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대안은 준비되어 있는가?
-인터넷시대에 진보주의 지식인 층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대안매체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자보, 오마이뉴스, 딴지일보, 우리모두, 인물과사상 등을 검토해보기로 하면-
몇몇 인터넷 사이트들은 확실히 성공하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가능성이 증명되었다. 성공한 사이트들의 장점을 한곳에 모아보므로서 대안매체의 가능성이 윤곽을 드러낼 수 있다.
검토되어야 할 점은 세가지다. 첫째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수익구조를 달성할 수 있는가? 둘째는 진보주의 지식인 층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가? 세째는 인터넷의 쌍방향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가이다.
오마이뉴스는 수익모델에 있어 일부 의구심을 보이고 있지만 온라인신문으로 확실히 성공하는 모델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건 되는 컨셉이다.
현재 확실한 수익구조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경영능력의 문제로서 운영진이 각성해야 할 부분이다. 약간 발상을 전환한다면 현재 확보하고 있는 기반 위에서 쉽게 흑자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익을 내기 위하여 무리하다가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도 운영진은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성공은 단지 뉴스사이트로서의 성공일 뿐이다. '진보주의 지식인 층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잘못된 점을 굳이 지적하자면 오마이뉴스는 기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쓰는 사람은 그냥 익명의 네티즌일 뿐이다. 오마이뉴스의 철학과 이념에 동조할 필요도 없고, 오마이뉴스가 자체적으로 기자들을 교양할 수단이나 방법도 없고 이념과 철학을 네티즌들에게 주문할 방법도 없다.
이 점에서 오마이뉴스측의 인터넷마인드 부족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는 딴지일보의 사례에서 원용할 수 있다. 딴지일보는 철저하게 기자를 보호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쪽의 이념과 철학을 강제하는 측면이 있다.
물론 딴지일보도 무수한 단점이 있다. 중요한 점은 왜 딴지일보가 그러한 체제로 컨셉을 잡았는가이다. 이는 김어준씨의 인터넷경험에서 얻어진 노하우다. 김어준씨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알고있는 사람이다. 기자를 철저하게 보호하지 않으면 퀄리티있는 기사를 얻을 수 없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필연적으로 시장바닥에서 웅숭거리는 형태가 될 수 밖에 없다. 정보의 홍수다. 당연히 정보의 품질이 떨어진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이 정보의 품질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은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인 것이다. 이 점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딴지일보는 세상에 딴지를 걸 수 있지만 독자는 딴지일보에 딴지를 걸 수 없는 구조여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매체의 주인은 독자가 아니라 기자다. 딴지일보가 '총수'라는 권위주의적인 이름을 쓰는 것은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딴지일보는 독자의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말한다. 그 결과로 나타난 단점도 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매체가 기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매체로서의 존립이유가 없다는 점을 많은 인터넷사이트들이 간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난도질을 당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색깔이 없는, 쓰나마나한 기사를 쓸 수 밖에 없다. 논쟁적인 기사, 색깔있는 기사를 오마이뉴스에서 쓰기는 힘들다.
논쟁적인 기사라면 어차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인터넷에서는 찬성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목청을 높이는 구조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핵심적인 부분은 독자에게 찬성되어야 하는 부분은 정보이고, 반대되고 있는 부분은 그 글을 쓴 사람이라는 점이다. 즉 기자는 정보를 전달하자는 입장인데 독자는 그 전달된 정보보다는 그 기사를 쓴 사람과의 커뮤니티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정보전달의 개념과 커뮤니티의 개념은 확실히 구분되어야 한다. 이 둘이 섞여서 뒤죽박죽이 되는 것이 인터넷의 단점이다. 커뮤니티기능을 어느정도 차단할 때 오히려 정보가 잘 전달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예컨데 영화 '오아시스'에서 잘 발견되는 99의 장점과, 잘 발견되지 않는 1의 단점이 공존하고 있다면 기자는 잘 발견되지 않는 1의 단점을 거론할 수 밖에 없다.
이때 독자는 왜 99의 장점은 보지 않느냐고 형평성을 거론하게 된다. 이건 넌센스다. 이 상황에서 독자는 정보전달의 관점보다는 커뮤니티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99의 장점과 1의 단점에 대한 형평성은 논외로 되어야 한다. 그러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기사의 1차적인 본질은 정보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기능은 2차적이다. 둘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이 커뮤니티기능을 우선으로 하므로서, 정보를 전달한다는 본질을 묻어버리게 된다. 기자는 독자들의 반응을 의식하여 논쟁적이지 않은 기사를 쓰게 된다. 당연히 정보의 품질이 떨어진다.
기자가 기사를 써서 얻는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크다면 기사를 쓸 이유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매체는 기자를 보호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여야 한다. 이 점을 간과해서 안된다.
조선일보의 성장비결이 무엇이겠는가? 조선일보는 독자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기사를 쓴다. 그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관점에서 운영주체가 기자나 칼럼진을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는 완전히 자유여야 한다.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면 좋은 기사는 나올 수 없다. 독자의 눈치도 보지 말아야 한다. 정론을 펼친다는 부담도 벗어던져야 한다.
기자는 오로지 정보를 전달한다는 사명에 투철하여야 한다. 전체를 조망하고 형평성있는 기사를 쓰려해서 안된다. 99의 장점이 돋보인다 해도 숨겨진 1의 옥의 티를 기필코 찾아내고야 만다는 정신이어야 한다.
기사가 잘못되었다면 그 잘못에 대한 대응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기자가 독자의 눈치를 보고, 편집진의 눈치를 보고 스스로 사전검열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오마이뉴스나 딴지일보와 달리 대자보나 우리모두 등은 비상업적 사이트는 수익의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수익의 부담에서 자유로운 만큼 더 퀄리트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질이 저하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한 질의 저하가 수익 그 자체의 문제 보다는 기자를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쪽의 이념과 철학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에도 주의해야 한다.
인물과사상은 오프라인 잡지이지만 인터넷의 가능성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참고대상이 된다. 인물과사상은 어떤 면에서 이념과 철학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물과사상의 이념은 강조되지 않는다. 조선일보 반대 등의 전술과 구호에 의존하므로서 스스로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진보주의 지식인 층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인물과사상의 실패는 현 정권과의 관계를 의식한 때문일 수 있다. 강준만 개인의 위상 때문이기도 하다. 인물과 사상이 분명한 철학과 이념을 내세울수록 강준만 개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얻어놓은 영향력에 안주하려 든다면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진보진영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요정도만 한다'는 겸손한 자세를 떨쳐버려야 한다.
대중은 지식인에 의해 계몽되는 것을 싫어한다. 계몽하지 않겠다고 한걸음 물러서서는 희망이 없다. 당연히 계몽하고 나서야 한다. 대중의 무지는 깨우쳐져야 한다. 목청높여 대중의 잘못을 꾸짖을 수 있어야 한다.
안티조선 '우리모두' 역시 다중을 포용한다는 차원에서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라는 이념적 퇴행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는 보수우파까지 포용한다는 전술적인 판단 때문이다. 스스로 한계를 긋는다는 면에서 좋지 않다.
우리모두는 사이트의 컨셉에 있어서도 커뮤니티기능이 강조되는 비상업적 사이트의 한계 때문에 한걸음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정보전달이 1차적이고 커뮤니티기능은 2차적이다. 2차적이어야 할 커뮤니티기능이 우선되므로서 정보전달에 실패한다.
정보전달에 실패하므로서 커뮤니티 또한 약화된다. 이는 악순환이다. 정보의 생산과 전달기능이 1차적이어야 한다. 기자 역할을 하는 논객을 양성하고 보호하는 점에 주력하여야 한다.
사이트 운영주체의 철학과 이념 및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점에 철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테면 정당의 대변인 역할이 있어야 한다.
이제부터 토론을 해서 한번 결론을 내보자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운영주체의 정리된 입장을 논평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발표되어야 한다. 결론은 운영진이 약하다는 것이다. 비상업 사이트의 한계이다.
정리하면 인터넷사이트는 정보의 전달과 커뮤니티의 2가지 기능 중에서 커뮤니티의 기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점에 의존하는 것이 실패하는 원인이다.
절대적으로 정보가 중요하다. 정보가 있는 곳에 독자가 오고, 독자가 오고나서야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중요한건 고급정보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이다. 정보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1차 생산자인 기자나 논객을 보호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또한 운영주체의 철학과 이념이 분명해야 한다. 모든 의견에는 반대의견이 있다. 반대의견은 묵살되거나 사전에 걸러지거나 다른 방법으로 피드백이 되어야 한다.
사람을 살게하는 것이 밥이라면 사이트를 살게하는 것은 정보다. 밥을 먹고 난 다음 운동을 하는 것이다. 정보의 획득과 공유가 우선이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다원주의다. 다른 의견이 다양하게 공존되어야 한다. 의견이 다르면 타협하거나 절출하려 해서 안된다. 타협과 절충은 결국 획일화로 가기 마련이다.
인터넷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을 절충하고 타협하여 비빔밥을 만들려는 특성이 있다. 최악이다. 의견이 다르면 의견이 다름을 확인하고 거기서 대화를 끊어야 한다. 분리한 채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인터넷시대에 진보주의 지식인 층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대안매체로서의 성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자보, 오마이뉴스, 딴지일보, 우리모두, 인물과사상 등을 검토해보기로 하면-
몇몇 인터넷 사이트들은 확실히 성공하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가능성이 증명되었다. 성공한 사이트들의 장점을 한곳에 모아보므로서 대안매체의 가능성이 윤곽을 드러낼 수 있다.
검토되어야 할 점은 세가지다. 첫째는 상업적인 측면에서 수익구조를 달성할 수 있는가? 둘째는 진보주의 지식인 층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가? 세째는 인터넷의 쌍방향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가이다.
오마이뉴스는 수익모델에 있어 일부 의구심을 보이고 있지만 온라인신문으로 확실히 성공하는 모델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건 되는 컨셉이다.
현재 확실한 수익구조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경영능력의 문제로서 운영진이 각성해야 할 부분이다. 약간 발상을 전환한다면 현재 확보하고 있는 기반 위에서 쉽게 흑자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익을 내기 위하여 무리하다가 신뢰를 잃을 위험이 있으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도 운영진은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마이뉴스의 성공은 단지 뉴스사이트로서의 성공일 뿐이다. '진보주의 지식인 층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잘못된 점을 굳이 지적하자면 오마이뉴스는 기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에서 기사를 쓰는 사람은 그냥 익명의 네티즌일 뿐이다. 오마이뉴스의 철학과 이념에 동조할 필요도 없고, 오마이뉴스가 자체적으로 기자들을 교양할 수단이나 방법도 없고 이념과 철학을 네티즌들에게 주문할 방법도 없다.
이 점에서 오마이뉴스측의 인터넷마인드 부족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는 딴지일보의 사례에서 원용할 수 있다. 딴지일보는 철저하게 기자를 보호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이쪽의 이념과 철학을 강제하는 측면이 있다.
물론 딴지일보도 무수한 단점이 있다. 중요한 점은 왜 딴지일보가 그러한 체제로 컨셉을 잡았는가이다. 이는 김어준씨의 인터넷경험에서 얻어진 노하우다. 김어준씨는 인터넷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잘 알고있는 사람이다. 기자를 철저하게 보호하지 않으면 퀄리티있는 기사를 얻을 수 없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는 필연적으로 시장바닥에서 웅숭거리는 형태가 될 수 밖에 없다. 정보의 홍수다. 당연히 정보의 품질이 떨어진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이 정보의 품질을 떨어뜨리는데 일조하고 있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은 장점이자 동시에 단점인 것이다. 이 점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말하자면 딴지일보는 세상에 딴지를 걸 수 있지만 독자는 딴지일보에 딴지를 걸 수 없는 구조여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매체의 주인은 독자가 아니라 기자다. 딴지일보가 '총수'라는 권위주의적인 이름을 쓰는 것은 이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함이다.
딴지일보는 독자의 다양한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말한다. 그 결과로 나타난 단점도 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매체가 기자를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매체로서의 존립이유가 없다는 점을 많은 인터넷사이트들이 간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자는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난도질을 당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색깔이 없는, 쓰나마나한 기사를 쓸 수 밖에 없다. 논쟁적인 기사, 색깔있는 기사를 오마이뉴스에서 쓰기는 힘들다.
논쟁적인 기사라면 어차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인터넷에서는 찬성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목청을 높이는 구조일 수 밖에 없다.
여기서 핵심적인 부분은 독자에게 찬성되어야 하는 부분은 정보이고, 반대되고 있는 부분은 그 글을 쓴 사람이라는 점이다. 즉 기자는 정보를 전달하자는 입장인데 독자는 그 전달된 정보보다는 그 기사를 쓴 사람과의 커뮤니티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정보전달의 개념과 커뮤니티의 개념은 확실히 구분되어야 한다. 이 둘이 섞여서 뒤죽박죽이 되는 것이 인터넷의 단점이다. 커뮤니티기능을 어느정도 차단할 때 오히려 정보가 잘 전달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예컨데 영화 '오아시스'에서 잘 발견되는 99의 장점과, 잘 발견되지 않는 1의 단점이 공존하고 있다면 기자는 잘 발견되지 않는 1의 단점을 거론할 수 밖에 없다.
이때 독자는 왜 99의 장점은 보지 않느냐고 형평성을 거론하게 된다. 이건 넌센스다. 이 상황에서 독자는 정보전달의 관점보다는 커뮤니티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99의 장점과 1의 단점에 대한 형평성은 논외로 되어야 한다. 그러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기사의 1차적인 본질은 정보이기 때문이다. 커뮤니티기능은 2차적이다. 둘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인터넷의 쌍방향성이 커뮤니티기능을 우선으로 하므로서, 정보를 전달한다는 본질을 묻어버리게 된다. 기자는 독자들의 반응을 의식하여 논쟁적이지 않은 기사를 쓰게 된다. 당연히 정보의 품질이 떨어진다.
기자가 기사를 써서 얻는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크다면 기사를 쓸 이유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매체는 기자를 보호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여야 한다. 이 점을 간과해서 안된다.
조선일보의 성장비결이 무엇이겠는가? 조선일보는 독자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기사를 쓴다. 그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관점에서 운영주체가 기자나 칼럼진을 보호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는 완전히 자유여야 한다. 누군가의 눈치를 본다면 좋은 기사는 나올 수 없다. 독자의 눈치도 보지 말아야 한다. 정론을 펼친다는 부담도 벗어던져야 한다.
기자는 오로지 정보를 전달한다는 사명에 투철하여야 한다. 전체를 조망하고 형평성있는 기사를 쓰려해서 안된다. 99의 장점이 돋보인다 해도 숨겨진 1의 옥의 티를 기필코 찾아내고야 만다는 정신이어야 한다.
기사가 잘못되었다면 그 잘못에 대한 대응은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 기자가 독자의 눈치를 보고, 편집진의 눈치를 보고 스스로 사전검열을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오마이뉴스나 딴지일보와 달리 대자보나 우리모두 등은 비상업적 사이트는 수익의 부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그러나 수익의 부담에서 자유로운 만큼 더 퀄리트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질이 저하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러한 질의 저하가 수익 그 자체의 문제 보다는 기자를 보호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쪽의 이념과 철학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에도 주의해야 한다.
인물과사상은 오프라인 잡지이지만 인터넷의 가능성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참고대상이 된다. 인물과사상은 어떤 면에서 이념과 철학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물과사상의 이념은 강조되지 않는다. 조선일보 반대 등의 전술과 구호에 의존하므로서 스스로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진보주의 지식인 층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
인물과사상의 실패는 현 정권과의 관계를 의식한 때문일 수 있다. 강준만 개인의 위상 때문이기도 하다. 인물과 사상이 분명한 철학과 이념을 내세울수록 강준만 개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얻어놓은 영향력에 안주하려 든다면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진보진영의 구심점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요정도만 한다'는 겸손한 자세를 떨쳐버려야 한다.
대중은 지식인에 의해 계몽되는 것을 싫어한다. 계몽하지 않겠다고 한걸음 물러서서는 희망이 없다. 당연히 계몽하고 나서야 한다. 대중의 무지는 깨우쳐져야 한다. 목청높여 대중의 잘못을 꾸짖을 수 있어야 한다.
안티조선 '우리모두' 역시 다중을 포용한다는 차원에서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이라는 이념적 퇴행으로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는 보수우파까지 포용한다는 전술적인 판단 때문이다. 스스로 한계를 긋는다는 면에서 좋지 않다.
우리모두는 사이트의 컨셉에 있어서도 커뮤니티기능이 강조되는 비상업적 사이트의 한계 때문에 한걸음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정보전달이 1차적이고 커뮤니티기능은 2차적이다. 2차적이어야 할 커뮤니티기능이 우선되므로서 정보전달에 실패한다.
정보전달에 실패하므로서 커뮤니티 또한 약화된다. 이는 악순환이다. 정보의 생산과 전달기능이 1차적이어야 한다. 기자 역할을 하는 논객을 양성하고 보호하는 점에 주력하여야 한다.
사이트 운영주체의 철학과 이념 및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점에 철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테면 정당의 대변인 역할이 있어야 한다.
이제부터 토론을 해서 한번 결론을 내보자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 운영주체의 정리된 입장을 논평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발표되어야 한다. 결론은 운영진이 약하다는 것이다. 비상업 사이트의 한계이다.
정리하면 인터넷사이트는 정보의 전달과 커뮤니티의 2가지 기능 중에서 커뮤니티의 기능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 점에 의존하는 것이 실패하는 원인이다.
절대적으로 정보가 중요하다. 정보가 있는 곳에 독자가 오고, 독자가 오고나서야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중요한건 고급정보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가이다. 정보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정보의 1차 생산자인 기자나 논객을 보호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또한 운영주체의 철학과 이념이 분명해야 한다. 모든 의견에는 반대의견이 있다. 반대의견은 묵살되거나 사전에 걸러지거나 다른 방법으로 피드백이 되어야 한다.
사람을 살게하는 것이 밥이라면 사이트를 살게하는 것은 정보다. 밥을 먹고 난 다음 운동을 하는 것이다. 정보의 획득과 공유가 우선이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다원주의다. 다른 의견이 다양하게 공존되어야 한다. 의견이 다르면 타협하거나 절출하려 해서 안된다. 타협과 절충은 결국 획일화로 가기 마련이다.
인터넷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의견을 절충하고 타협하여 비빔밥을 만들려는 특성이 있다. 최악이다. 의견이 다르면 의견이 다름을 확인하고 거기서 대화를 끊어야 한다. 분리한 채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