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은 완벽하게 통제된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온다. 압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반면 입자는 일정한 조건에서만 통제된다. 발전기는 있는데 댐에 물이 없다. 물이 있으면 물레방아가 돌아가는데 물이 없으면 허당이다. 힘은 통제함과 동시에 자신이 통제된다. 그러므로 이겨야 한다. 상대가 강하면 도리어 내가 통제되고, 상대가 약하면 내가 통제한다. 조건이 까다롭다. 운동은 비용이 지불된다. 돈과 시간을 지불해야 하므로 본전이다. 양은 가만있어도 제발로 찾아오는데 대신 실속이 없다. 공짜로 받는데 가짜다. 양을 받아들일 수는 있는데 다스릴 수는 없다. 임의로 이용하기는 불가능하다. 주는대로 받아야 한다. 내 쪽에서 전혀 통제할 수 없다. 햇볕이 적다고 태양에게 전화를 하면 태양이 햇볕을 늘여주는가? 아니다. 비가 너무 많이 온다고 구름에게 호소하면 구름이 장마를 일찍 끝내 주는가? 아니다. 양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라서 좋긴한데 재미없다. 세상을 구조로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일정한 조건에서 일정한 반응이 나오면 거기에 무언가 존재하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그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 졌는가다. 그리고 그 반응을 포착할 수 있느냐다. 첫째는 그 조건을 알아야 하고, 둘째는 그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셋째는 그 반응을 접수해야 한다. 존재가 있어도, 조건을 모르면 없는 것과 같고, 조건을 충족못하면 의미가 없고, 반응을 접수 못해도 허망하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존재가 없다고 말하는 일은 허다하다. 국가를 끌어내려면 국가적 사건을 일으켜야 하고, 민족을 끌어내려면 민족적 사건을 일으켜야 한다. 존엄을 끌어내려면 존엄한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모욕을 당했을 때 화를 내면 존엄이 있고 화를 내지 않으면 존엄이 없는 거다. 좋은 것이 생겼을 때 나눠줄 생각을 하면 사랑이 있는 거고, 혼자 쓱싹하면 사랑이 없는 거다. 존재는 조건 대 반응이다. A면 B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있다. 하부구조는 보인다. 있다. 그런데 없다. 그것을 지배하려고 하면 문득 사라져 버린다. 무지개와 같다. 무지개는 분명 있는데 손으로 잡을 수 없다. 그냥 당한다. 비는 맞고 햇볕은 쬔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들려오는 소식은 하부구조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는 것들은 모두 공허하다. 일방적이다. 그것을 잡으려 하면 문득 사라져 버리므로 그것을 이용할 수 없다. 그림자와 같다. 빛은 조절되는데 그림자는 조절되지 않는다. 밝기조절은 있는데 어둡기조절은 없다. 플라스틱 조화와 같다. 흉내는 냈는데 기운도 생명도 없고 쓸모도 없다. 뜻대로 안 된다. 한여름 밤의 꿈이다. 상부구조는 그것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 뜻대로 할 수 있다. 강약을 조절할 수 있고 시기를 조율할 수 있고 맘대로 할 수 있다. 대신 세팅하는 과정이 힘들다. 결혼하면 뜻대로 할 수 있는데 결혼할 수가 없다. 좋은 것은 대개 그렇다. 취직하면 좋은데 취직할 수 없다. CEO 되면 좋은데 CEO가 될 수 없다. 대통령이 되면 좋은데 당선될 수가 없다. 갑이 되면 좋은데 갑이 될 수가 없다. 챔피언 되면 좋은데 이길 수 없다. 반면 하부구조는 임의로 통제할 수 없다. 대신 쉽다. 모기에 물리기는 쉽다. 숲에 들어가서 옷을 벗고 있으면 1백마리 모기가 달려든다. 근데 모기가 적당히 하고 떠나지 않는다. 쉽게 되는데 조절이 안 된다. 그렇다면? 어렵더라도 상부구조로 가야 한다. 쉽지 않으므로 힘을 합쳐야 한다. 장기전을 해야 한다. 단박에 상부구조로 올라서기 어렵지만 여러 사람이 도우면 오랜 시간이 걸려도 마침내 이뤄낼 수가 있다. 하찮은 것은 항상 존재한다. 주변에 굴러다닌다. 멋진 것은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걸맞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아 그 참된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