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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004 vote 0 2013.05.23 (18:27:37)

 

  * 자투리 글입니다.


 

    과학적 사회주의=의사결정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가 잘못된 이유는 과학을 표방할 뿐 실제로는 비과학적이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추상적 관념이다. ‘국가가 소유한다’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유물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사회는 의사결정에 의해 일의적으로 작동된다. 의사결정의 원리는 권權이다. 권리, 권력의 메커니즘으로 사회를 설명해야 한다.


    사유는 있어도 공유는 없다. 공유라는 단어는 의미가 불명확한 관념이다. 의사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원은 의사결정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어있다. 사회나 국가는 집단이고 집단의 구성원 숫자에 비례하여 의사결정은 어려워진다.


    만약 원전에서 사고가 났다면 1분 안에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국가는 결정할 수 없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결정하든 도쿄전력 사장이 결정하든 누군가가 결정한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을 표방했으므로 유물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가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 국유지나 공유지는 의사결정하지 않을 때만 존립의 의미가 있다. 손대지 말라는 거다.


    경복궁은 누구의 것도 아니고 국가의 것이다. 경복궁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전제 하에 이 말이 의미가 있다. 만약 누군가가 경복궁을 사사로이 이용하여 수익을 챙긴다면 국유라고 할 수 없다.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의사결정 메커니즘 하나에 의해 일의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착취니 탐욕이니 억압이니 하며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비유물론적인 표현이 등장하면 곤란하다.


    역설의 작동원리


    축구게임을 하는데 2인이 협력하여 1인을 상대하였다. 2인이 팀을 이루면 자유도가 2배이므로 이겨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사결정이 더 어려워지는 역설이 작동하여 1인에게 졌다. 여기서 역설의 작동구조는?


    축구게임에서 2인이 지는 것은 백미터 달리기에서 2인삼각이 지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2인의 자유도를 얻으려면 그만큼 운동장이 더 넓어져야 한다. 2인의 자유도는 2인이 시공간적 영역이다.


    영화 올드보이처럼 좁은 공간에서 다수를 상대하면 실제로는 1 대 1의 싸움을 반복한 것이 된다. 다수이면 다수만큼의 자유도를 가져야 하고 그것은 그만큼의 공간과 시간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복도가 좁아서 자유도가 없었다. 다수의 폭력배들이 오대수 1인에게 지는 것은 당연하다.


    축구게임에서 고도의 훈련으로 모듈화에 성공하면 2인이 팀플레이를 통해 자유도의 손실을 일으키지 않고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역시 그만큼의 시공간적 영역을 확보해야 한다.


    역설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건의 시공간적 규모 때문이다. 사건은 시공간상에서 진행된다. 말하자면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 거다. 조삼모사와 같다. 조삼에서 사건이 끝나지 않는다. 모사까지 가봐야 하나의 사건이 완결된다.


    ◎ 싸움은 큰 놈이 작은 놈을 이긴다.
    ◎ 모든 싸움은 작게 시작해서 점점 커진다.
    ◎ 처음엔 작게 시작하므로 작은 놈이 이긴다.
    ◎ 싸움이 점점 커지므로 결국 큰 놈이 이긴다.
    ◎ 작은 놈의 일시적 승리가 역설이다.


    결국은 큰놈이 이기지만 결국까지 안가고 중국에 싸움을 끝내면 작은 놈이 이긴다. 그것이 역설이다.


    존재는 사건이다. 그런데 우리가 사건을 인식하려면 사건이 완결되어야 한다. 사건이 현재 진행중일때는 그게 사건인지 아닌지 모른다. 두 사람이 만났는데 지금 연애를 하는건지 안하는건지는 결혼식할때까지 가봐야 아는 거다.


    역설은 의도와 반대로 되는 것이고 그 이유는 사건이 완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벌 한 마리를 잡은건지 벌집을 통째로 건드린건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아는 거다.


    오뚜기의 원리가 그러하다. 오뚝이를 쓰러뜨리면 쓰러집니다. 오뚝이는 다시 일어나겠지만 그 전까지는 쓰러진거다. 오뚜기가 다시 일어나기 전에 게임끝을 선언하고 집으로 가버리면 이기는 거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약자가 강자를 일시적으로 이길 수 있다. 교묘하게 싸움판을 디자인하면 계속 이길 수 있다.


    사건은 일정한 시공간 상에서 전개한다. 그 시공간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사건을 왜곡할 수 있다. 끝판까지 가면 우리가 이기지만, 끝까지 안 가면 새누리가 이긴 거다. 815 해방 하루 전날에 죽은 친일파는 승리자의 위신으로 죽은 거다. 그것이 역설이다.


    ◎ 역설은 의도와 반대로 된다.
    ◎ 사건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으로 전개된다.
    ◎ 사건이 충분히 전개되지 않았을 때는 질과 입자가 은폐된다.
    ◎ 질과 입자가 은폐될 때 큰 사건을 작은 사건으로 좁게 규정한 다음 량이 질을 이긴것처럼 위장할 수 있다.
    ◎ 이 방법을 잘 쓰면 환경을 디자인하기에 따라서 소로 대를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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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한 것은 어떤 주장이든 논리의 중간에 역설에 해당하는 부분이 들어가 있지 않으면 일단 그 논리는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면, 지금 사기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손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그 비법을 남에게 가르쳐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역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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