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만큼 잔인한 단어는 없다.
용서는 죄를 낳을 뿐이다.
용서가 또 다른 용서를 낳아 세상이 좀 더 밝아지기를 바라는 것은 마음 속의 이상향이고 현실은
용서는 또 다른 죄를 낳는다
사랑도 사랑을 해 본 사람이 충만한 감정을 느껴 또 다시 사랑에 빠지고
지식을 늘려 가면서 상승하는 기분을 느껴 본 사람만이 또 다시 지식을 늘리게 되며
죄도 죄를 지어 본 사람이 또 다시 죄를 짓는다. 전과 11범, 12범, 13범
반대로 선한 일을 하고 존엄의 감정을 느껴 본 사람만이 또 다시 선행을 쌓는다.
개과천선이라는 사자성어에 해당하는 사람은 분명 성자가 될 것이다. 흔치 않다.
후배라고 하기엔 너무 덩치가 큰 다섯살 어린 연구원이 있었다.
외모 콤플렉스와 열등감 콜플렉스와 불안과 우울한 눈빛을 가진 그 연구원은
모든 직원들이 기피하는 연구원이었다. 회식하고 헤어져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전화를 해
삶의 우울함과 자살을 생각한다는 그 연구원의 말에 달래주고 밥사주고 가진 것 나누어주고
몇 번은 돈도 그 연구원의 손에 쥐어 주었다.
나도 매몰찰 때는 매몰찬 성격이라 연구원이 규칙을 어기거나 업무태도가 불성실할 때,
경고가 여러 번 나갔으나 추후에 행동의 변화가 없을 때는 두 세번 자르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연구원들의 생사여탈권(?)이 나에게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기에서 나가면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없는 연령에 접하는 시기가 되니 함부로 자를 수도 없었다.
또 선배가 본을 보이면 후배가 알아서 잘 따라 올 거라는 이상한 신념(?)에 사로잡혀
선배가 조금 덜 갖고 후배가 조금 더 갖게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그 연구원의 소문이 좋지 않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분란을 일으키고 동료와 싸우고 매일 지각하고 업무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권리는 의무를 이행했을 때에만 발생하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일로서,
부모에게는 자식으로서,
학교에서는 학생으로서
의무를 이행했을 때 권리는 자동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연구원은
일보다는 인센티브를
집안일과 직장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정쩡함을
직장에서 적절하지 않는 비속어를 사용함을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도 예수님의 한 자락 흉내 좀 내 보겠다고 그 연구원을 감쌌고 잘 챙겨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직원들간의 눈빛이 사나워지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며
모이는 횟수가 줄어들고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제주도 빼고 각 도에서 모인 직원들이 이렇게 살벌하게 직장 생활을 한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 연구원이 있었다.
그 연구원은
불쌍함을
가난하게 산 것을
적게 가진 것을
눈물로 포장해서 자신을 약자 위치에 놓고 동정심을 팔아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어했다.
세상에는 그런 종류의 사람도 있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또 다시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여러 결론에 도달했다.
용서란 없는 거다.
사람은 생긴대로 노는 것이다.
예쁘고 잘생겨야 한다.
그 중에 예쁜 척하고 잘생긴 척하는 가짜를 버려야 한다.
그 연구원이 불쌍하여 용서를 베풀면 베풀수록 그 연구원은 더 어긋났고, 더 많은 관용을 베풀기를 요구했다.
그게 본인에게서만 끝나면 괜찮은데 같이 있는 직원들의 분위기를 헤치며 나이가 많은 직원들의 동정심에
호소하여 직장을 자선단체로 만들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관용을 베푸는 것이 아니었다.
직장이 자선단체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부터 보여주어야 했다.
그러면서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형을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
사형수 개인 한 명만의 생명만을 생각했을 때는 햇볕 한 줌 들어가지 않는 방에 종신형을 선고하는 것이 낳을 수 있겠으나,
사형수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 살인기계였고 사형수 한 명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의 가족은 결코 한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여론에 떠밀려서 사형집행반대를 당당히 외칠 수 없다.
생명의 존엄을 생각할 때 그 존엄에는 피해자 가족의 존엄도 있는 것이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하면 항상 제자리에 서 맴돈다는 것을 알지만 피해자가족에 대한 어떤 장치도 하지 않는 채
무조건 사형집행반대를 외칠 수 없다.
송혜교 주연의 독립영화 같은 영화 ‘오늘’이 용서가 얼마나 잔인한 단어인지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쉽게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변하는 않는 것이 사람이다.
동렬선생께서는 엉뚱하다고 표현하셨는데,
저는 번지수가 잘못되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용서에도 차원이 있습니다.
용서 받아야 할 사람인 당사자가 자기의 잘못이 뭔지 모르고 용서를 운운할 자격은 없습니다.
용서하는 사람이 자신이 용서해야할 권한조차 명확하지 않은데 용서한다는 사실도 가당치 않습니다.
동렬선생께서 있다 없다보다 상위 개념으로 "이다 아니다"를 말씀하셨는데
내가 용서할 사람이다 아니다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누가 물어봤어? 라는 것도 여기에 적용됩니다.
누가 너에게 용서해달라고 했어?
오지랖이고 번지수가 잘못되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측은지심을 발동해서 열심히 그사람 도와주고 뒤통수 맞으면 노발대발합니다.
비폭력 대화에서도 네가지 단계로 소통하라고 팁을 줍니다. 그것만 잘 따라해도 용서니 사랑이니 미움이니 오해가 필요없겠지요.
또 한가지 사업과 자선을 혼동해서도 안되고,
비즈니스와 소위 말하는 교회에서의 교제와 목회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 크리스천들은 자신이 사업하면서 하나님 일 한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너무 많은데,
누가 그렇게 하랍디까? 그리고 사업도 정말 제대로 신(하나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합니까?
그리고 이 문제는 사형제도의 용서와 아주 다른 문제로보입니다.
비슷하다고 같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스마일님의 말씀은
'네가 이렇게 하면 나는 이렇게 한다'는 일대일 응수논리인데
이미 심리적으로 말려들었다고 봅니다.
응수하면 지는 겁니다.
시스템으로 대응하는게 현명합니다.
시스템은 사회적인 제도로도 기능하지만
인생계획에도 모든 경우의 수를 커버하는 시스템적인 대응이 있습니다.
상부구조에서 제압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벼라별 인간군상을 다 만나게 되는데
말하자면 매뉴얼로 조지는 거죠.
매뉴얼이 정답. 우리가 군사독재와 유신잔재를 경험하면서 매뉴얼하면 치를 떠는 경향이 있는데, 21세기 전문가시대에는 정확한 매커니즘과 임상을 존중할 필요가 있음.
매커니즘으로 확립되고 과 임상으로 보완된 '매뉴얼'은 인간관계에서도 적용가능.
다만, 한국사회가, 지독히도, 상대간의 거리가 좁다는것은 특이부분.
한국만 그런게 아니라, 아시아쪽 즉, 지역대비 인구가 많은 나라들의 공통점.
이부분 해결되려면, 업무상의 매뉴얼도 필수. 업무, 인간관계에서 매뉴얼대로 처리하고
나머지는 일정박스안에 가두고, clear clear로 일처리.
불필요한 조직이나 군살 제거가 수반됨.
이런 문제들은 대개 심리학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인류학적 지식도 필요하구요.
백인 선교사들이 부족민과 온갖 갈등을 일으킬 때
인류학 교육을 받은 사람은 단번에 제압하고 부족민의 존경을 받습니다.
심리학 교육을 받은 사람은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해결이 안 되는 악질도 분명히 존재하지만요.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아직 심리학을 받아들일 태세가 안 되어 있다는 것.
심리학으로 해결할 문제를 도덕이나 윤리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애초에 번짓수를 잘못 짚은 거지요.
'근대'와 '전근대'가 만나는 지점이에요. 전근대를 근대로 보지 말고, 메뉴얼대로 보고 처리해야합니다.
그때, 외부 세력을 끌어들일 에너지를 갖고 있어야해요.
내가 '근대'라고 말하면 똘아이 취급받아요. 하지만, 외부세력을 밀어넣어서 긴장을 주면
그 헛소리들이 잠재워지죠.
누가 그렇게 하냐 싶지만, '오바마'가 그렇게 하고 있어요.
전진: elon musk, space X
본진: 미국 정부. 이미 미국정부는 전진세력 아닙니다.
후진: 이민자 2세대들. 2세대들에게, 동렬님이 주장하는 '낙차'가 큽니다.
....
아무것도 아닌 진: 공화당 늙댕이들...그냥 답이 없어. 가끔 밥은 먹어줘야함. 밥먹는게 그들의 몫이니까.
엉뚱하오.
나쁜 사람에게 영향받아
나빠진다면 본인만 손해이오.
나쁜 사람이 나쁘다면 그 사람이 나쁜 겁니다.
그 사람이 고민할 문제인데
왜 남의 문제를 자기 것으로 만들죠?
영향받지 않는게 맞소.
나쁜 사람은 제압하거나 피하거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