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도무지 어디까지가 나의 의지대로 작동하는 영역인가? 보통 자기 몸은 제것으로 친다. 그러나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나 감옥에 갇혀 있는 범죄자는 내 몸을 내 맘대로 통제하지 못한다. 마음도 내것이 아니다. 멀쩡한 사람도 미녀가 뜨면 1초만에 눈 돌아가는 판에 하물며 정신병자라면 어떻겠는가? 잠들었을 때도 그렇다. 잠든 나를 깨우는 것은 외부에서의 소식이다. 내 집은 확실히 내것이라고 여긴다. 내집앞은 내것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순간 대문앞에 똥싸놓고 가는 넘이 있다. ‘대문앞은 네 집이 아니라며?’ 실은 대문앞도 나의 영역에 속한다. 주체의 영역은 확장된다. 등산을 하다가 쉬면서 통닭을 먹으려는 찰나 곰이 나타났다. 곰이 묻는다. ‘그 통닭은 누구의 것인가?’ ‘당연히 곰형 것이죠.’ 금덩이가 있다면 누구 것인가? 전과 28범 소매치기 앞에서 금반지를 자랑했다면 이미 금반지는 내것이 아니다. 내것과 아닌 것의 경계는 모호하다. 아와 피아의 경계는 원래 없다. 주체는 확장되거나 축소되곤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사과인가? 이는 대개 신분상승에 대한 말이다. 옛날에는 인간과 짐승의 차이에 관심이 있었다.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한가? 만약 그렇다면 양반은 상놈보다 우월하다. ◎ 왕의 법.. 사과가 아니라 하면 죽인다. 지록위마의 고사가 있다. 사과가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목이 달아난다. 그것이 사과인가 아닌가는 권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것이 왕의 법이다. 신은 다르다. 신은 이미 사과다. 보통은 심의 법이다. 상놈도 양반으로 여기면 양반이라는 거다. 철학 법은 절대정신을 쓴다. 상놈도 절대정신을 얻으면 곧 양반이다. 인간에겐 동물에 없는 어떤 본질이 있다는 거다. 유물론자는 두 부류가 있다. 황금이라는 이름의 물질을 숭배하는 자본유물론자는 그것은 결코 사과가 아니라고 말한다. 부자는 부자로, 빈자는 빈자로 태어나며 신분은 고정되어 있다. 막스유물론자는 다르다. 부자는 부자로, 빈자는 빈자로 결정된다면 그것을 결정하는 스위치를 뺏으면 된다. 엔진칸을 점령하면 된다. 이 방법은 성공하지 못한다. 양반이 쏴버린다. 양반이 왕의 법을 쓰기 때문이다. 양반은 스스로 선언한다. 짐은 곧 사과다. 아니라고 말하는 놈은 모두 총알밥을 멕여주겠다. 구조론의 방법은 다르다. 토대를 점령하는 방법을 쓴다. 양반과 상놈은 한 배를 타고 있다. 상놈이 양반의 총을 빼앗는 방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설사 총을 빼앗았다 해도 상놈과 양반의 위치가 바뀔 뿐 구조는 계속간다. 새로 양반이 된 상놈이 계급을 철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권력이 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총이 권력이면 누가 양반이 되든 그 총을 지켜야 한다. 설국열차의 엔진을 돌려야 한다. 총을 지키면 구조는 그대로다. 구조의 방법은 양반과 상놈이 한 배를 타고 있을 때 그 배에 구멍을 낸다. 같이 죽는다. 그 총을 파괴하는 것이다. 상놈이 양반을 쳐서 이기는 법은 없다. 이기는 순간 자신이 양반이 되고 양반은 상놈이 되기 때문에 양반과 상놈의 대칭구조는 그대로다. 상놈이 양반되는 방법은 상놈을 규합하여 별도로 율도에 독립국을 건설하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한 배를 탔느냐다. 만약 한 배를 타고 있지 않다면 배를 침몰시킬 방법이 없다. 한 배를 타지 않은 나라가 인도다. 인도는 국경선이 없다. 국경이 없으면 카스트가 생긴다. 최근 인도가 약간 일어난 것도 중국과 국경이 닿았기 때문이다. 인도와 중국은 원래 먼 나라였다. 50년대는 밀월관계였는데 중국의 티벳정복에 의해 인도와 중국은 원수가 되었다. 공동의 적이 나타나자 그들은 의사결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약하다. 인도에서는 사업을 하든 뭐를 하든 아무런 결정이 안 되는 걸로 유명하다. 서류 하나로 며칠씩 애먹인다. 동서냉전 시대에 서구세계와 공산진영 그리고 제 3세계 사이에 거대한 국경선이 만들어져 있었다. 소련의 붕괴로 이념의 국경선이 사라졌다. 그러자 의사결정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것을 신자유주의라 부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개인주의라는 벽을 쌓고 서로 참견하지 못하게 막아야 근대화 된다. 가족의 결혼에 의견을 내거나 마을사람이 참견하면 곤란하다. 아랍의 명예살인이나 성차별 등은 개인 사이에 담벼락이 없기 때문에 엉뚱한 참견이 일어난 것이다. 전형적인 의사결정의 난맥상이다. 자신이 결혼하는데 왜 가족의견을 구하냐고? 정신적인 유아기다. 모든 진보는 닫힌 문을 여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려면 문이 있어야 한다. 문이 없으면? 담장이 없으면? 공동의 적이 없으면? 그 경우는는 한 배를 타지 않았다. 팀은 공격수와 수비수로 역할을 나누는 데서 시작된다. 역할이 겹치면 팀은 성립되지 않는다. 담장이 없으면 역할이 겹친다. 서로 다르면서 협력해야 한다. 다름을 발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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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구상에서 저 인구에 저 땅덩이에 아무런 발언권이 없는 나라는 인도 외에는 없죠.
도대체 마하트마 간디는 뭘 한걸까요?
물레만 돌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