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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6]id: 15門15門
read 4300 vote 0 2013.01.21 (15:15:33)

크기변환_눈.jpg


비가 많이 오네요.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여전히 녹지 않은 잔설들이 남아있습니다.

문득 엊그제 일이 떠오릅니다. 얼마 전 눈이 많이 내려서 은퇴한 아버지와 저는

일을 나누어 마당과 길가에 내린 눈을 치웠습니다. 워낙 눈이 많이 와서 1시간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치웠더랬죠. 


그런데 며칠 뒤 저는 의아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건 아버지가 구석에 치운 눈을 다시

삽으로 마당에 흩뿌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뭐하시냐고 물어보니

아버지는 눈이 녹지않아 잘 녹으라고 마당에 뿌린다고 하시더군요.

저는 그래서 그래봐야 얼마나 녹겠느냐, 게다가 눈이 녹지 않은들 통행에 지장도 없고

정원에 치워놓아 녹으면 땅으로 다 스며들텐데 굳이 마당에 뿌릴 것은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들은 체도 하지 않으시더군요.


저도 조금 화가나 이럴거면 뭣하러 눈을 치운 거냐고, 결국 아버지가 눈을 치우던 다시 뿌리던

어느 하나는 쓸데없는 짓이 되는 거 아니냐며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아버지는 치우던 삽을 

제자리에 놓고 집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왠지 그 뒷모습이 쓸쓸해보여 괜한 말을

했다고 자책이 되더군요.


은퇴한 아버지가 한 쓸데없는 행동. 자꾸 생각이나 어설프지만 구조론의 사고를 빌려 되짚어

보았습니다.


아마도 은퇴한 자신이 불필요한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에서 시작된 일은

자신의 내부와 밖을 연결할 어떠한 관계 즉 일을 원했을테고 그러다 구석에 쌓인 눈을

보고 어떠한 불균형 즉 눈이 녹지 않음을 느끼고 평형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즉 눈을 녹여야 

한다 맥락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발견하고 그렇게 아버지가 마당에 눈을 뿌린 것은 아닐까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불필요하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결과가 이런 불필요한

행동일 뿐이라니 왠지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괜히 아버지를 엿보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오늘 비가 내려 모든 눈을 다 녹이고 있습니다. 조금 허탈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고도 무엇인가 씁쓸한 까닭은 아마도 아버지의 외로움과 닮은

저의 외로움을 발견하지 않아서일까 합니다. 아마도 제가 쓸데없이 제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이곳에 주저리주저리 올린 것도 아마 그런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마다 제가 가끔

떠올리는 영화장면이 있습니다. 바로 매트릭스인데요.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두 개의 알약을

건네죠. 가상현실 속에 그대로 안주하는 파란 알약과 적나라한 현실을 보여주는 빨간 알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입니다.


알약.jpg


여러분은 어떤 알약을 드시겠습니까?


[레벨:30]스마일

2013.01.21 (15:38:33)

저에게는 두명의 언니가 있는데요.

엄하면서도 정해진 시간에 일을 끝마쳐야 하는 큰 언니와

자유롭게 풀어주고 내가 하는 일에 전혀 간섭을 하지 않는 작은 언니.

 

만약에 두 언니 중 한명과 지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저는 큰 언니를 택할 것 입니다.

자유를 제약하는 큰언니는 사람을 긴장시켜서

부지불식간에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몸이 알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지만

 

작은언니는 마음이 넓어서 제가 게으르게 굴어도 별로 터치 않습니다.

일요일 하루종일 방바닥을 굴러도 마음씨가 넓어서 이해를 하기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게으르게 보낸 시간을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큰 언니와 보내는 것이 불편하고 긴장해야 하지만

저는 큰 언니와 있는 것을 택할 것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13.01.21 (19:00:21)

나이가 들어도 일하기 싫은 사람과 일거리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고 보이는데 ...
전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만 시간을 보내고 인생을 즐기고 싶어한다고 보이고... 후자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고 보이는데...
대체로 전자를 추구한다고 보이지만 현실은 후자인 경우가 많아서 ... 심리적 안정감보다 현실적 불안감이 더 크게 자신을 옥죈다는게 부조리이지 않을까..? 싶어지네요.
전자는 자식들이 다 맞춰주고 해줘야 해서 고생. 후자는 부모가 고생. 그러나 후자가 인간이 서로 같이 살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자식에게는 오히려 덜 고생. 장단점이 있지만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움직이면 좋으니 너무 지나치지 않다면 하시는데로 하시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저는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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