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이니 역설이니 객관이니 하는 표현은 어렵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쉬운 말로 바꾸면 아래와 같다. ◎ 1인칭 소아병 관점 ◎ 2인칭 남탓병 관점 ◎ 3인칭 양비론 관점 ◎ 1인칭 깨달음 관점 1인칭 소아병은 아기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자기 감정이 의사결정의 근거가 된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관점을 유지한다면 그게 소아병이다. 이 관점은 오만한 독재자의 태도와 같다. 예술가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 진짜 뭔가를 알기 때문에 그 분야의 독재자가 되어버린 사람도 있고, 뭣도 모르면서 이를 따라하는 사람들도 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캐릭터다.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독선과 아집을 굽히지 않는다. 예술가라면 그래도 된다. 예술은 원래 고고하니까 당연히 인간이 예술이 맞추어야 한다. 그게 멋있다고 함부로 따라하는게 문제다. 남녀관계도 그렇다. 남자는 비굴한 태도가 되고 여자는 오만해져서 무조건 NO를 외친다. 무엇이든 거부하고 반대하는 것으로 자기 스타일을 세운다. 한 두 번은 멋있으나 계속되면 우스워진다. 아베에게 거듭 NO를 외쳐서 재미보는 박근혜 캐릭터다. 지나치면 사회관계 부적응자다. 그런데 1인칭이므로 어느 면에서 깨달음 관점과 유사하다. 원래 구조론의 양과 질은 겉으로 비슷하다. 아기들은 깨달은 사람이다. 아기는 항상 옳기 때문에 당당하다. 두려움도 없고 거짓도 없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현실의 생채기를 입어 왜곡된다. 계속 아기짓을 하면 왕자병에 공주병이다. 2인칭 남탓병은 자신을 약자로 규정하고 정치적 제스처를 하는 것이다. 피부색이나 성별이나 신체의 외모나 이런 것이 사건의 원인이 된다 해도 그것을 계속 강조하고 다니면 피곤한 거다. ‘내가 이렇게 된건 다 누구 때문이야.’ 하는 거다. 여자가 남자를 잘못 만나면, 부하가 상사를 잘못 만나면, 선수가 팀을 잘못 만나면, 빛을 못보는건 당연하지만 능동적으로 헤쳐가야할 일이다. 정치판에서 흔히 목격한다. 자신이 강자라고 주장하는 순간 꼬투리를 잡히고 책임추궁을 당하므로 무조건 자신이 약자이고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학살을 저지르는 이스라엘도 자신을 약자로 여긴다. 도처에서 행패를 저지르는 미국도 테러리즘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자기 책임을 인정하는 즉시 야당에 정권을 뺏기게 되므로 끝까지 거짓말을 한다. 강자 포지션으로 옮겨가야 강자가 된다. 2인칭 남탓병이 역설인 이유는 상대방에게 에너지원이 있으므로 의도와 반대로 되기 때문이다. 계속 남탓하다가 남에게 주도권을 내주고 실제로 남에게 당한다. 계속 약자에 머무르게 된다. 3인칭 양비론은 자신이 발언권을 쥘 의도로 상황을 왜곡하는 것이다. 중립을 표방하지만 알고보면 보수꼴통인 경우가 이렇다. 특히 비겁한 지식인 중에 이런 포지션을 취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은 살아있다. 상호작용이라는 호흡을 한다. 그러므로 흐름을 만들어내며 흐름은 일방향성을 가진다. 엄밀한 의미에서 중립은 있을 수 없다. 중립이라는 이름의 교묘한 편들기가 있을 뿐이다. 중립에 서려면 링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살아있는 인류의 역사는 항해하는 배와 같아서 배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바깥은 바다이니 나가면 죽는다. 거짓 지식인은 양비론으로 스스로를 죽인다. 1인칭 깨달음은 살아있는 관점이다. 살아있으면 호흡한다. 호흡하면 시간이 걸린다.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까지 보는 관점이다. 오판하는 이유는 사건이 외부에서 일어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건은 밖에서 시작되며 내가 사건을 인지했을 때는 사건이 이미 터졌고 불은 크게 일어나 산불이 되어버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말한다면 사건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새로 시작된다. 세상 모두는 연결되어 있고 사건은 상호작용 안에 호흡하고 있다. 탁구경기와 같다. 사건이 일어났다면 서브가 내게로 넘어온 것이며 능동적으로 받아내야 한다. 세상과 대화해야 한다. 깨달음은 사건을 살아있는 생물로 본다. 상호작용으로 본다. 사건은 살아있다. 사건은 살아있는 생방송이다. 존재는 live다. 언제나 On Air상태다. 에너지원이 내게 있다. 내 하기에 달렸다. ### 설국열차에 비유한 상동님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과 같다. ◎ 1 소아병 : 가해자 포지션, 영광의 과거, 윌포드 ◎ 2 남탓병 : 피해자 포지션, 비참한 현재, 커티스 ◎ 3 양비론 : 방관자 포지션, 허무한 미래, 길리엄 ◎ 4 깨달음 : 선지자 포지션, 역사의 흐름, 송강호
1번과 4번은 유사하면서 다르다. 둘 다 나를 판단근거로 삼지만 축소된 나인가 아니면 확대된 나인가다. 남과 분리된 채 축소된 나를 극복하고, 상호작용의 호흡을 통해 남과 통합된 나, 확대된 나를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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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아병 : 가해자 포지션, 영광의 과거, 윌포드
2 남탓병 : 피해자 포지션, 비참한 현재, 커티스
3 양비론 : 방관자 포지션, 허무한 미래, 길리엄
4 깨달음 : 철학자 포지션, 역사의 흐름, 송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