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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1577 vote 0 2012.11.04 (13:02:34)

 

    돈오의 의미

 

    돈오와 점수의 돈점논쟁은 5조 홍인을 계승한 혜능과 신수의 대조적인 행보로부터 촉발되었다. 홍인이 혜능에게 법통을 넘겨주었다는 주장은 혜능무리의 입장일 뿐 혜능과 신수가 둘 다 홍인을 계승한 것이 사실이다.(의발을 전수했다는 증언은 후대에 꾸며낸 거짓이라고.) 선의 개념을 정립한 사람은 신수이고, 그것을 실천한 사람은 혜능이기 때문이다.


    가야금이 하루종일 현을 팽팽하게 당겨놓고 있더라도 연주자의 손길을 만나지 못하면 탱글탱글한 소리가 나지 않는다. 반면 늘어진 줄이라도 능한 연주자를 만나면 깊은 소리를 토해낸다. 신수의 점수론은 한 마디로 가야금 줄을 팽팽하게 당겨놓으라는 말이다. 정신차리라는 말이다.


    옳은 말이긴 하나 그것으로 끝난다면 허무다. 반면 혜능은 패거리를 만들었다. 세력이 형성되자 혁신이 일어났다. 1700공안이 만들어졌다. 내부에서 폭넓은 상호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그 안에 현대성이 있다.


    현대성이 깨달음의 핵심이다. 시대와 공명하지 않으면 가짜다. 소리가 나야 종이다. 세상을 만들어가야 진짜다. 부단한 상호작용 안에서 저절로 현은 팽팽하게 당겨진다. 인위로 당기면 가짜다.


    깨달음은 상호작용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간다. 그것은 음악가도 하고, 화가도 하고, 시인도 하고, 작가도 하고, 영화감독도 하는 것이다. 낡은 시를 암송하는 것은 의미없다. 새로운 작품이 끝없이 나와주어야 한다. 시대가 날로 새로우므로 예술도 날로 새로워야 하며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그 동안에 신수는 두타행을 행하였다. 두타행은 스님의 엄격한 계율을 지키고 수행하는 것이다. 밥을 구걸할 때는 하루에 한 번 구걸하되 일곱집만 돌고 그쳐라는 식이다. 돈오돈수를 주장한 성철스님도 철저한 두타행을 행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수행하기 위한 수행은 가짜다. 그것은 부단한 상호작용이 아니다.

 
    신수를 알아준 사람은 측천무후였다. 신수도 북종선을 일으켜 커다란 세력을 만들었지만 그 세력은 왕이 만들어서 머리에 씌워준 가짜다. 성철은 전두환이 불러도 나가지 않았다. 신수는 측천무후가 부르자 냉큼 달려갔다. 그 차이다.


    인간은 공동체적 동물이다. 친구를 갖고 관계를 맺게 되어 있다. 상호작용을 통하여 존엄을 추구하도록 되어 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유전자의 명령이다. 한 편으로 우주의 탄생원리이며 존재의 본질이기도 하다. 존재는 서로 관계를 맺고 부단히 상호작용 함으로써 발달한다. 부단히 새로워짐으로써 존재는 가치를 획득한다. 머물러 있는 즉 죽은 것이며 발달하는 즉 존재하는 것이다.


    문제는 친구를 얻기 위해 친구를 죽이는 자다. 잠시 친구를 얻기 위해 영원한 친구를 죽이고, 껍데기 친구를 위해 진정한 친구를 죽이는 자다. 관계를 맺기 위해 세상과의 더 큰 관계를 해친다.


    도덕이니 규범이니 예절이니 하며 그럴듯한 구실을 들이대어 인류의 상호작용 증대를 가로막는다. 그런 자도 유전자의 명령에 따라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충실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인류는 그런 쓰레기들을 솎아내는 유전자도 함께 갖추고 있다. 부단히 솎아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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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종상 트로피가 잘못되었다는건 누구나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우선 종 부분은 매우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다. 그러나 밑을 받치고 있는 두 인물은 두루뭉술한 오스카 디자인을 따르고 있다. 하나의 규칙이 아닌 두 가지 규칙이 어색하고 공존하고 있다. 한 줄에 꿰지 못했다. 벌써 길을 잃어먹은 것이다. 이걸 꼭 누구에게 배워야 하나? 이 정도는 그냥 아는 것 아닌가?


    5살 아이도 누더기 옷과 깔끔한 옷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누더기를 버리고 깔삼한 옷을 선택한다. 대종상 트로피는 그야말로 짜깁기한 누더기가 아닌가? 종의 용뉴 부분이 특히 크고 세밀하게 조각되어 지나치게 과시적이다.


    빌딩 수위가 입은 제복의 금단추를 연상시킨다. 부담을 준다. 게다가 당목도 없고, 종고리도 없고, 종각도 없는 부분품이어서 더욱 불편함을 준다. 밑을 받치는 사람이 한 명이면 곤란하다. 무거운 종을 들고 서서 벌받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두 명이어도 곤란하다.


    두 사람이 낑낑대며 종을 운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가 손 하나를 내려 여자를 만지고 있다. 무례하게도 말이다. 이거야말로 매너손이 아니잖아. 이는 조각가가 자기가 생각해도 한심해서 얼버무리려고 만든 포즈다. 불쌍하다. 이런 잘못에는 마땅히 화가 나야 한다. 참을 수 없어야 한다.


    5살 아이도 느낄 수는 있지만 설명할 수는 없다. 설명하지 못하면 포기해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혜능은 패거리를 만들어서 상호작용을 했기 때문에 방향제시가 가능했다. 신수는 혼자 토굴에 짱박혀서 두타행을 했기 때문에 방향제시가 불가능했다. 패션도 그렇다.


    각자 의견이 다르지만 여러사람이 상호작용을 거듭하다보면 일정한 방향이 나온다. 근데 정작 디자이너도 모른다. 그래서 아우디의 명장 피터 슈라이어도 한국기업 기아에 들어가면 잘못된 디자인을 해서 개망신을 하게 된다. 반대로 한국에서 죽쑤던 디자이너도 파리에 가면 유명 디자이너가 되어 금의환향 한다.


    한국에서 빛을 못 본 광고천재 이제석처럼 말이다. 그런데 금의환향 한 다음에는 다시 죽을 쑤던 옛날로 되돌아간다. 한국에서는 부단한 상호작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팀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낸시랭은 대단한 센스가 있지만 혼자라서 고전 중이다. 만약 서구에서 활동한다면 더 크게 성공했을 것은 뻔하다. 상호작용을 할 파트너가 주변에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낸시랭의 튀는 행동을 나무랠 것이 아니라 옆에서 보조를 맞춰줌으로써 그것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한탄해야 한다.


    깨달음을 말로 설명하는건 의미없고 패거리를 이루고 상호작용을 일으켜 붐을 타야 한다. 새로운 작품이 무수히 쏟아져야 하고 그 안에 현대성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유명한 공안 파자소암(婆子燒庵)을 인용하도록 하자. ‘달이 뜨다’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스님을 뒷바라지하던 보살 할머니가 있었다. 이십 년 동안 한결같은 정성으로 스님을 모셨다. 하루는 할머니가 딸을 시켜 수행 중인 스님의 암자로 들여보냈다. 딸은 노파가 시킨 대로 스님을 껴안으며 물었다.


    “스님, 지금의 심경이 어떠합니까?”
    “고목이 찬 바위에 의지하니 한겨울에 온기가 없다.”
    (枯木依寒岩 三冬不暖氣)
    노파는 불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내가 이십 년 동안 공양해 온 것이 이런 속물이었단 말인가.”


    노파는 곧 스님을 쫓아내고 암자를 불 질러 버렸다고 한다. 스님이 노파로부터 쫓겨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대답했어야 했는가 하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고목선이라고 한다. 고목나무처럼 우두커니 앉아있기만 한대서야 깨달음일 수 있겠는가? 신수는 15년간 토굴에 앉아있다가 그 고집통을 인정받아 측천무후에게 보상을 받았지만 그것은 모옌의 노벨상이나 마찬가지로 가짜다.


    웹을 검색해보면 ‘나라면 너도 20년간 고생했구나 하면서 여인의 등을 두드려 주겠다’는둥 하는 바보같은 소리가 많다. 문제는 포지션이다. 질문자와 포지션이냐 답변자의 포지션이냐다. 대답하려고 하면 이미 낚인 것이다. 왜 문제에 답을 하려고 하지? 왜 자기 포지션을 답변자 포지션으로 설정하지?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지?


    더 한심한 것은 고목이니 찬바위니 한겨울이니 온기니 하며 비교용어를 들이대는 것이다. 고목이 아닌 한해살이 잡초면 어떻고, 찬바위가 아닌 뜨신바위면 어떻고, 한겨울이 아닌 한여름이면 어떻고, 온기가 아닌 냉기면 어떻단 말인가? 비교판단은 맞다/틀리다에 해당된다. 이건 최하다. 그 위에 옳다/그르다가 있고, 그 위에 같다/다르다가 있고, 그 위에 있다/없다가 있고, 그 위에 이다/아니다가 있다. 최하층으로 시선이 닿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관심은 항상 최하로 향하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말단부야말로 접촉점이기 때문이다. 손끝, 발끝, 눈끝, 코끝, 혀끝, 좆끝으로 세상과 상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final이다. final은 빼낸다,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어원으로 보면 원래는 bone인데 뼈를 빼낸다는 뜻이다. 빼내면? 끝난다. final이면? 파이다. 끝단이 아닌 시작부분을 보아야 한다. 그리로 관심이 쏠려야 한다. 비교용어들을 사용하면 그의 관심이 말단부에 쏠렸다는 사실을 들키고 만다.


    ‘나라면 요런 식으로 대답하겠다’는 식의 대응은 이미 말단부에 관심이 가 있는 것이다. 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맞추려는 수작이 어찌 한심하지 않은가 말이다. 질문자가 갑이다. 을이 되는 즉 실패다.


    고목선은 실패다. 육조 혜능이었다면 이미 떠들썩해져서 문전성시가 되었을 것이다. 할머니에게 테스트 당할 처참한 지경으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단한 상호작용이 있었을 것이다. 스님이 먼저 떠나려 했을 것이고, 할머니와 친해졌을 것이고,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가사장삼 자락 붙잡고 매달렸을 것이다.


    창조는 내 안에서 그냥 툭 터져 나오는 것이다. 반응하는 것이고 소리가 나는 것이다. 시험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다. 대종상 트로피처럼 잘못된 것을 보면 화가 난다. 그래서 소리가 난다.


    그래서 상호작용이 있다. 상호작용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다. 뗄레야 뗄 수 없다. 종은 당목과 헤어지지 않는다. 당목에게 역할을 주기 때문이다. 가야금은 연주자와 헤어지지 않는다. 둘이 합쳐서 하나이기 때문이다.


    혜능이 진짜다. 돈오가 진짜다. 성철이 진짜다. 그 안에 팀이 있고 상호작용이 있고 헤어질 수 없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철과 내가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는 말에서 기수는 뛰어내릴 수 없다. 말이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현대성이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5]id: 땡건땡건

2012.11.04 (22:04:07)

대종상 트로피에 화가 나는 이유!

 

"잡힌 종은 울리지 않는법"

 

하지만 대종상 트로피는 아주 남녀 쌍으로 종을 잡고 있오.

 

이래서야 종이 울리겠소? 종이 울리지 않으니 대종상은 가짜요

 

그리고 더 화가 나는 건 여자는 두손으로 떠 받치고 남자는 한 손이요. 다른 한 손은 허리에 가있오.

 

다른 종이 울리고 있으니 이것 또 한 가짜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11.04 (22:09:12)

다른 종이 대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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