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read 18912 vote 0 2008.11.11 (22:15:53)

왜 미학이어야 하는가?

학생 때.. 백이숙제의 고사를 배웠다. 선생님은 ‘실용주의적이지 못한 백이숙제가 뻘짓했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나갔고.. 학생들은 다들 선생님의 의견에 동의했다. 원칙 지키다가 굶어죽은 백이숙제를 조소하면서..

또 한편에서 이어지는 광해군의 실용주의 예찬. 예전에 쓴 필자의 광해군 비판을 혹 기억하시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교과서의 ‘백이숙제비난-광해군 찬양’을.. 실용주의자(?) 박정희의 쿠데타 찬양으로 들었다.

박정희판 교과서 왜곡이었던 것이다. 아직도 입을 두개 씩이나 달고 다니며.. 한 입으로는 진보를 말하고 다른 입으로는 광해군을 찬미하는 머저리들이 간혹 있는데.. 역사책이나 읽어보고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왜 역사를 말하면서 역사를 읽지 않을까?

새별님이 펀 글에 독립협회의 친일행각에 대한 내용이 있었는데 광해군의 경우와 잘 들어맞는다. 청나라에 대한 사대를 비판하는 독립신문이 본질은 친일,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비판하지만 실제로는 박정희의 친일정당화.

그 지점에서 나는 세상과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슴에 비수를 품고 잘랐다. 세상 전부와 나의 고독한 대립.. 내편은 어디에도 없다. 세상과 절교하는 수 밖에. 이후 10년간 한국인과 친하지 않았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 꼴보기 싫은 자들 안 보고 살 자유가 내게는 있다. 백이숙제 비판, 광해군 찬양.. 나는 그것을 노예근성으로 보았다. 왜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가?

왜 손에 쥔 수천 정의 조총으로도 청나라를 정벌하지 못하는가? 통탄할 일이다. 신무기가 구무기에 패한 기묘한 역사는 조선사 외에 없다. 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때 조선이 다르게 움직였다면 세계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왜인이 새로 개발한 조총전술이 조선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가고 아랍으로 전파되고 세계사를 바꾸어놓았을 것이다. 서세동점이 아니라 동세서점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역사의 주인공 되기가 그렇게도 두렵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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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쪽에 붙어라! 노예의 생존술이 그곳에 있나니. 주무왕 일어났다. 무왕에게 붙고, 청나라 일어났다. 청나라에 붙고, 왜놈들 일어났다. 왜놈들에게 붙고 미국놈들 일어났다. 미국놈들편에 붙어라!

나는 그 쓰레기들과 마주치지 않는다.

‘새로운 삶의 형태를 창출하기’.. 68문답에서 보셨을 분 있겠지만.. 내 존재의 이유다. 삶의 형태를 바꾸기 위한 나의 싸움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적을 맞닥들이면 묵묵히 발포할 뿐.

타협한다면 잔디를 담요삼고 이슬을 이불삼아 별 세며 잠들었던 10년 간을 우습게 만드는 것. 강마에 선생을 본받아 세상의 똥덩어리들에게 똥덩어리라고 말해줄 것. 백이숙제를 침뱉고 광해군을 숭상하는 똥덩어리들 말이다.

왜 미학이어야 하는가?

귀찮게 생각따위.. 안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분은 여기서 스톱.. 읽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읽든 말든 상관없지만.. 이 글의 목적이 그들을 차별하는데 있다는 점 분명히 해두자는 거다.

차별이다. 차별.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이런 거다. 화내려는 거다. 움베르토 에코는.

미학은 차별이다. 구별이 아니라 차별. 고상한 것과 저속한 것은 당연히 차별되어야 한다. 왜? 돈 가지고 쥐럴하는 것들에 대한 복수다. 그나마 세상을 조금 더 공평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어려서 학동은 성적으로 줄 서고, 커서 젊은이 미모로 줄 서고, 늙어서 영감쟁이 돈으로 줄 서는게 세상. 학벌로 줄 서고, 연고로 줄 서고, 빽으로 줄 서고, 인종으로 성별로.. 차별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차별하는 세상.

그 세상 조금 더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서.. 바깥에 새로 줄을 하나 더 만든다. 깨달음으로 줄 세우면 미학이다. 미학은 이론이 아니라 실기로 말한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공평하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만나고, 만나는 만큼 짝짓고, 짝지어서 가른다. 세상을 가른다. 어차피 조각조각 쪼개진 세상. 대란으로 대치를 이룬다. 크게 갈라서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합친다.

미학은 수준이다! 돈으로 수준을 살 수 없고, 미모로 수준을 꼬여낼 수 없고, 공부로 수준을 복제할 수 없다. 흉내낼 수 있다고 믿는 속물들 있으나 짝퉁이다. 깨달음의 방법으로만이 그 세계에 다가갈 수 있다.  

미학을 논하는 이유는 소통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다. 개와도 소통할 수도 있으나 하루에 한번 쯤 산책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놀아주는 거다. 진정한 소통은 다르다. 24시간 의식하고 있는 거다.

사랑이란.. 그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24시간 그 존재를 의식하는 것이다. 농부라면 하루 종일 날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태양이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신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말 한 마디 하지 않아도.. 24시간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세계, 빛이 비치듯 조용하게 느끼고 있는 세계가 있고, 종일 말로 떠들어도 잔소리에 지나지 않는 세계가 있다. 다른 세계다. 소통의 레벨이 다르다.

오 헨리 단편 ‘할렘의 비극’.. 노동자 부부는 잦은 부부싸움을 한다. 신랑에게 맞아 눈탱이가 밤탱이 된 각시가 이웃집으로 피신. 그런데 이웃집 아지매 매맞고 사는 각시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두들겨 팬 신랑이 사과하느라고 비싼 모피코트나 보석을 선물했다든가 따위를 자랑하는게 부러워서만은 아니다. 종일 말 한 마디 없이 사는 것 보다는 몸으로라도 어떻게 부대껴보고 싶은 것이다.

소통이다. 몸으로 소통하기다. 두들겨 패고 두들겨 맞고. 낮은 레벨의 소통법이다. 개를 쓰다듬어 준다든가 따위. 그래서 할렘의 비극. 언어로 소통하기다. 잔소리하고 귀 막고. 아니다. 지성의 빛으로 소통해야 진짜다.

짝퉁 1억개로도 진짜 하나와 안 바꿔준다고 했다. 몸으로 부대낌은 낮은 것이고, 언어로 속삭임은 범상한 것이며, 마음으로 이어짐은 나은 것이나 지성의 빛으로 소통해야 진짜다.

농부가 태양의 존재를 의식하듯.. 항상 그곳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기. 포지셔닝에 의해 가능하다. 해가 뜨면 밭으로 해가 지면 집으로.. 상대가 어디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가 어디를 바라볼 지가 연동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자기 내부의 감추어진 완전성에 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신의 완전성에 대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두 완전성이 교통하는 것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따위는 무의미. 내 안에 완전성이 가득차 있으면 저절로 반응한다. 완전한 악기가 소리를 내듯이 반응한다. 누구라도 그 앞에서는 내 앞의 내가 되고 내 앞의 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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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노와 앙드레김의 차이다. 앙드레김 의상이 화려하다 해도 그에게 제자가 없다. 왜? 배울 것이 없으니까. 있다 해도 의미없다. 패션계의 주류가 아닐 뿐더러 변방에서 독립적인 류를 형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의 의미는 변방에서 양념구실을 하며 구색을 맞춰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곧 죽어도 주류를 치는 데 있다. 주류를 쳐서 새로운 주류로 등극하지 못하는 비주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똥이다.

앙드레김이 노상 TV에 나오는 것도 이상하다. 뛰어난 조연, 뛰어난 광대, 뛰어난 구색맞추기의 멋진 양념역할이기 때문이다. 진짜라면 나올 이유가 없다. 진짜에게는 백 만명의 관객보다 한 명의 제자가 소중하니까.

이문열이 사숙을 열어 제자를 공개모집할 생각을 하는된 것도 짝퉁의 비애, 이외수가 TV에 출연하며 인터넷으로 제자를 꾸짖는 것도 비주류의 비애, 황석영이 TV에 나와 꼴값을 떠는 것도 본질은 추락. 그리도 외로웠더냐?

TV에 나왔대서가 문제가 아니다. 왜 나왔냐가 문제다. 이문열이 제자를 키웠대서가 문제가 아니다. 왜 그에게 생뚱맞게 제자가 필요했느냐가 문제다. 왜? 도무지 왜? 그에게도 슬픔이 있었고 남몰래 눈물 짓는 비애가 있었던 것.

앙드레김 의상이 뛰어나다 해도 의미없다. 조미료를 친 요리는 원천배제되기 때문이다. 조미료 친 집이 맛집으로 선정되었다면 애초에 맛집선정이 잘못된 것이다. 당연히 퇴출감이다.

의상의 의미는 심플함에 있다. 장식을 덧대면 자격없다. 그것은 디자인의 본질, 그 과학성을 훼손하는 것. 관객이 좋아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하긴 조미료 넣어주면 다들 좋아하긴 하지. 거기에 무슨 과학성이 있느냐다.

요리의 근본을 훼손한 것, 가장 적게 개입하고 최대의 효과를 낸다는 디자인의 본질을 파괴한 것. 어떤 의미에서 그의 패션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독창적인 행위예술가의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패션쇼가 아니라.

이렇게 말하면 지나친 비판이 되겠지만.. 좋은 코미디언 앙드레김에 대해 전혀 유감이 없는 필자가.. 언제나 웃음을 주는 그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끼는 필자가.. 앙드레김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에게도 분명 예술성은 있다. 다만 누구는 가만 있어도 제자가 우르르 몰려들어서 TV에 나갈 이유조차 없는데, 왜 그는 하루 몇 시간만 자며 미친듯이 일하고 백방으로 뛰어서 인맥 쌓고 TV에 나가야 했느냐다. 왜?

왜 앙드레김은 누구보다도 더 부지런해야만 했을까? 그것이 변방에 선 자의 비애다. 핵심을 놓친 자의 비애다. 류에서 벗어난 자의 비애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로 비주류 안에서도 비주류일 것이다. 존재감 없기로는.

그러나 중심을 친다는 꿈은 포기하지 않는다. 구색 맞춰주지 않는다. 양념 역할 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제자를 내칠 일은 있어도 모을 일은 없다. 세상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내가 못한 것은 신의 책임이다.

www.drkim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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