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실

본인이 올린 댓글은 나중에 올리기로 하고

전반적으로 다른 선생님들 반응은  '재미있다, 솔직하다.

'자유게시판의 성격상 이 정도의 글은 충분히 올릴 수 있다'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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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담을 몇 년 하다가 오랜만에 담임이 되었습니다.

전담 하는 동안 까먹었는데 확실히 한 학급 아이들하고만 종일 지내는 건 느낌이 다르네요.

안정감, 친밀감, 교과진도 및 일과 운영의 자유로움은 참 좋습니다.

반면 아이들에 대해 지나치게 깊이 알게 되는, 또 알아야 하는 부담은...

이 부담이 없던 전담 때가 조금 그립습니다.

 

저는 학생 때부터 인권, 자존감, 공동체, 연대, 인적 네트워크, 관용, 공감, 감정코칭, 내적동기, 상담 등의 키워드에 

늘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관련 책도 꾸준히 읽고 강연도 듣고 다큐도 보고 전문가들 트위터도 팔로우하고

이런저런 단체들에 가입해서 실제로 활동하기도 하고  

일단 나부터 잘하자는 생각에 저 자신의 고민 해결과 내적 성장을 위해 정신분석 상담을 1년 이상 받고 있습니다.  

 

올해 새로 담임을 맡으면서 그 동안 쌓아온 지식과 느낌,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권위와 강요가 아닌 

신뢰와 사랑을 불어넣고 기계적, 수량적인 칭찬의 노예로 만들기보다 스스로 자존감을 가꿔가고

아이들 상호 간에도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정서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교실을 만들

기는

 

 

 

개뿔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

ㅋㅋㅋ

 

 

 

역시 직업적 이상과 현실의 괴리류 甲 은 교직 아니겠습니까!! 

(-_-)b

 

 

 

첫날부터 미운 아이가 몇 명 있더군요.

어쩜 그렇게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다 이기적이고 얄밉고 건방지고 영양가 없는지

정신이 아찔할 정도였습니다. 나만 봐요, 나만 칭찬해요, 나만 예뻐해요, 나 빼고는 다 찌질해요 

내가 제일 빨리 했어요 내가 제일 잘했어요 흥! 근데 선생님 나를 안봐요? 나빠! 미워! 치사! 메롱!

 

그럼 저는 우선 말합니다. '내가' 가 아니라 '제가' 라고!!!

분명 제가 읽은 국어교육서에는 아이들의 말이나 글에서 문법 오류를 지적하지 말고 그에 담긴 내용을

마음으로 먼저 받아들이라고 적혀 있었죠. 하지만 그 내용을 받아들이자면 제가 너무나 빡치기 때문에   

차라리 문법이라도 고쳐주며 먼 길을 돌아가는 게 나을 듯합니다. ㅠ_ㅠ

 

그래도 3월 내내 '나 이런 사람이다!' 라고 이야기를 했더니 눈치 빠른 애들은 알아들어요.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있습니다. 있어요. '인간은 가장 사랑스럽지 못한 모습일 때 가장 사랑을 필요로 한다'

는 격언에서, 그 [가장 사랑스럽지 못한 모습]에 철저히 부합하는 아이.

 

이분은 저의 [예의바른 존대어로 일관하면서 목소리 높이지 않고 납득하기 쉬운 근거를 대며 차분차분 이야기하기] 

화법 정책을 정면돌파해버리신 분입니다. ㅋㅋㅋ 흑 3월 한 달은 無버럭 기록 갱신할 수 있었는데...

급식당번 걸린 날 잽싸게 과일 통을 맡을 때부터 느낌이 별로더니만 (한 사람에 사과 1조각이라고 했습니다)

눈치를 슬슬 보며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사과 여분이 남자 자기 식판에만 3개를 수북이 담아 가더군요.

 

저 물었습니다. 왜 너만 세 개야?

모른 척하길래 왜 너만 세 개야?

자리에 퍼질러 앉기에 왜 너만 세 개야?  

우물쭈물하면서도 사과를 포기할 기색이 없길래

 너만 세 개냐고!!!!!!!



그제서야 과일 통으로 돌아가 겨우 한 개를 돌려놓더군요.

왜 너만 두 갠데? 어???

 

너무 화가 나서 쥐고 있던 젓가락으로 스뎅 식판에 구멍 뚫을 뻔했습니다.

흫허허흐허

 

하지만 사실 이 아이와 저의 일대일 관계는 큰 고민거리가 아닙니다.

얘는 불쌍할 정도로 저의 애정과 관심에 종속되어 있으니까요. 욕심은 많은데 채울 방법을 몰라서 안달복달,

다른 친구들은 '와! 오늘은 맛있는 메뉴 나왔네' 담소 나누며 사과 한 조각의 맛을 온전히 누릴 때 

혼자서 3조각 쳐묵쳐묵할 궁리하느라 정작 사과맛은 느끼지도 못하는 아이,

밉다고는 했지만 사실 그 빈곤한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문제는 뭐냐

제가 이 아이의 관심끌기 과잉행동들을 자주 소거 처리하다 보니 

그게 무시, 차별이 되어버렸어요.

이젠 다른 아이들도 '아아, 쟤는 무시해도 되는 아이' 라고 생각해 버리더군요.

 

사실 선생님한테는 그렇게 나 봐봐요~ 하고 살랑대면서도 결국 호되게 밉보인 아이가 

아이들 앞에선 어떻게 행동하겠어요? 그냥 존재가 얄미움 그 자체지요.
제가 우리 반 학생이었다면 밉다 못해 한참 따돌리고도 남았다 싶을 정도입니다.

우리 반 애들이 아직 어리고 순해 그렇지 상급학년 올라가면...

 

학부모총회 때 어머님과 짧게나마 상담했지만 차마 이 아이가 그리 미움받는 아이라고는 하지 못하고

'XX이는 한창 성장 중이니까요. 지켜봐야겠지요. 3월 첫 주에 비하면 또 한결 새학년에 적응한 모습이라

저는 XX이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라고 돌려돌려 말했어요. 어머님도 아이가 나날이 표정이 밝아지고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해서 다행이라며 조금 편안해진 표정으로 돌아가셨어요.

왜 너만 세 개야!!! 버럭사건은 그 며칠 후.

 

아이들 입장에선

속으로는 한참 얄밉던 차에, 그래도 선생님은 이 아이 말을 들어주고 받아주고 하니 함부로 하진 못하다가

이젠 선생님도 드러내놓고 귀찮아하고 다른 아이들에게는 하지 않는 고함, 반말을 질러대니

너는 그런 대접 당해도 싼 아이. 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이 아이는 또 아이들 눈치를 슬슬 보면서 기었다가 일어났다가 다시 엎드렸다가 하고요.  

 

차라리 아, 그 부모에 그 아이구나 라는 편견으로 쌈싸버리게 어머니도 비슷한 성격이던가,

하면 모를까 어머님은 안쓰러울 정도로 저자세로 아이를 염려하는 분이세요.

아님 아이에게 너무 져주는 게 문제랄까요.

아이가 한 번은 '엄마가 전화를 안 받아요. 엄마는 혼나야 돼. 집에가면 혼내줄거야' 라더군요.

 

그리 생각하고 있어요.

환경, 부모, 상황, 그런 것들을 일일이 탓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타고난 욕구 또는 기대 또는 결핍 수치가 -100 이라면 현실적으로 충족 가능한 수치는 50 밖에 안 되어 

절대 채울 수 없는 나머지 -50 때문에 세상에 앵앵 투정부리고 그 댓가로

미움을 받는 사람도 있나 보다.

 

그 -100의 결핍수치를 한 -99.99999999 정도로만 깎아주는 게 제 목표가 되었습니다.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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