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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4168 vote 0 2009.05.18 (16:13:54)

18일 동영상 강의 해설입니다.

퇴계사상과 구조론

지난 겨울 퇴계를 비판하는 글을 여러 편 썼던 사실을 기억하실지. ‘퇴계혁명’이라는 책(김호태 저)을 권한 분이 있어서였는데, 그 분이 필자에게 책을 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략 살펴보았다.

책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저자는 10년 이상 퇴계를 연구했나본데.. 내가 써도 그보다 낫겠다 싶으니... 퇴계에 대한 새로운 내용은 없고 기존의 비판을 재반박하는 형식.. 알맹이 없는 거다. 자기 주장을 내놓아야지.

남의 주장, 남의 사상, 남의 글 가지고 어쩌구 하며.. 가공무역식으로 중간에서 끼워팔기 해서 부가가치 창출하는 짓은 정말이지.. 선비의 자세가 아니다. 작가 자신의 고유한 오리지널리티가 있어야 한다.

퇴계 역시 주자의 설을 베껴서.. 남의 사상 가지고 설레발이 치는.. 퇴계를 옹호하는 저자 역시.. 재미있는 사실은 저자가 남의 나라, 남의 사상에 푹 빠져 있는 한국의 강단학계를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는 점..

저자 본인도 남의 걸 팔면서 말이다! 나? 내게는 구조론이 있다. 이건 수입품이 아니고 기성품이 아니다. 복제품 아니고, 번역한거 아니고, 주석한거 아니다. 백퍼센트 내 머리속에서 나온 것이다.

10년 간 대한민국 땅을 스무바퀴 이상 걸으면서 내 배 아파서, 내 안에서 낳은 거다. 이문열이 삼국지 저자로 학생들 착각하게 만들어 지하의 나관중 저작권료 소송걸게 만드는 그런거 아니다. 근본이 다르다.

이제는 정말이지 고유한 우리사상, 우리철학, 우리가치, 우리기준, 우리저울, 우리권리, 우리양식 찾아야 한다. 그것은 골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틈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천하’에서 나오는 것이다.

보편주의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천하’를 보는 눈을 뜨지 않으면 안된다. 그걸 해낸 사람이 율곡. 그러니 그만큼 율곡의 사상은 성리학의 본질에서 멀어졌다. 당연하다. 그런데 저자는 그걸 비판한다.

성리학이 이(理)를 숭상하는 학문인데 기(氣)를 주장하니 율곡은 성기학이 아니냐는 식이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주자의 사상도 공자의 사상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다른 것이어야 한다.

퇴계는 그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사상가일 수가 없다. 단지 인간심리를 좀 아는.. 처세술의 달인.. 그의 경(敬) 개념이 처세술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정적으로 유교를 종교화 시켜 놓은 장본인.

진리탐구의 결실이 아니라 인간통제술의 발달. 하여간 퇴계 덕분에 권력자는 편하게 되었다. 퇴계 때문에 인간들이 고분고분해졌으니. 그의 경 사상은 한마디로 ‘고분고분하게 말 좀 들어라’는 거.

퇴계를 비판하자면 한이 없고.. 구조론으로 돌아가서. 필자에게 책을 권한 분이.. 알 수는 없지만.. 필자의 구조론적 접근에 관심이 있었다 치고.. 구조론으로 본 사단칠정론에 관심이 있었다 치고.

이런 이야기 하는 이유는 저자가 ‘사단칠정’을 모르는 것 같아서다. 하긴 누군들 알겠냐마는. 그렇다면 그 동양학의 뿌리를 한 번 캐보자는 거다. 동양정신의 발원지를 거슬러올라가서.

한강은 검룡소에서 시작되고 낙동강은 황지에서 시작된다. 유교는? 대한민국의 모든 산은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와 지리산에서 마친다. 공자는? 발원지가 없다. 형이상학이 없다.

학문의 발원지가 형이상학이다. 구조론에서 다루는 존재론으로 말하면 어떤 것이든 그것이 존재하기 위하여서는 ‘소속, 영역, 파트너, 포지션, 임무’가 차례대로 있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없으면 존재가 부재다.

포지션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학문을 유도하는 절차를 해명해야 하기 때문에.. 학문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말하면 안되고.. 명확한 출처를 제시해야 하므로.. 형이상학의 자리에 대신 가져다 둔 것이 주역이다.

말하자면.. 공자의 예(禮) 개념이 ‘인류문명이라는 자동차의 운전’이라면 그 자동차의 출처를 밝혀야 하는데, 공자는 그것을 논하지 않고 저자불명의 주역을 추천했다. 말하자면 공자철학의 근거는 주역인 거다.

그런데 주역은 점 치는 책이다. 이건 넌센스다. 황당하다. 직접 읽어보면 알 거다. 결론적으로 공자의 모든 사상은 근거가 없다. 공자 자신이 근거를 대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되면 학문이 가지를 쳐나가지 못한다.

자동차운전학원은 있는데 자동차는 없다? 공자는 자동차도 없이 자동차운전교습학원을 운영하는 자란 말인가? 그래서 보강작업이 시작되는데. 첫 아이디어는 동중서의 천인감응설이라 볼 수 있다.

하늘의 원형이정이 인간의 인의예지로 전개된다. 하늘과 인간은 닮는다. 이 점은 ‘패턴’에서 시작하는 구조론과 닮았다. 구조론은 닮음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패턴에서 로직을 찾고 메커니즘을 찾고 패러다임을 찾는다.

주자가 이를 발전시켜 이(理) 개념을 제시했는데.. 이는 불교에서 아이디어를 빌린 바 된다. 그러니 금강산에서 1년간 불교를 공부한 율곡이 뭔가를 아는 거다. 또 주자학이 왕양명의 심학으로 발전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리(理)는 결이다. 리는 옥을 가공하는 장인이 원석의 결을 따라 가공한데서 나온 개념이다. 나무의 나이테를 목리(木理)라 하는 사실로 알 수 있다. 결은 길이다. 길은 도다. 그러므로 성리학은 도학이다.

길에는 네거리가 있다. 그것이 심이다. 심은 core다. 그런데 퇴계 아저씨는 엉터리 번역의 옛날 천자문을 공부하다보니 심을 마음으로 잘못 이해했다. 천자문의 한자뜻풀이 중 다수가 엉터리라는 사실 알아야 한다.

심은 볼펜심과 같은 거다. 복숭아 속에는 씨앗이 있다. 그게 핵이다. 지구 속에도 핵이 있고 원자 속에도 핵이 있다. 모든 존재는 내부에 핵이 있다. 심 1과 날 2다. 핵에서 날로 가지치는 것이 리(理)다.

심(心)을 마음심으로 번역하지 말고 core로 이해해야 한다. 왕양명의 심즉리는 정확한 이해다. 구조론에서는 심 1과 날 2로 ┻ 모양을 하고 있다. 가운데가 심(心)이고 옆으로 뻗은 것이 리(理)다.

어떤 존재든 내부에 심이 있어야 하며, 심을 가진 존재를 외부에서 타격하면 저절로 박리되어 리가 생겨난다. 심과 리는 바퀴의 축을 이루는 굴대와 사방으로 뻗은 바퀴살처럼 항상 같이 가는 거다.

이심전심은 이 core에서 저 core로 통한다는 거다. 왜 심에서 심으로 통할까? 밀도가 같아야 반응하기 때문이다. 심과 날은 밀도차이가 있다. 밀도가 같은 것끼리만 반응하므로 소리가 전달된다.

무선전화가 연결되고 안테나가 작동한다. 주파수가 같은 것만 공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림과 떨림이 있고 감응이 있다. 공명이 있다. 심은 소통의 중심이다. 심의 밀도가 다르면 공명하지 않는다.

주역의 핵심 개념이 무엇인가? 청나라 강희제는 주역의 원리로 중국을 통치하여 태평시절을 열었다는데 강희제 본인의 표현을 빌면 ‘밸런스 원리’다. 이 부분은 구조론과 닮아 있다. 밸런스가 포지션을 낳는다.

문제는 주역의 원리와 퇴계사상이 일치하는가이다. 아니로소이다. 퇴계는 주역의 정신에서 벗어났다. 그는 리(理)와 기(氣)를 차별하여 밸런스를 무너뜨렸다. 통치자와 민중 사이의 밸런스가 무너져 조선은 망했다.

주역의 밸런스 원리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늘의 원형이정이 인간의 인의예지에 반영된다. 무엇인가? 심즉리다. core에서 날로 전개한다. 그것은 도다. 도는 길이다. 길은 결이다. 결은 리(理)다.

원형이정은 사계절로 나타난다. 사계절은 시간의 길(道)이다. 그래서 태극기에는 건리감곤 네 괘가 있다. 음양이라는 core에서 4괘라는 날로 전개한다. 퇴계는 이 패턴을 사단칠정 개념에 적용한다.

사단이라는 이가 칠정이라는 기를 지배한다는 논리. 그러나 이는 국어공부를 게을리해서 일어난 착각에 불과하다. 이와 기가 무엇이 다른가? 간단히 말하면 이는 수학이고 기는 과학이다.

수학은 논리게임이다. ‘A면 B다’의 규칙. 과학은 거기에 에너지를 태운 것이다. 이라는 자동차에 운전수가 올라타면 기가 된다. 야구, 농구, 축구, 배구의 공통된 규칙은? 두 팀으로 나누어 공으로 경기하기.

이렇게 공통점만 뽑아놓은 것이 리. 기는? 구체적인 스포츠 종목이다. 야구라면 방망이도 필요하고, 배구라면 네트도 필요하고, 축구라면 골대도 필요하다. 이에 에너지를 올려태우면 기가 된다.

이라는 자동차에 승객을 태우면 기가 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왜 그게 사단칠정론이 되느냐다. 근대의 개념으로 말하면 리는 합리성이다. 합리주의를 품으면 인, 공유하면 의, 실천하면 예, 파악하면 지다.

말하자면 인의예지 사단은 억지로 주역의 4괘에 끼워맞춘 거고, 억지로 원형이정의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시간의 길에 맞춘 거고, 그러니까 글자수 맞추기 게임이고, 근대개념으로는 그냥 ‘이성’이다.

인의예지가 있는게 아니고, 그냥 이성이 있는데, 그 이성을 품고(인), 그 이성을 공유하고(의), 그 이성을 실천하고(예) 그 이성을 파악하며(지). 넷으로 짜맞춘 것은 중국사람들이 원래 4언절구를 좋아해서다.

천자문도 천지현황, 우주홍황, 일월영측, 진숙열장 하며 4자로 맞춰놓았다. 7정은 무엇인가? 존재론은 소속, 영역, 파트너, 포지션, 임무로 전개한다. 세번째 파트너에서 짝을 짓는다. 절대성이 아니라 상대성.

짝을 지으면 대상이 있으므로, 구조론의 세번째 가역원리에 따라 (반복, 연속, 가역, 분할, 순환) 내가 결정하는게 아니라 상대방이 결정한다. 이 경우 선악, 플러스 마이너스는 공존하게 된다.

희노애락애오욕에서 애라면 사랑이다. 얼마나 많은 살인사건이 사랑때문에 일어나는가? 사랑이 선하지 않다. 욕은 욕망이다. 인간의 욕망이 문제를 일으키지만 문명의 진보는 욕망이 일군 것이다.

노는 성냄이지만 거룩한 분노가 518의 항쟁을 낳았다. 희노애락애오욕이 모두 선으로도 혹은 악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그 이유는 구조론의 가역원리 때문이다.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결정하니까.

구조론으로 말하면 소속은 절대적이며 영역, 파트너, 포지션, 임무로 갈수록 점점 상대적으로 된다. 총은 파트너를 괴한으로 만나면 악이 되고, 경찰로 만나면 선이 된다. 그 방아쇠에 누구 손가락이 걸리느냐다.

이가 기보다 우월하다는 퇴계의 발상은 자동차는 자동차운전보다 우월하다는 주장과 같다. 자동차는 아직 운전수와 승객이 타지 않았으므로 사고가 나지 않는다. 반면 자동차운전은 필연 사고를 부른다.

게다가 기름값도 만만찮다. 감가상각비도 든다. 자동차는 타인에게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으므로 무조건 좋은 것이요, 자동차운전은 기름값 들고 중고차 되고 사고날 위험 있으므로 제한적으로 좋다.

●이 - 자동차를 주겠다≫누구나 좋아한다.

●기 - 자동차운전 시켜주겠다.≫어떤 사람 좋아하고 어떤 사람 싫어한다.

그래서 자동차는 자동차운전보다 낫다? 이건 얼빠진 소리다. 모든 자동차는 운행되기 위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율곡의 기일원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소년은 천사와 같다.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그러므로 소년은 선하고 어른은 악하다? 그 소년은 결국 어른된다. 사과는 누구나 좋아한다. 그러나 사과잼은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싫어한다. 왜?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를 해야하니까.

이렇듯 존재론의 전개는 5단계가 있으며 전개의 정도가 심화될수록 선택이 복잡해진다. 존재론의 질에서는 누구나 좋아하지만 입자, 힘, 운동, 량으로 갈수록 궁합이 복잡해져서 좋거나 혹은 좋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왜 퇴계는 이와 기를 구분하였을까? 옛날 천자문이 한자번역을 잘못해놔서 퇴계가 한문의 어원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다른 이유가 없다. 본질은 따로 있다. 왜 인의예지 사단인가?

앞에서 말했듯이 인의예지 넷은 원형이정, 건리감곤, 사언절구에 맞추려고 억지로 나눠놓은 것이고 정답은 합리성 하나다. 그러므로 합리성 개념을 철저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무엇인가? 자기일관성, 자기동일성, 자기정체성이다. 인의예지가 중요한 것은 한번 하면 계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단이 자동차이고 칠정이 그 자동차의 운전이라면 처음 자동차를 잘 선택해야 한다.

자동차가 마티즈인데 운전솜씨가 F1일 수는 없다. 자동차와 자동차운전은 필연 연동된다. 사단과 칠정은 연동된다. 차가 슈퍼카라야 운전솜씨가 F1급이다. 이 점에서 율곡의 기발이승일도설을 정확하다.

기의 에너지원리가 이의 일관성 원칙을 태우고 가는 것이다. 에너지의 길은 논리의 길에 연동된다. 에너지는 절대로 일관성의 길을 간다. 율곡은 형이상과 형이하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이런건 중요하지 않다. 본질은 주자학에 숨은 중화주의다. 지금 모택동이 사방을 정벌하여 티벳과 내몽고와 만주를 자기네땅이라 우기지만 어디 사실이 그런가 말이다. 진실로 말하자면 신해혁명은 만주를 제외한다.

신해혁명은 청조를 타도하고 명조를 계승했다. 그래서 그들을 장발적이라 불렀다. 명나라 중국이 진정한 중국이다. 그들이 청나라때 얻은 대만과 모택동이 정복한 티벳을 자기네땅이라 우기니 ‘대중국주의’다.

주자는? 소중국주의다. 주자는 금나라 오랑캐는 중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중국은 중화민족의 중국이라 여겼다. 그의 이원론은 중화민족의 지배를 주장하는 것이다. 왜? 북송이 망해서 남쪽으로 쫓겼기 때문에.

비슷한 일이 한반도에서도 일어났다. 고려시대 김부식과 묘청이 대결한 이후 한국사의 큰 줄거리는 경주세력과 서북세력의 대결이다.(필자의 과거 글 참조) 그런데 조선왕조의 건국주역은 서북세력이다.

이성계는 중국계, 통두란은 여진족이다. 고려 왕씨 역시 중국계다. 그러므로 서북세력의 입지를 주장하여 국호를 고려라 한 것이다. 조선왕조 역시 건국주역이 서북세력이므로 기자조선을 더듬어 조선으로 국호를 정했다.

지금 우리 교과서는 다르게 기술했겠지만 이성계가 국명을 정할 때 기자조선으로부터의 중국쪽 연고를 강조한 것이다. 승자인 서북세력이 훈구공신 되고 패자인 경주세력은 두문불출하게 되었다.

권력에서 밀려난 경주세력이 소백산 남쪽으로 도망가서 영남 남인세력을 형성한 것이며 이들이 퇴계의 패거리다. 이들은 줄기차게 서북세력과 대결하면서 서북을 한국에서 배제하려는 소한국주의를 퍼뜨린다.

율곡은 출신이 북쪽이라 자연히 서북세력에 가담하고 이후 노론이 권력을 잡고 북벌을 추진하게 된다. 서북에서 정체성 찾기다. 퇴계에서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남인정서의 뿌리는 서북을 배제하려는 소한국주의다.

중국은 대중국주의를 표방하며 사방을 정벌하여 자기네땅이라 우기는데 우리는 왜 소한국주의를 표방하며 얻은 북한도 중국에 내주려고 하는지 나는 딴나라 인간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이름이 딴나라겠는가? 자기 나라를 남의 나라로 여기니 딴나라인 것이다. 개성공단 포기하고 금강산 포기하고 국토를 다 내주려고 한다. 왜 이런 짓을 벌이나? 뿌리깊은 경주세력의 습성이다.

퇴계 이원론의 이 개념은 인도 브라만 계급의 발상과 같다. 그들은 끊임없이 차별하고 분리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천하에 대한 개념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우리 것은 우리 조상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것은 진리의 보편성에서 나온다. 서북이 있고 그 위에 대륙이 있고 그 위에 세계가 있고 그 위에 우주가 있고 그 위에 신의 완전성이 있다.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서지 않으면 안 된다.

작은 한국에 안주하지 말고 보편진리, 보편가치, 보편원리에서 우리의 입지를 찾아야 한다. 퇴계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옛날에 쓰다버린 수입품이다. 율곡이 우리것이며 율곡은 보편주의를 주장했다.

율곡은 편벽에 서지 않고 보편타당을 추구했으므로 덜 한국적, 덜 성리학적, 덜 유교적이다. 진리는 원래 그렇다. 한국진리 일본진리가 따로 있으랴. 우리불교가 통불교이듯 유교도 일원론이어야 한다.

이와 기의 구분은 수학과 과학의 구분이다. 퇴계의 이발개념은 수학을 과학 위에 올려놓고 둘 사이에 계급을 가른 거다. 구조론으로 보면 수학이 과학에 선행한다. 율곡도 이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분리할 수 없다. 과학없는 수학은 존재가 없다. 수학없는 과학 역시 존재가 없다. 수학과 과학의 분별망상, 이와 기의 분별망상은 ‘나’와 ‘나의 몸뚱이’를 구분하는 것과 같다.

나의 정신은 높고 나의 몸뚱이는 낮다는 식이다. 그러나 하드웨어 없는 소프트웨어가 무슨 소용이랴. 존재론으로 말하면 소속과 영역과 파트너와 포지션과 임무는 항상 함께 가야 한다. 연동되어야 한다.

이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율곡의 완성이다.  

http://gujoron.com


프로필 이미지 [레벨:14]곱슬이

2009.05.19 (10:32:43)


수많은 이기심성론 전공자들 누구도 이기심성론에 대해서 10분 안에 간단히 알아먹게 설명해 주는 이를 못보았소.
10분안에 알아들을 귀가 없어서라는 핑계를 댈지도 모르지만,
10분안에 설명할 수 있어야 진짜라고 보오.
동렬님의 경주세력 서북세력이야기는 정말로 흥미진진하오.
예전에 처음부터 다 읽어보았소.
멋지오.
그동안 해석하지 못했던 부분이 확 밝아진게 있소.

재미있는 단편소설 주역은,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것 같소.
심심할 때 단편소설 한소절씨 읽는 즐거움이 묘하게 맛나다오.
영원한 스테디셀러로서의 가치는 차고넘치오.
주역을 설명하는 고인들의 풍부한 상상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소.
수천년동안 쌓인 인간 상상력의 결정체같소.

[레벨:1]퍼즐조각

2009.05.19 (11:04:26)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황석영은 왜 삼천포로 빠진걸까요?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09.05.20 (01:03:31)

과학 프로젝트를 하다가 느끼는 점인데,
'판짜기'에 능한 사람이 일머리를 아는 사람이더군요.
사건이니, 물질이니, 사안 자체에 매달리는 사람은 '진보'함이 없습니다.

늘 일이나 사물에 매달리는 현상이 나타나죠.
반면, 사건과 물질을 시간축에 놓고, 계량화시킬줄아는
(mass balance, energy balance, simple differential equation) 학자들은
사안을 주도합니다. 그들은 디자인할줄 알고, 예측할줄 압니다.
예측에 오류가 있을지언정, 시스템 밖에서 경계조건 (boundary condition)을 두고,
시스템 안에서 풀어냅니다. (solving for state variables).

--------------------------------------------------------------------------------------------------------------
김동렬님의 구조론적인 사고가 위와 같은 사상의 판짜기를 보여주고
그것이 '본질'을 드러나게 해줍니다.

동양사상의 문제점은, 그 사상의 근원인 '이데아'가 없다는데에 있습니다.
그 극점에 대한 철저한 고민이 부족합니다.

그러다보니, 한의학이니, 주역이니 하는 신비주의로 이끌어 나가는것이죠.
그것은 삿된것이지, 신의 방법이 아닙니다.

부연하자면, 김동렬님께서,

시스템의 '중립성'과 '우연성'을 구조론으로 해석할 뜻은 없으신지요.
이 두가지가, 우리가 오도하고 있는 경제현실이나, 정치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제어가능한 상태로 이끌어주리라 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5.20 (09:51:22)

말씀하신
시스템의 '중립성'과 '우연성'이

도무지 무슨 뜻인지 솔직히 모르겠소.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09.05.21 (05:14:38)

단초는 아래의 '디에셀'이라는 아고라 경방의 논객에서 나왔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76524

그리고, 우리나라 내에 있는, 합리주의에 대한 퇴행 (자연주의, 환경주의, 기철학 운운...) 에 대한 긴장도 주고 싶었구요.

저는, 대단한 이론을 만드는 사람은 아닙니다. 억지로 겸손하고자 함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합니다.

하지만, 이공계이론에서 오는, 시스템의 구조가, 김동렬님의 구조론과 맞닿아있고,

그 합리주의의 대승적결론속에서, 우리에게 처한 문제들을 풀어가야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 믿음 안에 '신에 대한 견고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5.21 (10:41:53)


그 인용한 글이
재미있는 아이디어이기는 하나

시스템의 중립성과 우연성이 왜 거기서 나오는지 모르것소.
참 대단한 비약이오.

문제는 그 비약이 원문을 인용하기도 전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거.
원문을 인용해 놓았으니 이제 약간 감을 잡을듯도 한데

그리고 구조론은 원래 중립이오.
그리고 중립을 표방한다는 것은 우성과 열성이 있다는 전제로 출발하는 건데

진정한 중립이면 우성과 열성이 있다는 전제 자체를 부정해야 하지 않소?
구조론으로 보면 진화는 생장구조이론에 의해 일어나고

생장구조이론이란
세포의 외형적 성장과 질적 성장간의 모순이라는 원초적인 딜렘마를 해결하기 위해

더 상위 단계의 모순을 끌어오는 연속적인 과정이오.
즉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더 큰 모순을 만드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오.

세포가 성장하면 덩치가 커지고 커지면 세포핵과 세포벽이 세포질을 통제할 수 없게 되어
구조가 깨지고 구조가 깨지면 죽게 되오.

즉 세포는 성장해야 하지만 성장하면 죽는다는 모순.
이건 마치 체조선수가 몸이 불어나면 체조선수로 활동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소.

운동을 하고 밥을 먹으면 근육이 불고 키가 커지고 선수자격 박탈이오.
운동을 하지 않고 밥을 먹지 않으면 역시 체조를 할 수 없소.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모순에 대한 대응책은?
더 큰 단위의 모순을 만드는 것이오.

이것이 사회진화 생물진화 모든 발전의 핵심원리이오.
신자유주의 담론과는 별개이나

굳이 연관시킨다면
신자유주의는 더 발전된 구조가 우월하다는 확신이 있겠지만

구조론에는 우월하다는 개념 그런거 없소.
단지 낮은 단계의 모순을 높은 단위의 모순으로 떠넘긴 것에 불과하오.

어떤 집에 불이 났는데 불을 끌 수가 없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불을 끌 수가 있겠소?

간단하오.
이웃집에도 불을 질러버리면 되오.

그러면 도시 전체가 불타게 될까바 소방서에서 와서 꺼준다오.
그게 부시와 이명박이 노상 하는 짓거리.

개인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만드는
미국 내부의 문제를 지구 전체의 문제로 만드는

테러 때문에 깨지는건 미국인데 인류 전체가 위협받는다고 호들갑을 떠는
지가 숙제 안해놓고 울고불며 난리쳐서 아빠가 숙제 대신 해주게 만드는 꼬맹이의 수법.

이것이 자본주의 진화의 핵심적인 전략이며
이 방법은 지금껏 사용되었고 앞으로도 사용될 것이며

옳고 그름을 떠나서 계에 위기가 닥치면 누군가는 그 짓을 할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세상은 그 방향으로 가게 되어 있소.

그러므로 그것을 알고 선제대응하는 전략이 주효한 것이며
그것은 오직 문화의 힘으로만 가능한 것이오.

선진국의 경제성장 원리는 대부분 후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전략이었소.
특히 사회민주주의 계열에서 잘 쓰는 방법인데

내 모순을 자식들에게 떠넘기고
자식들에게 빚을 대량으로 상속시키는 방법으로 그들은 부자가 되었소.

모르는 사람들이 이걸 비난하는데
자식들에게 빚을 떠넘겨야 자식들이 빚갚으려고 열심히 일해서 더 부자가 되오.

또 빚 좀 떠넘기면 어떻소.
자식은 우리세대보다 더 잘 살 것인데.

서구의 과잉복지로 인한 비용부담으로 파산한다는 소식
30년 전부터 나왔던 말인데 아직 잘만 굴러가고 있소.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 파산한다는 호들갑
자식들에게 부담 좀 떠넘기면 어떻소?

우리는 2만불 소득이고 그들은 10만불 소득일텐데
2만불이 10만불거 좀 빼먹으면 어떻소?

경제를 모르는 사람들이 헛소리 하는데
자식들에게 복지비용을 부담시키는 전략이야말로 현명한 수법이오.

힘있는 젊은이가 노약자 부양하는건 당연하지 않소?
낮은 단위의 모순을 큰 단위로 떠넘기고

개인의 방탕함으로 생긴 빚을 국가에 떠넘기고
특정국가의 빚을 인류전체에 떠넘기고

자신의 빚을 후손에게 떠넘기고
이러한 혼란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경제는 발전해왔소.

그 이치를 아는 사람이 경제를 담당해야 인류가 번영하오.
그 번영이 재앙으로 치닫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지마는.

그 재앙에 대해서도 인류는 곧 무감각해질 것이오.
신종 플루로 좀 신경이 곤두서기는 했지만 곧 무감각해져서 다시 뻘짓하고 다니듯이.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09.05.21 (11:23:16)



한 시대와 인물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맞물리고 연동됨에 있어......궁금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고려말의 최영과 이성계의 관계, 이성계와 사육신의 관계는 구조론의 관점으로 본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고, 원이 미쳤던 영향과 명이 미치는 영향이 혼재되어 있었을텐데...
그리고 조선의 개국은 구조론으로 볼 때  정당한 것이었는지요.

^^;..윗글 본문에 합당한 질문인지는 잘 모르겠으나....궁금해서 드린 질문입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5.21 (11:53:03)


당시 정세는 상당히 복잡하게
그리고 급박하게 돌아갔는데

우리 역사책에는 이 부분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설명이 곤란합니다.
백지 위에 새로 설명해야 하는 판에 제가 역사전공자도 아니고.

진우량과 장사성은 남방세력에 해양세력이고
원나라와 주원장은 북방세력이자 화약무기 세력인데

결국 주원장이 원나라의 화약무기를 사용하여 남방세력을 꺾고 천하를 오로지하게 됩니다.
여기서 경주세력이며 최씨 무신정권의 후예라 할 최영장군은

남방세력인 장사성 세력을 받아들여 북방세력을 물리치려고 합니다.
장사성은 해양세력이자 상인세력인데 주원장에게 패하고 잔당들이 고려로 탈출해 왔습니다.

이성계 등의 출정할 시점에는 정세가 상당히 급박하게 돌아가서
요동을 정벌할 기회를 놓쳐버린 결과로 됩니다.

물론 이성계가 북진을 계속했다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결국 중국은 항상 북방을 차지한 자가 먹었습니다.

중국역사 이래 남방을 차지한 자가 승리한 적은 없습니다.
초패왕이 북방을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망가진 결과와 같지요.

무엇인가 하면 중국을 지배한 자는 북방 유목민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북방은 오랑캐다 상종하지 말자 하고 반대만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겁니다.

화약무기로 쳐들어오는데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원래 최영과 이성계는 같은 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우경화 되었습니까?
클린턴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말입니다.

구소련이 망하고 동유럽 각지에서 유태인들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이 인간들은 빈털털이라 악이 받쳐 있습니다.

갈때까지 간 유태인들이 러시아에서 폴란드에서 헝가리에서 유고슬라비아에서
이스라엘로 쏟아져 들어와서 팔레스타인과 싸우자고 부추깁니다.

그 숫자가 많지 않아도 정국에 주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한국도 한 줌도 안되는 탈북자들이 여론을 바꿔서 우경화 시켰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중국에서 탈출한 장사성 세력이 여론을 움직여서 전쟁의지를 높였고
고려는 긴 잠에서 깨어나 세계무대에 제대로 한번 데뷔해보려 했는데

아 주원장이 일찍 싸움을 종결시키는 바람에 최영장군의 꿈은 무산되고 말았지요.
일단 최영의 정벌시도는 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한 것이고

이성계의 회군은 비겁한 짓이지만
이성계 역시 본질은 정벌찬성에 있었던 것입니다.

가다가 명나라가 세게 나오니까 승산이 없다고 보고 돌아왔던 거지요.
이성계의 회군은 분명 잘못한 겁니다.

그러나 어쨌든 주도권은 북방세력으로 넘어갑니다.
그 상황에서 국가를 통제할 수 있었던 세력은 그 사람들 밖에 없으니까요.

상황이 북쪽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북쪽과 연고가 있는 사람들이 정국을 주도하는 겁니다.
어쨌든 장사성 세력에 올인한 최영은 장사성 세력의 패퇴로 머쓱하게 된 것입니다.

명이 이겼으니까 명에 붙은 이성계가 옳다는 주장은 결과론이고
당시에 세게 한번 붙었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광해군의 전쟁기피 역시 비겁한 행동입니다.
역사에는 봐주는게 없습니다.

이기는 편에 붙더라도 한바탕 하고 붙어야 몸값을 인정받습니다.
그냥 굴복은 최악입니다.

조선의 개국은 이성계 개인의 집권이 아니라 중국에서 쏟아져들어온 난민이 끼친 영향으로
새로운 기운이 크게 일어난데 따른 자연스러운 새로운 세력의 집권입니다.

최영을 비롯한 경주세력의 구귀족 패러다임으로는
정국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해 있었던 것입니다.

이성계와 사육신은 뭔가 안맞는 이야기인데
사육신은 세조 때 이야기 아닙니까?
 











프로필 이미지 [레벨:20]아란도

2009.05.21 (13:53:45)



^^...감사합니다.
사육신이 아니라 정몽주가 들어가야 얘기가 맞겠네요.

명의 주원장이 무섭게 기세를 떨치고 있을 무렵이고 원은 눈치볼 대상이 아니었음으로
주원장에게 이성계가 겁을 먹었는지,실리를 취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고려는 명나라가 들어섬으로 인해서 무너졌다고 해도 맞겠네요. 권문세족이 판을 치던 고려였으니 주원장에게는 좋게 보일리가 없었겠지요.
그틈을 노려 이성계 일파는 조선을 개국한 것이구요.
이래도 저래도 고려는 재기불능상태였을 것이고, 새로운 나라에 대한 염원은 성리학자들에게 더욱더 간절해졌을 것 같구요.성리학적 이상을 펼칠 무대가 필요하니까요.

그러고보면 역사적인 상황은 마치 데자뷰현상처럼 계속하여 반복되고 그러한 패턴은 복제되어 나타나고 있는것 같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생기고,권력을 다투고 ,왕조의 계승의 형태며 흥망성쇠까지..... 언제나 복제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시대의 흐름에서 역사를 보고 인물에서 역사를 보고, 알아가며 안목을 길러보는 역사공부 재미있습니다.감사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09.05.21 (14:49:10)


정몽주는 원래 이성계와 같은 패거리였습니다.
정도전과도 비슷한데 권력창출에 방해가 되니까 이방원 등이 제거해버린 거지요.

이성계가 회군을 했을 때는 왕조건국 까지는 계획이 안나갔습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계속 갈등이 일어나서 먼저 정몽주가 제거되고 다음 정도전이 제거된 거지요.
조선왕조의 건국이 어느 면에서 사대부 계급의 이념적 등장이 있지만 서북세력의 등장 측면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축은 중국에서 몰려온 이주민들이
'중국에서는 이렇게 하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하냐?' 하고 갈궈서 혼란이 일어난 겁니다.

그러니까 본질은 산업에서의 혁신입니다.
수경재배 등 농사기술 측면이지요.

신라 때는 대장간이 적어서 철기를 공급받을 수 있는 도시 중심으로 번영했고
신라말에 철기가 보급되어 농민들이 농촌으로 달아나서 도시가 쇠퇴하였고

(전성기 경주 인구 100만 이상 고려 개성인구 10만 이하)
고려대에 면화 등 새로운 작물이 들어오고 깊이갈이와 물논경작이 전해져서

생산력 혁신으로 귀족들의 대농장보다 사대부들의 소작농이 더 효율적이어서
그것을 반영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절실해졌을 때

중국사람들이 몰려왔고
서북이 중요해져서 중앙집권화 경향으로 귀족들의 지배가 불가능해진거지요.

또 왕조가 사대부의 지지라는 새로운 권력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에
귀족들과 나눠먹을 이유가 사라진 거고.



[레벨:17]눈내리는 마을

2009.05.21 (14:28:14)

커피샵이 하나 있습니다.

로컬에서 재배된 커피땅콩으로 가공된 커피를 팔죠.

커피값? 얼마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인터넷으로 작업도 하고, 만남도 가지고, 커피한잔하면서,

내는 돈 일만원정도, 감수하면서 살아갑니다.

벽에 걸린 모네의 그림도 괜찮고, 감청색으로 치장된 벽지도

상큼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만, 수출해서 돈벌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현재, NBA 메인서포터를 자처하는 것은 기아자동차입니다.

뼈빠지게, 공장에서 일하고, 심지어 하청에서 일해서 보낸 자동차 판돈의

많은 금액이, 외국농구단 잔치에 쓰여지고 있는 셈입니다.

혹자는, 그래서, 한국이 더 많은 자동차를 팔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도요타나 닛산 자동차의 후발주자일뿐입니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결국은, 우리 브랜드로 승부해야할 시대가 올겁니다.

다행히, 핵심기술이라고 할 이공계의 기술들은, 묘하게도,

확장하면서 평등구조로 가고 있고,

물리나 화학교육에서 우리가 선제공격을 할수 있다면,

그렇게,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창의 할수 있다면, 못할 일도 없다는것이 제 생각입니다.

피할것은 다만, 구시대의 악령. 신비주의, 음양오행, 선따위의 서구 히피들이나 마약먹으면서

주억거리는 것뿐. 삿된것은 피하는것이 유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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