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5006 vote 0 2004.04.27 (16:04:39)

고대 희랍의 어떤 철학자는 말했다. ‘만유는 수로 되어 있다’고. 여러분은 이 주장의 근본 취지에 동의할 것이다. 동시에 이 명제가 틀렸다는 사실도 잘 알고있을 것이다.

‘수로 되어 있다’는 것은 ‘셀 수 있는 형태’ 곧 알갱이, 입자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부분들은 손꼽아 셀수 없는 형태로 되어 있다. 즉 입자의 형태가 아닌 것이다.

이때 수학은 ‘비’의 방법을 사용한다. 아무리 많은 것도, 아무리 적은 것도, 물처럼 흐르는 것도, 공기처럼 퍼지는 것도, 자동차처럼 달리는 것도 비례의 방법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수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비는 늘리거나 줄인다. 이때 비교의 잣대가 사용된다. 헤아릴 수 없는 것도 특정한 잣대를 들이대어 가늠해 내기에 성공한다. 비의 방법으로 늘이거나 줄였을 때 더 이상 늘일 수 없는,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어떤 한계에 봉착한다.

구조는 거기서 최종적으로 남은 뼈대이다. 늘이거나 줄이면 최종적으로 구조가 남는다. 최종적으로 어떤 개체가 남고 그 개체의 집적상으로서 패턴이 남는다. 그 패턴의 집적상으로서의 얼개가 남는다. 구조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은 구조와 구조의 비로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세상은 구조와 그 구조에 살을 더하여 양을 늘이거나 줄여놓은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기본구조는 동일하다.

그것이 자동차이든 집이든 비행기든 나무이든 풀이든 생명체이든 동물이든 기본구조는 동일하다. 하나의 기본구조가 있고 그 구조에 살을 붙인 다양한 쌓기법이 있다. 다양한 집적상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사물의 본성이.. 예컨대 물이나 불이나 나무나 흙이나 쇠가 본래 고유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과학이 밝혀낸 바 물이나 불은 기본이 되는 원소의 집적상에 불과하며 기본은 보다 작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원자 혹은 소립자라고 부른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그 기본의 크기는 점차 작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최소의 바닥상태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잘개 쪼개보고 있는 중이다.

최종적으로는 구조에 도달한다. 그리고 우리가 물이나 불이나 나무나 흙이나 쇠에 고유하다고 믿었던 물질의 성질들.. 과학이 규명한 바 보다 작은 분자나 원자나 소립자나 혹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보다 작은 것에 고유하다고 믿는 속성들이 실은 구조의 속성이며, 물이나 불의 성질들은 그 물질바탕에 고유한 것이 아니라, 실은 구조에 고유하며 기본구조의 다양한 집적단위에 따라 상대적으로 부여된다는 것이 구조론이다.

최초의 구조론적 접근은 동양의 음양론이다. 그러나 음양은 구조적 관점에서의 접근이기는 하나 틀렸다. 음의 성질이나 양의 성질 따위는 없다. 과학적 검증없이 적당히 갖다붙인 것에 불과하다. 또 인과율이다. 만유는 시간의 진행에 따른 원인과 결과로 2분하여 분별할 수 있다. 그 인과율을 공간의 영역에서도 적용하여 설명하여야 한다. 음양론은 공간적이며, 인과율은 시간적이다. 그 시공간을 통일했을 때는? 구조론에 도달한다.

세상은 구조와 그 구조의 전개로 되어 있다. 구조를 전개한다는 것은 접은 것을 펼쳐진다는 의미다. 이는 반복한다는 것이며 곧 집적한다는 것이다. 그 반복과 집적은 비로 하여 단순화될 수 있다. 그 가장 단순화된 형태가 곧 구조다. 즉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여 최초의 순수로 되돌렸을 때 구조가 남는다.

구조의 뼈대에 수의 살을 채워넣은 것이 우리가 숨붙여 살고 있는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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