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주머니를 교체하자 식구가 늘면 새 집을 지어야 한다. 새로운 사유가 등장하면 새로운 사유의 주머니로 교체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입자로 이해하지만 양자가 새로 등장해서 곤란해졌다. 이제 사유의 집을 리모델링 해야한다. 입자의 세계관을 버리고 완전성의 세계관으로 갈아타야 한다. 입자는 공간에서 형태를 조직하고, 파동은 시간에서 에너지를 운용한다. 세상은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니다. 물질이 공간에서 형태를 갖추기 전에 이미 중요한 의사결정은 일어난다. 실제로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시간의 지점을 보아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시간의 지점에 대응해야 한다. 존재가 형태를 갖추기 전에 무엇이 있었나? 커다란 에너지의 요동이 있었다. 일은 거기서 터졌다. 인간의 지知는 바로 그 지점에 대응해야 한다. 입자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전에 개입하여 거기서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한다. 운명은 시합 중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팀을 편성하는 중에 결정된다. 결혼 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연애하는 중에 결정된다. 먹는 중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요리 중에 결정된다. 입자는 편성된 팀이고, 맺어진 부부이고, 요리된 음식이다. 이미 늦었다. 입자가 형태를 갖추기 전에 선제대응해야 한다. 우리는 입자를 기본으로 놓고, 그 입자 내부의 고유한 속성에서 답을 구하려 들지만, 중요한 결정은 그 시점에 이미 끝나 있으므로, 바른 해답에 이르지 못한다. 이에 사유의 주머니를 새것으로 교체할 수요가 생겨났다. 반복되는 일상에서는 입자의 세계관으로도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이미 결혼한지 10년이 지났다면 별 수 없다. 이미 팀을 옮겨 버렸다면 박지성도 별 수 없다. 식은 김밥을 먹게 되었다면 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환경을 맞닥들였을 때, 도와줄 선배도 없고, 정해진 매뉴얼도 없을 때, 예술가의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때, 지도자의 리더십이 요구될 때, 팀플레이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를 타개해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런 때는 공간의 입자적 상황이 아니라 시공간의 양자적 상황이다. 사건은 시간에서 일어난다. 답은 공간을 조직하는데 있는게 아니라 시간을 운용하는데 있다.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은 시간순서가 바뀌어 있다. 펄프픽션의 시간순서를 바로잡으면 재미가 없다. 세상을 공간으로 보는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세상을 시간으로 보는 방법은 아는 사람이 없다. 남이 모르는 것을 해야 한다. 창의성은 양자적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딜레마를 타개하는 것이며, 딜레마는 오직 시간의 운용에 의해 타개된다. 길을 가다가 스치듯 미인을 만났다. 맡은 업무를 포기하고서라도 미인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무엇이 다른가? 양자적 상황에는 시간제한이 걸려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미인은 떠난다. 어쩔 것인가? 그런 때 입자의 세계관은 답을 주지 못한다. 매뉴얼에 없다. 완전성의 세계관으로 사유의 주머니를 확장시켜야 한다. 입자의 세계관은 금과 은 중에서 금을 고르는 문제이다. 당신은 비교하여 금을 고를 수 있다. 쉽게 성공할 수 있다. 완전성의 세계관은 팀플레이를 통해 호흡을 맞추는 문제다. 금을 고르는 당신의 능력은 소용이 없다. 타이밍을 못 맞추기 때문이다. 어디에 무엇이 있다고 하면, 우리는 그것이 공간의 어느 지점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늘 찬스를 놓치더라도 내일 다시 오면 된다. 진정한 세계는 다르다. 그것은 시공간의 지점에 놓여있다. 기회는 두 번 오지 않는다. 그것이 완전성의 세계다. 이 세계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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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거래의 대가는 좋은주식을 찾지 않는다.
그는 타이밍을 거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