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이명박의 수상한 과학”
‘쇠고기는 아는데 인간은 모르는 조중동’

【서울=뉴시스】신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미신에 지나지 않으며 유대인은 결코 선택된 민족이 아니라고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지난 1954년 한 철학자에게 보낸 서한에서 밝혔다고 AFP통신이 13일 보도했다.(중략)

아인슈타인은 그간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에 지나지 않으며 과학이 없는 종교는 눈이 먼 것과 다름 없다"는 말을 남겨 종교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중략)

그러나 철학자 에릭 구트킨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신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있어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며 성경은 훌륭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어리석은 것"이라고 말했다.(하략) 유세진기자 dbtpwl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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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이 갑자기 이성을 말하고 과학을 말하기 시작했다. 늘그막에 갑자기 철든 소리를 하면 그것이 죽을 조짐이라는데.. 왜들 이러나.

소통이 안 되기로 유명한 이명박이 소통을 말하고 5년 내내 비이성적 선동을 일삼던 조중동이 과학과 이성을 말하고.. 웃기다.

과학 운운하는 이명박은 왜 종교를 믿는 것일까? 과학 운운하는 조중동 뒤에 왜 기독교 보수교단이 뒷배를 봐주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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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종교를 신앙하지 않지만 종교에 대해서 호의적인 편이다. 소년 때는 종교를 경멸했다. 호의적인 입장으로 바꾸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인간성의 본질과 그 한계를 충분히 깨닫고 난 다음이다.

종교를 극복하지 못하는 철학의 실패에 환멸감을 가진다. 종교를 극복해야 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다. 오늘날 종교의 번성은 철학의 실패를 반영하고 있다. 철학이 문제다.

과학과 종교는 부분충돌할 뿐 정면충돌하지 않는다. 일정부분 영역이 다르고, 서식지가 다르고, 나와바리가 다르다. 왜인가? 지식은 본래 반제품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완제품이 아니다. 그러므로 애프터서비스가 없다.

문제는 행동이다. 인간이란 본래 길이 있으면 그 길이 무슨 길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일단 가보는 존재이다. 우르르 몰려가다. 인간에게 있어 판단의 기준은 절대적으로 행동인 것이다. 이 점이 각별하다.

옳으니까 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가보고 가지면 옳다고 믿고 계속 간다. 가다가 길이 막혀서 못가면 그르다고 판정한다. 그게 인간이다.

지식은 그 자체로 인간으로 하여금 행동을 추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앎과 행함 사이에 강이 있다. 그 강을 건너서 앎과 행함을 일치시키는 것.. 그것은 철학의 몫이다. 그 철학이 빈곤하므로 인간이 종교를 찾는다.

알고보니 지구가 태양을 돌더라거나 혹은 알고보니 진화론이 맞더라거나 하는 따위 과학의 결론은 성경의 본질과 충돌하지 않는다. 인간의 원초적 약점을 찌르고 드는 성경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과학은 귀납적 태도이며 귀납은 불완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과학은 현재도 불완전하고 미래에도 불완전하다. 완전한 과학은 없다. 과학은 단지 아는 것을 말할 뿐 모르는 것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만약 과학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모든 답을 제시한다고 믿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과학교 신도다. 그것은 이미 종교다. 과학은 명백히 한계가 있다. 또 한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과학의 겸허함이다. 오만한 과학은 위험하다.

인간에게는 연역적 태도가 필요하다. 답을 알고있다는 전제로 행동하기다. 당신이 어떤 운명의 기로에 섰을 때 ‘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그것이 당신의 정답이다.

‘불을 먼저 끌 것인가 아기를 먼저 구할 것인가?’ 과학자는 불을 먼저 끄고 종교가는 아기를 먼저 구한다. 왜? 믿음 때문이다. 그 믿음이 죽음에의 불안을 극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과학은 죽음의 불안을 해결하지 못한다. 왜? 죽음의 불안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죽을 위기에서도 높은 데서 뛰어내리지 못한다. 그러다가 결국 죽는다.   

두려움에 빠진 사람은 눈만 똑바로 떠도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 눈을 질끈 감고 비명만 지른다. 그러다가 죽는다. 역시 본성이다. 과학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은 본래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원초적 약점.. 인정해야 한다.

어떤 운명의 기로에 섰을 때 ‘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고 그 답을 자신의 답으로 하는 것이 종교다. 믿음있는 종교인이라면 고소공포증이 있어도 뛰어내리고, 두려움에 빠진 상황에서도 슬기롭게 극복한다.

무엇인가? 종교는 정확한 답을 주지 못하지만 정확한 답에 대한 태도를 가졌다. 과학은 그 태도가 없다. 점쟁이라도 그렇다. 어떻게 해야하지? 부적을 쓰라든가 뭐 엉터리 답을 준다. 맞든 틀리든 뭔가 대응할 태도를 결정해주는 것이다.

중요한건 행동이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막연한 지식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이다. 인지부조화이론.. 인간은 먼저 행동해놓고 나중 이론을 짜맞추어 그 행동을 합리화시킨다. 역시 인간의 얍삽한 본성이다.

여우와 신포도의 우화.. 자신의 행동을 먼저 결정해놓고 그 포도는 신포도였다고 이론을 만든다. 그게 인간이다. 인간은 행동에 대한 지침을 필요로 한다. 과학이 주는 지식은 행동과 직결되지 않는다.

앎을 행동과 연결하는 것은 종교나 철학이나 문화다.

종교란 무엇인가? 그것은 완전성에 대한 태도이다. 종교는 그 태도가 있고 과학은 그 태도가 없다. 인간에게는 본래 완전을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 왜? 완전해야 통하기 때문이다. 비로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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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쇠고기가 문제인가? 음식은 문화다. 문화와 종교는 맥락이 같다. 완전성을 전제로 한다. 문화는 행동이다. 게임을 하든, 도박을 하든, 스포츠를 하든, 노래를 부르든, 춤을 추든 문화에는 완전성에의 추구가 있다.

완전한 한 판이 있다. 롯데와 삼성이 시합을 하면 누가 이기든 완전한 답이 나온다. 한 곡의 음악을 들어도 그러하고, 한 편의 소설을 읽어도 그러하다. 완전성이 있다. 결말이 있다. 끝이 있다. 그러므로 행동을 추동한다.

쇠고기에 대해 확률 운운하는 명박짓은 언뜻 과학적 태도로 보이지만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그 과학에 인간이 빠져있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조금도 탐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에 대해 매우 무지하다.

그들이 인간을 알았다면 그리 바보짓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행동을 우선하며 모든 행동은 완전성을 전제로 한다. 불완전한 상태에서 인간은 행동하지 않는다. 꼼짝도 안한다. 믿음이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는 과학과 확률은 믿음이 아니다. 완전이 아니다. 행동하지 않는다.  

발가벗고 거리를 걸어도 된다. 그런데 왜 모든 인간들이 옷을 입고 다닐까? 거추장스럽게도 말이다. 인간이 완전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옷을 입어도 양식이 있다. 양복저고리에 핫바지는 바른 양식이 아니다. 완전하지 않다. 문화다.

손가락으로 먹어도 되고 발가락으로 먹어도 되는데 왜 꼭 숟가락으로 먹을까? 문화다. 문화는 완전성을 추구한다. 숟가락으로 먹는 것이 완전하다고 한국인들이 그 문화의 양식에 합의해버린 것이다.

문화는 양식이며 양식은 완전의 양식이다. 석가탑은 기하학적 대칭미의 완전성을 추구하고 다보탑은 또다른 풍성함의 완전성을 추구한다. 바로크양식이든 로코코양식이든 나름대로 완성에 대한 태도와 입장이 있다.

‘이렇게 해야 완전하다’는 나름대로의 입장에서 외침소리가 있다.

종교는 완전을 전제로 한다. 성경은 완전하다고 주장된다. 부처님은 완전하다고 주장된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양식이라는 점이다. 사찰의 가람배치나 온갖 양식이 완전성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기 때문에 민중이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교리는 나중문제다. 계율이 어떻고 따위는 부수적인 것이다. 그것은 정하기 나름이다. 완전에 대한 태도가 인간으로 하여금 행동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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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들이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이유는 반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과학은 그 어떤 운명적인 기로에서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질문 앞에 침묵한다. 그 잘난 대학교수들은 아직도 침묵하고 있다.

점쟁이라도 허튼 답을 주는데 과학은 아무런 답도 주지 않는다.  

완제품은 무엇인가? 행동을 추동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완전성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일관된 미학적 양식으로 소화해 내는 것, 품격있는 문화적 행동으로 발전시켜 내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지성인이다.

지식과 지성의 차이는 행동에 있다. 구체적인 액션을 일러줄 수 있는 사람이 지성인이다. 말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속에서 녹여내어 보여주는 사람이 지성인이다. 권정생 선생이 그러하듯 실제로 그렇게 살아내어야 하다.

인간이 종교를 신앙하고 점쟁이를 찾고 문화를 추구하고 양식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행동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지식은 그 자체로는 행동과 상관없다. 지식과 행동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철학이다. 미학이다. 문화다. 양식이다.

완전하지 않으면 소통되지 않고 소통되지 않으면 인간은 행동하지 않는다. 완전성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이 문화다. 심미안을 키우는 것이다. 진위를 가려보고, 선악을 가려보고, 미추를 가려보고, 성속(聖俗)을 가려보는 눈이다.

우리에게는 완전이 필요하다. 확률은 필요하지 않다. 하느님이라도 그렇게 말하고 부처님이라도 그렇게 말한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했고 석가님도 그렇게 말했다. 그들은 완전성에 대한 개념을 인간들에게 심어주었다.

예수가 내게 준 지식은 없다. 그러나 그 실천은 내게 완전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었다. 본받아 나는 언제라도 완전을 추구한다. 그런 마음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과만 대화한다.

확률 운운하는 거지들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것이 내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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