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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법은 3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분석틀은 크게 거시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나라 민주세력의 총체적인 역량을 두고 보는 방법인데 솔직히 우리 국민들의 수준으로는 가망 없습니다.

가까운 이웃 일본을 보면 됩니다. 자민당 독재가 50년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유독 정치선진국이 된다는건 가능하지 않죠. 97년의 정권교체는 독재정권의 억압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일시적인 반격이지 민주세력이 성장한 결과가 아닙니다. 자력에 의한 정권교체는 아니지요.

상식적으로 볼 때 계급 대 계급, 이념 대 이념으로 대결하여 민주세력이 승리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번 선거에도 만약 노무현이 이긴다면 뭔가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그런데 참고로 말하면 역사에는 종종 기적이 일어납니다.)


두 번째 분석틀은 게임의 법칙에 따라 판 구조와 가능한 변수들을 기계적으로 대입해 보는 방법입니다. 이 경우 승산은 높습니다. 일단 창과 반창을 비교하면 6 : 4로 반창이 유리합니다. 그러므로 후보단일화가 된다면 승산이 있죠. 정치생리상 노무현의 사퇴는 절대 없으므로 후보단일화는 몽준이 사퇴할 경우만 가능합니다.

(몽준으로의 후보단일화주장을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87년 양김씨 중 한사람이 물러서야 했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정치생리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 소리를 한다면 정치를 모르는 거죠)

이회창의 낙마가능성도 아직은 있습니다. 정몽준이 완주할 확률은 50프로로 봅니다. 몽구 자동차회사에 벌써 세무조사 들어갔다는거 보시면 알겠지만 이번은 몽준이 물러서는 것이 사리에 맞습니다. 정치에서 명분의 힘을 우습게 봐서는 안됩니다.

역사를 공부해 보면 알게 되는건데 명분이라는 것은 송곳과 같아서 아주 작은 틈이라도 발견하면 결국 거대한 균열로 발전합니다. 무적의 송시열도 아주 작은 사건을 빌미로 결국 사약을 받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은 기계적으로 진행됩니다.(요 부분은 할 얘기가 많지만 길어지겠으므로 생략함)

정치라는 게임의 법칙이 작동하는 원리를 안다면 이해하게 되겠지만, 게임의 법칙 상 현재의 노무현 지지도는 무시해도 됩니다. 원래 바람은 일주일 사이에 부는 것입니다. 몇 가지 잠복한 변수가 일제히 부상하는 시점이 있어요. 이 변수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작용하는 일은 잘 없고 일시에 폭탄처럼 터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변수들은 반드시 기존의 판을 뒤집는 형태로만 작용하므로, 현재의 판세가 그대로 갈 확률보다 뒤집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변수들은 시민단체의 개입여부, 합동토론회의 효과, 호남표의 향방, 기아자동차의 세무조사, 몽당의 진로, 북한의 태도 등등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변수들은 보통 하나씩 차례대로 나타나지 않고 일시에 터지면서 상승효과를 일으켜 어느 한쪽으로 힘을 몰아주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정치에는 항상 기적이 일어나지요.


세 번째 분석틀은 97년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이 분석법으로 보면 노무현의 승리가능성은 아주 낮습니다. 우선 주가가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 아프고, 97년과 마찬가지로 여당이 분열하고 있고, 이번엔 여당에 돈이 없고, 젊은 층의 투표율이 기록적으로 낮아질 가능성이 있고, 지역구도도 불리하고, 또 과거와 같은 대형 정치 이슈가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불리하죠. 노무현의 유리한 점은 회창의 병역비리 하나 뿐입니다.


이상 세가지 분석법을 볼 때 둘은 노무현이 진다는 계산이 나오고, 하나는 노무현이 이긴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 분석법을 뒤섞어서 본다면 당연히 노무현이 진다고 나오죠. 그러나 전문가적 관점에서 볼 때 절대 이들을 뒤섞어서는 안됩니다. 반드시 셋 중 하나의 분석법을 선택하고 둘은 완전히 폐기해야 합니다.


셋 중 어느 분석틀로 볼 것이냐? 비전문가라면 첫 번째와 세 번째 분석틀로 봅니다. 이건 문외한이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전문가적 관점에서 본다면 게임의 법칙으로 봐야 합니다. 이건 전문가만이 알수 있는거죠.

물론 전문가의 관점이 반드시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확률이지요. 그러나 전문가적 관점은 보통 사람이 못 보는 점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합니다.


하여간 저라면 두 번째 분석틀을 선택하고 나머지 둘은 폐기할 것이므로 여전히 51 : 49로 노무현의 승리가능성을 높게 점칩니다. 냉정하게 봐도 그렇습니다.

첫 번째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방법에 몇마디 부연하면 원래 정치에 기적은 없는데 실은 그 때문에 역으로 기적이 있습니다. 이 기적이라는 것이 알고보면 외부에서의 힘의 작용입니다.

북한과 중국 그리고 미국의 작용입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앞서 민주화 된다면 미국과 북한 및 중국 등과의 미묘한 관계 때문입니다. 냉전시대라면 죽어도 한국은 민주화 될 수 없지요.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는 한.

냉전이 해체되었기 때문에 아주 미묘해 졌는데, 어쨌거나 우리는 북한을 안고갈 입장입니다. 동서독의 경우는 냉전의 희생자로 갈라져서 대립했지만, 핀랜드 노르웨이 스웨덴은 냉전 덕분에 민주화의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실제로 소련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즉 좌파와 우파 양진영의 사이에 끼여 양쪽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실제로는 양쪽의 정치적 입김에 영향받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회민주주의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양쪽 진영으로부터 다 영향을 받지만 결정권은 확실하게 내가 쥐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는 비약적으로 발전합니다. 이것이 정치의 황금률이지요. 보통 한쪽에 치우치면 반드시 퇴보합니다. 내게 결정권이 없어도 퇴보하구요.

우리나라도 어떻게 보면 지금 그런 입장에 있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북한도 통일된다 해도 단번에 자본주의로 넘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정치적인 곡예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중간에서 중립화 되는 거죠.

이러한 한국의 미묘한 지정학적 위치가 한국의 민주화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적으로 보여질 뿐 실제로는 기적이 아닙니다. 어쨌든 한국의 민주화는 명백히 냉전해소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순전히 우리 힘으로 민주화 된 줄 아는데 아닙니다.

정치에 기적은 없습니다. 자가발전은 없습니다. 러시아의 개방이 한국의 민주화를 낳은 것입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그래요. 그러므로 기적은 있습니다. 외부에서의 미묘한 힘의 작용이 평형을 이루어 황금률을 성립시킨다면 한국만의 특별한 민주화와 진보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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