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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460 vote 0 2013.02.28 (18:02:00)

 


    믿는 것이 힘이다


    이 개명한 과학의 시대에 종교가 여전히 번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한사코 무언가를 믿으려고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믿는 것이 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한다. 이 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확실히 아는 것은 힘이 된다. 알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몰라도 아는 척 하면 되지 않을까? 사실인즉 그러하다.


    아는게 힘이라면 아는척 하는 것도 힘이어야 한다. 앎의 편에 서면 된다. 굳이 모든 사람이 시시콜콜한 내막을 다 알 필요는 없다. 대표자 한 사람만 알면 된다. 나머지는 뒤에 묻어가면 된다.


    모세가 앞에서 길을 인도하면 무리는 모세를 믿고 따르는 거다. 성공이다. 계산의 원리를 몰라도 된다. 계산기를 믿으면 된다. 믿음은 앎의 편에 서는 거다. 앎을 존중하는 거다. 믿음이 힘이다.


    믿음 [명사] 1.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


    국어사전의 풀이가 이러하다. 이거 동어반복이다. 그러니까 믿음은 그냥 믿음이라는 거다. 하나마나 한 소리를 하고 있다. 국어사전이 잘못 씌어진 것이다. 이건 아니다. 메커니즘을 밝혀야 한다.


    믿음은 신용이다. 신용은 돈이고 돈은 자본이다. 자본은 생물처럼 스스로 성장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국어사전의 설명은 믿음의 이러한 본질을 나타내지 못한다. 믿음의 힘을 규명하지 못한다.


    최초의 한 사람은 알아야 한다. 나머지는 아는 사람 주변에 적절하게 포지셔닝해야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는 사람을 깔아뭉갠다면? 실패다. 믿음은 앎의 힘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최초의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진리다. 세상은 진리가 복제되어 이루어졌다. 만약 진리가 복제되는 메커니즘을 사회구조에 반영한다면? 앎은 널리 복제된다. 구태여 믿으려고 애쓸 이유도 없다.


    구태여 아는 사람 뒤에 줄 서지 않아도 된다. 누구든 인터넷에 접속하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진리의 구조, 앎의 구조와 맞는 포지셔닝을 세팅하여 앎을 증폭하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진리의 구조에 맞게, 앎의 구조에 맞게 포지셔닝하여 앎을 복제하고, 증폭하여 그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의 신도들이 실제로 그러한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그런 척은 한다.


    지식백과
믿음
[ belief ] 신뢰도, 확신도로 표현되는 믿음의 정도는 「참」인 것으로 추정되거나 그 결과를 알지 못하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


    위키백과
믿음은 어떠한 가치관,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 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 상태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떠한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으로 설명되어 있다. 철학, 사회, 정치 등의 분야에서는 일반적으로 신념(信念)이라 하며, 종교에서는 신앙(信仰), 신심(信心), 신앙심(信仰心)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백과사전이라 다를 바 없다. 한자 단어 몇 개를 덧붙여 놓았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의 반복이다. 믿음은 그냥 믿는 거란다. 그런가? 천만에. 믿음은 시스템이다. 사실이 아니라 시스템을 믿는 거다.


    믿음은 어떤 사실을 참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가 위험을 분산하여 일을 성공시키는 시스템이다. 주식회사 개념은 원래 영국 해적들이 만들었다. 해적질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10척의 해적선에 분산투자하여 그 중의 하나가 성공하면 본전을 회수하는 방법을 쓴다. 관건은 확률이다. 중요한 것은 이때 매커니즘을 작동시킨다는 것이다. 만약 인생을 이런 식으로 산다면?


    불안한 인도인처럼 교회와 성당에도 헌금하고, 이슬람사원에도 나가고, 절에도 시주하고 힌두신에도 기도하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삶의 모든 장면들에서 확률을 올리는 방법을 쓴다면?


    필자가 때로 선행을 하는 것은 노숙자가 불쌍해서가 아니다. 선행에 익숙해지는 것이 조금이라도 인생의 성공확률을 올리기 때문이다. 확실히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눈빛을 가지게 된다.


    그 눈빛을 알아보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악한 사람은 악한의 눈빛을 가진다. 그 사람의 성공확률은 낮다. 눈썰미 있는 사람에게 딱 걸린다. 새누리당 얼간이들처럼 표시가 난다.


    그런데 진정한 믿음은 을이 아닌 갑의 포지션에서만 가능하다. 을이 갑을 믿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약자가 강자에 의존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도박일 수 있다. 종교는 대개 허무한 도박이다.


    진정한 믿음은 사랑이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은 어떤 댓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성공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자식을 통해 성공하려는 치맛바람 엄마도 있지만 돼지들은 논외다.


    참된 사랑은 그 자체를 아름답게 완성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가능한가? 완전성에 의해 가능하다. 포지션 조합을 완성시킬 때 증폭되고 복제된다. 만날 것이 만날 때 그것은 이루어진다.


    정령신, 영웅신, 시조신, 관념신, 소통신이 있다. 신관이 다섯이므로 믿음도 다섯이다. 정령신은 약자가 강자를 믿는 것이다. 강한 사람 뒤에 가서 줄 서는 것이다. 아는 사람 뒤에 묻어간다.


    문제는 강자가 약자를 배반할 때다. 증권사의 애널리스트가 미리 주식을 매집한 다음 추천해놓고 개미들이 그 주식을 사면 팔아치운다. 강자가 약자를 등쳐먹는 것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영웅신은 장기전을 하는 것이다. 주술, 부적, 기도 따위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최면이다. 왜 그런 짓을 하지? 간단하다. 장기전을 하기 위해서다. 부족민의 수렵채집은 당장 성적이 나온다.


    아침에 사냥을 나가면 저녁에 성적표를 받는다. 어떤 집에서는 환호성이 쏟아지고 어떤 집에서는 실망의 탄식이 울려퍼진다. 사냥에 성공한 사람은 의기양양하고 실패한 사람은 기가 죽는다.


    문제는 시간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성적표가 돌아오는 간격이 길어진다. 농부는 봄에 파종하여 가을에 성적표를 받는다. 학생은 3년간 공부하여 입시 때 결판이 난다. 그 동안을 견뎌야 한다.


    (계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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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원래 믿도록 세팅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부처를 믿는다? 천만에요. 문장에 주어가 필요해서 아무거나 가져다 붙인 것입니다. 믿음은 가치를 증폭시키는 메커니즘입니다. 적절한 포지셔닝에 의해서 그것은 가능합니다. 잘못 포지셔닝하면 배반당합니다. 당하는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ahmoo

2013.02.28 (18:27:16)

캬! 죽인다.

[레벨:3]낙오자

2013.02.28 (20:04:58)

진정한 믿음은 사랑이고 사랑은 신의 포지션에서만 가능하다.

[레벨:11]큰바위

2013.02.28 (21:50:12)

그러니까 구조론이 종교고, 철학이고, 과학이라니까.

모든 것이 하나로 꿰지는 론!

 

과학과 종교가 하나로 될 때 즈음이면 많은 것이 정리되겠지요. ^^

 

학문도 냅따 찢어놓고 분과를 만들다가 지금은 통합 추세로 가는데,

음악을 수학으로 풀고,

수학을 종교로 풀고,

과학과 종교가 서로를 끌어안는 일이 상당히 많이 왔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신에 대한 정리,

종교에 대한 정리,

아무님 말대로 죽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2]이상우

2013.03.01 (00:38:55)

학교교육 성공의 확률을 점점 높이는 중.

한 사람의 앎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시키는 중.

계속적인 소통으로 아이디어가 샘솟았고 구체적인 시스템을 마련하여 프로그램 구동 직전.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3.01 (04:28:36)

다수가 이미 공유하고 있기 때문...

비유가 적절치 않을지도 모르지만..

석유와 같다고 생각...

우리가 생각할때는 석유보다 나은 대체재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석유에 의존.

모든 것 대부분의 것이 석유로 돌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

그래서 더디게 감.

특히 종교는 더욱더 그러하다고 보이고...

그 종교를 유지하는 틀을 버리면 할 것이 없어짐.

또한 다수에게 뭔가 획기적인 것이 한번에 전파되지 않는 한

다수의 상실감이 너무 커지기 때문이고, 다수가 그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하기 때문.

또한 다수가 뭔가 획기적인 것을 쉽사리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 그래서 시간이 필요해지는 것인데...

종교를 대체할 부분에서는 더욱 더 그러한 것처럼 보여짐.

또한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쉽사리 그것을 놓지 못함.

그래서 계속 가게 되는 것임. 언젠가는 유야무야 될 때까지...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갈아타는 방법밖에 없음.

병행을 하는 시기가 있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뒤에도 현대성을 갖고 여전히 건재하게 존재하려면...

서서히 갈아타는 방법임. 변화해가는 과정에 맞게 인식의 변화를 유도하면

모두 할일이 없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여전히 흐름을 타고 넘어갈 수 있다고 보임.

그래서 그것을 보는 리더가 중요해지기는 함. 최초의 그것을 본 한 사람이 가는 길은 어려울 수 있다고 보임.

[레벨:6]빛의아들

2013.03.01 (22:13:13)

기독교에서는 믿음을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너 믿어?  나 믿어! 이렇게 말하는 기독교인은  50점...기독교인....

기독교인은 믿는다고 말하지 않고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존재의 본질은  나의 믿음에 있지 않고  신의 존재에 있다.

믿음의 본질또한 나의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신이 선택한다는 의미는  신이 스스로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신의 존재를 보여줬으니  존재가 확인되면 믿을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지요.

 

신은 인간에게 존재를 알렸고  신은 직접 인간이 되셨고  그리고 신으로서

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단지 인간은 그 어리석음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것이 본질일것입니다.

 

그래서 신은 말했습니다.  보고 믿은자보다 보지 않고 믿은자가 더 복이 있다.

보고 믿는것은 믿음이 아니라 사실이기 때문에 인지한것이요.

보지 않고 믿는것이야 말로 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신은  우리에게   길을 제시할뿐!  끌고가지는 않습니다.

신이 제시하는 길은 힘들지만  참 행복이 있는 길이고....

인간이 원하는 길은 편하지만 끝은 후회가 막심한 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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