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가? 아니면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가? NL과 PD가 나뉘는 대목이다. 막스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고, 어떤 사상에서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의식이 존재를 규정한다고 했다. 그래서 존재와 의식은 일방적 관계가 아닌 상호 관계라고 했고, 결정적인 것은 존재가 아닌 의식이라고 규정한다. 전자는 기계적 사고라 했고 했고 후자는 관념론자라고 서로 비판했다. [출처] 달맞이넷 - http://dalmaji.net/b/s.php?r=A754 참사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짐작했을 것이다. 마르크스나 프로이드가 각광을 받은 이유는 일정부분 구조론적인 접근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어도 구조를 사유한 것이다. 문제는 엉터리였다는 거. 구조에서 답을 찾으려 했지만 아뿔싸! 구조론을 몰랐다는게 함정이다. 양질전화는 없다. 마르크스는 구조론을 배우지 않아서 헷갈린 거다. 절대적으로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일은 없다. 질이 양을 규정한다. 연역은 있고 귀납은 없다. 빛은 있고 어둠은 없다. 마이너스는 있고 플러스는 없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문제는 이게 사람들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는 거다. 사람들은 이런 진실된 이야기를 싫어한다. 그들은 ‘의식이 존재를 규정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귀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양질전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을 원한다. ‘내용이 형식보다 우선’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내게 달콤한 거짓말을 해줘!' 하는 식이다. 왜? 존재는 불가항력적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흑인이 백인으로 바꿀 수 없다. 여자가 남자로 바꿀 수 없다. 원래 그런걸 어쩌겠는가? 그러므로 사람들은 작위로 바꿀 수 있는 부분에 답이 있다고 여긴다. 형식은 포기하고 내용이라도 바꿔보세. 질은 포기하고 양이라도 바꿔보세. 존재는 포기하고 의식이라도 바꿔보세. 아쉬운따나 이거라도. 그들은 쉬운 목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하며 애처롭게 매달린다. 그러나 진리는 냉엄한 것. 하느님 할아버지가 와도 존재가 우선, 형식이 우선, 질이 우선, 연역이 우선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일방향으로 작동한다.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희망사항에다 진리를 끼워맞추지 말라. 그러나 형제여! 부디 이르노니 실망하지 말라. 낙담하지 말라. 당신은 존재를 바꿀 수 있다. 존재는 절대적으로 타고난다는 관념이 착각이다. 못할 거 없다. 존재를 바꾸라. 완전히 새로 태어나라. 사람들은 존재가 아닌 의식을, 형식이 아닌 내용을, 질이 아닌 양을, 연역이 아닌 귀납을 원한다. 그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구조론의 답변은.. ‘아니다. 당신은 분명히 존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존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깨달음을 통하여 쉽게 존재를 바꿀 수 있다. 깨달음은 의식을 바꾸는게 아니다. 흑인이 백인의 마음을 가진다고 해서 백인이 되겠는가? 남(여)자가 여(남)자의 마음을 가진다고 해서 여(남)자가 되겠는가? 천만에. 의식 바꾸기는 실패다. 생각이 바뀐다고 현실이 바뀌는건 아니다. 꿈을 가진다고 해서 로또가 맞는 것은 아니다. 지식인의 계몽주의 수법은 실패다. 의식화를 하고 교양을 한다고 해서 노동자, 농민이 문득 각성하여 위대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존재를 바꿔야 한다. 그 방법은 총을 주는 것이다. 총을 손에 쥔 노동자는 단번에 각성한다. 1초도 안 걸린다. 돈오돈수다. 바로 혁명 들어간다. 노동자가 교양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다. 총이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총이 있다. 지식인의 총은 첫째가 지식이요 둘째가 세력이다. 총이 있기 때문에 지식인은 의식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자는 총이 없다. 노동자가 총을 얻는 방법은 노조를 조직하여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쉬운 목표가 아니다. 노조만 결성한다고 해서 답이 나와주는건 아니다. 노동자는 쉽게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 그렇다면? 존재 그 자체를 알아야 한다. 왕과, 귀족과, 평민과, 노예가 있다. 이때 왕과 관계를 맺으면 왕급이 되고, 귀족과 관계를 맺으면 귀족급이 되고, 평민과 관계를 맺으면 평민급이 되고, 노예와 친하면 노예급이 된다.
자신의 존재는 자신이 누구와 관계를 맺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관계를 바꾸면 존재가 바뀐다.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 관계를 맺으면, 하루아침에 왕자급이 된다. 이때 신데렐라는 닌자를 보내서 자신의 과거를 아는 계모와 두 언니를 살해하고 자신은 원래부터 먼 이웃나라에서 온 공주의 신분이었다고 주장한다. 신데렐라는 존재를 바꾼 것이다. 거듭난 거다.
그림1 1958년 김성환 화백의 동아일보 만화다. 청와대의 똥퍼 아저씨도 이승만과 안면을 텄다는 이유만으로 무려 ‘청와대 인사’가 된다. 당시에는 경무대로 불렀지만. 세상의 중심과 관계를 맺어야 존재가 격상된다. 조선족 이야기만 나오면 화를 내는 악플러들 있다. 그들은 조선족과 관계를 맺었다. 같아졌다. 노숙자만 보면 화내는 사람 있다. 노숙자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자신이 어디에 화를 내느냐에 따라 자기 존재가 결정된다. 클래스가 같아야 반응한다. 막연한 의식화는 실패하며 구체적인 무기를 쥐어주고 끈을 연결해 주어야 한다. 반응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 소통함으로써 국민을 노무현급으로 끌어올렸다. 양반이 양반인 이유는 양반과 대화하기 때문이다. 귀족이 귀족인 이유는 귀족과 결혼하기 때문이다. 봉건시대에 왕을 둔 이유는 왕자를 다른 나라의 왕자와 결혼시켜 동맹하는 방법으로 10만군대를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10만 병력 유지비용 – 5조원. ◎ 왕실 유지비용 – 1조원.
결혼은 예로부터 존재를 바꾸는 수단이었다. 현대사회에서는 소통이다. 새누리와 대화하면 새누리떼 된다. 정보가 소통하는 루트를 바꿈으로써 자신의 신분을 바꾸고, 클래스를 바꾸고, 존재를 바꿀 수 있다. 어느 클래스의 소통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클래스가 결정된다. 그 나라의 가장 젊고 혁신적이고 전위적인 창의그룹에 속해야 엘리트다. 돈이 많다고 해서 돈 많은 애들끼리 몰려다녀봤자 찐따그룹에 불과하다. 그것은 인생의 성공이 아니다. 그들끼리 모여서 하는 대화라곤 골프, 주식, 부동산, 술, 여자, 자동차 정도에 불과하다. 그들은 창의하지도 혁신하지도 못한다. 그 나라의 가장 예민하고, 가장 섬세하고, 가장 전위적이고,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용감하고, 가장 혁신적이고, 가장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룹과 소통해야 진짜다. 시대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상승할 수 있다. 그것은 의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존재를 바꾸는 것이다. 관계의 대상을 바꾼다. 소통의 클래스를 높인다. 역사와 반응해야 진짜이고 시대와 교감해야 진짜다. 깨달음이란 문득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완전히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부활하는 것이며 거듭나는 것이다. 존재를 바꾸는 것이 깨달음이다. 총을 가져야 하며, 관계를 맺어야 하며, 소통해야 한다. 존재를 바꾸면 의식도 변한다. 의식을 바꾼다고 존재가 바뀌는건 아니지만 존재가 바뀌었다면 의식이 바뀐 내용을 표출하여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 의식의 변화는 존재의 변화를 증명하는 수단이다. 우물 안의 개고리도 장마철 폭우에 우물물이 넘치면 우물 밖의 세상을 알게 된다. 이때 우물 밖으로 성큼 걸어나와야 한다. 그럴 때 존재가 바뀐다. 더 이상 우물 안의 개고리가 아니게 된다. 물론 의식화도 필요하다. 우연히 우물밖으로 나왔다가 두려워 하며 도로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개고리가 태반이다. 이때는 밖에서 붙잡아줘야 한다. ‘쫄지 마. C바. 쥐색들 깝치고 있지만 별 것 아니라구.’ 젊은 개고리가 과감하게 도전하고 용감한 개고리가 과감하게 그 울타리를 벗어난다.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의식을 바꾸지 말고 존재를 바꾸어라. 존재를 바꾸면 의식은 따라온다. 존재를 그대로 둔 채 의식만 바꾸려 하면 실패한다. 반드시 손에 총을 쥐어야 한다. 우리의 총은 인터넷이고 스마트폰이다. 구조론이 총이다. 구조론으로 무장해야 한다.
상부구조가 있으므로 우리는 존재를 바꿀 수 있다. 상부구조는 낳음의 자궁이다. 자궁을 리셑함으로써 우리는 존재를 바꿀 수 있다. 상부구조는 세상과 나의 관계다. 세상과 나의 관계를 바꿈으로써 존재를 바꿀 수 있다.
그 방법은 총을 손에 넣는 것이다. 신무기를 발명하는 것이다. 혁신하고 창의하는 것이다. 그 혁신과 창의그룹을 만들고 널리 연대하여 거기에 속하는 것이다. 필요한 매뉴얼은 구조론이 제공한다. 냉엄하게 진리를 말한다. 어리광부리지 말라. 동정심에 호소하지 말라. 어설픈 감상주의는 버려라. 막연한 꿈과 희망을 들먹이지 말라. 빛나는 진실의 길로 나아가라. 그것은 상부구조를 바꿈으로써 존재를 바꾸는 것이다. 자궁을 바꾸어 거듭나는 것이다. 그럴때 의식은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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