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은 지식의 체계다. 중요한건 체계다. 자연의 체계는 인간의 학문과 상관없이 원래부터 존재했다. 그 자연의 체계에다 인간의 지식을 올려태운 것이 학문이다. 체계의 존재에 주목해야 한다. 체계는 자연에서 관찰된다. 대표적인 것이 생물의 진화다. 진화는 무생물에도 일어난다. 행성의 진화나 광물의 결정이 그렇다. 이는 구조의 필연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학문도 진화한다. 생물의 진화는 에너지의 공급 때문이다. 무생물의 진화도 마찬가지다. 학문의 발달 역시 사회적 에너지의 공급 때문이다. 세포들이 모여 생명을 이루듯이 사람들의 지혜가 모여 학문을 이룬다. 그렇다. 학문은 살아있다. 학문은 인류의 집단 작업이다. 지구에는 70억의 인류가 존재하며 70억개의 세포들로 우리어진 거대한 하나의 뇌를 이루고 있다. 컴퓨터가 집적하여 인터넷을 이루듯이 인류는 학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생장한다. 그 필연성에 주목해야 한다. 학문은 인문학과 자연학으로 대별된다. 자연학을 생장하게 하는 에너지는 자연에서 공급된다. 자연학은 인간이 자연의 에너지를 활용하는 지혜를 축적한다. 인문학은 인간의 사회화 과정에서 에너지를 조달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작동하는 에너지의 메커니즘이 있다는 거다. ◎ 체계 - 진화 예컨대 윤리나 도덕을 인간이 자의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진화는 일정한 법칙을 따른다.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의 윤리나 도덕 역시 일정한 생장 메커니즘을 따른다. 시장원리가 작동하듯이 법칙대로 가는 것이며 그 법칙은 에너지의 낙차를 따라 에너지가 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 학문 - 자연학 인문학은 철학과 미학으로 나눠진다. 역시 에너지를 태우는 메커니즘에 의해 구분된다. 철학은 학문의 행위고 미학은 학문의 결과다. 철학이 자동차의 제조라면 미학은 자동차의 운용이다. 자동차를 만드는 일과 자동차를 운행하는 일은 차이가 있다. 그런데 만드는게 먼저다. 자동차를 만들지 않으면 자동차를 운행할 수 없다. 철학이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으면 미학적 성과는 성취될 수 없다. ◎ 인문학 – 철학 에너지의 운행에는 결이 있다. 에너지가 진행하는 루트가 있다. 기승전결로 나누어진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이다. 이에 따라 인문학은 자기규정, 타자규정, 관계규정, 피아구분, 상호작용의 다섯 단계로 나눠진다. ◎ 철학 – 깨달음(자기규정) 권(權, 추체성/타자성), 언어, 관점, 동기 이러한 구분은 에너지가 인간의 삶을 관통하여 가며 결과물을 내놓는 경로에 따른다. 철학은 주체와 타자의 대립에서 에너지를 조달하는 절차를 규명한다. 간단히 동기부여에 관한 것이다. 그러한 행위동기의 결과로 얻어진 결과물은 미학이다. 철학이 ?면 미학은 !다. 철학은 질문하고 미학은 답한다. 철학이 인간은 누구인가를 묻고 미학이 삶의 양식을 도출하여 그 질문에 답함으로써 완성하는 것이다. 철학은 미학과 만났을 때만 완성되며 미학없는 철학은 개소리요 철학없는 미학은 실패다. 만약 당신이 철학하여 무언가를 얻었다면 반드시 그 결과물로서의 미학적 성과물을 제시해야 한다. 결과물없이 막연히 철학하였다고 우긴다면 거짓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식의 묻지마 들이대기는 우스울 뿐이다. 누가 물어봤냐고?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말하지 말라. 다만 결과물을 제시하라. 그 결과물은 미학의 양식이다. 그 철학에서 미학으로의 전개과정에서 깨달음, 심리학, 윤리학, 사회학의 과정을 거치며 양식학 곧 문화, 예술, 디자인은 그 최종적인 결과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예술을, 디자인을, 문학을 한다면 실패다. 당신이 어떤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하든 반드시 시대의 질문에 대한 응답이어야 하며 그 안에는 시대의 고통이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시대의 아픔이 나이테처럼 기록되지 않은 문학은, 시는, 소설은, 디자인은, 패션은, 영화는, 드라마는 가짜다. 아름답지 않다. 완전하지 않다. 미학은 완전성의 학문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과정을 전부 거치기 때문이다. 거치면서 모두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 안에 깨달음이 들어있고 신과의 대화가 들어있고 믿음과 사랑이 들어있고 진리와 역사와 진보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하며 그 내용물이 채워지지 않은 예술은 가짜다. 껍데기다. 자연이 물으면 인간이 답한다. 그것이 학문이다. 철학이 물으면 미학이 답한다. 그것이 문명이다. 답해야 한다. 나는 깨달았다는 선언은 필요없다. 스타일로 답해야 한다. 당신이 만들어낸 스타일의 크기만큼 깨달은 것이다. 철학에서 깨달음, 심리학, 윤리학, 사회학, 양식학을 거쳐 미학까지 학문의 전개하는 의미는 일의성의 획득에 있다. 인류 전체가 하나의 뇌를 형성하며 한 편이 되어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큰 나무의 가지가 무성하듯이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각자 독립적인 영역을 획득하고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성의 획득으로 가능하다. 현대성은 소통에 의해 얻어진다. 자연과 인간의 부단한 상호작용에 의해 끝없이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낸다. 깨달음, 심리학, 윤리학, 사회학, 양식학의 전개는 어떤 특정한 규범으로 고착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순환에 따른 역동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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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요, 성공이 아니요, 정복도 아니요, 지배도 아니요, 쾌락도 아닙니다. 의미없는 돼지의 행복보다 의미있는 소크라테스의 불행이 낫습니다. 인간은 인류문명의 진보에 기여하고 배달하도록 세팅뒤어 있습니다. 의미는 그렇게 올려태워 전달하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는 문명의 배달에 있습니다. 가담하면 우리편이고 방해하면 적입니다. 그것이 삶의 진정성이고 다른건 껍데기입니다. 우리는 깨달음과 마음과 믿음과 진보를 거쳐 최종적으로 각자의 나다운 삶의 양식에 도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스타일입니다. 화살은 태어날때 이미 쏘아졌고 남는 것은 그 화살이 허공중을 날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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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정의는 무능력이고
정의없는 힘은 폭력일 뿐이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말보다는 실전으로 증명해야겠지요.
좋은 하루 보내십시요~
힘은 누군가가 만들어 낸 겁니다.
만약 누군가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전에 누군가가 그 힘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힘을 만들어낸 자와 힘을 가진 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후진국일수록 그 경향은 분명해집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예전의 힘을 배워 혁신이란 힘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연결자입니다.
위로는 선배님들과 아래로는 후배님들과
연결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선진국일수록 수직적집단지성이 발달하고
후진국일수록 힘으로 줄을 세우겠지요.
저는 힘을 만들어낼수 있는 자와
힘을 가진자들을 다르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들도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갈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헴 하며 관료주의 병폐가 만연하면 새로운 시스템'벽 없는 조직(Boundarylessness)에 의해
무너지게 됩니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요~^^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정리)
체계는 하나의 중심에서 여러 생장점으로 뻗어나가는 망을 의미한다.
이또한 구조론의 일치와 연동의 법칙을 따른다.
체계는 (태초부터 존재해 오던) 자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체계를 인간의 언어로 해석, 묘사한 것이 학문이다.<-- 삭제)
학문은 자연의 체계위에 인간의 문명을 체계적으로 구축하므로
생물이 자연 그자체의 체계에 따라 진화하듯이
학문도 진보한다.
학문은 자연(우주)속에서 관계 맺고 살아가는 인류의 집단작업이고
자연학과 인문학으로 대별된다.
자연학은 진화하는 생태계에서 에너지를 조달받고
인문학은 진보하는 인류공동체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중요한 것은 학문이 생태계와 인류공동체에
(인간의 의지와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작동하는
에너지 매커니즘을 구현해 낸다는 점이다.
(예컨데 늑대의 군집에도 규범과 규율이 있듯이<--삭제)
(인간사회에도 윤리와 도덕이 존재하고,<--삭제)
늑대의 군집에도 규범과 규율이 있듯이
인간사회에도 윤리와 도덕이 존재한다
(학문은 이러한 '당위'조차 <--삭제)
(일정한 생장 메커니즘에 따른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삭제)
그러나 이러한 '당위조차 일정한 생장 메커니즘에 따른다는 사실에 기반하지만
학문은 인간이 고립을 탈피할 공동체적 존재 모형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늑대의 규범,규율과 인간의 윤리,도덕은 다르다.
에너지 낙차에 따른 에너지의 흐름속에서
공동체내의 윤리와 도덕이 발생, 유지, 소멸한다.
인문학은 철학에서 시작하여 미학으로 끝난다.
철학이 원인라면 미학은 그에 따른 결과다.
행위없이는 결과가 생기지 않듯이
철학적 사고없이는 미학적 성취가 있을 수 없다.
기승전결이란 길을 따라 에너지는 진행한다.
그것은 질입자힘운동량이다.
인문학 또한 자기규정,타자규정,관계규정,피아구분,상호작용의
다섯단계로 나아간다.
달리말하면 철학,심리학,윤리학,사회학,미학으로 나아간다.
?에서 철학이 시작되면 미학이 !으로 끝맺는다.
철학이 인간이 누구라고 말하면
미학은 그 누구인 인간을 묘사해내는 것이다.(만들어 내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를 얻었다면
반드시 그 결과물로서,
미학적 양식을 통해 성과물을 제시하는 것이 맞다.
당신이 시를 쓰든, 소설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하든
반드시 시대의 질문에 대한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응답이 있어야 한다.
시대의 질문에서 시작된 철학은
공동체의 응답으로서 끝맺는 미학이 된다.
이것이 미학이 완성된 학문인 이유다.
자연이 물으면 인간이 답하고, 철학이 물으면 미학이 답한다.
자연학에서 인문학을 끄집어 내고, 철학에서 미학을 끄집어 낸다.
(그 자체로 완전한 자연은 인간의 삶의 양식으로 재현된다.<--삭제)
그 자체로 완전한 자연은
공동체적 삶을 사는 인간에 의해 새로운 양식으로 재현된다.
학문의 일의성에 의해 다섯 단계로 학문이 전개된다.
하나의 원리를 바탕으로 다섯 학문이 뻗어나가는 것이다.
학문의 일의성과 마찬가지로
인류전체는 하나의 뇌를 형성하여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 안에 소통이, 현대성이, 독립이, 다양성이 있다.
에너지 순환의 역동성은
자연과 인간의 부단한 상호작용에 의해 끝없이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 낸다.
자연의 체계를 인간의 언어로 해석, 묘사한 것이 학문이다라기 보다는
자연의 체계를 베이스로 삼고 그 위에다 인간의 존재를 올려태워 구현한 것이 학문입니다.
개는 학문이 없습니다.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개는 고립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양은 떼로 몰려 있어도 그 삶은 고립되어 있습니다.
이 양이나 저 양이나 어떻든 상관없죠.
그 중에 한 마리가 늑대에 물려가도 상관없고.
인간은 다릅니다.
일만명 중에 하나가 늑대에 물려가면 실패입니다.
학문은 자연의 체계위에 인간의 문명을 체계적으로 구축합니다.
학문은 지식의 데이터베이스가 아니라 고립을 탈피한 공동체적 존재의 구축이라는 거죠.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고립되어 있으면 학문은 실패입니다.
일만명 중에 한 명이 죽으면 실패하는 거죠.
공동체의 실패, 양식의 실패=학문의 실패.
이번 글을 읽으면서 일전에 "발명이 아닌 발견"이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이미 있는 자연의 질서와 체계 위에 인간의 지식을 올려 태운 것이 학문이다. "
확~ 공감이 됩니다.
창조는 발명이 아닌 발견인 것처럼, 깨달음도 곧 발견이지요.
예전에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발견.
캐나다에도 봄이 오려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