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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943 vote 0 2013.05.06 (23:47:14)

    생각의 학문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배우지 않는다. 논리학이 알려져 있지만 남의 생각을 검증할 뿐 그것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떠올리지는 못한다. 불교에 명상법이 선전되고 있지만 종교의 명상을 통해 뭔가 신통한 것을 창의했다는 말은 잘 없더라.


    생각의 도구는 언어다. 언어학이 있지만 문헌학이나 음운학 등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관심사에 치우쳐 있다. 국어수업에서 읽기와 쓰기, 말하기를 배우지만 정작 그 모든 것의 원천이 되는 생각하기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무작정 생각하라고 윽박지를 뿐이다. 윤리나 도덕, 철학이 있지만 대개 남들이 생각해놓은 결과물을 전시할 뿐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사실이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각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지금이야말로 생각의 학문이 나와주어야 한다. 또한 명명되어야 한다. 사유학이라고 명명해도 좋을 터이다.


    생각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다. 그런데도 다들 생각을 하고 있다. 왜? 생각은 복제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모든 생각은 표절이다. 무엇을 표절할 것인가? 대개 자기 경험 중에서 떠올린다. 그것은 직관력이다.


    직관은 가장 좋은 생각의 방법이다. 직관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아이가 특별히 배우지 않았어도 문법을 알 듯이 배우지 않았어도 안다. 뭔가 어색하다 싶으면 답이 아닌 것이다. 반면 뭔가 떳떳하다 싶으면 맞는 거다.


    그 직관의 원형은 자연의 진리가 그대로 복제되어 인간의 뇌에 세팅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자연의 소통의 원리 때문이다. 자연은 소통을 통해 짝을 짓고 자손을 퍼뜨려 널리 망라한다. 생물의 진화가 대표적이다.


    인간 역시 소통을 통해 짝을 짓고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무엇이 옳은지 고민할 필요는 없다. 소통에 실패하면 잘못된 것이고 소통에 성공하면 맞는 것이다. 소통에 성공한 경험들이 쌓여서 직관을 구성한다. 소통에 성공할 때 짜릿하고 흥분된다. 전율한다. 좋은 음악을 듣거나 혹은 걸작을 감상할 때 가슴 벅차오르는 느낌에서 그것은 형성된다.


    문제는 그 직관의 원형이 여러개라는 데 있다. 그 중에는 고급도 있고 저급도 있다. 직관을 낳는 베이스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으며 남이 생각하지 못하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려면 애시당초 좋은 베이스를 써야 한다. 물론 지극히 단순한 상황을 당하고 있다면 굳이 좋은 것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중요한 단서를 던지고 있다. 데카르트가 찾으려고 한 것은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거 찾아서 뭐하려고? 실상 그는 직관의 원형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소통이다. 예컨대 스위치를 눌러 꼬마전구에 불이 켜졌다면 그것은 의심할 수 없다. 암말과 수말이 짝짓기를 했는데 새끼를 낳았다면 그것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노새나 버새같은 변종이 나와 헷갈리게 하는 일도 있지만 노새나 버세는 2세를 낳을 수 없으므로 검증된다. 어떤 것이 소통되어 그 결과물이 나오면 그것은 의심할 수 없다.


    수학적으로는 등호다. 사과 하나를 쪼개면 두 단면은 같다. 수학으로는 ‘=’다. 이는 원래 하나였기에 의심할 수 없다. 그것이 소통이다. 소통은 원래 하나였던 것을 찾아낸다. 암말과 수말은 원래 하나였기에 새끼를 낳는다. 누구라도 아담과 이브라는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수학은 ‘=’에서 시작된다. =의 좌항과 우항에 숫자를 대입해보고 소통이 이루어지면 맞는 거다. 데카르트의 ‘더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사실 공연히 말을 헷갈리게 한 거 뿐이다. 소통되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데카르트는 직관의 원형이 되는 소통의 1 단위를 찾으려 한 것이다.


    인간은 직관으로 사유한다. 아이는 문법을 그냥 안다. 뇌 안에 문법의 모형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뇌 안에 직관의 모형이 갖추어져 있다. 자연을 관찰하다가 어떤 이유로 흥분하게 되면 직관의 모형이 작동을 개시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애초에 무언가 기본적으로 제공되어 있다는 의미다.


    사업을 하려면 밑천이 필요하고 물을 퍼올리려면 마중물이 필요하다. 애초에 기본으로 만인에게 제공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직관의 원형 중에 낮은 등급과 높은 등급이 있다는 점이다. 대개 낮은 등급을 쓴다.


    낮은 등급의 모형은 반응하는 것이다. 동물이 인간과 다른 점은 대상이 반응하지 않으면 자기 행동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산 속에서 곰을 만났을 때의 수칙은 곰의 눈을 노려보며 슬금슬금 뒷걸음질하여 곰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등을 보이고 도망치면 곰은 본능적으로 사람을 추격한다. 반응을 포착한 것이다. 곰은 상대의 반응을 보고 자기 행동을 결정하려고 하므로 상대의 반응을 읽지 못하면 아무런 행동도 결정하지 못한다.


    고양이는 놀이개를 향해 달려든다. 개는 던져진 공을 물고 온다. 대상의 반응이 없으면 어떤 행동도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TV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용감한 아저씨는 사바나에서 두루마리 화장지 하나로 무서운 사자를 제압해 보이곤 하는 것이다. 호기심 많은 젊은 수컷 사자가 그 사람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지만 용감한 아저씨가 두루마리 화장지를 높이 쳐들면 사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민망해 하다가 슬금슬금 물러나고 만다. 상대방의 알쏭달쏭한 신호를 읽어내지 못하면 자기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조상은 250만년 전부터 뗀석기를 사용했지만 2만 5천년 전에 신석기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간석기를 사용하지 못했다. 250만년 동안 인류는 도구의 사용수준을 조금도 높이지 못했던 것이다.


    뗀석기는 돌을 내리친다. 돌이 깨진다. 반응하는 것이다. 간석기는? 돌을 문질러서 갈아내야 한다. 이때 반응하지 않는다.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상대가 반응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뇌는 작동을 정지한다. 이것이 소통의 법칙이다.


    포유동물의 뇌는 자원을 많이 소모하므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쪽으로 최적화 되어 있다. 그러므로 대상이 반응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뇌에 절전기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생인류는 그 절전기능이 망가졌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보다 뇌의 용적도 크고 덩치도 더 컸지만 어깨가 좁았다고 한다. 좁은 어깨 때문에 어깨근육이 발달하지 않아서 간석기를 쓰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혀근육이 발달하지 않아서 말을 못했을 수도 있다. 오랑우탄이나 침팬지의 어깨가 사람에 비해 좁은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아기의 지능과 세퍼드의 지능은 큰 차이가 없다. 차이는 반응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정도의 차이다. 거의 모든 동물은 대상이 반응하지 않으면 곧 고개를 돌려 외면한다. 오직 인간만이 스스로 반응을 생산해낸다. 뇌가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모하며 비효율적인 작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소통원리에 기초한 직관의 원형을 뇌에 세팅해놓고 있다. 그 원형으로 사유하며 그 결과는 어색함이나 떳떳함과 같은 감정이다. 고급 원형을 쓰느냐 저급 원형을 쓰느냐에 따라 창의력은 결정된다. 그 감정에 민감한 사람이 고급 원형을 쓴다. 무작정 IQ가 높다고 창의를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센서가 발달한 사람이 창의를 잘 한다. 예컨대 음악으로 창의하려면 음의 미묘한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음치는 반응성이 떨어지는 사람이다.


    저급원형은 상대의 반응을 보고 그것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혹은 무조건 반대로 가거나 하는 것이다. 상대가 하는 것을 무작정 따라하거나 아니면 무조건 상대가 하는 행동의 반대로 행동하는 것이 저급한 원형이다. 국회에서 그러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여당은 무조건 찬성하고 야당은 무조건 반대하는 식이다.


    이때 그 대상은 분명하게 반응한다. 문제는 대상이 전혀 반응하지 않을 때도 집중할 수 있느냐다. 오직 인간만이 그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신석기인은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꾸준히 돌을 갈아서 신석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는 실상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의 그림솜씨라면 현대인이라도 쉽지가 않다. 대상이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데도 꾸준히 석기를 갈고 그림을 그려서 마침내 커다란 반응을 끌어냈다. 돌을 갈아서 석기가 완성되고 벽화를 그려서 그림이 완성되면 뚜렷한 반응이 온다.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 듯 하다. 커다란 숭어를 잡은 MBC ‘아빠 어디가’의 민국이처럼 어깨를 펴고, 도다리를 잡은 준이처럼 펄쩍펄쩍 뛴다. 매우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반응을 자기 스스로 생산한다는 거다.


    인간의 고급한 사유는 대상이 반응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그 반응을 생산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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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 동물보다 뛰어나게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일부 정글 부족민은 평균 IQ 75 정도로 지능이 낮습니다. 이 정도면 세퍼드와 큰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단 동물에게 없는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혀 근육이 있어서 말을 하고, 어깨근육이 있어서 신석기를 만듭니다. 뇌용적은 그다지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의 뇌용적이 늘어난 것은 특히 인간이 손가락을 섬세하게 사용하므로 그 신경자극에 뇌가 대응하다보니 단순히 용량만 늘어난 것 뿐이며, 뇌수종 등의 질병으로 대뇌의 대부분이 손실된 사람도 훌륭하게 사회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우월한 이유는 머리가 좋기 때문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 반응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보상을 상상하며 혼자 놀 수 있다는 거지요.

 




[레벨:7]아바미스

2013.05.06 (23:59:55)

사유학 멋져요!!


구조론 때문에 사유하는 힘이 강해진것 같습니다.^^


구조론 4년째, 이제 저도 좀~똑똑해 진것 같아요 ㅋㅋ


이제 곧 논문도 나오고 아싸~!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5.07 (00:36:29)

생각에 관해서는 정말 책 한권 따로 나와야 할듯....
프로필 이미지 [레벨:6]id: 15門15門

2013.05.07 (10:56:42)

동렬님이 흔히 말씀하시는 '천재'에 대한 확실한 정의가 될듯 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2]wisemo

2013.05.07 (14:28:22)

"직관의 모형"과 

떳떳함 과 어색함.

야 이거...~~

너와나 

동서양의 그것을 보고싶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5.07 (20:47:59)

' 그 신경자극에 뇌가 대응다하 보니'
.....대응다하-> 대응하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3.05.07 (21:08:58)

^^ 감사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5.07 (21:10:12)

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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