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읽기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51104 vote 0 2012.10.29 (23:51:22)

 

    관계를 창의하라

 

   o1.JPG

 

    깨달음은 우리가 어떤 관계의 그물 속에 잡혀 있는지 보여준다. 텍스트나 텍스트로 대체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작품 안에 들어 있으면 곤란하다. 의미는 불필요. 관계에 주목하라.

 

    o2.JPG

 

    관계는 토대의 공유다. 두 남녀는 달빛을 공유하고 있다. 누가 그것을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두 사람이 공유하는 분위기는 만들어진다. 그 분위기를 깨뜨릴 때 관계는 깨뜨려진다. 누가 마을의 공동우물에 독약을 뿌리겠는가? 공유하는 것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o3.JPG

 

    누군가 의미를 얻으면 누군가는 그것을 잃는다. 누군가 행복해지면 다른 누군가는 불행해진다. 반면 관계는 누구도 다치지 않는다. 누가 존엄해진다고 해서 누가 비참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가 존엄해질 때 모두가 존엄해진다. 누가 많은 햇볕을 받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그만큼 손해보는 것은 아니다. 싸이가 6억뷰를 올렸다고 해서 누가 손해보는 것은 아니다. 관계는 복제되기 때문이다.

 

    o4.JPG

 

    관계는 전부 드러낼 필요가 없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서 아담과 하느님의 손끝만 묘사되어도 충분하다. 그래서 인상주의는 즐겨 배경을 생략하곤 한다. 핵심만 드러내기 때문이다. 배경은 거추장스럽다. 생략해도 좋다.

 

   o5.jpg

 

    공제 윤두서의 자상은 인물의 얼굴만 그렸다. 꼿꼿한 선비정신을 잘 묘사했다는 식의 평론은 멍청한 소리다. 자상에는 이 얼굴을 바라보는 타인의 마음이 침투되어 있다. 한 인물의 얼굴은 그 얼굴을 바라보는 타인의 마음이 거울처럼 비추어져 있다. 깨달을 일이다. 공제는 의미가 아닌 관계를 그린 것이다.

 

    o6.JPG

 

    컵을 그린다면 손잡이를 그려야 한다. 손잡이가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컵에 담겨진 내용물은 의미다. 의미를 그린다면 텍스트가 되고 만다. 조선시대의 민화와 같다. 대개 복을 받고 벼슬을 하고 불로장수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실패다. 그 의미를 버려야 한다. 서양의 전통회화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신화의 메시지나 혹은 성경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역시 실패다. 비워야 한다.

 

    o7.JPG

 

    손잡이는 에너지의 입력부다. 모든 실패는 에너지의 입구가 아닌 출구를 통제하려 들기 때문이다. 내부에 밀도가 걸려있기 때문에 이쪽을 막으면 저쪽이 덧나고 저쪽을 막으면 이쪽으로 샌다. 결국 막지 못한다. 그러므로 입구를 조절해야 한다. 컵의 손잡이를 장악해야 한다. 그것이 관계다.

 

    o8.JPG

 

    인간의 주의는 본능적으로 에너지의 출구를 향한다. 들어오는 쪽을 보지 못하고 나가는 쪽만 주목한다. 그러므로 실패한다. 에너지는 존엄으로 들어와서 행복으로 나간다. 사건은 관계로 들어와서 의미로 나간다. 에너지가 들어오는 입구쪽을 개척해야 한다. 행복이 아닌 존엄을 얻어야 하고, 의미가 아닌 관계를 개설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된다.

 

    o9.JPG

 

    불완전하게 기울어져 있으므로 도리어 만인의 주목을 받는다. 그 결핍을 보완하여 완전하게 만들어주고 싶은 내면의 충동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완전성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김기덕 감독처럼 인간의 원초적인 불완전성을 드러내고 본성의 결핍을 드러내야 한다. 그럴 때 세계가 한국을 바라본다. 그 기울어진 부분이 튼튼하게 버티도록 받쳐주려고.

 

    o10.JPG

 

    아슬아슬한 경계지점이 관계의 안테나가 된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상태에서 관객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예술가의 솜씨는 십분 발휘된다. 바로 이 부분이 관객의 눈길을 통제하는 손잡이가 된다. 관객의 눈길은 본능적으로 그림의 내용으로 향한다. 깨달아야 할 것은 그림의 내용이 아니라 당신이 지금 이 순간에 바로 이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태양이 온 천하를 동시에 비추듯이 그림 한 컷이 동시접속한 일만 독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당신이 그렇게 붙잡혀있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만약 이 그림을 보고 화를 내거나 혹은 참견하려 들거나 혹은 충고하려 든다면 당신은 더욱 단단하게 붙잡힌 것이다. 불쌍하게도 말이다.

 

    o11.JPG

 

    선문답은 컵의 손잡이와 같다. 당신은 붙잡혀 있다. 큰스님의 질문에 답하려 들수록 더욱 단단하게 붙잡힌다. 당신이 붙잡혀있다는 사실 자체를 포착하라. 만약 그렇게 손잡이의 사용법을 익힌다면 당신도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다. 세상을 통째로 붙잡을 수 있다. 세상을 제어하는 핸들을 사용할 수 있다.

 

   

 

    ###
   

 

   
5555.jpg

 



    걸인의 행복


    내일이 없는 사람에게 인생은 언제나 9회말 투 아웃 상황이다.


    남들이 하루씩 혹은 이틀씩 살아갈 때 그들은 1초씩, 1초씩 이 순간을 음미하며 살아간다.



    돈 없는 감독에게 영화제작은 9회 말 투 아웃 풀 카운트 만루 역전찬스다. 남들이 영화를 한 편식 찍을 때 김기덕 감독은 한 컷씩 찍는다. 예술은 그 안에 있다. 필름 한 컷 안에 작은 영화 한 편 씩 숨어 있다. (달이 뜨다 242페이지)


    ###


    '달이 뜨다'에는 두 번의 반전이 숨어 있소. 보통은 걸인을 동정하오. 걸인에게서 숨은 행복을 찾아내는 것이 한 번 반전이오. 그것이 걸인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현실임을 받아들이는 것이 두 번째 반전이오. 


   두 번째 반전은 공간이 아닌 시간에 있소. 왕후장상도 똥 마려울 때 화장실에 누가 있으면 엉덩이를 꼬고 식은 땀을 흘리며 버티는 수 밖에 없소. 공간으로 보면 왕후장상의 대궐이 거지의 움막보다 낫지만 시간으로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소.


   두 반째 반전의 무기. 시간의 압박이 존재한다는 것은 각자의 손에 커다란 무기가 하나씩 쥐어져 있다는 의미요. 그렇다면 지금 그 무기를 사용함이 어떻소?



http://gujoron.com/xe/?mid=Moon




[레벨:11]큰바위

2012.10.30 (19:02:41)

"왕후장상도 똥 마려울 때 화장실에 누가 있으면 엉덩이를 꼬고 식은 땀을 흘리며 버티는 수 밖에 없소"

늘 그림이 그려지는 설명 - 그렇게 저자와 독자가 관계를 갖나 봅니다.

 

지금 우리집 화장실에도 누가 앉아 있음.....

List of Articles
No.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507 선문답의 이해 image 2 김동렬 2012-11-01 22034
2506 음악의 깨달음 image 5 김동렬 2012-10-31 24788
» 관계를 창의하라 image 1 김동렬 2012-10-29 51104
2504 시간으로 완성하라 image 2 김동렬 2012-10-29 11718
2503 달이 떠오르다 image 1 김동렬 2012-10-27 11231
2502 돈오돈수란 무엇인가? image 1 김동렬 2012-10-27 13339
2501 돈 찍어내면 된다. 5 김동렬 2012-10-23 12031
2500 관계의 종류 image 1 김동렬 2012-10-22 14407
2499 시의 문법 김동렬* 2012-10-21 10624
2498 약한 고리는 무엇인가? image 김동렬* 2012-10-21 9113
2497 관계란 무엇인가 ? image 김동렬* 2012-10-21 11931
2496 상호작용의 밀도를 높여라 image 1 김동렬* 2012-10-21 9294
2495 의미를 버리고 관계를 얻어라 김동렬* 2012-10-21 10030
2494 캐릭터의 족보 image 김동렬* 2012-10-21 9273
2493 완전성이란 무엇인가? image 김동렬* 2012-10-21 9306
2492 스타일은 자기다움이다 image 김동렬* 2012-10-21 9792
2491 삶의 인과법칙은 있다 image 김동렬* 2012-10-21 9832
2490 삶의 정답은 있다 image 김동렬* 2012-10-21 9082
2489 깨달음의 정답은 스타일이다 image 김동렬* 2012-10-21 9257
2488 깨달음에 정답은 있다 image 김동렬* 2012-10-21 9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