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깨달음’의 문제야 말로 서구정신과의 대결에서 동양정신의 승리를 최종적으로 담보할 인문학의 핵심적인 대안이라고 봅니다. 즉 인문학의 문제는 곧 깨달음의 문제로 등치시켜 본다는 말입니다.
인문학 = 깨달음
이렇게 봅니다.
여기서의 깨달음은 유교와 불교, 도교를 막론하고 공통된 동양정신의 코드입니다. 화담 서경덕이나 혜강 최한기는 유학자이지만 깨달음=인문학으로 등치시켜 본 학자들입니다. 넓게 보면 율곡이나 퇴계도 마찬가지에요. 왜냐하면 주자학의 핵심적인 코드가 어느 면에서 ‘깨달음’이거든요.
주자학도 넓게 보면 깨달음의 학문이라 이거지요. 양명학도 마찬가지인데 차이점은 양명학이 상대적으로 더 불교화된, 소승화된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면, 주자학은 상대적으로 더 대승에 가까운, 더 이론적으로 추상화된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깨달음을 불교적 관점으로만 한정시켜 본다면 피곤해집니다. 더욱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아서 만신이 되는 것과 같은 생리적이고, 신체적인 문제로 본다면 이는 상도(常度)에서 크게 벗어난 것입니다.
U.G가 말하는 그 '일'이란 무당이 내림굿을 받는 일에 비유될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런건 용납이 안되지요.
기독교 목사들은 상당수가 가짜입니다. 신도들은 믿는데 본인은 안믿는다는 거죠. 믿는 척 하는 것은 자기직분에 충실한 거구요. 그래도 큰 문제가 안되는 것은 교단이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도들은 목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의미에서의 교단을 믿는 거구요.
인도에서 구루들의 활동도 종교의 교단과 같아서 내부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만큼 자정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즉 인도에서의 U.G는 허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특정종교 이야기를 이 게시판에서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면 선을 그어야겠지요.
U.G가 말하는 깨달음은 ‘내림굿=무당’ 수준으로 봅니다. 이는 논외가 됩니다. 인문학의 영역을 벗어난 깨달음은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
여기서 넘어서 안되는 선의 황금률을 지켜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가 봅니다. 이쪽 동네 사람들 몇몇을 직간접으로 관찰한 바에 의하면 대개가 ‘내림굿=무당’ 수준의 깨달음을 말하고 있었지 인문학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보는 사람은 없더군요.
인문학 = 깨달음
이렇게 봅니다.
여기서의 깨달음은 유교와 불교, 도교를 막론하고 공통된 동양정신의 코드입니다. 화담 서경덕이나 혜강 최한기는 유학자이지만 깨달음=인문학으로 등치시켜 본 학자들입니다. 넓게 보면 율곡이나 퇴계도 마찬가지에요. 왜냐하면 주자학의 핵심적인 코드가 어느 면에서 ‘깨달음’이거든요.
주자학도 넓게 보면 깨달음의 학문이라 이거지요. 양명학도 마찬가지인데 차이점은 양명학이 상대적으로 더 불교화된, 소승화된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면, 주자학은 상대적으로 더 대승에 가까운, 더 이론적으로 추상화된 깨달음을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깨달음을 불교적 관점으로만 한정시켜 본다면 피곤해집니다. 더욱 무당들이 신내림을 받아서 만신이 되는 것과 같은 생리적이고, 신체적인 문제로 본다면 이는 상도(常度)에서 크게 벗어난 것입니다.
U.G가 말하는 그 '일'이란 무당이 내림굿을 받는 일에 비유될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런건 용납이 안되지요.
기독교 목사들은 상당수가 가짜입니다. 신도들은 믿는데 본인은 안믿는다는 거죠. 믿는 척 하는 것은 자기직분에 충실한 거구요. 그래도 큰 문제가 안되는 것은 교단이 자정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도들은 목사를 믿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의미에서의 교단을 믿는 거구요.
인도에서 구루들의 활동도 종교의 교단과 같아서 내부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만큼 자정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즉 인도에서의 U.G는 허용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특정종교 이야기를 이 게시판에서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면 선을 그어야겠지요.
U.G가 말하는 깨달음은 ‘내림굿=무당’ 수준으로 봅니다. 이는 논외가 됩니다. 인문학의 영역을 벗어난 깨달음은 언급할 가치가 없습니다.
여기서 넘어서 안되는 선의 황금률을 지켜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가 봅니다. 이쪽 동네 사람들 몇몇을 직간접으로 관찰한 바에 의하면 대개가 ‘내림굿=무당’ 수준의 깨달음을 말하고 있었지 인문학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보는 사람은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