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 어렸을 때 다른 과목은 수우를 했는데 미술은 미라서 엄니가 미술학원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1년 정도 미술학원 다녀 그 후 우정도는 했습니다.
원래 손재주가 없어서 그림 그리는 재주가 없었고 하지만 초딩 때 아버지가 사 온 오디오 시스템 덕에 귀가 뚫렸는 지
노래는 누구보다도 잘하고 대중음악에 대해서는 듣는 것 만으로도 나름 평을 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하지만 악기는 기타 기본 치지만 그저 젬병.
김동렬님의 글 속 펌하는 사진을 보면서도 제가 별로 감흥을 못 느끼는 것은 시각과 청각이 다르게 발달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학에 대한 소실점을 못 찾아서인 지 궁금 합니다.
그리고 별도 질문은 징기스칸은 왜 부족을 통합하고-그 넓은 몽골 지역을 평정했으면 됐지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면서 그 개고생을 하며 유럽까지 갔는 지 입니다.어제 후배랑 술먹으면서 제가 후배에게 질문했었는데 그 녀석도 엉뚱한 얘기를 하기에 제가 김동렬님에게 물어보겠다고 하고 맺었습니다.
제가 물은 것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으면 합니다.인류 역사상 최고의 사태는 징기스칸의 정벌이라고 1999년 타임지에 나온 것으로 기억 하는데 양놈들의 착시 인가요?
새벽 한 시 넘어서 잠못자게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무슨 설명을 하라는 거요?
인류역사상 최고의 사태는 징기스칸의 정벌 맞소.
당시 서양은 등자가 보급된지 얼마 안 되어서 말타고 멀리까지 간다는 생각을 못하던 때였소.
글고 말만 타면 유럽까지는 한 달음에 가는 거요.
몽골과 유럽은 아주 가깝다니까요?
멀게 느끼는건 말 못타는 사람들 생각.
지구가 둥글다는걸 모르거나.
늦은 밤 답변 해주어서 고마울 따름 입니다.시간 대를 몰라 죄송합니다.
징기스칸은 왜?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
알렉산더가 마케도니아에서 인도까지 5000킬로를 갔는데
징기스칸은 유럽까지 4000킬로를 갔을 뿐이오.
조선시대에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통신사가 걸어서 열흘 걸렸는데
말타고 가면 징기스칸 시대의 몽고 변경(지금 몽고는 축소된 거)에서 유럽까지
대략 3000킬로로 잡으면 말 타고 한 달이면 충분히 가오.
조선시대 부산에서 함흥 가는데 슬금슬금 걸어가면 한달.
몽골인이 말타고 유럽까지 가는데 한 달
몽골인은 한 사람이 말을 다섯마리까지 데려감.
실제로 거리가 가깝소.
최장거리 원정은 미친 알렉산더지요.
그땐 기병이 적고 다수가 보병이었을테데
게다가 말의 등자도 없음.
유럽은 등자가 늦게 보급되었고
철갑옷 갑옷 무게가 70킬로 이상
게다가 유럽말은 쟁기끄는 농업용 뚱보여서 못 달림.
요즘 경마장 말은 아라비아 말임.
그림을 보는 것과 그리는 것은 다르지요.
그림을 보는 것도 색깔을 보는 것과 구조를 보고 맥락을 보는 것은 다릅니다.
절대음감을 가진 사람이 음악을 잘 하는 것은 아니구요.
그림을 잘 그리다가 고작 간판쟁이나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현세는 그림을 잘 그리는데 그림을 못 그립니다.
그 그림과 그 그림은 다르지요.
개인차는 분명 있습니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몽골은 의외로 유럽과 가깝습니다.
우리는 중국의 북쪽에 몽골이 있다고 여기는데 착각입니다.
몽골은 아랍과 중국을 밑변으로 한 삼각형의 꼭지에 있습니다.
비행기가 북극항로를 따라가는 것과 같지요.
당시 기독교가 몽골에 전해져 있어서
징기스칸의 양아버지인 옹칸이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랍상인들도 와서 징기스칸의 부하가 되었습니다.
아랍상인들이 아랍의 상권을 독점하기 위해 징기스칸의 아랍침략을 부추겼습니다.
징기스칸의 법도 아랍인이 기록했는데 아랍인 아무개에게 특권을 주라고 법전에 써놨어요.
결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모르는 메르카토르 도법에 의한 착시다.. 이게 정답.
그리고 바투가 유럽원정을 한 것은 왕권경쟁 때문입니다.
주치가 징기스칸의 친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형제들 사이에 왕따가 되어서
징기스칸이 주치를 초원으로 오라고 했는데 가면 죽는다고 믿고 튄 거죠.
다른 형제들이 초원의 이쪽저쪽을 장악했기 때문에
주치의 아들 바투는 북서쪽을 점령해서 이에 대항하려 한 겁니다.
형제간의 알력때문에 원심력이 작용해서 서로 멀어진 결과 세계를 다 점령한 셈이 된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