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다섯가지가 있다. 이는 서로 토대를 공유하는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그 토대는 공간의 토대 뿐 아니라 시간의 토대라야 한다. 에너지의 토대, 사건의 토대, 일의 토대로 보아야 한다. 살아서 펄펄 뛰는 토대라야 한다.
순수한 관계는 관계가 없다. 영향력 행사가 불가능하다. 손가락으로 볼펜을 쥘 수 없다. 다만 멀리서 바라볼 뿐이다. 독자와 작가의 관계가 그렇다. 관계의 출발점에 서 있다. 관계가 있을듯 하지만 아직은 관계가 없다. 그러나 앞으로 관계가 발전할 여지는 있다. 서로 토대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순수하다.
활동의 관계는 관계가 있다. 그 관계는 일방적이다. 때리면 맞는다. 손가락으로 볼펜을 치면 볼펜은 멀리 굴러간다. 그걸로 끝난다. 되돌아오는 소식은 없다. 피드백이 없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다. 주인은 노예를 부릴 수 있지만 노예는 주인에게 대항할 수 없다. 관계가 있지만 관계가 발전하지는 않는다.
대칭의 관계는 주고받는 관계다. 때린만큼 맞는다. 그러므로 본전이다. 손가락으로 볼펜을 치면 볼펜은 한 바퀴 돌아서 손가락을 친다. 여기서 역설이 성립한다. 의도한 바와는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이 단계 부터는 상대의 대응을 봐가면서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진정한 관계의 출발이다.
방향의 관계는 쌓이는 관계다. 저축과 같다. 은행처럼 돈을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요긴하게 쓸 수 있다. 볼펜이 어떤 축에 꿰어 있다면 그 축이 움직일 수 있다. 축이 움직일 때 팽이처럼 에너지를 흡수한다. 팽이를 치면 RPM이 증가한다. 에너지가 내부에 축적된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가르칠수록 자식의 지식은 증가한다. 당장은 반응이 없지만 나중에 꺼내쓸 수 있다. 좋은 관계다.
창조의 관계는 증폭되는 관계다. 주식투자와 같다. 은행과 달리 돈을 한 곳에 모으는게 아니고 그 돈이 새끼를 친다. 그 돈으로 투자를 해서 이익을 배당받는다. 하나의 토대에 두 개의 축이 공존하며 그 사이가 움직여서 낳음의 자궁을 이룬다. 엄마와 개그맨 박지선의 관계와 같다. 엄마가 잔소리를 하면 박지선은 그것을 개콘에서 써먹는다.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토대를 완벽하게 공유할 때 그것은 가능하다. 진정한 관계의 완성이다.
깨달음의 의미, 스타일의 의미는 창조의 관계, 낳음의 관계,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관계, 서로를 다치지 않고 최대한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계로 발전시키는데 있다. 물레방아와 같다. 물은 물레를 돌리고 물레는 방아를 놀리고 방아는 볍씨를 찧는다. 엔진과 바퀴와의 관계와 같다. 엔진은 바퀴를 돌리고 바퀴는 차를 이끈다. 마부는 말을 이끌고 말은 마차를 이끌고 마차는 짐을 운반한다. 하나의 관계는 또다른 관계로 배달된다.
관계는 이 다섯 뿐이며 다른 관계는 없다. 관계의 기본은 대칭이다. 대칭의 축이 존재하며 그 축을 움직일 때 또다른 축이 복제된다. 그 대칭의 관계를 어떻게 한 방향으로 유도하여 시간 속에 풀어내는가이다. 공간에서 관계는 대칭되어 교착되기 십상이지만 시간에서는 일제히 한 방향으로 달려간다. 그것이 현대성이다. 물이 물레를 돌리고 물레가 방아를 놀리고 방아가 벼를 찍듯이 공간 상에서 교착되지 아니하고 시간 상에서 살아서 움직이는 관계가 될 때 완전하다.
공간상에서는 남북관계가 교착되고 한일관계가 교착되고 미중관계가 충돌하지만 시간상에서는 멋지게 풀어낼 수 있다. 그것은 새로움으로만 가능하다. 미래를 향하여 나아감으로 가능하다. 싸이가 먼저 한국에서 일어나고 다음 미국에서 뜨고 다음 중국으로 번져가고 결국 일본의 잠긴 빗장을 풀 듯이 현대성의 획득으로 그것은 가능하다. 한류드라마라는 현대성을 통하여 서로는 공존할 수 있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을 수 있다.
인상주의 부흥기에 화가들은 서로를 표절하고 서로를 훔쳤다. 그러나 아무도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관계는 밀접해졌다. 그 안에 현대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성에 의해 인터넷 신대륙과 같은 무한히 넓은 새로운 영토가 얻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패러디가 난무해도 피해자가 없는 것과 같다. YG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 그러한 효과를 얻고 있다.
깨달음은 공간의 모순을 시간으로 풀어낸다. 사람이 둘인데 출구가 하나이면 순서대로 나가야 한다. 그 순서를 지정하는 것이 예술이다. 고저로 정하고, 장단으로 정하고, 리듬으로 정하고, 박자로 정하고, 명암으로 정하고, 음양으로 정한다. 끝없이 긴장을 연출하고 다시 그 긴장을 풀어낸다. 아름다움이 그 안에 있다. 깨달음이 그 안에 있다. 스타일이 그 안에 있다. 완전한 관계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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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
조금씩 느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