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말들이 많은데 저도 가입한지 몇년 된 회원으로서 눈팅하다가 용기내어 써봅니다. 원래는 용기가 없었는데 게시판이 시끄럽고 몇몇 사람이 말하기 시작하니까 저에게도 몇마디 할 용기가 생겼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단지 축적된 제 견해를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것으로 상호작용에 이바지하려고 하며 저는 이곳에 더 있고 싶으니까 아무쪼록 강퇴는 시키지 마십셔. 말은 해볼 수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 사이트에서 대단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은 단지 말일 뿐이니까. 라며 굽히고 들어갑니다. 다들 제 글 좀 읽어 보시렵니까.
척보니 달빛님은 여러 방면에 정통하고 글에서도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보통내기는 아니신것 같습니다. 이 사이트를 들쑤시고 다녔던 몇몇 사이비들을 제가 기억하는데 평균적으로 3합만에 밑천이 드러나서 떨어져나가곤 했거든요. 대개 신선 흉내를 내거나 아니면 전문용어로 위장을 하거나 두 부류중 하나였습니다. 이 두 부류에는 속하지 않으시네요. 물론 조금 예의가 없으신 것 같긴 한데 강퇴를 여러번 당했다고 하니 독이 오를 만도 하죠. 하지만 감정적 발언이나 비아냥대는 표현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분란을 유발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정말 몇번씩이나 강퇴를 당하셨나요? 이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하지만 솔직히 타고난 자질이나 식견은 동렬님에게 전혀 안 된다는 것도 여기 있는 분 모두 알고 계실겁니다. 달빛님도 대단한 천재인듯 하지만 동렬님은 더 천재라는 간단한 사실입니다. 동렬님의 글을 읽고도 동렬님이 천재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아마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일겁니다. 동렬님은 천재이기 때문에 천재만의 강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을 그냥 직관해버립니다. 물론 글에는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직관을 남한테 친절하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일에는 오히려 둔재입니다. 상호작용과 소통을 중요시 하시지만 아마 제가 이 사이트에서 본 바로는 남과 소통을 한 적이 없습니다.
뭐랄까 어떤 강령이나 법안을 발표하듯이 동렬님이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거기에 주석을 달거나 동조하는 수준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구조론의 창시자가 될 수는 없겠죠. 그렇다면 몇몇 사람은? 그것도 너무 많습니다. 실제로 구조론은 김동렬 선생님 혼자 창안해서 연구하고 독단적으로 발전시킨 김동렬 선생님 혼자만의 이론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진행될 것입니다. 여기 있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거기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 사람만의 착각이고 여태까지 구조론에는 단 한번의 불순물이나 이견이 침입한 적이 없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물론 인간은 혼자서라도 아주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완전히 외로워져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천재가 다 그렇죠. 한글도 세종대왕이 혼자 만든 것이고 상대성이론도 천재 아인슈타인이 혼자서 생각해냈습니다. 사공이 여럿이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말이죠. 물론 그렇게 되면 이 사이트의 구성원들은 단지 구조론의 세를 불리기 위한 체스판 위의 말밖에 안 된다는 슬픈 결론이 나오지만 이쪽이 진실에 가깝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로서는 그것에 불만은 없습니다. 저 역시 여기에서 얻어갈 것을 얻어가면 그걸로 끝입니다.
김동렬님은 구조론은 완벽한 이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1은 2라고 말하는 수학처럼 말입니다. 세부적인 부분에서 발견되는 약간의 오류는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뭔가 다른 의견은 시비와 트집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악취미 정도로 치부하십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달빛님이 그런 짓거리를 하고 있는것 같지는 않습니다. 달빛님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과 공유되지 않는 것을 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분석할 수 있는 명확한 체계가 없는 것을 과연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 마음속에 천사가 산다고 한다면 그 천사가 실제로 있다고 말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운석을 발견했는데 이건 운석이니까 내 말을 믿어라고 할 말이냐는 것입니다. 이건 초등학생도 이해할만큼 쉽지만 아주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점에서 좀 더 명확한 체계를 요구받고 있다고 말하는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자라면 수용해야 합니다. 아니 적극적으로 맞받아쳐야 합니다.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해야할 이유는 없습니다. 운동선수 역시 자신이 왜 달리기를 잘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철학자는? 철학자는 세상의 끝에 선 사람입니다. 철학자가 설명을 포기하면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설명하겠습니까? 정답은 방법이 없다입니다.
그 위대한 칸트도 회의주의 철학자 흄의 영향을 받아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그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아마 칸트를 아는 중학생은 있어도 흄을 아는 중학생은 잘 없을겁니다. 단언컨대 칸트는 흄보다 훨씬 영예로운 이름입니다. 하지만 흄이 없었더라면 그 업적은 전부 불가능했을 겁니다. 흔히 자신과 다른 의견을 포용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물론 이것은 단순한 사기이고 진짜는 자신과 다른의견이 있으면 맞나 틀리나 한번 재보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한테도 동네 바보형한테도 배울 것은 있지 않겠습니까. 달빛님이 너무 깝죽거리는 것 같으면 박살을 내버리면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냥 너강퇴는 조금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구조론의 패배를 인정하는 일입니다. 구조론으로 세상을 이길 수가 없다면 구조론이 패배한 것일까요 세상이 패배한 것일까요. 동렬님은 세상의 패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순히 지금의 성패가 아니라 인류사의 큰 맥락 안에서 구조론의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인류에게 영감을 주었든 예수가 인류에게 사랑을 베풀었든 그건 세상과 이미 무언가를 주고 받았다는 말입니다. 언어로 말입니다. 하지만 세상과의 접점이 없는 이론이라면 혹은 명확한 언어로 파악할 수 없는 이론이라면 그 이론이 어떻게 이론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연구할 수 없는 이론은이론일까요? 이미 제 말 속에 무수한 모순이 생기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구조가 있는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구조는 구조다라고 말씀하신다고 해도 제 머리속에는 구조론의 모형이 전혀 상상 되지 않습니다. 아마 다른사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 사이트에서 구조론을 발톱만큼이라도 이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우연히 동렬님과 결론이 일치한 경우는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렬님과 같은 길을 걸어간 사람은 한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여태까지 이곳에서 이루어진 소통을 수치화한다면 정확히 0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후일을 기약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동렬님의 이론을 귀먹고 눈감은 사람들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가 식견이 없어 칼럼에서 읽은 내용을 계속 주워오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구조론으로 구조론을 치는 것이 되겠네요. 화학은 분자에 관한 학문이고 물리는 운동에 관한 학문인데 철학은 직접적인 대상이 없습니다. 즉 철학은 관계성이자 문제설정이자 역으로 이 세계를 규정하기도 하는 형식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어떤 언어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혹은 문학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서 언어를 자의적으로 쓰기 시작하다면 그것은 철학이 아닙니다. 세상과 공유하는 지점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손잡이가 없는 맷돌이라서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해독이 아주 어려운 암호라면 희소성이 있지만 누구도 해석할 수 없는 암호라면 누구에게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고받아야 합니다. 무슨 강신주처럼 대중과 영합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과 결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자이너의 상상만으로는 디자인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렇게나 멋있게 그려놓고 자신이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한다면 그건 오만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뭘 모르는 것입니다.
애써 만든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무시해 버려도 좋을 작은 결함일까요? 아닙니다. 실제로 작동하지 않으면 그 설계도는 폐기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디자인과 설계는 개발과정에서 무조건적으로 바뀌게 되어있습니다. 인간의 한계입니다. 세상은 생각대로 흘러가주지 않습니다. 우주의 크기마저 시시각각 변합니다. 그 뛰어난 아인슈타인도 말년에는 주류 과학계와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고집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된 판단을 하고 인간이라면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가진 모형을 역시 똑똑한 다른 사람의 것과 계속 비교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진정한 자연의 모형인지 말입니다. 그 경우 대개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지만 어떤 경우는 허점을 찾아내기도 하고 극소수의 경우에는 그것이 드라마틱한 선회를 이루며 새로운 발견을 일구어내기도 합니다. 완전한 이론은 없습니다. 완전한 언어가 없기 떄문입니다. 완전한 이론은 망상입니다. 김동렬 선생님은 이 부분을 인정하시고 포용할 것은 포용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구조론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다독을 하지 않았더라면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동서고금의 무수한 위인들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동렬님의 이론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혼자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같이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자의적으로 맘에 드는 단어를 골라쓰면 안됩니다. 공유하는 토대가 없이 동렬님 한 사람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자의적으로 골라쓴다는 것이 지금 구조론의 가장 큰 문제인듯 싶습니다. 언어의 사용법이 공유되지 않는 다면? 맞습니다. 그것은 론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훗날 천년이 지나 정말 구조론을 완전히 이해할만한 천재가 구조론 책을 발견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는 구조론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게 될 공산이 큽니다. 왜냐하면 그는 동렬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두번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철학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자에게는 자신의 생애 안에서 완결성을 가지고 자신의 철학을 매듭 지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실마리를 남겨놓지 않은 이론은 이론이 아니라 영감의 덩어리 혹은의지의 집합체일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나 하는 것입니다. 옆집에 사는 어떤어떤 아저씨는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고 말할 때의 그 철학 말입니다. 철학자의 철학은 조금 달라야 합니다. 동렬님이 말씀하셨다시피 그것은 확장성을 가진 모형이어야 합니다. 손잡이가 없는 맷돌은 돌릴 수가 없습니다. 재기 넘치는 글을 쓰는 것을 넘어서 새 시대를 여는 이론을 만들고 싶다면 아직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엄청 까는 글이 되어버려 두렵지만 제가 어떤 말을 하든간에 이 사이트의 상호작용 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올립니다. 편한 밤 되세요.
구조론을 이해한 사람도 많고 지금 써먹고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분들이 제게 감사를 표하기 때문에 제가 만족하고 제가 만족하니까 저는 오만한거죠.
구조론을 바둑으로 치면 물론 제가 이기죠.
저한테 바둑을 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바둑을 이해 못한 걸까요?
구조론은 간단히 세상은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이해못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이런 생각은 저 혼자만의 생각입니까?
이전에도 세상을 구조로 보려고 시도한 사람은 많습니다.
제가 그 완성도를 좀 올려놓은 것이고
구조로 보자는 구조주의 철학의 제안을 넘어
구조로 보면 이렇게 보인다고 한 걸음 더 진도를 나간 겁니다.
다윈의 진화론도 아직 입증이 안 된 겁니다.
화석증거는 직접증거가 아니에요.
창조론자는 화석도 창조되었다고 우길테니까.
그렇지만 맥락이 있기 때문에 다 진화론을 인정하는 겁니다.
구조론을 시비하는 것은 진화론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말과 같은 겁니다.
구조론을 적용하여 성과가 나오고 있으면 시스템은 작동을 시작한 것이며
제가 구조론을 무진장 어렵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어렵게 보이는 것이며
핵심인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전개는 매우 쉬운 겁니다.
이건 단순히 인과율을 확대시켜놓은 겁니다.
원인 결과 둘이면 단촐해서 너무 섭섭하잖아요.
제가 구조론을 어렵게 만들어놓고
쉽게 알아듣게 설명하지 못했다면 그건 제 연구욕심입니다.
그건 남들이 다 알아듣게 설명하려고 쓴 것이 아니고 제가 만족할때까지 쓰는 겁니다.
바둑 초단이 9단의 뜻을 모르겠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초단만 되어도 대단한 겁니다.
구조론은 직관력을 길러줍니다.
그냥 감으로 직관하는 것과 훈련하여 그 직관력을 키우는건 다른 겁니다.
직관력은 누구나 있지만 훈련하지 않으면 자기 직관에 확신할 수 없죠.
그래서 주식투자를 하는데 직관적으로 알았다 해도 투자하지 않습니다.
주가가 오르고 난 뒤에 '나 그럴줄 알았다니깐' 하며 뒷북치죠.
훈련된 사람은 직관을 행동에 옮기고 이득을 보며 제게 감사표시를 하는 거죠.
그렇게 현장에서 실익이 있기 때문에 남들이 뭐라하든 저는 의연한 거구요.
구조론을 배우면 쉽게 직관하고 자기 직관에 확신을 가집니다.
모든 사람이 저와 같은 수준으로 구조론의 대가는 될 수 없고
일반인은 훈련하여 직관력을 기르는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괜히 구조론을 다 떼겠다고 과욕을 부리다가 낙담했다가 하는건 이상한 거죠.
그냥 직관하는 것과 구조론적인 패턴분석으로 대응하는 것은 다르죠.
증권가 애널리스트 중에는 특별히 잘 맞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직관이 좋네, 촉이 좋네, 다들 이렇게 말하지요.
근데 그 맞히는 비법을 누가 공개한다면?
근데 비법이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 비법을 자기도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거.
예컨대 경제성장예측.. 한전에 전화해 보면 됩니다. 전기 많이 썼다면 경기가 좋아진거.
세계경기?.. 구리값 보면 됩니다. 구리값 오르면 세계경기가 호황인거.
직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간단한 테크닉입니다.
다 비법이 있는 거에요.
구조론이 항상 강조하는 소실점, 구조론의 일의성을 기억하는 사람은
항상 돌아가는 판 전체를 꿰는 하나가 어디에 있다고 확신하고 기어코 그 하나를 찾아내고
예측의 적중률을 남보다 올려서 주식으로 돈을 벌며
돈을 벌지 못한 사람은 시기하여 직관이네 촉이 좋네 이러죠.
어떤 천재 수학자가 있었는데
투자회사에서 거의 조단위 달하는 거액으로 스카웃 했다고 합니다.
그 수학천재는 실제로 회사에 거액을 벌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특별히 수학적인 투자 알고리듬을 만들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근데 이 양반이 은퇴하면서 자기 비법을 폭로했어요.
알고보니 이 양반은 단순히 통신사 망을 어떻게 조직해서 남들보다
몇 초 빠르게 정보를 입수한 겁니다.
구조론에서 강조하는 시간공격을 한 거죠.
특별한 수학적인 투자 알고리듬?
그런거 없어요. 그냥 정보를 남들보다 0.1초 빨리 입수한거.
이 분도 구조론적인 방법을 쓴 겁니다.
고수들은 다들 남들 모르게 구조론을 쓰고 있습니다.
이걸 그냥 직관이라고 하면 곤란하고 패턴분석을 해서
고수들의 공통점을 알아내고 구조론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도 들은 것인데
그 분야에서는 유명한 사람일테니 아마 검색하면 나올 겁니다.
구조론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은 대개
구조론을 당장 써먹을 자기 분야가 불확실한 사람입니다.
지금 저의 계획은 구조론을 철학화 해서 (가제, 완전성의 철학)
구조론적으로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을 널리 퍼뜨리고
구조론의 쉬운 부분을 실생활에 쉽게 적용해서 구조론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을 많이 만들고
현장에서 돈이 되면 결국 주자처럼 끝까지 연구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공자 말씀도 처음에는 다들 벙쪘지만
칼싸움으로 패권을 겨루는 살벌한 시대에 왠 공자말씀? 돌았나? 이런 분위기.
그러나 임금들이 다투어 황금을 바치니
결국 맹자는 거액을 벌어 큰 부자가 되었고
이게 돈 된다는게 알려지자 나중에는 개나 소나 다 유교가 되었지요.
500년 걸렸습니다. 참고로 묵가도 좋은 사상인데 단 하나 돈이 안 되어서 깨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