못하고 여전히 개인에 집착한다. 소승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샤르트르의 실존설은 반대로 나를 배제하고 사회관계에서 찾는다. 그러나 안개 속에서의 희미한 모색일 뿐 명확한 결론은 없다.


    영혼은 없다. 이성도 없다. 다 듣기좋은 말에 불과하다. 권력의지도 없다. 그게 있다해도 내 안에는 없다. 이성이든 권력의지든 사회관계 안에서 도출된다. 그것은 개인이 사회로부터 받은 미션이다. 모든 것은 외부로부터 내가 호출되었을때 그 부름의 목소리에 내가 반응한 것이다. 상호작용에 주목하라.


    내 안에서 사랑의지가 갑툭튀하여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게 아니다. 미녀를 보았기 때문에 내가 거기에 반응한 것이다. 북 안에서 소리라는 권력의지를 끌어낸 것은 아니다. 북을 해부해도 찾을 수 없다. 북 안에 영혼없고 이성없고 권력의지없다. 소리는 북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북채와의 만남에서 나온다.


    샤르트르의 실존은 니체의 권력의지를 까뮈의 허무의지로 뒤집는다. 내 안에는 권력의지가 없지만 집단 안에는 역할게임의 주문이 있다. 까뮈의 이방인은 말한다. 뫼르쏘에게는 그 어떤 의미도 없고 이유도 없지만, 재판정에 모인 군중들에게서는 ‘흉악한 살인자’ 역할을 하라는 지령이 떨어진다. 원하는대로 해준다.


    양주의 위아설은 ‘내 몸에 터럭 하나를 뽑아서 천하에 이득이 된다 해도 그 터럭을 뽑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를 뒤집으면 ‘그 터럭을 기어코 뽑으라.’는 천하의 명령이 포착된다. 나를 부정할 때 천하가 발견된다. 노자의 무아설이다. 인간 의사결정권의 궁극적인 출처는 어디냐다. 나와 피아와의 대결구도 그 자체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는 신과의 일대일이다.


    달마를 만나면 달마를 베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고, 예수를 만나면 옣수를 베고, 고독하게 신과 맞설 때 비로소 본론이 나와준다. 그 순간에 꽃은 피어난다. 알맹이를 둘러싼 껍질이 포착된다. 영혼≫이성≫권력의지≫실존≫무아로 갈수록 의사결정단위가 커진다. 그렇다면 거꾸로 가장 큰 단위에서 출발하여 점차 좁혀오는 방법으로 탐색해야 답이 찾아진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한다. 틀렸다. 개인에서 출발하여 이웃, 사회, 국가, 세계로 범위를 확대하면 양파껍질 까듯 해서 나오는 것이 없다. 그 끝은 허무다. 아무 것도 업다. 반대로 세계에서 출발하여 사회, 이웃, 나로 좁혀오면 맥락이 발견된다. 영혼? 이성? 권력의지? 실존? 바보같은 소리다. 꽃이 열매를 호출한다. 열매를 까면 뭐가 나오는게 아니다. 꽃이 부르면 열매가 온다.


    라디오를 까면 뭐가 나올까? 없다. 방송국이 라디오를 호출하는 것이다. 무엇이 당신을 호출하였나? 범종은 당목을 호출하고, 북은 북채를 호출하고, 고수는 소리꾼을 호출하고, 감독은 배우를 호출하고, 기수는 말을 호출한다. 내 안에서 사랑이 갑툭튀 하는 일은 없다. 천하의 사랑에 내가 응답하면 사랑이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사랑하기 앞서 한 천하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천하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한 고승덕의 딸사랑은 가짜다. 개인의 권력의지는 노자의 무아설을 받아들여 내 안에 없고 우주의 권력의지가 내게로 넘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신과 한 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그래서 일대일이다.


    ◎ 아기는 엄마가 그려준 밑그림에 색을 칠한다.
    ◎ 어느 순간 내 그림이 아님을 깨닫고 백지를 찾는다.
    ◎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든 그것은 진정한 내 그림이 아니다.
    ◎ 신의 그림, 천하의 그림을 내 그림으로 삼을 때 진짜가 그려진다.
    ◎ 먼저 신과 정직하게 대면해야 천하의 대표자가 된다.


    철학은 인생의 의미찾기다. 인생의 의미는 자기 자신의 독립적인 의사결정권이다. 의사결정권이 내 안에는 없고 천하에 있으며 그 천하를 만나야 한다. 그것은 아이가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과 같다. 내가 무엇을 그리든 그것은 천하의 악보를 내가 연주하는 것이다. 천하로부터 가져오지 않은 것은 진짜가 아니다. 왜 1인칭인가? 천하로부터 내게로 넘어오기 때문이다. 우주 안에 2인은 없다. 천하는 1이니까 1인칭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3]의명

2014.08.05 (23:59:34)

한 잔 했는데 참 좋구나^^뿌듯하구

[레벨:4]참바다

2014.08.06 (14:50:48)

동렬선생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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