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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김동렬*
read 8378 vote 0 2012.10.21 (18:16:12)

 

논하려는 바는 방향성이다. 방향성 개념을 감잡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로 초점을 흐리는 사람이 있어서 한 번 더 강조하려는 거다. 방향성.. 이거 원래 어려운 개념이다. 쉽게 보지 말라.

 

필자의 글에 대한 스마일님의 댓글을 인용하면

 

“칼잡이들이 사라지고 총잡이들이 새로 나타나는 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칼잡이는 총잡이로 변하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갈 뿐이다." 이말 가슴을 찌릅니다. 신기술이 나올 때, 치열한 싸움에도 바꾸지 않고, 단지 옛기술을 가진 사람이 사라져야 신기술이 뿌리내린다고 이런 말 많이 했었는데.........요때는 진리, 윤리, 진실 이런 것 아무런 필요가 없더라고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칼잡이냐 총잡이냐, 굴뚝산업이냐 IT산업이냐 .. 단기적으로 보면 둘 다 필요하다. 칼잡이도 있어야 하고 총잡이도 있어야 한다. 굴뚝산업도 있어야 하고 IT산업도 있어야 한다.

 

방향성을 보라는 거다. 주도권 잡고 앞서가려면 남이 안 하는 거 해야 한다. 총잡이 해야 한다. IT해야 한다. 방향성 이야기 하는데 ‘칼잡이는 없어도 되나? 굴뚝산업은 없어도 되나?’ 하고 딴지걸면 곤란하다.

 

그런 것도 필요하지만 그게 방향은 아니다. 방향은 선장의 시선이다. 선원들은 뻘짓해도 선장은 그 방향을 봐야 한다. 사회의 리더는, 지식인은, 아는 사람은, 젊은이는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여기까지 해 놓고 시사인 기사를 링크하자면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newsview?newsid=20120706100825973

 

박경신 교수가 한국의 많은 바보들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을 거다. 근데 문제는 바보들도 논리가 있다는 거다.

 

◎ 성희롱은 피해자 중심이다.
◎ 성예술은 창조자 중심이다.

 

성희롱 사건에서 재판부가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상식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성(性)적인 예술에 있어서도 역시 피해자(?)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고 우기는 자들 때문에 피곤한 거다.

 

그런데 이거 언뜻 보면 말 되는 것처럼 보인다. 피해자가 성희롱이라고 주장하면 성희롱이라고? 그래 너 말 잘했다. 그렇다면 독자가 외설이라고 느끼면 외설이겠네? 근데 내가 느꼈거든. 내 얼굴이 화끈했거든. 민망했거든.

 

이런 유치한 논리도 격파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논파대상이 유치하기 때문에. 어린이를 상대로 상대성이론을 설명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차라리 주먹으로 한 대 때려주는게 이해시키기 빠르다.

 

사실 그 마음은 이해한다. 자식 키우는 부모입장 되면 이것저것 신경 쓰이는게 사실이다. 마음 편하려고 한다. 근데 편한 길로 가면 망한다. 대한민국은 편한 길 버리고 힘든 길로 가야 한다.

 

편한 길은 스트레스 안 받는 길이며, 그것은 의사결정을 덜 하는 길이다. 무언가 판단하고 알아보고 정리하고 해결하는 일을 안 하고 사는 거다. 그냥 각자 맡은바 일만 열심히 하고 사는 거다.

 

그런데 세상이 점점 골때리는 상황으로 전개되어서 갈수록 부모가 할 일이 많아진다. 부모가 애들 혹시 공부 안 하고 음란물이나 보는지 신경써야 한다. 부모 편할려고 하는게 보수주의다.

 

결국 바보들의 요구는 ‘편하자’다. 여기서 편하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편한 것이고 어떤 판단과 결정과 선택과 해결을 덜 하는 것이다. 가장 편한 길은 외국인 노동자 다 쫓아버리고 북한 정권 없애버리는 거다.

 

골치 아픈 아랍애들? 싹 죽여버려. 불쾌한 주사파 애들? 싹 죽여버려. 조선족? 없애버려. 범죄자? 사형시켜 버려. 이렇게 폭력의 논리를 들이댄다. 근데 미국은? 미국도 죽여버려? 그건 아니지. 힘이 안 되는데. 미국형님들 앞에서는 알아서 기어야지. 바보들의 폭력논리는 항상 약자에게만 적용된다.

 

근데 말이다. 그렇게 살면 좋냐? 왜 사냐? 사는 이유가 뭔데?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임무는 60억 인류의 지혜를 모아 그림을 만들고 작품을 만들어 보라는 거다. 그냥 싹 죽여버리고 속편하게 살아? 그건 인간배반이다.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는 것이다. 그렇게 속편하게 살 것이면 신도 속편하게 인류를 싹 없애버려? 신도 속편하게 큰 물로 지구를 쓸어버려? 바보들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다. 하느님의 물심판(?), 불심판(?)을 두려워 한다.

 

자기들이 싹죽이기 해법을 가지고 있으므로 신도 언제 인간을 싹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하여간 그렇게 싹죽이려다가 망한게 김일성, 히틀러, 히로히또, 스탈린, 박정희, 전두환이다. 그들은 인간의 자격을 잃었다.

 

무엇인가? 스트레스는 본인이 알아서 해결하고 적극적으로 판단과 결정과 해결을 해야 한다는 거다. 왜? 그게 인간이니까. 바로 그것을 하려고 이 지구에 태어난 거다. 아니면 왜 사니?

 

바둑기사는 골치아파도 바둑을 두어야 한다. 야구선수는 골치 아파도 훈련을 해야 한다. 바둑기사가 골치아프다고 바둑판을 엎어버린다면 더 이상 바둑기사가 아닌 것이다. 하긴 골치 아프게 바둑을 왜 두냐 말이다. 그냥 홀짝으로 승부하는게 빠르고 좋잖아. 어차피 게임인뎅.

 

결론하자. 적극적인 판단과 결정과 선택을 해야 하며 그것을 거부하고 편한 길로 가려는 것은 자기배반이다. 자기를 죽이는 행동이다. 삶이란 그런 판단과 결정과 선택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근데 말이다. 방향성이 있으면 스트레스 안 받는다. 방향성이 없으니까 골때리는 거다. 방향성이 있으면 판단과 결정이 술술 진행된다. 매우 재미가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 방향성이 없다. 갈수록 수렁에 빠진다는 느낌을 준다. 분명한 결론을 못 내린다. 나침반이 없다. 단지 정의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 뿐이다.

 

왜? 구조를 모르기 때문이다. 구조를 알면 애매한 것도 확실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애정남처럼 애매한 것을 분명하게 정리해줄 수 있다.

 

다시 박경신 교수 사건으로 돌아가서

 

1) 피해자가 성희롱이라고 느꼈으면 성희롱이다.
2) 상식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3) 피해자가 방어해야 한다.
4) 권력관계를 살펴야 한다.

 

무엇인가? 이런 사건을 대중들이 잘 판단하지 못하는 이유는 범죄는 징벌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 때문이다. ‘범죄가 징벌되어야 한다’는건 초딩생각이고 ‘사회는 보호되어야 한다’가 맞다.

 

모든 교정, 교화, 교도 행정은 사회보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범죄징벌에 맞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게 방향성이다. 큰 방향이 맞아야 일제히 풀린다.

 

위에서 1)번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성희롱 사건은 피해자 중심이다. 2)번은 한국풍속을 모르는 외국인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는 성희롱 아닌데?’ 이건 안 쳐주는 거다. 한국에 왔으면 당연히 한국인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 한국인이 성희롱이라고 하면 성희롱이다.

 

가해자가 성희롱의 의도가 없었다 해도, 상식적으로 판단해서 성희롱이면 성희롱이 맞다. ‘난 몰랐는데?’ 이거 안 통한다. 알아야 하는 공민의 의무가 있다. 진짜 모르는 바보들도 있는데 그들은 정신병원에 갇혀야 한다.

 

3)번과 4)번이 중요하다. 피해자가 성희롱이라고 느끼기는 했더라도 상식으로 보아서 애매한 경우가 있다. 예컨대 술자리에서 친한 사람이 은근한 행동을 할 때 제 3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 건지 알 수 없다.

 

이때 가해자는 원래 그런 관계인데 피해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갑자기 변심했다고 주장한다. 가해자는 꽃뱀사건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이 경우 제 3자의 상식은 개입할 수 없다.

 

실제로 두 사람 사이가 어떤 관계인지는 제 3자는 알 수 없다. 근데 문제는 당사자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당사자는 당연히 아는게 아니냐 하는건 착각이다. 남녀의 차이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여자가 남자 속마음 모르고 남자가 여자 속 마음 모른다.

 

이 경우 피해자는 자기방어를 해야 한다. 현장에서 성희롱이라고 상대방에게 경고하고 그 자리를 이탈해야 한다. 피해자가 방어행동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법정에 고발하면 묘해지는 것이다.

 

문제는 4)번이다. 권력관계 혹은 위력관계에 있을 때는 방어하려 해도 방어할 수 없다. 가해자가 직장의 상사거나 혹은 완력을 행사할 경우, 겁을 줄 경우 방어할 수 없다. 이 때는 성희롱이 맞다.

 

무슨 뜻인가 하면 상사와 부하, 강자와 약자, 스승과 제자, 힘센 남자와 힘없는 여자 등으로 평등하지 않은 관계일때는 성희롱이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거다. 더 조심해야 한다. 당연하다.

 

애초에 상사와 부하는 무리한 술자리를 안 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일체의 위력이 행사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특히 성적 행동이 억제되어야 한다. 예컨대 술을 먹었다면 위력이 행사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남녀 어느 쪽이든 술에 취했다면 당연히 가중 처벌되어야 한다. 여기서 본질은 애매할 거 없고 분명한 방향성이 있다는 거다. 대부분 강자와 약자의 비대칭 관계, 혹은 위력이 행사될 수 있는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방향성이라는 것은 성희롱의 성(性)이 문제가 아니고 권력 혹은 위력이 문제의 본질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것이 추상이다. 성은 표면이고 밑바닥 불안요소는 위력, 권력이다.

 

이 점에 초점을 맞추면 문제가 해결된다. 대개 위력, 권력이라는 본질을 은폐하고 성이라는 표면에 집착하므로 논의가 산으로 간다. 피해자가 성희롱이라고 느낀다는 것도 본질은 위력이 전제되어 있다.

 

예컨대 여자 여러사람에 남자 한 사람이 포위된 형세라면 남자가 오버행동을 해도 그것이 성희롱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판정을 내리는 사람은 이 부분에 주의해야 한다.

 

◎ 권력적으로 불평등하거나 위력적(음주 등 미약한 상태)으로 불안정한 관계에서 일체의 성적인 액션은 성희롱이며, 이때 피해자가 방어행동을 안 해도 성희롱이다. 반대로 위력이 없고 자유로운 관계에서는 방어행동을 해야 한다. 상대가 잘못할 때는 지적해야 하며 이는 공민의 의무다. 이 부분은 교육과정에 의해 일정부분 훈련되어야 한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박경신 교수의 물음.. 블로그에 성기 사진을 올리면 유죄인가? 이 부분에서도 성기라는 표면이 아니라 위력, 권력이라는 본질을 보아야 한다. 예컨대 공중파 방송이라면 위력이 행사되는 것이다.

 

시청자가 채널을 돌려 위력을 회피해야 한다. 방송사가 갑이다. 그러므로 엄격한 기준의 적용이 필요하다. 그런데 블로그는 본인이 구태여 찾아가지 않으면 된다. 그러므로 위력행사가 아니다.

 

공공장소에서의 외설행위는 위력행사다. 보행자가 피해야 한다. 그러므로 처벌되어야 한다. 그러나 위력행사가 없는 장소에서는 처벌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개인의 침실에서 무엇을 하든 처벌되지 않는 것과 같다.

 

박경신 교수를 문제삼는 행동은 남의 침실을 엿보고 풍기문란이라며 고발하는 것과 같다. 엿본 자가 풍기문란이다. 즉 해당 블로거에 호의를 가지고 왔다면 자신의 의사에 반할 때 점잖게 물러가는게 맞고, 악의를 가지고 왔다면 그 자체로 일종의 범죄행위다. 남의 블로그에 트집잡으러 가는게 범죄다.

 

성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불평등한 권력관계, 불안정한 위력관계 그 자체가 사회의 불안요소다. 예컨대 미국이라면 흑인과 백인의 공존 그 자체가 불안요소다. 그러므로 애초에 인종차별 금지교육을 시켜서 불안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즉 한국에서도 성희롱문제, 성기노출 문제를 제기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불평등한 권력관계, 불안정한 위력관계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상사와 부하가 회식을 핑계로 같은 술집에 가는 행위 자체가 비난되어야 한다.

 

성은 죄가 없다. 권력과 위력이 죄를 만들었다. 본질을 보면 방향이 드러나고 방향따라 가면 문제가 해결된다. 일단 간부와 부하가 회식을 핑계로 밤늦게 술집에 가는 행위 자체를 성희롱 예비행동으로 간주해야 한다.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어려울 것이다. 예를 몇 들어보겠다.

 

97년경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박찬호 하나가 한국프로야구 전체보다 큰 시장을 가진다. 이거 이해 되나? 이 역시 방향성의 문제다. 대화를 할 때 박찬호 하나로 대화주제를 통일하는게 대화하기에 편하다.

 

프로야구 이야기 하자면 의견이 갈린다. ‘두산 웃겼잖아.’ ‘LG는 DTD 주제에.’ 이러면 싸운다. 박찬호 하나만 이야기하면 의견이 통일된다. 방향성의 문제. 박찬호 하나가 프로야구 전체보다 시장이 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게 방향성을 알아먹는 사람의 태도이다. 이거 납득이 안 된다면 대화는 실패다. 왜 한국이 세계를 지배하는가? 한국은 박찬호고 중국은 한국프로야구 시장 전체이기 때문이다.

 

박찬호 하나로 대화하는게 더 친해지기 쉽잖아. 프로야구 전체로 대화하면 LG팬 두산팬 멱살 잡잖아. 아닌가?

 

또 예를 들면

 

호주는 영국의 범죄자들이 건국한 나라인데 영국에서 범죄자들을 호주로 운송할 때 태반이 호주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배 안에서 죽어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운송업자에게 살아남은 사람 한 명당 얼마씩 삯을 주겠다고 했더니 이번에는 한 명만 죽고 전원이 살아서 호주까지 갔다고.

 

이건 뭐 며칠전에 마케터님이 이야기한 쓰레기 종량제 하고 비슷한 개념인데. 이 역시 방향성의 문제이다. 구조론으로 보면 문제를 해결할 때는 입구 부분과 출구부분만 손대고 중간부분은 건드리지 말라는 거다.

 

입구와 출구에서 1로 해결할 것을 중간에서 요금 받으면 5배로 복잡해진다. 하여간 민자고속도로 때문에 도로 중간에 요금소 생겨서 얼마나 골치아프냐고. 외곽순환도로 중간요금소 다 없애야 한다.

 

방향성을 판단하면 문제해결이 쉬워지는데 이걸 즐기자는 거다. 하여간.

 

얼마전에 김병현의 보크를 두고 논쟁이 있었는데 심판진이 '일관성'이라는 한 단어로 제압했다. 보크를 했느냐 안했느냐가 아니라 시합을 방해했느냐 안했느냐가 기준이다. 일관성 있는 동작이라는건 속임수 동작이 아니라는 거고 그렇다면 묵인되는 거다.

 

  ◎ 위력행사(상부구조) > 성적접촉(하부구조)

  ◎ 시합방해(상부구조) > 보크동작(하부구조)

  ◎ 의사결정(상부구조) > 야구시장(하부구조)

  ◎ 사회보호(상부구조) > 범죄징벌(하부구조)

 

여기서 시합방해가 상부구조고 보크동작은 하부구조다. 위력행사가 상부구조고 성적 접촉은 하부구조다. 상부구조를 보고 판단하면 매우 쉽게 결론이 난다는게 방향성이다. 애매한 것을 정리할 수 있다. 상부구조를 보고 판단하는게 방향성이다.

 

 P.S..

 

사회보호라는 관점에서 보면 개인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성예술가(?)의 적극적인 표현과 활동에 의하여 개인의 면역성이 길러져야 한다. 훈련이 되어야 하는 거다. 성희롱이든 성예술이든 강한 개인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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