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저의 특별한 공동체사상을 설파하기 위함입니다.
문명이 인류를 교화하기 시작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야만의 황무지에 버려져 있다. 문명인들은 도시에 모여 살므로 일러 ‘시민’이라 한다. 야만인들은 동굴 속에 숨어살므로 ‘동굴인’이라 부른다.
동굴인들을 교화해 보겠다고 나선 사람이 플라톤이다. 플라톤의 그 유명한 ‘동굴의 우상’ 말이다. 플라톤이 동굴인들을 교화할 목적으로 발명한 것이 곧 교양이다. 그 교양을 사회에 구현한 것이 바로 문화이다.
그 문화를 담는 그릇이 곧 문명이다. 그 문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예의 그 야만이다. 착각하는 사람도 있어서 하는 말이지만 야만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야만은 전염병과 같다. 반드시 퇴치되어야 한다.
묻노니 ‘그대는 시민인가?’ 부끄러움 모른 채 벌거벗고 뛰놀던 그 추억의 동굴을 벗어났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편견과 무지의 동굴을 벗어나기에 성공하였는가?
아무나 시민일 수는 없다. 여기서 ‘시(市)는 도시가 아니라 ‘사회’ 혹은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대는 충분히 ‘사회화’ 되었는가? 그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
문제는 이제 막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이다. 처음 도시의 물을 맛보게 된 촌뜨기들이다. 그들은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안에 자신의 몸에서 시골냄새를 지우고 싶어한다. 그들은 그 어떤 도시의 부르조아 보다 더 부르조아인 척 한다.
이른바 ‘오바’하는 것이다. 시민인 척 하지만 아직은 부르조아 계급의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나 그 어떤 도시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들이 방금 떠나온 시골을 경멸하는 그들을 우리는 ‘속물’이라 부른다.
‘속물’은 가히 좋지 않다. 반드시 말썽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교양의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다.
묻노니 그대는 속물에서 벗어났는가? 그대는 이 사회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충분히 적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그 벌거벗고 날뛰던 그 ‘동굴의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가?
야만에서 벗어나 문명인이 되어야 한다. 동굴을 탈출하여 시민이 되어야 한다. 속물에서 벗어나 교양인이 되어야 한다. 무엇이 필요한가? 문화가 필요하다. 그대를 문화로 인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학’이다.
속물을 감별하는 방법
속물을 감별하는 데는 방법이 있다. 아닌 척 하지만 결국은 다 드러나고 만다. 간단하다. 속물이 아닌 척 오버액션을 취하는 사람이 바로 속물이다. 필요하지 않은 장소에서 쓸데없이 교양을 과시하는 사람이 속물이다.
무엇이 속물인가? 저 혼자서 생존경쟁 하고 있는 사람이 속물이다.
인간은 원래 들판에 버려진 채로 깨벗고 야만하였다. 문득 부끄러움을 깨달아 문화의 앞사귀로로 치부를 가리게 되니 이에 문명이 얻어졌다.
무엇이 부끄러운가? 생존경쟁이 부끄럽다. 동물들의 생태계에서 볼 수 있는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말이다. 힘이 센 자식이 힘 없는 부모를 잡아먹는, 힘센 아비가 힘 없는 자식을 자식을 잡아먹는 생존경쟁이 깨벗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 생존경쟁의 아수라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인간은 성벽을 쌓아 공동체를 건설하였다, 부르주아(bourgeois)는 그 쌓아진 성벽 안쪽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 성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생존경쟁의 아수라장이 있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성벽을 쌓은 것이다. 그 안전한 성벽 안쪽에서 처음으로 가족이 탄생하고, 곧이어 씨족과 부족과 민족이라 불리우는 공동체가 차례로 건설된 것이다.
무엇인가? ‘사회’다. 그 사회의 극한에 무엇이 있는가? ‘세계’가 있다. 야만을 극복하고서야 진정한 문화인은 무엇인가? 세계인이다. 세계시민이다.
무엇인가? 인간은 상승한다. 인간은 낮은 차원의 존재에서 보다 고상한 차원의 존재로 비약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깨달음이다. 그것을 일반화 하는 것은? 교양이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문화다. 그 문화를 담보하는 것은? 문명이다.
묻노니 그대는 충분히 고상한가?
그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대는 들판에서 생존경쟁하던 낡은 습성을 온전히 버리는데 성공했는가?
그대는 쌓아진 성벽 안쪽에서 안전한가?
교양이란 무엇인가?
동굴인에서 벗어나 시민이 되어야 한다. 이왕이면 세계시민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보편인이 되어야 한다. 보편이란 무엇인가? 어디를 가더라도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하는 것이다. 가장 큰 그릇에 그대의 인격을 담아낼 때 가능하다.
무릇 ‘천하인’이 되어야 한다. ‘세계’라는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가장 큰 성벽 안쪽에 살림을 차리고서야 가능하다. 먼저 ‘천하’라는 커다란 바리때 하나를 얻어야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천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묻노니 그대의 천하는 무엇인가?
교양이 없는 동굴인들은 딱 표시가 난다. 동굴인들은 저 마다의 부족명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소속된 부족이 혈거하는 동굴의 표지를 하나씩 이마에 붙이고 다니고 있다. 편견과 고정관념의 완장을 하나씩 차고 있다.
첫째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속물이다. 여기서 사투리가 곧 지방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어쨌든 도시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말아야 한다.
둘째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를 부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사람이 속물이다. ‘사투리’의 표지로 나타내어지는 ‘지방’이라는 동굴이 있는가 하면 종교라는 동굴도 있다.
세째 자신이 소속된 직업군의 은어를 쓰는 사람이 속물이다. 좌파들이 운동권 사투리를 쓴다거나, 지식인이 외국어를 남용한다거나 조폭이 조직의 은어를 쓰는 것이 본질에서 같다. 그것이 바로 속물이다.
존 레논의 ‘Imagine’
상상해보세요
천국이 따로 없는 세상을
당신이 노력한다면 그건 쉬운 일입니다
그러면 지옥도 없을 것이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을 뿐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국경이 없는 세상을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굴 죽이거나 죽을 이유도 없겠지요
종교도 없어지겠지요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평화스럽게 사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소유가 없는 세상을
당신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소유가 없다면 탐욕도 굶주림도 없고
사람은 모두 한 형제가 될텐데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그대는 나를 몽상가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겁니다
‘존 레논’이 그의 ‘이매진’으로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노래는 교양이 없는 속물들을 비난하고 있다. 여전히 시민이 되지 못한 동굴인들을 비난하고 있다.
속물이란 무엇인가? 공동체 안에서 저 혼자 생존경쟁 하는 사람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그 야만의 생존경쟁에서 벗어난 시민의 표지다.
동굴이란 무엇인가? 차별의 수단이 되는 편견이다.
편견이란 무엇인가? 부족없는 시대의 부족이다.
부족은 지방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 성별, 직업군의 형태로 존재한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하여 가방을 던지는 부족은 아줌마족이다.
마초적인 태도를 거리낌없이 내보이는 뻔뻔한 부족은 경멸되어야 할 아저씨족이다.
부족민들을 깨우쳐 그들을 편견의 동굴 속에서 기어나오게 할 목적으로 문화와 교양이 창안된 것이다.
문명이 인류를 교화하기 시작한지도 꽤 오래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야만의 황무지에 버려져 있다. 문명인들은 도시에 모여 살므로 일러 ‘시민’이라 한다. 야만인들은 동굴 속에 숨어살므로 ‘동굴인’이라 부른다.
동굴인들을 교화해 보겠다고 나선 사람이 플라톤이다. 플라톤의 그 유명한 ‘동굴의 우상’ 말이다. 플라톤이 동굴인들을 교화할 목적으로 발명한 것이 곧 교양이다. 그 교양을 사회에 구현한 것이 바로 문화이다.
그 문화를 담는 그릇이 곧 문명이다. 그 문명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예의 그 야만이다. 착각하는 사람도 있어서 하는 말이지만 야만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야만은 전염병과 같다. 반드시 퇴치되어야 한다.
묻노니 ‘그대는 시민인가?’ 부끄러움 모른 채 벌거벗고 뛰놀던 그 추억의 동굴을 벗어났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편견과 무지의 동굴을 벗어나기에 성공하였는가?
아무나 시민일 수는 없다. 여기서 ‘시(市)는 도시가 아니라 ‘사회’ 혹은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대는 충분히 ‘사회화’ 되었는가? 그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
문제는 이제 막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이다. 처음 도시의 물을 맛보게 된 촌뜨기들이다. 그들은 가급적이면 빠른 시일 안에 자신의 몸에서 시골냄새를 지우고 싶어한다. 그들은 그 어떤 도시의 부르조아 보다 더 부르조아인 척 한다.
이른바 ‘오바’하는 것이다. 시민인 척 하지만 아직은 부르조아 계급의 문화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나 그 어떤 도시인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들이 방금 떠나온 시골을 경멸하는 그들을 우리는 ‘속물’이라 부른다.
‘속물’은 가히 좋지 않다. 반드시 말썽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교양의 오리엔테이션이 필요하다.
묻노니 그대는 속물에서 벗어났는가? 그대는 이 사회에,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충분히 적응하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그 벌거벗고 날뛰던 그 ‘동굴의 추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갈등하고 있는가?
야만에서 벗어나 문명인이 되어야 한다. 동굴을 탈출하여 시민이 되어야 한다. 속물에서 벗어나 교양인이 되어야 한다. 무엇이 필요한가? 문화가 필요하다. 그대를 문화로 인도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학’이다.
속물을 감별하는 방법
속물을 감별하는 데는 방법이 있다. 아닌 척 하지만 결국은 다 드러나고 만다. 간단하다. 속물이 아닌 척 오버액션을 취하는 사람이 바로 속물이다. 필요하지 않은 장소에서 쓸데없이 교양을 과시하는 사람이 속물이다.
무엇이 속물인가? 저 혼자서 생존경쟁 하고 있는 사람이 속물이다.
인간은 원래 들판에 버려진 채로 깨벗고 야만하였다. 문득 부끄러움을 깨달아 문화의 앞사귀로로 치부를 가리게 되니 이에 문명이 얻어졌다.
무엇이 부끄러운가? 생존경쟁이 부끄럽다. 동물들의 생태계에서 볼 수 있는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말이다. 힘이 센 자식이 힘 없는 부모를 잡아먹는, 힘센 아비가 힘 없는 자식을 자식을 잡아먹는 생존경쟁이 깨벗고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 생존경쟁의 아수라장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인간은 성벽을 쌓아 공동체를 건설하였다, 부르주아(bourgeois)는 그 쌓아진 성벽 안쪽에 사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 성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 생존경쟁의 아수라장이 있다.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성벽을 쌓은 것이다. 그 안전한 성벽 안쪽에서 처음으로 가족이 탄생하고, 곧이어 씨족과 부족과 민족이라 불리우는 공동체가 차례로 건설된 것이다.
무엇인가? ‘사회’다. 그 사회의 극한에 무엇이 있는가? ‘세계’가 있다. 야만을 극복하고서야 진정한 문화인은 무엇인가? 세계인이다. 세계시민이다.
무엇인가? 인간은 상승한다. 인간은 낮은 차원의 존재에서 보다 고상한 차원의 존재로 비약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깨달음이다. 그것을 일반화 하는 것은? 교양이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문화다. 그 문화를 담보하는 것은? 문명이다.
묻노니 그대는 충분히 고상한가?
그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가?
그대는 들판에서 생존경쟁하던 낡은 습성을 온전히 버리는데 성공했는가?
그대는 쌓아진 성벽 안쪽에서 안전한가?
교양이란 무엇인가?
동굴인에서 벗어나 시민이 되어야 한다. 이왕이면 세계시민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보편인이 되어야 한다. 보편이란 무엇인가? 어디를 가더라도 막힘이 없이 두루 통하는 것이다. 가장 큰 그릇에 그대의 인격을 담아낼 때 가능하다.
무릇 ‘천하인’이 되어야 한다. ‘세계’라는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가장 큰 성벽 안쪽에 살림을 차리고서야 가능하다. 먼저 ‘천하’라는 커다란 바리때 하나를 얻어야 한다. 누구나 자기만의 천하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묻노니 그대의 천하는 무엇인가?
교양이 없는 동굴인들은 딱 표시가 난다. 동굴인들은 저 마다의 부족명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소속된 부족이 혈거하는 동굴의 표지를 하나씩 이마에 붙이고 다니고 있다. 편견과 고정관념의 완장을 하나씩 차고 있다.
첫째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속물이다. 여기서 사투리가 곧 지방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어쨌든 도시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말아야 한다.
둘째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를 부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사람이 속물이다. ‘사투리’의 표지로 나타내어지는 ‘지방’이라는 동굴이 있는가 하면 종교라는 동굴도 있다.
세째 자신이 소속된 직업군의 은어를 쓰는 사람이 속물이다. 좌파들이 운동권 사투리를 쓴다거나, 지식인이 외국어를 남용한다거나 조폭이 조직의 은어를 쓰는 것이 본질에서 같다. 그것이 바로 속물이다.
존 레논의 ‘Imagine’
상상해보세요
천국이 따로 없는 세상을
당신이 노력한다면 그건 쉬운 일입니다
그러면 지옥도 없을 것이고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만 있을 뿐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사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국경이 없는 세상을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누굴 죽이거나 죽을 이유도 없겠지요
종교도 없어지겠지요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평화스럽게 사는 것을
상상해보세요
소유가 없는 세상을
당신이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소유가 없다면 탐욕도 굶주림도 없고
사람은 모두 한 형제가 될텐데
상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함께 공유하는 것을
그대는 나를 몽상가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겁니다
‘존 레논’이 그의 ‘이매진’으로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 노래는 교양이 없는 속물들을 비난하고 있다. 여전히 시민이 되지 못한 동굴인들을 비난하고 있다.
속물이란 무엇인가? 공동체 안에서 저 혼자 생존경쟁 하는 사람이다.
문화란 무엇인가? 그 야만의 생존경쟁에서 벗어난 시민의 표지다.
동굴이란 무엇인가? 차별의 수단이 되는 편견이다.
편견이란 무엇인가? 부족없는 시대의 부족이다.
부족은 지방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 성별, 직업군의 형태로 존재한다.
지하철에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하여 가방을 던지는 부족은 아줌마족이다.
마초적인 태도를 거리낌없이 내보이는 뻔뻔한 부족은 경멸되어야 할 아저씨족이다.
부족민들을 깨우쳐 그들을 편견의 동굴 속에서 기어나오게 할 목적으로 문화와 교양이 창안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