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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15]오세
read 3075 vote 0 2014.05.15 (00:21:24)

오프닝. 

어떤 사람이 피아노를 쳤다면 그 이유는 돈이나 어떤 목적이나 신념 때문이 아니라 첫째 그 사람은 피아노를 칠줄 알았다. 둘째 그 피아노가 고장나 있지 않았다. 셋째 그 피아노가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다. 


어떤 사람이 피아노를 못친다면, 첫째 돈이 없어서 피아노가 없기 때문에 연주하지 않는다. 둘째 피아노줄이 늘어져 소리가 나지 않으므로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다. 셋째 교육받지 못해 연주할줄 모르므로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피아노를 주고, 피아노를 조율하고, 연주하는 법을 알려주면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다.


세상은 그 자체로 커다란 악기다. 물질은 하드웨어고 정신은 소프트웨어다. 인간은 그 악기의 일부를 구성한다. 인간이 좋은 악기를 만나면 좋은 소리를 낸다. 나쁜 악기를 만나면 침묵한다.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 그 악기가 고장나 있는데 물질을 퍼붓거나 정신을 다그치거나 한다면 실패한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현악기는 현이 팽팽하게 조여져 있지 않다. 연주할 줄 모르는 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자격없는 자를 끌어내려야 할 때다.


세상을 연주하는 방송, 구조론 팟캐스트 생각의 정석 36회 시작합니다. 


1. 시사구조론

-정몽즙, 무슨 맛일까?


2. 아는 사람

-줄리우스 시져

"말씀하신대로 관용은 용서가 아니다. 프랑스인의 tolerance가 그러하다. 어원을 찾아보면 ‘무거운 것을 들고 견딘다.’ ‘(상대편의 배려없는 방자함을) 견디며 허용한다’는 뜻이다.

직역하면 무거운 것이 ‘들려있다(tolerate)’. 곧 ‘짐이 지워져 있다’는 뜻이다. 두 어깨에 지구를 짊어진 그리스신화의 거신 아틀라스(Atlas)를 떠올릴 수 있다. 아틀라스의 어원도 tolerate다.

관용을 정치 슬로건으로 써먹은 이는 카이사르다. 카이사르는 왜 관용을 주장했을까? 로마는 게르만을 정복했지만 역으로 게르만족 일부가 로마시민권을 얻어 원로원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카이사르의 관용은 로마가 게르만족을 포용하는 것이다. 목욕을 안 해서 냄새가 코를 찌르는 바르바로이(로마에 800개의 목욕탕이 있었을 정도로 로마인은 청결했다.)들이 텁수룩한 수염을 휘날리며 나타나서 ‘나 게르만 부족장으로 이번에 원로원의원으로 선출되었소. 그런데 원로원 가는 길은 어디요?’ 하고 길을 묻는 꼴불견이라니. 그런 못볼 꼴을 보고 견디는 것이 프랑스인의 똘레랑스다.

여기에 깊은 의미가 있다. 카이사르는 원래 도시국가로 출발한 로마의 국가개념을 바꾸어놓은 것이다. 원래 부족개념이 강한 도시국가를 넘어, 또 민족국가를 넘어, 세계국가를 지향하고 또 그것을 초월하여 더 높은 이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는 개별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정신이 공존하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문명권’을 뜻하게 된 것이다. 물론 모든 로마인이 그러한 카이사르의 정신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겠으나.

시민권 개념이 특히 중요하다. 우리가 아는 ‘국민’ 개념은 ‘세금 내고 대신 국가의 보호를 받는 자’를 의미한다. 수동적이고 예속적인 관념이다. 로마의 시민권 개념은 주주가 주식지분을 가지고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듯이, 게르만 부족장이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가지고 로마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참여함을 뜻한다.

의미가 다르다. 그 의미가 넓혀진 새로운 시민권 개념에 의해 로마는 국가 단위를 넘어선 초국가적 패권그룹으로 확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다. 먼저 안목을 높이고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카이사르 이전에 알렉산더가 있었다. 알렉산더 역시 동서세계의 통합을 꿈꾸었다. 마케도니아 족장 출신으로 정복하여 그리스를 관통하고 페르시아를 넘어 이집트와 인도를 아울렀다. 가슴에는 그리스인의 이상을 품었지만 산악국가 그리스의 폐쇄성을 극복했다.

국가개념을 초월하여 문명단위로 사고한 최초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민족국가 단위의 좁은 관념에 붙잡혀있는 사람이 관용을 이해함은 불능이다. 알렉산더와 카이사르의 눈높이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홍세화가 소개하는 오늘날 프랑스인의 관용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저급한 수준이다. 프랑스인의 관용은 식민지 지배를 받던 알제리인이나, 수업시간 교실에서도 히잡을 벗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아랍인, 혹은 터키인이나 유태인 등을 두루 포용하자는 것이다. 그 이면에 철저한 프랑스 중심주의, 드골식 대국주의, 백인-기독교문화권의 배타적 우월주의가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중국인들에게도 소수민족을 우대하는 관용의 사상이 있다. 그 바탕에 철저한 중화주의가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그것은 진정한 관용이 아니다. 가짜다. 국가개념을 초월하여 문명단위로 사고의 지평을 넓혀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작은 국민을 졸업하고 너른 시민의 바다로 입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극적으로 세금내고 보호받을 궁리를 넘어, 확고한 자기 정치적 지분을 가지고 지구촌 인류운명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적극 참여하여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3. 진짜 역사

-자본의 역사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논쟁은 실로 무의미하다. 닫힌계는 사회주의가 옳고 열린계는 자본주의가 옳다. 어떤 일의 초기 단계는 사회주의가 옳고 완성단계는 자본주의가 옳다. 


시장의 형태로 볼때

● 닫힌계 - 사회주의
● 열린계 - 자본주의

경쟁의 형태로 볼때 

● 초기단계 - 보호무역의 사회주의 방법
● 완숙단계 - 자유경쟁의 자본주의 방법

이 법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해서 안 된다. 가치로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본주의는 힘을 숭배하고 사회주의는 미를 지향하는 측면이 있다. 초기 단계에는 힘이 문제를 해결하고 완숙단계에는 미가 문제를 해결한다. 

가치의 지향으로 볼때 

● 남성의 힘으로 해결 - 초기 단계의 자본주의적이며 남성적 가치 
● 여성의 미(美)로 해결 - 완숙 단계의 사회주의적이고 여성적 가치

이렇듯 시장의 형태에 따라서 닫힌 시장이냐 열린 시장이냐가 결정된다. 경쟁의 형태에 따라서 초기단계냐 완숙단계냐에 따라 보호무역이냐 자유경쟁이냐가 결정된다. 그런데 가치의 지향에 따라서는 또 역전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지난 200년간 대결하고도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복잡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히 말하면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어린이와 소년의 단계에는 사회주의가 적용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학교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교실에서의 무자비한 성적경쟁은 인간을 황폐화 시킨다. 

그러나 같은 교실에서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자본주의로 룰이 바뀌어진다. 유치원에서는 모두가 사회주의다. 고3이 되면 자본주의로 변한다. 마찬가지로 대학에서도 신입생은 사회주의를 채택해야하고 취업을 앞둔 졸업반은 자본주의를 채택해야 한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IT벤처의 초기 단계에서는 국가에서 기간망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강력한 사회주의를 해야 한다. 초기 단계의 벤처붐은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그 지원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지원이 무한정 계속되면 경쟁력 없는 업체가 승리하고 경쟁력 있는 업체가 도태되는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스타트라인에 도달하는 과정은 사회주의여야 하지만 출발점에 선 다음에는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어야 한다. 

어차피 도태될 기업을 가능한한 빨리 도태시키는 것이 시장을 키우는 전략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장환경에 따라 자본주의의 방법과 사회주의의 방법이 적절히 선택되고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농업은 토지증가의 전망이 없다는 점에서 닫힌경제가 적용되고 있다. 이 경우 사회주의의 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농업 또한 일면에서 생산성 증가의 가능성이 열려있다면 그 부분은 자본주의의 방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아무리 꽁꽁 닫혀있는 분야라 해도 잘 살펴보면 어느 한쪽은 열려있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어떤 한가지 논리와 방법의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적용은 절대 실패로 연결된다. 시장은 언제라도 변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관료주의를 매개로 한 개입주의를 주장하고 노자는 관료주의를 반대하는 점에서 불개입을 주장한다. 초기 단계에서는 공자가 통제경제의 사회주의고 노자가 자유경쟁의 자본주의다. 이 지점에서 노자의 무위자연은 정글에서의 무한경쟁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역전된다. 힘으로 해결하는 공자의 인위가 자본주의가 되고 미(美)의 조화로움과 자연스러움을 지향하는 도교주의가 사회주의가 된다. 방법과 가치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 유교주의 - 방법은 사회주의나 가치는 자본주의다.
● 도교주의 - 방법은 자본주의나 가치는 사회주의다. 

오자병법을 남긴 오기의 예가 그렇다. 그는 노자의 제자였던 증자에게서 유가를 배웠다. 실제로 그의 병법은 유가적인 인간미가 넘친다. 

그는 다리에 종기가 난 부하의 상처에 난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기도 했다. 그 소식을 듣고 그 병사의 부모는 통곡하였다고 한다. 그 병사는 오기장군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죽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병사는 혼전 중에 오기를 구하기 위하여 목숨을 던지고 싸우다 전사했다고 한다. 

오자병법에서 ‘공이 있는 자를 포상함은 물론이고 공이 없는 자도 격려하라’, 전사자의 집에는 사람을 보내 부모를 위로하고 상금을 내려 국가가 잊지 않고 있다는 뜻을 표하라‘ 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사회주의적 가치다. 인간미가 넘치는 유교주의의 정수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는 실상 인간심리를 수단으로 이용한 점에서 하나의 방편에 불과했다. 오기는 승리지상주의자였다. 

삼국지연의의 조조와 유비를 비교해도 그렇다. 조조는 법가의 전통을 이어받고 유비는 유가의 전통을 이어받는 듯이 보여진다. 법가는 본바탕의 철학을 버리고 말단의 방법론으로 특화한 유가의 한 갈래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가치의 지향으로 보면 조조야 말로 어느 면에서 유가의 본질을 꿰뚫은 사람이다. 그는 가치와 방법이 다른 유교의 이중성을 잘 알고 있었다. 반면 유비는 도교적인 유연함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한 고조 유방은 유생을 경멸한 점에서 도교주의적인 철학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는 숙손통을 비롯하여 역이기, 육고, 후성 등 많은 유생을 거느렸으나 전쟁 중에는 그들을 중용하지 않았다. 

● 가치에 있어서는 도교가 원리주의다.
● 방법에 있어서는 유교가 원리주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지식계급과 민중의 가치가 충돌하는 예가 심심찮게 관찰되고 있는 사실도 그러하다. 원래 민중은 도교적 성향이고 지식인은 유교적 성향을 보인다. 지식인은 방법에 집착하고 민중은 가치에 집착한다. 

숙손통(叔孫通)은 학문이 뛰어나다 하여 진나라 말기에 2세 황제의 부름을 받고 임금의 대궐에 들어갔다. 그해 진승의 반란이 일어났는데 황제가 30명의 유생들을 소집해 놓고 대책을 물었다. 

유생들이 일제히 답하길 모반이 일어났으니 군대를 일으켜 반란군을 토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숙손통이 황제의 얼굴을 보니 낯빛이 불편해 보였다. 이에 황제의 심기를 알아챈 숙손통이 아첨하여 말했다. 

"지금 천하는 통일되어 한 집안과 같이 되었소. 위로는 훌륭한 군주가 계시고 아래로는 법령이 잘 시행되고 있어 천하가 태평한데 어찌 감히 모반하는 자가 있겠소? 이는 다만 좀도둑의 소란일 뿐이니 입에 담아 논할 일도 못되오. 관리들이 그들을 잡아들여 다스릴 터이니 조금도 걱정할 일이 아니오."

2세 황제는 이 말을 듣고 유생들의 의견을 물어 모반이 일어났다고 말한 자는 모두 처형하고 좀도둑이라고 말한 자는 살려주었다. 숙손통에게는 옷과 비단을 하사하고 박사의 벼슬을 내렸다.

궁에서 나온 후, 다른 유생들이 일제히 숙손통을 비난하여 따져물었다.

"당신은 어찌 그리 아첨을 잘하오?"

숙손통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당신들은 모르겠지만 하마터면 범의 이빨에 물려 죽을 뻔했소."

그는 그날로 변장고 도주하여 초패왕 항우를 섬기다가 유방이 팽성으로 진격해 오자 항복하여 유방을 섬기게 되었다. 그는 유생이지만 그의 비굴한 아첨과 임금을 세 번이나 바꾼 현란한 변신은 오히려 도교사상에 가깝다 할 것이다.  

도교적인 실용주의적 통치술을 구사하던 유방이 초패왕 항우를 꺾고 황제가 되었을 때 고향 패현에서부터 고락을 같이했던 유방의 장군들은 여전히 황제를 친구처럼 대하였다고 한다. 

술에 취하여 궁녀를 희롱하고 궁전에서 칼을 휘둘러 궁궐 기둥에 칼자국을 남기는 등 군신간의 질서가 말이 아니었다. 이때 화려한 궁중의례를 제정하여 황제의 권위를 높인 사람이 숙손통이다. 

이에 유방은 ‘내 오늘에야 비로소 황제가 존귀함을 알겠다’고 말하며 크게 기뻐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며 길은 원래 꾸불꾸불한 것이다’라는 말은 사마천의 사기에서 숙손통을 평가하여 남긴 말이다. 숙손통은 도교의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유가의 방법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사람이라 하겠다. 

오늘날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숙손통을 처세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 안으로는 도교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겉으로는 유가의 방법론을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는 처세의 수단일 뿐 중국인들은 본질에서 도교주의자라 하겠다. 

오늘날 사회주의적 가치와 자본주의적 방법이 서로 경쟁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가치와 방법의 이중성에 따른 이러한 모순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맹아기에는 사회주의로 시작하여 완숙기에는 자본주의로 경쟁하고 노년기에는 다시 사회주의로 완성하는 것이 맞다. 가치는 사회주의로 가되 방법은 자본주의로 가는 것이 맞다. 

가치는 도교주의로 가되 방법은 유가로 훈련하는 것이 맞다."


"자본은 다릅니다.

메커니즘이 달라요.

나무의 잎은 봄에 일제히 피어납니다.

보수가 먼저 기어들어가고 진보가 나중에 태어나는 건데

잎은 일제히 태어납니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사는 이유의 7할은 친구가 사기 때문입니다.

필요없다는 거죠.

마르크스의 필요에 따라 생산한다는건 거짓말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의 90퍼센트는 불필요한 생산입니다.

화로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것은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지

지금 당장 불이 필요한게 아니에요.

불은 담배 필때 필요한 거죠.

담배를 안 피워도 불씨는 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생산은 필요가 아니라 소통의 수평적 밸런스를 위한 것이며

주로 어린이와 노약자 여자 장애인에 기준이 맞춰지므로

그 사회의 최약자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에게 강제로 덮어씌우는 구조입니다.

물론 아프리카 남자는 필요없어 하고 집을 안짓습니다.

여자에게 맡겨놔서 경제가 멸망.

자본주의는 그 사회의 1퍼센트에게 필요한 것을 일반화 하는 것입니다.

제가 강조하는 디자인도 사실은 극소수에게 필요한 겁니다.

우주비행사는 70억을 대표해서 한 명만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주비행사가 불시착할 때를 대비해서 나머지 70억도 우주비행사와 소통되어야 합니다.

즉 자본주의는 단 한명을 위해 70억이 개고생을 하는 평준화 시스템이라는 거에요.

한 명을 서울대 보내기 위해 나머지 급우들이 

그 한명이 공부하는 분위기 만들어준다고 괜히 학교 나오는 겁니다.


- 서울대 진학하는 사람 1명

- 나머지 전교생은 그 한명이 공부하도록 돕기 위해 공부하는 척 해주는 연극을 함.


이게 자본주의입니다.

필연적으로 과잉생산 과잉소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의 종적 밸런스와 경제의 횡적 밸런스는 애초에 다른 것이며 

정치는 나무줄기의 겉과 속이 50 대 50으로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며

경제는 나무잎이 일제히 꽃을 피우고 일제히 잎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둘 다 밸런스를 지향하지만 달아요.

정치는 베틀의 날실이고 경제는 씨실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치 안에도 경제가 있고 경제 안에도 정치가 있으므로 복잡합니다.

그런 구조를 이야기하는 거지요. 


북유럽이 디자인으로 먹는 이유도 나뭇잎경제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평등하기 때문에 디자인이 먹히는 겁니다.

미국이나 한국은 귀족과 상놈이 차별되므로 귀족은 귀족옷입고 상놈은 상놈옷입고

이렇게 별도로 가므로 나무의 줄기처럼 안밖의 밸런스가 맞아서 

디자인이 죽는 거지요.


1을 위한 99가 되어야 

즉 단 한명이 우주비행사라면 

나머지 한국인 5천만명이 그 한명을 위해 우주비행사 옷을 입어야

디자인이 성공합니다. 

귀족과 상놈으로 나누면 이미 멸망.

평등하지 않으면 디자인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옷이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순간 디자인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근데 정치는 신분을 나타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전형적인 공동생산이죠.

옛날에는 그냥 가족들끼리 모여서 농사지어 먹고 살았는데


그때가 살기는 좋았죠.

지금은 현대차다 삼성전자다 십만명씩 모여서 공동생산하고 있으니 죽을맛.


공동경영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경영은 의사결정인데 의사결정은 결국 개인이 하는 건데


공동경영은 내 밥을 남이 먹어준다는 말과 같은 거에요.

누구나 다 자영업을 하고 싶어 하죠.


그래서 치킨집과 커피집만 늘어가는 거고.

그래도 앞으로 정확히 커피집이 지금의 두 배 늘어납니다. 


모든 한국인이 자영업 병에 걸린 이유가 뭐겠어요?

선배니 후배니 하는 나라에서 공동경영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각자 자기경영 하는게 최고죠.

개인생산 개인경영이 맞고 분배는 필요없습니다.


각자 자기몫 챙겨가는 거지 무슨 분배?

분배라는 단어는 윗사람이 챙겨준다는 시혜의 의미가 있으므로 나쁜 겁니다.


그냥 자기몫 가져가는 거죠. 

어떤 팀에서 각자의 몫의 크기는 방해력에 비례합니다.


몫을 못 챙긴 자가 횡령으로 방해할 수 있는 값만큼 챙겨가면 됩니다.

보통 관리직은 방해력이 크므로 더 많이 받는 거죠. 


이건 간단한 물리법칙입니다.

방해력을 키우는 방법은 첫째 교육, 둘째 조직입니다. 


즉 어떤 넘이 남의 사업에 재를 뿌려서 피해를 줄 수 있는 정도를 계산해서

그 값어치만큼 나눠주면 됩니다. 


개인은 교육과 조직을 통해 방해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자기 몫을 늘릴 수 있습니다. 


이때 그 방해에 대해 보험을 통한 방어스킬도 있기 때문에 

방해력의 값은 생각보다 높지 않습니다. 


함부로 방해력을 행사하는 넘은 해결사를 보내 처리하면 되는 거죠.

개인이 얼마나 몫을 챙겨야 하는가는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있고 그 계산은 확률적으로 맞습니다. 

예컨대 어떤 마을에 도로를 하나 만들어서 편익이 100 발생했다면


주민이 그 도로를 막아서 방해할 수 있는 힘이 10일 때

그 편익의 1/10은 아무런 기여도 없는 주민이 챙겨야 한다는 거죠. 


이 개념으로 보면 모든 국민은 일정한 방해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을 하든 안하든 자기몫이 정해져 있습니다. 


개인이 방해력을 행사하지 않고 

시스템의 보존에 협력하는 그 자체로 일정하게 기여하고 있고 


시스템의 장 안에 존재하는 그 자체로 이미 일하고 있다는 거죠.

어쨌든 개인은 방해력을 계속 늘려가야 합니다.


방해력의 총합이 국력입니다. 

미국이 방해력이 크죠. 


남한의 경제성장에 비례하여 북한의 방해력이 커집니다. 

북한도 정당하게 챙겨갈 몫이 있는 거죠.


마찬가지로 북한에 몫을 줄수록 남한경제가 이득을 봅니다.

방해력을 통제하여 흡수하는 이득이 있기 때문입니다. "





[레벨:5]msc

2014.05.15 (14:49:27)

장기적관점으로 진행합니다,,,,,,가치는 사회주의,,,방법은 지본,,,,한반도는 강국들 사이에 끼어서 유교사상으로 강국들 틈에서 요리조리 살아 남을려고 유교처신,,,,,,이게 맞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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