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5744 vote 0 2004.08.26 (22:28:08)

언어는 진화된다. 모든 언어는 ‘명사’가 아닌 ‘동사’에서 출발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힘의 방향’을 나타낸다.

듣다, 듣는다고 하면 귀로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다. ‘약이 잘 듣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잘 듣는 약이 있는가 하면 잘 듣지 않는 약도 있다. 약이란 것이 '귀'가 있어서 듣는 것일까? 그런데 왜 듣는다는 표현을 쓰지?

‘힘의 방향’에 주목해야 한다. 듣다는 들어가다는 뜻이다. 즉 안쪽으로 진입한다는 의미다. 귀는 하나의 굴이다. 그 굴속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우리 애는 말을 잘 들어’ 라고 말할 때의 ‘듣다’는 귀로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받아들인다’의 의미다. 이 역시 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보다는? 알아본다. 먹어본다. 해본다..들에도 보다를 쓴다. 이때 눈은 사용되지 않는다. 즉 보다는 눈과 무관한 것이다.

'보다'와 어원이 같은 말로 '바라보다'의 '바라다'를 들 수 있다. '바라다'는 '원하다'인데 그 이전에 바로(직접)가 된다. 또 ‘아는 바 없다’고 할 때의 ‘바’가 된다.

여기서 ‘바’는 직접 연결됨을 의미한다. 즉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그것과 자신이 연결된다는 의미다. ‘바라보다’에서 ‘바라’..도 역시 연결되다는 의미다.

쉽게 말하면 '바'는 곧 '링크'인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의 원래 의미는 그 보여지는 대상과 나 자신이 직접 '링크'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보았다는 것은 그 대상을 ‘포착했다’는 것이며, 하이퍼링크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며, 한마디로 통했다는 뜻이다.

정리하면 '보다'는 내 시선이 일직선으로 ‘뻗어’나가서 그 표적이 되는 대상과 직접 연결되었다는 뜻이 된다. 무엇인가? 소통이다.

통해야 본 것이다. 도통까지는 아니더라도, 달통까지는 못미치더라도 최소한 소통까지는 성공해야만 기어이 보았다고 말할 수 있다.

듣다도 마찬가지다. 귀로 듣는 것은 듣는 것이 아니다. 알아들어야 한다. 그 ‘의미’ 속으로 치고들어가서 진입하는데 성공해야 한다.

그러므로 묻노니 귀하는 듣는데 성공하였는가? 그 의미의 그물망 속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하였는가?

또 그대는 보는데 성공하였는가? 소통하는데 성공하였는가? 그 보여지는 대상과 하이퍼 링크를 연결하는데 성공하였는가?

온전히 링크되어 있는가? 둘이 하나로 연동되었는가? 울림과 떨림이 그 의미의 네트워크를 타고 전해져 오는가? 공명하는데 성공하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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