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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20]양을 쫓는 모험
read 10151 vote 0 2009.06.10 (11:44:59)

(6월 7일 동영상 강의에 댓글로 올렸지만, 글이 길어져서 게시판으로 옮겼습니다.)


1%의 현대성과 99%의 야만성이 공존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인류가 지금까지 문명을 이어나온 것은 그 1%의 현대성에 묘한 향기가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 따라하고 싶은 것, 함께하고 싶은 것. 뭔지는 모르지만 하고 나면 자유로워지는 것.

서양의 포도주 만드는 장인, 치즈 만드는 장인은 자신이 만든 포도주나 치즈에 대해서 한 시간이 넘도록 얘기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내가 직접 그들을 만나본 게 아니라서 경험한 것 처럼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나름의 스타일을 가지고, 그것에서 우러나오는 자부심과 자존감이 있는 것은 알기 때문이다. 하나는 자신의 스타일을 아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이들의 스타일을 아는 것. 그들이 "우리집 치즈는 이게 좋구요..." 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다른 집과의 차이점이라는 거다. 자부심을 측정할 수는 없지만, 자부심의 크기는  그 '차이' 만큼 비례한 것이다.

우리나라 아줌마의 문제점은 미적인 센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르고, 또 남들도 모르기 때문이다. 모른다기 보다는 관심이 없는 거다. 자기를 알고, 다른 사람들을 알면, 그 사이에서 '다르다' 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이 깨달음.  우리나라에서 막걸리 만드는 사람은 옆집 막걸리는 안 마신다. 충청도 막걸리, 강원도 막걸리, 제주도 막걸리 다 마셔야 그 차이를 알고, 그 차이만큼의 자부심이 생기고, 그 차이를 계속 넓혀나가서 스타일로 완성해야하는데, 나 아닌 다른 것을 모르니까 어느새 '나' 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차이'가 생겨나면, 점점 가속화 된다는 것이다. 어느 한 농장에서 "우리집 포도주는 보관하는 통을 좋은나무로 해서, 다른 포도주보다 더 맛있습니다." 라고 해서 사람들이 그 포도주를 선호하게 된다면, 다른 농장에서 또 다른 스타일이 나타나게 된다. 생산성 경쟁에서 다양성 경쟁으로 룰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차이는 점점 더 커져간다. 때문에 단지 마실꺼리에 불과한 포도주를 공부해야만 하는 시대가 된다. 사실 학문도 그런식으로 발전해왔다.

그건 마치 빅뱅과 같은 것이다. 수억개의 점이 한 점에서 퍼져나오는 것. 점과 점의 간격이 점차 멀어져가고, 그 간격 만큼의 자부심이 생겨난다. 하나의 스타일이 완성되면, 백개 천개의 스타일이 쏟아져나온다. 때문에 1%의 현대성이 99%의 야만을 먹여살릴 수 있다. 도태되면 죽음이라는 위기감이 들었을때, 99%의 그들은 세상 밖으로 쏟아져나온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스타일로 돈을 많이 벌고 있지 않은가? 성능은 떨어지지만, 값은 비싸게 받으면서도, 잘 팔리고 있다. 사실 매킨토시 컴퓨터는 인터넷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성능으로도 쓸만 했지만, 인터넷 시대 이후로는 호환성 문제 때문에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갔었다. (맥북 에어는 디자인은 근사하지만 실제로 가격대비 성능은 최악이다.) 애플을 먹여살린것은 더 좋은 성능이 아닌 디자인이었다.

시장에서 새로운 것이 등장해서 시장을 독점한다면? 아저씨들의 사고는 100% 그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 편승하자는 쪽이다. 때문에 하나가 등장하면 수백, 수천의 아류가 탄생하게 된다. 하지만 아줌마라면? 가방을 하나 샀는데, 옆집 아줌마와 같은 제품이라는 것을 알게되면, 본능적으로 기분이 나빠진다. 배가 살살 아파온다. 제품이 같아도 최소한 색깔이라도 달라야 사용하지, 그렇지 않으면 대판 싸움난다. 같은 제품을 걸쳤다는 것만으로도 바로 반응이 나오게 된다. 같은 옷이, 같은 가방이, 같은 머리스타일이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이다.

때문에 우리나라 아줌마가 자기 스타일을 찾는다면, 그것은 계속해서 연쇄적인 반응이 생기게 된다. 그것을 기대하고, 또 그것에 희망이 있는것이다. 거기까지가 전쟁. 자신의 성격이 자신의 스타일을 만드는가? 아니면 자신이 입은 옷이 자신의 성격을 만드는가? 지금까지는 입은 옷에 자신의 역할을 맞춰왔기 때문에, 정작 '자기'라는 아이덴티티가 없었다. 성격에 맞추어 옷을 입으면? 정 반대의 결과가 생겨나게 될 것이다. 그 중간은 없다. 스타일에 구속당하는가? 스타일을 주도하는가? 그 전쟁의 승자가 다양성의 경쟁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된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4]꼬치가리

2009.06.11 (09:21:04)

글 좋습니다.
점점 누군가를 닮아 가네요.
하나를 얻으면 둘, 셋, 넷으로 확장해가는 양모님의 정갈한 모습이 부럽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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