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매체에 쓰려고 초를 잡아본 글의 도입부입니다. ### 필자가 강신주에게 특별히 유감이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강신주가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강신주도 열심히 제 앞가림 하고 사는 사람일 터이다. 한 번은 대화 중에 강신주가 언급되길래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고 말해주었다. 놀아나는 꼴이 같잖아서 한 마디 한 거였다. 며칠 후 갑자기 뉴스에 강신주 이름이 뜨더라. 노숙자가 어떻고 하며 한 마디 했다는 거다. 노숙이라고? 다른건 몰라도 노숙에 대해서라면 내게 물어봐야 한다. 필자는 철학적인 번민에 빠져 산천을 주유하며 반 노숙을 10년 가까이 했던 사람이다.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에서의 편력시절’을 떠올려도 좋다. 며칠 후 강신주가 TV에까지 진출하며 또다시 이슈가 되길래 말 나온 김에 몇 마디 더 보태게 되었다. 일이 커져서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책을 한 권 써볼까 하고 마음먹을 판이다. 여러 건이 겹쳤는데 우연 치고는 신기한 일이다. 강신주가 나의 관심은 아니다. 철학이 나의 관심이다. 무엇이 나를 10년의 방랑생활로 이끌었는가다. 밥먹기를 포기하고, 잠자기를 포기하고, 사회생활을 포기하고, 인생을 통째로 걸고 사색에 몰두하게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나다. 애송이 고등학생으로 하여금 새벽 1시에 뜨거워진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여 경주남산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돌고 오게 한 그것은 무엇이었나이다. 귀신이 나올 법한 숲 속의 옛 왕릉에서 몇 시간째 꼼짝않고 앉아있게 한 그것은 무엇이었나이다. 동쪽에서 서쪽까지 태백산맥 넘어 동해에서 서해까지 일직선으로 똑바로 걷게 한 것은 무엇이었나이다. 그것은 에너지다. 그것은 자던 사람을 벌떡 일어나게 한다. 그것은 굽은 것을 곧게 펴게 한다. 그것은 도공으로 하여금 멀쩡한 도자기를 트집잡아 깨뜨리게 한다. 그것은 모든 가라앉은 것을 일으켜 세운다. 그것은 모든 멈춘 것을 달리게 하고, 모든 죽은 것에 피를 돌게 한다. 그것은 세상 모두를 시시하게 만든다. 그것은 부자를 얕잡아보게 만들고, 미인을 우습게 보게 만들고, 보석을 돌같이 여기게 만들고, 제왕을 똥바가지로 알게 만들고, 건희와 몽구를 코찔찔이 꼬맹이로 만든다. 그것은 철학의 힘이다. 철학은 철학아닌 것을 비웃게 한다. 이를테면 강신주 같은 것 말이다. 성철이 코웃음치며 산에서 내려오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큰 소통을 이루었듯이, 부지런히 소통장사에 나서지만 실제로는 전혀 소통하지 못하는 가짜를 조롱하게 만든다. 그래서 철학은 힘이 세다. 사람들은 세상에 다양한 철학이 있다고 여긴다. 틀렸다. 실은 하나의 철학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있다. 하나의 철학이 다양하게 변주된다. 산의 정상은 하나 뿐이다. 철학은 학문의 정상이다. 그러므로 철학은 하나 뿐이다. (하략) 필자가 강신주를 비웃게 된 것은 철학자라면 하루에 기본 10시간은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생각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똥쌀시간이 아까워서 똥참다가 치질에 걸려야 한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야 한다. 바보가 아닐진대 좋은 것을 남 주지 않는다. 생각이라는 좋은 것을 왜 남주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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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지 않으면 철학이 아니라는 말이죠.
보장은 보험사에 알아봐야 하는 거죠.
철학은 힘이 세다고 하는데
곧 짓밟는다니 죽인다니 이런 말이 나오는게 신기합니다.
자동차가 힘이 세다고 하는데
바로 짓밟는다니 죽인다니 이런 말 나오던 시절이 있었죠.
조선에 전철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꼬마 하나가 치어 죽었는데 군중들이 전철을 뒤집어 엎었고
전철회사 사장은 외국으로 도망쳐서 6개월간 운행중단.
그건 운전과 교통체계의 문제이지 자동차의 문제가 아닙니다.
철학이 힘이 센 건 사실이며 그 힘을 제대로 쓰는가는
그 문명의 수준이 결정할 문제인 거죠.
여기서는 세지 않으면 철학이 아니다에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제가 가장 궁금한 것이 바로 그 지점입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자연의 완전성을 체험합니다.
하지만 백이면 백명이 다 포기합니다. 금덩이를 돌멩이 취급하지요.
저또한 마찬가지구요.
어린 소년이 평생을 걸 에너지를 얻게된 바로 그 순간의 완전성.
그를 철학이라 부르시는군요.
다음 예정인 책을 빨리 만나보고 싶습니다.
철학은 힘인가여,,,,?행동인가여,,,,?어지러워,,,,,
친구입니다.
친구는 힘이기도 하고 웬수이기도 하죠.
여기서 오가는 뭔가가 쎄긴쎄더이다.
크리슈나무르티,포이에르바하, 까뮈, 예수, 김일성, 정주영, 채 게바라.
평소 친하게 지내던 수수께끼 같은 사람들 이었는데 이곳 주변을 얼쩡거린지 5년만에
몇일전 이들이 내게 무슨말을 하는지 알수 있게하더군요. 한큐에...
시간과 공간의 좌표를 알게되니 모든게 분명해 지더군요.
좋은 말씀을 들으셨군요.
뭐든지 단칼에 베고,
한 큐에 꿰고,
쿵하는 울림이 있고,
통하면 되는 거라 봅니다.
본질은 하나이고,
진리는 하나이고,
궁극은 하나인데,
관점이 다른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본질이 다르다,
진리가 다르다 말하는 거.
구조론에 대한 깨달음은 이미 산천을 주유하며,
새벽 잠을 깨우며 거리를 거닐때부터 시작되었겠지요.
깨달음은 죽을 때까지 중단없이 얻어야 하는 거라 봅니다.
이만큼 깨달았는데, 다 깨달았다.... 그것도 말은 안된다고 봅니다.
정말로 다 깨달은 사람은 아마 이 세상 소풍 끝나고 다른 소풍 장소에 가있을 겁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정도의 깨달음을 갖는다면, 세상이 아름다워지겠지요.
하루 기본 10시간을 앉아 있든지,
아니면 기본 10시간을 걸어다니든지........
이거나 저거나 어느 편을 선택하더라도 오지게 해야한다는 말은 공감이 됩니다.
정상에서의 시각을 가지면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시라고 우기는 것들이 우스워집니다.
먼길가는데 비바람 좀 분다고 대수가 아닌 것처럼.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들의 시선이 정확히 내려다 보이더군요.
거대한 진리 앞에서는 자는 시간도 아까울 따름입니다. 잡스가 말년에 소화시키는 에너지가 아까워 채식만 했다는데 이해가 됩니다. 물론 채식만 하는 것이 영양상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노숙은 스스로 온전히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 주는데서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에서 벗어나 사회를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죠.
온전한 생각자체의 발달(진화, 자람) 저하가 대개 사회의 압박에 의해 발생하는데 이걸 풀어주더군요.
21세기에 생각 좀 해봤다고 말하려면 노숙은 기본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