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와 기도의 교차? 식도와 기도가 교차해서 각종 문제를 일으키는 점은 진화의 증거로 제시되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거 잘못 해석된 거다. 식도와 기도는 당연히 교차해야 한다. 일단 아래 인용한 내용을 참고하시고.
그런데 도대체 왜 음식물이 가끔 기도를 막는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우리 몸의 배관에 문제가 있다. 코로 들이마신 공기와 입으로 들어온 음식물이 목 부위에서 무슨 까닭인지 애써 교차하며 서로 자기 관을 찾느라 애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를 테면 교통사고들이다. 입보다 위에 있는 코를 통해 들어온 공기가 애써 목의 앞쪽 관으로 올 필요가 없도록 기도가 식도 뒤에 위치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우리 몸은 어찌 보면 식도와 기도의 위치가 뒤바뀐 것처럼 보인다. 반면 코 밑에 있는 입을 통해 들어온 음식물은 억지로 기도의 뒤에 위치하는 식도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 문제 역시 소비자들의 빗발치는 원성에 못 이겨 거의 눈가림 수준의 해결책을 내놓았는데, 그게 바로 후두개(喉頭蓋; epiglottis)이다. 후두개는 우리가 음식을 삼킬 때는 기도를 막았다가 숨을 들이마실 때에 열어주는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때로 실수를 하게 되면 음식물이 기도를 막게 되는 것이다.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516 최재천 네이버 캐스트 다윈 2.0 '완벽한 진화란 없다.']
(이 내용을 그림으로 자세히 설명한 것을 어디에서 보았는데 검색해도 없었소. 아는 분 있으면 좀 찾아주오.)
위 내용은 개떡같은 소리고, 상호작용 개념으로 보면 인간의 눈과 귀와 코와 입과 혀는 당연히 모여있어야 한다. 모든 신체감각기관은 상호작용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다지만 실제로는 귀로도 보고 눈으로도 듣는다. 뇌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신체감관은 전부 한패거리다. 이게 각각 따로 놀면 뇌의 입장에서는 매우 피곤해진다. 구조론의 입자 개념에서 센터는 반드시 하나여야 한다는 점에 주의하도록 하자. 입자는 독립한다. 독립의 독은 홀로 독이다. 하나여야 하며 둘이면 곤란해진다. 음식이 입으로 들어오면 그 냄새가 코로 들어간다. 이때 뒷문으로 들어간다. 즉 목구멍에서 코로 거꾸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도와 기도는 교차되어야 한다. 만약 교차되지 않으면 코는 호흡만 하고 입은 음식만 먹는데 그 경우 입 속에도 코가 있어야 한다. 썩은 음식을 먹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더 골치아픈 것은 인간이 호흡과 식사를 동시에 할 수 없다는 문제다. 먹을 때는 먹고 숨쉴 때는 숨쉰다. 인간은 무슨 행동을 할때마다 호흡을 멈춘다. 만약 인간이 호흡을 멈추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무산소운동은 사라진다. 모든 운동이 유산소운동이 된다. 그런데 왜 인간은 무산소운동을 할까? 호흡을 하려면 횡경막을 움직여야 하고 그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타자가 홈런을 치려고 하는 순간 호흡이 방해한다. 횡경막이 움직여버리면 병살타가 나오는 거다. 호흡은 신체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행위다. 사격선수가 숨을 쉬면 명중할 수 없다. 양궁선수가 호흡을 하면 백발빵중이다. 호흡은 모든 인간의 행동을 방해하므로 호흡을 멈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도와 기도는 교차해야 한다. 음식이 들어가면 호흡을 차단해야하기 때문이다. 위장은 매우 예민해서 건들면 멀미를 하는데 밥먹으면서 숨 쉬면 멀미난다. 인간의 중요한 신체감관들이 머리에 모여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뇌에서 일괄통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엉덩이에도 눈이 있고 꼬리에도 귀가 있다면 좋을 거다. 앞뒤로 다 보고 다 들으니 적의 침투를 예방할 수 있다. 근데 뇌가 피곤하다. 결정을 못한다. 인간은 하나의 지휘부로부터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공감각이 있어야 한다. 시각, 후각, 청각, 미각, 통각은 별개의 감각이 아니라 한덩어리여야 한다. 식도와 기도의 교차는 진화의 오류가 아니고 당연한 거다. 자동차의 운전석에 모든 기능이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교통사고가 난다. 브레이크는 조수석에 있다면 운전수가 한 눈을 팔아도 조수가 도와주니 좋잖아. 구조론을 모르는 엉터리 생물학자들은 엉터리 자동차를 만든다. 핸들은 뒷좌석에 있고 기어는 본네트 위에 있고 주유구는 집에 놔두고 바퀴는 차 지붕에 올려놓는다. 좋잖아. 뭐가 좋아. 모든 기능은 집중되어야 하며 무리하더라도 교차되어야 한다. 브레이크는 왼 발로 밟고 엑셀레이터는 오른발로 밟으면 급발진사고 의혹은 없을거 아냐? 좋잖아. 왜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를 한 발로 쓰게 해놨냐고. 이 답답이야.
이쯤되면 생물학자라는 패거리들이 얼마나 무식한지 알만하다. 이거 곰곰이 생각해보면 초등학생도 알만한 거다. 지구에 자칭 학자라는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닐텐데 이런 당연한거 하나도 알아먹지 못하다니 밥통들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상대성이론 수준의 심오한 이야기 아니다. 너무나 당연한 거다. 밥만 먹어보면 안다. 달리면서 밥먹어봐라 어떻게 되는지. 먹을 때는 모든 동작이 스톱되어야 한다. 호흡도. 저번에 최홍만이 주먹으로 치는게 아니라 입술로 때린다고 했는데 인간의 모든 동작은 동시에 나간다. 손으로 악수를 할 때 실제로는 똥구멍으로 악수하는 거다. 머리카락으로도 악수한다. 위장 십이지장도 악수한다. 눈으로 볼 때 코로도 동시에 보며 입으로 먹을 때 귀로도 동시에 먹는다. 인간이 말을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공감각, 공행동 현상 때문이다. 동작을 할 때 혀가 따라하기 때문이다. 손이 오른쪽으로 가면 혀도 턱도 입술도 오른쪽으로 간다.
- 바보들은 입으로 사물을 본다. -
바보들이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이유는 입이 눈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입으로 본 거다.
복제가 되는 거다. 인체의 모든 부분이 모든 행동을 전부 따라하기 때문에 뇌가 통제가 되는 거다. 하여간 이쯤되면 학자들이라 불리는 자들의 수준이 1+1=2가 안 되는 치매수준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웃음이란 것이 무엇일까? 상황이 발생하면 인간은 자동으로 호흡을 멈추는데 호흡정지 해제가 되면 갑자기 횡경막이 움직인다. 숨을 쉬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웃음이 터지는 것이다. 비웃음-긴장해서 호흡을 멈추었는데 괜히 멈추었네. 호흡재개 폭소 - 호흡을 너무 참았네. 밀린 호흡 왕창 터뜨려. 미소 - 조금만 호흡정지 슬그머니 호흡재개
http://gujoron.com ∑ |
설계라는 표현은 뺏소.
그림첨부합니다. 근데 참고문헌을 달아주셨으면 합니다. The CIBA collection of medical illustrations, volume 3, Digestive system, p74-75. 요새 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넘 많아서요.
그림을 첨부했는데 본문에 안 보이네요. 본문에 보이게 하는 방법이 있나요??
http://blog.naver.com/donmany0203?Redirect=Log&logNo=30121458695
네이버 캐스트 최재천 교수의 다윈 2.0이 출처인가 본데
대략 진화의 방향은 없다는 식의 내용이 보이네요.
근데 진화의 방향 있거든요.
이거 시간 나면 하나하나 다 반박해줄 수 있습니다.
이건 뭐 완전 머저리 똥통 수준이에요.
이 내용이 최재천 혼자 작업이 아니고
인류의 최정예 천재들의 집체창작일텐데
초등학생 수준이에요.
밀레니엄 버그를 예로 들 수 있어요.
애초에 설계자가 잘못 해버리면 조또 곤란해지는 거에요.
그게 진화의 증거죠.
근데 방향성이 없겠어요? 있지.
뭐냐하면 최재천 입장은 진화가 엉터리이므로
창조가 아니라는 건데
반대로 진화가 엉터리이므로 분명한 방향성이 있는 겁니다.
반대로 창조면 오히려 방향성이 없어져요.
창조는 의도가 있고 의도에 맞추면 저절로 안티가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의해 흩어버리면 균일해집니다.
애들을 교실에 모아놓으니까 떠드는 겁니다.
흩어놓으면 떠들지 않아요.
각자 자기 집에 가서 조용하게 게임하고 있으니까.
이건 뭐 시장원리를 이해하면 다 이해하는 거고.
시장은 무질서하므로 질서가 있는 거에요.
반대로 이명박 관치경제는 억지 질서가 있으므로 다들 그 틈새를 공략해서 개판되는 거에요.
1기가바이트 안에 2메가를 담으면 방향성이 없어요.
근데 1메가 안에 1기가를 집어넣으려고 하면 방향성이 생기는 겁니다.
바둑을 두는데 첫 점을 천원에 두면 방향성이 없는 거에요.
근데 첫 점을 귀에 두면 방향성이 있는 겁니다.
근데 진화는 1바이트 안에 1메가를 넣고 1메가 안에 1기가를 넣는 식으로 되어 있어요.
이건 무리수죠.
진화는 거듭된 무리수의 결과이므로 분명한 방향성이 있습니다.
이해 되세요?
태평양 바다에 돌 하나 던지면 방향성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작은 접시에 태평양을 우겨넣으려면 방향성이 있는 거에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글은 집현전 학자들이 집체창작으로 만든게 아니고 사실은 세종 혼자 만들었듯이
위대한 변혁은 전정을 뚫는 한 명에 의해 가능한거지 집체창작으로는 불가능해요.
물론 잡스 한 명이 천정을 뚫어주면 그 다음은 삼성이 집체창작으로 따라가지요.
사람들이 구조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걸린다 말입니다.
기존의 과학계는 1000년 동안 100만명의 천재가 모여서 만든 집체창작이고
구조론은 김동렬 한 명인데 어케 게임이 되냐 이거지요.
근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요.
집체창작이 뭔가 성과를 낸 일은 역사에 없습니다.
개입하는 구성원 숫자에 비례하여 의사결정이 힘들어지니까.
중요한건 순서 같소.
진화도 있고 방향도 있소.
진화가 먼저요? 방향이 먼저요?
우문이오.
진화도 방향도 수학적으로 있는 것이오.
레고블럭이 집적되는 방향은 정해져 있소.
진화의 본질은 유전자고 유전자는 수학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오.
아무리 뛰어난 생물이 있어도 바퀴를 달고 태어날 수는 없소.
네발로 걸어다니는 포유류보다 진화한 바퀴달고 달려가는 동물 따위는 영원히 없소.
우주 어디에도 없고 백억년 후에도 없고 절대로 없소.
방향이 있다는건 그런 수학적 한계가 있다는 말이오.
왜냐?
바퀴는 입자고 입자는 허공에 떠 있기 때문이오.
재봉틀의 북이 공중에 떠 있듯이 허공에 떠 있는 것이오.
그러나 인간의 태아나 새의 알도 허공에 더 있지는 않소.
반드시 연결되어 있소.
제 생각이 좀 모자를지 모르지만,
몇가지 의문을 덧붙이면,
진화의 본질이 유전자고 진화의 범위도 유전자지만,
유전자 혼자 진화는 못하지 않소?
각기 방향을 가진 유전자들중에서 특정 방향을 가진 유전자만이 복제 될수 있고,
결국 선택받은 방향만이 그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니오?
결국, 방향이 먼저 주어지지만, 결국 방향은 나중에 결정되는 것 아닌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소.
방향이라는 표현이 뭘 두고 하신 말씀인지.
하여간 이런건 확률로 보아야 하오.
확률이 있으면 아직 구현되어 있지 않더라도 이미 있는거임.
서울대 입학을 하면 아직 출세하지 않았더라도
확률로 보고 결혼상대자로 찍는 것이오.
이 그림이 아무 근거없는 가짜라는건 제가 여러번 이야기 했고
교과서도 바뀐 걸로 아는데 아직도 이런 가짜 그림을 쓰고 있다는건
학자들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만하다는거.
아니 초딩이 생각해봐도 이 그림은 너무나 바보같잖은가?
저렇게 구부정하게 불안정한 자세로 돌아다니다가는 호랭이한테 물려가지.
그런 의문이 들지 않는가?
저 자세로 운동장에 가서 한 번 서 있어 보라지.
태극권을 10년은 수련해야 30분 서 있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