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금강경 사구게입니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이 말이 워낙 유명하니까
뭔가 대단한 뜻이 있을듯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요.
우리가 초딩도 아니고 말이지요.
이 글귀에서 임팩트를 주는 대목은
확신에 찬듯한 마지막의 '즉견여래'
여기서 많이 낚였을듯.
그러나 이 네 글자에 무슨 대단한 뜻이 있을 리가 없으니
그냥 문장을 끝내려고 얼버무린 말일 뿐
범소유상 개시허망에서 본론은 끝났고 뒷부분은 사족이오.
지하철 시인들이 늘 쓰는 잘못된 수작.
뒤에 사족으로 붙는 해설도우미라니. 빌어먹을!
중요한건 '개시허망' '즉견여래'가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
부정과 긍정의 대칭이 주는 묘한 시적 긴장감.
답이 의미가 아닌 관계에 있다는건
이 사이트에 들락거린 분이라면 다 아실 터.
아는 척 하실 분이라면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에 나오는 18자의 한자를 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범이니, 상이니, 허망이니, 제상이니, 비상이니, 여래니 다 개떡같은 소리지 않습니까?
이런 단어에 붙잡힌다면 초딩이죠.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뜻이라는건 원래 없는 겁니다.
뜻에서 뜻을 찾으면 찾을 수 없습니다.
첫째는 신
둘째는 나
사이의 믿음
그리고 ?
신=인간으로 되려면
인간이 위로 올라가야 되겠소 아니면 신이 아래로 내려와야 하겠소?
중요한건 대등해지는게 아니라
세상이 그러한 원리로 작동하느냐입니다.
인간이 신과 대등해져서 뭐하겠소?
만약 인간이 약간 똑똑해진다면 지구를 다 파먹고 아주 결딴을 낼 거.
인간이 더 위대해진다든가 하는건 아무런 의미가 없소.
문제는 관객이 없으면 신이 초라해진다는 거.
관계가 드러난다.
그 관계를 보면 사랑이다. 자비다.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관계에 갇혀 있는 것. 슬픔이자 스스로 설득되는 것. 큰 슬픔이 오히려 자비로 환원되는 것. 개시허망 즉견여래.
신과 나와의 관계 나와 세상과의 관계 나와 가족과의 관계 나와 모든 유생물들과의 관계
관계에서의 해탈 관계를 완전히 벗어난 열반... 이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
신이 영화라면 인간은 관객이오.
관객이 없는 영화는 죽소.
영화가 없는 관객도 죽소.
영화와 관객의 관계망과 영화안으로 들어가는 관객의 관계속 진입.
이리 살펴보니 어떤 포지션의 차이가 보입니다.
인간은 신을 알 수 없다.. 뭐 이런 말을 하며 즐거워 하는 사람이 많은데
신이 어떻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슬픈건 신이나 개똥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사실 아닐까요?
신이 개똥보다 낫다거나 개똥이 신보다 낫다거나 둘이 똑같다거나 아무런 의미도 없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아무도 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걸 말하려는 것이었소.
범소유상 개시허망
여기서 이미 신은 죽었소.
신이 이미 죽었는데 즉견여래가 다 뭐람?
관객없는 영화의 죽음, 영화없는 관객의 죽음 둘은 동일한 포즈이오.
신도 제로, 인간도 제로
둘 다 지워진 상태, 완전히 표백된 지점.
거기서 신과 인간의 대화는 서로를 만들어 가는 것이오.
그것만이 의미일 뿐 그 이전의 전제는 모두 지워지고 말았소.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신이 있든 없든 무신론이든 유신론이든 마찬가지로 적용되오.
인간이 신을 이해한 만큼
신은 신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이오.
이는 소설이든 시든 만화든 영화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보편적인 낳음의 원리이오.
완전성이 상호작용에 있다는걸 이야기하는 것이오.
범소유상이 개시허망할 뿐 아니라
범소유상이 개시허망하다고 말하는 것도 허망하오.
허망하지 않은 것은 상호작용 뿐이며
상호작용은 손뼉이 마주치는 그 한순간에 성립할 뿐이오.
여래를 보는건 없소.
여래와의 하이파이브가 있을 뿐이오.
즉견여래
내가 여래를 볼 때
여래도 동시에 나를 보지 않으면 그 역시 개시좋망.
중요한 것은 내가 여래를 보았느냐 보지 않았느냐 혹은
신이 있느냐 없느냐, 인간이 신을 알 수 있느냐 없느냐의 부질없는 논란을 떠나
세상이 그러한 완전성의 원리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이오.
의미라는 것은 원래 그 순간의 손뼉의 마주침이오.
내가 손을 내밀 때 상대방도 손을 내밀어야 악수가 되오.
그러나 보통 사람이 하는 이야기는 대략
그 상대방이 없이 혼자서
손을 내밀었는데 악수실패, 허망해, 허망해, 허망해.. 무한반복.
혼자서 거울보고
악수하려니 실패하는건 당연하지.
완전해지려는 노력이 아니고,
그냥 만나면 완전해 지는 거로군요.
이미 감응이 되었고,
소통이 되었고,
상호작용 되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