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read 19421 vote 0 2008.11.11 (13:32:40)

디자인이란 결국 ‘단’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단’은 어떤 서로 다른 둘이 접촉하는 접점의 문제다. 간단히 테두리, 혹은 받침대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물질의 밀도가 다르면 소통의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단을 둔다.

석탑은 결국 탑신부의 우주와 옥개석인데 그 사이에 사리장치가 있다. 그 밑의 기단부와 그 위의 상륜부가 다 그 탑신부로 다가가기 위한 단이다. 기단이 2단으로 되어 있다. 탑신 밑에 기단있고 그 기단 밑에 또 기단 있다.

그 기단 하부 밑에 지구 있다. 그러므로 기단은 총 3단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탑신 위에 2층 있고 2층 위에 3층 있다. 기단이 2단이므로 탑도 3층이어야 한다. 그 기단 밑에 지구가 있으므로 그 3층 위에 상륜부가 있어야 한다.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제각기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칭이 있고 평형이 있다. 탑의 형태는 이러한 접점의 고민을 반영한 것이다. 얼마나 고민했는가이다.

석탑의 한쪽 면은 일백번 이상 각이 꺾였고 일백번 이상 장인의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젠장! 불국사에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거기서 도무지 뭘 보고 갔는지 모르겠다. 과연 그 장인의 고민이 전파될까? 소통될까?

사람 얼굴의 턱이 V자 모양이므로 옷의 칼라도 V자여야 한다. 그 뾰족한 갈라짐의 어색함을 잡아주기 위해 묶어주는 넥타이가 있는 것이다. Y셔츠 오른쪽 깃과 왼쪽 깃을 한 손에 붙잡아 매조지한다.

남녀가 만나는 문제도 결국 단의 문제다. 서로 다른 존재가 어떻게 같은 공간에 공존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음악을 배경으로 살짝 깔아주고 그림을 살짝 비추어서 시선을 묶어주면 영화다.

예술은 총체적으로 단의 문제다. 그러므로 예술을 보는 시선은 까다로울 수록 좋다. 왜 그렇게 까다롭느냐고 시비해서 안 된다. 최대한 까다롭다는 그 자체가 예술의 본래 목적이기 때문이다.

까다롭기를 경쟁하여, 이것이 최고의 까다로움이다 하고 발표하는데.. 왜 까다롭냐고 딴지걸면 피곤해진다. 어떤 처녀가 그대의 프로포즈를 맞아 까다롭게 굴면 ‘아 이분이 지금 예술하고 있구나’하고 알아먹으면 된다.

까다롭게 군다는 것은 이쪽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카페트를 깔아주는 것과 같다. 상대가 카페트를 깔아주는데도 화를 내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카페트 위를 걸어본 적이 없어서’ 하고 다가가기를 망설인다면 실패다.

그러므로 고상하다는 것은, 그만큼 친절하다는 것이며, 까다롭다는 것은 그만큼 배려한다는 것이다. 그 친절과 배려를 거부하고 무대뽀로 다가서려 한다면 신체의 접촉은 가능할 지 모르나 영혼의 소통은 실패할 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상대가 무수히 예술하여 친절할수록 화를 내고 상대가 일백번 고민하여 배려할 수록 화를 낸다. 왜? 그 탑 앞에서 본 것이 없기 때문에. 보지도 않을거면서 거긴 왜 갔을까?

쇠를 다루는 방법에는 선반, 주물, 연삭, 압연, 밀링, 단조, 절삭 등의 방법이 있을 터이다. 자동차를 디자인 하는 철학은 기본적으로 쇠를 다루는 방법에서 시작된다. 쇠를 어떻게 취급하는가이다.

선반으로 쇠를 깎는다면 그 각도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선반으로 나올 수 있는 각도와 없는 각도가 있다. 신라의 석공이 사리장치를 돌 속에 보관하면서 했던 고민의 만 분의 1정도는 나와줘야 한다.

한국 자동차 디자인을 보면 쇠를 똥 취급한다. 나는 좋은 차를 원하지 않으며 좋은 디자인을 원하지 않는다. 디자인이야 구려도 된다. 나는 기본적으로 예쁜 것에 관심이 없다. 단지 악행만은 저지르지 말라는 것이다.

가만있는 사람 뒷통수를 친다면 악행이다. 한국 차들은 도대체 불필요한 선을 이유도 없이 쑥 그어놓거나 그 선의 폭이 갑자기 넓어지거나 선이 돌연 면으로 변하거나 선이 중간에서 사라지거나 한다.

이건 가만있는 사람을 바로 차고 귀싸대기를 때리는 것이다. 마티즈는 너무 동글해서 비탈길에 주차해놓으면 저절로 굴러갈 것 같고, 옛날 아토즈는 천장에 이상한 날개가 있어서 공중으로 떠오를 것만 같다.

그냥 주차해 놓으면 제 자리에 가만 서 있을 것 같은 차를 만들면 안 되나? 구형 프라이드는 디자인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갑자기 어디론가 도망칠 것 같지는 않다. 그 정도만 되어도 준수한 거다.

적어도 불안감을 주거나 위협을 가하지는 말자는 거다. 그건 테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백주 대낮에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소음공해를 유발한다면 악행이다. 최소한 시각적 공해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석탑과 목탑의 존재감은 다르다. 목탑은 촘촘한 뼈대로 안정감을 주고 석탑은 둔중한 무게감으로 안정감을 준다. 자동차는 쇠다. 쇠의 탄성이 느껴져야 한다. 한국차의 어설픈 각은 탄성이 없는 죽은 쇠라는 느낌을 준다.

강철을 휘어서 나올 수 없는 각도는 나오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런 각도가 있다면 저런 절묘한 각을 뽑아내다니 기술이 뛰어나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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