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에서 이런 저런 소통의 모습을 보지만,
아직 아카데미 회원은 아니기에 가끔 정보와 소통에 제한을 느낍니다.
때때로 소통의 불협화음을 보곤 하는데,
이기준 씨가 갑자기 사라져서 뭔 문제가 있는 것도 같고......뭔 일이 있었구나....... 추측할 수 밖에......
가끔 몇 분이 강퇴 당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의외의 전적인 신임을 받던 이기준 씨의 사라짐은 좀 의아하기도 합니다.
소통이 불통이 되었거나,
관계가 깨졌거나 한 걸텐데.......
구조적으로 뭔 문제가 있었구나 싶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이익 따라 움직이는 지라,
손해 나는 짓은 안하는지라......
몸을 사리긴 하는데, 가끔 그런 호기심이 사람을 잡기도 하고.......
구조론은 소통과 관계를 잘 규정할 뿐만 아니라, 말한대로 살아가는 그런 곳이길 바랍니다.
이 부분을 속 시원하게 말해 줄 사람은 없는지.......
나만 모르는 건가?
설명 감사합니다.
무슨 일이든 먼저 말하는 사람이 있고 나중 말하는 사람이 있지요.
먼저 말하는 사람이 옳을 것 같지만, 상대방이 와 보아야 사실이 밝혀진다는 옛말이 있지요. ]
두 달 반 전에 갑자기 구조론 웹이 해킹을 당했는지 자료가 사라졌다가 복구 된 적이 있고,
그 이전에 구조론 강의를 담당하던 이기준씨가 갑자기 사라지고 해서
궁금했습니다.
외국에 있는 사람으로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관계란 것.
아주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지요.
그리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각자가 꼴리는 부분이 있기에,
각자가 절대로 타협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에,
그리고 정말로 안다 안다 하면서도 모르는 부분이 있기에,
관계는 늘 어렵지요.
관계는 직관입니다.
그냥 첫 눈에 확 땡기는 뭐가 있고,
그래서 아무말 하지 않아도 통하는 부분이 있고,
오랜 세월을 같이 해도 절대로 이어질 수 없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요.
어떤 일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들이 직접 다루어야 할 것이지,
요청 받기전까지 제 3자는 개입할 수 없지요.
아무리 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도 함부로 그 일을 말할 수는 없지요.
갈등 혹은 분쟁 해결에 있어서 아이러니 한 것은
1과 2가 싸우다가 3이 중재한다고 개입하면 3이 독박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청을 하더라도 수준과 능력이 안되면 함부로 할 일은 아니지요.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갈등의 고리와 치원이 너무나 많아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뭔 문제를 안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개인의 차원, 가족의 차원, 집단의 차원, 사회적 차원, 국가적 차원, 더 나아가 국제 관계도 만만치 않으리 만큼 갈등이 산재해 있습니다.
갈등전환, 갈등해결, 소통..... 관계 이런 것은 모두 다 한 통속이라서 떼놓고 생각할 수 없죠.
몇 분이 이미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 학교 폭력을 위해 또래 중재 혹은 학생생활지도 관련 모임을 잘 이끌어 나가시는 것 같은데, 구조론에서 이런 전문가 한 두 사람 배출해 내는 것도 좋겠다 싶습니다.
다시한번 답글 감사합니다.
묻고 따지고 허락받고 해명하고 입증하고 해야한다면 끔찍한 겁니다.
이심진섬이 되면 잘못도 눈감아주고 잘해도 모른척하고 그런 거지요.
성격적으로 적절한 관계설정이 어렵다면 독립해서 하는게 맞습니다.
관계의 어려움 중 가장 큰 거는
남들 다 아는 문제를 본인만 모른다는 거.
이건 깨달음과 관련되는 문제.
기준님은 통제가 안됩니다. 연역론 모임은 만들었던데 잘 되길 바랍니다. 구조론을 자기식으로 풀어 놓은것이니까.
기준님의 문제는 공론화될수있는 장소를 잘못 선택한 겁니다. 구조론 하는 사람이 본보다 말에 매달립니다.
저는 아직도 기준님을 좋아하고 그가 하는 일이 잘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홧김에 서방질 한다는 말처럼 감정이 상했다고 제멋대로 분점을 차리는 건 좀 웃기는 일이죠.
이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론을 분쟁의 장으로 만드는 것은 안될 말입니다.
소통은 신뢰로 부터 출발하며, 신뢰는 각자의 존엄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됩니다.
의견의 다양성은 존중해야 하겠지요.
그러나 때론 다양성이라면서 잘못된 것도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달라는 고집과 아집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받으려면 충분한 소통을 해야하고, 자신을 제대로 드러내야 하겠지요.
마지막 말씀 "소통은 신뢰로부터 출발하며, 신뢰는 각자의 존엄을 인정하는데서 시작됩니다."에 밑줄 급니다. ^^
독립 하셨나 보군요.
언급하기 대단히 죄송한 제 3자이지만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언급하겠습니다.
솔직히(제 3자라서 더 궁금) 왜 동렬님이 유독 그분에게는 저렇게 관대할까
의문이었습니다. 그 분은 마치 자신이 동렬님의 '큰 신뢰를 받는 제자'처럼
행동했으니까요. 이런 말 하면 좀 뭐하지만 이 사이트의 품질을 참 떨어뜨리는
느낌이랄까요. 어느 곳에나 '약점'은 있구나 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왜 동렬님이 저 분에게는 절대 단호하지 못할까 하는.
글 쓰신 분이 '전적인 신임'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실제 그렇게 느껴졌으니까요.
(제 3자인 누가 봐도) 저는 그분이 사라진게 궁금한게 아니라 '왜 이제야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이트의 글만 이용하는 제 3자로서의 느낌이므로 제 느낌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그냥 단순 사이트 이용자로의 보편적 느낌만 전달한 것입니다)
즉 '어떤 사건이 벌어진'것이 궁금했던게 아니라 왜 '어떤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까'
라는게 궁금했다는 것입니다.
이기준씨 재미있는 사람으로 봤는데 조금은 평범하지않아보여 신선하기도 했고 안보여서 궁금했는데 옛날 이십대때의 내모습같아보여 살짝 아슬아슬해 보였습니다. 이심전심을 강조하느데 인간관계에서 정말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런경우 만나기 쉽지않고 인생 반쯤 살아봐도 한명 만나기도 쉽지않아요.
무조건 더 깨져보면 알 것 같습니다. 저도 많이 후회하며 매 순간이 기회였음을 아는데 아직도 실천하는데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무조건 무거운 걸음으로 가야 할 듯 합니다. 시간을 두고 오래 관찰자가 되어 나도보고 남도보고 그러면 사이가 보이기도 할 듯 .
젊음은 좋지만 돌이켜보면 매일이 사고치는 날로 기억됩니다. 다만 사고치고 또 치고 또 치고 나중에라도 판금잘해서 도색열처리 잘하면 전문가아니면 사고흔적을 못 찾기도하지않을까요.
저도 궁금했는데 큰바위님덕에 의문을 해소했습니다
김동렬 님의 내공으로 어떻게 구조론 강론을 그리 오랬동안 담당시키셨는지 궁금할 따름이었습니다.
관계는 1초에 알아보는 거고, 필은 한번에 확~ 꽂히는 건데 말이죠.
어쨌든 대략 답이 되었습니다.
구조론을 아시는 분이라...
동렬님은 그같은 사태를 이미 예견했습니다.
부하지하님도 마찬가지 생각이었고... 저도 내심 불안불안했고...
그러나 우선은 주도권을 인정했습니다.
예수가 할일이 있고, 12제자가 할 일이 있습니다. 12제자라고 다 열두 제자인가요?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수제자고, 12제자를 능가하는 바울이 기독교 신학의 전반을 정립했습니다.
기준님이 구조론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구조론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며, 실제 사례 문제를 구조론적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데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선은 맡긴 겁니다.
잘되든 잘안되든... 기준님이 강의할 때 동렬님이 항상 같이 있었기 때문에 통제의 여지도 있었고,
강의 중간에 구조론 회원과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구조론은 뻗어 나가는 것이지 이 사람 저 사람
봐주려고 있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구조론의 발전방향과 기준의 생각이 일치하는 면이 많아서
주도권을 내어준 것이죠. 굳이 표현하자면 동렬님이 구조론 창시자, 기준님은 실천자,
동렬님은 발견, 기준은 발명, 동렬님은 창의, 기준은 기획을 한 것이죠.
어쨌건 잊을 만 하면 나타나는 포룡조님 같은 글도 어쩌면 김동렬 구조론이 뻗어나가야 하는데
뻗어나가지 못하는 교착상태에 대한 안타까움과 구조론에 대한 응원일 껍니다.
구조론은 분명 최고의 학문입니다. 저는 구조론을 접한지 9년째인데 실제 대화법에서 아이들 상담에서
구조론을 적용하면서 대화법의 상부구조, 교육의 방향으로 써먹고 있습니다. 특히 어려운 학교에 오니
그 진가가 더욱 빛이 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차근차근 풀어내겠습니다.
큰바위님께서도 구조론을 훔쳐서 큰바위님의 언어로, 큰바위님의 일에서 맘껏 사용해주십시오.
늘 한계로 여겨지는 것은 구조론 사이트에 오는 사람들은 구조론으로 자기 것을 설명하기를 좋아하지,
정작 구조론을 사용하려고 애쓰질 않습니다. 구조론을 사용하려고 애쓰면서, 구조론의 이론을 찾아보는게 어쩔 땐 도움이 됩니다. 너무 이론적인 것에 치우치는 구조론 연구소의 동향 때문인 듯도 합니다.
이론은 동렬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각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구조론의 성과를 드러내면 그것이 구조론의 각론이 됩니다. 구조론에 대한 증명과 확산의 사례가 됩니다.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제 3자에 대해서는
자칫 명예훼손의 우려가 있으므로 말을 조심하는 겁니다.
경험으로 볼 때 그 사람이 사소한 것도 문제삼았으니까 또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제가 방금 '그 사람이 사소한 것도 문제삼았다'고 말한 것 조차도 문제삼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속을 알 수 없는, 예측가능하지 않은 사람,
이것저것 신경쓰이게 하는 사람과는 대화를 안 하는게 현명합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러는지는 나도 잘 모릅니다.
어쨌든 그 문제는 그 사람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이고
나는 본인 스스로 풀어라고 요구했고, 아직까지 답을 듣지 못하고 있으며
제가 보기에는 그럴 의도가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고 판단됩니다.
다른 곳에서 나를 비방하고 있다고 듣는데 이렇게 쓰면 또
'내가 언제 다른 곳에서 너를 비방했느냐.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하고 또 시비를 걸겠지요.
이렇게 하나하나 사소한 것까지 다 걸리는 사람과는 대화를 안 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을 길어지게 하면 곤란합니다.
친구관계라면 이심전심으로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제관계라면 전적으로 통제가 되어야 합니다.
주어는 없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라고는 말 안했어요.
누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 사람을 신임한 적이 없고
단지 어쩌냐 보자고 기회를 준 적은 있습니다.
이심전심 신임이 진짜이지 일일이 말로 하면 이미 신임이 아닙니다.
이 사이트에서 그 사람에 대해서 언급되는 일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랍니다.
물론 당장이라도 그 사람이 풀고 온다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다짐받아야 할 건이 100가지 쯤 되어 현실적으로 무리로 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면
친구관계가 되거나 아니면 사제관계가 되거나 아니면 연인관계가 되거나입니다.
어느 쪽이 되든 거기에 걸맞는 태도가 요구되는 것이며
물론 이심전심이 되면 다 필요없지만
그러한 관계설정의 필요성을 드러내면 이미 관계는 끝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