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에 이르는 길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까? 얽힌 실을 풀 수 있는 이유는 실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티카의 영웅 테세우스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따라 미궁을 탈출할 수 있었듯이. 구조론은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이론이다. 연결되어 있으므로 풀 수 있다. 구조론은 논리학과 같다. 논리학은 자연과 수학을 연결한다. 구조론은 자연을 풀어 수학을 낳는다. 수학은 논리학을 풀어 과학을 낳는다. 과학은 수학을 풀어 문명을 낳고 문명은 과학을 풀어 삶을 낳는다. 풀기와 낳기의 연쇄적인 고리로 이어져 있다. 구조론은 자연에서 수학, 과학, 문명 그리고 삶으로 연결하는 핵심적인 연결 고리다. ‘잃어버린 고리’와 같다. 구조론이라는 핵심 고리를 찾아 논리학을 완성할 때 문제를 풀어갈 수 있게 된다. 어디서부터 풀 것인가? 실마리로 부터 풀어야 한다. 실은 연결하는 것이며 마리는 실의 시작부분이다. 그것은 매듭이다. 매듭에서부터 풀어가야 한다. 자연, 논리, 수학, 과학, 문명이라는 매듭이 있다. 그 매듭을 풀어 최종적으로 삶에 이른다. 매듭은 무엇인가? 그것은 존재다. 구조론은 존재를 풀어낸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언명한 것이 그 까닭이다. 그는 존재를 만유를 풀어내는 첫 번째 매듭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렇다. 출발점은 자연이며 자연은 존재로 하여 이룩되었다. 자연에는 낳음이 있다. 인간 역시 자연에 의해 낳아진 존재다. 이룩해야 할 문명은 역시 인간에 의해 낳아진 존재다. 낳고 또 낳으며 연결된다. 낳음의 족보가 있다. 낳음의 족보를 따라가면 모두 풀린다. 아기의 탄생을 해산(解産)이라고 말한다. 풀어내는 것이 낳는 것이다. 세상은 낳음에 의해 탄생했으며 구조론의 풀어내기에 의해 낳아졌다. 존재가 자연을 풀어낼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에너지다. 존재는 내부에 에너지를 품고 있다. 존재의 자궁에 에너지가 매듭지어져 있다. 구조론으로 풀어낼 수 있다. 에너지가 흐르는 경로가 정해져 있다. 구조론은 에너지의 경로다. ● 존재는 낳는다. ● 구조는 낳음의 매듭을 풀어낸다. ● 존재가 풀어내는 에너지의 족보로 통일된다. ● 자연≫구조론≫수학≫과학≫문명은 낳아진 존재다. ● 낳음에 의해 모두 연결되어 하나로 있다. 존재를 풀어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다. 만유의 작동은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을 따른다. 왜인가? 만유가 작동하려면 힘이 필요하며 그 힘을 조달받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흐르는 순서를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구조다. 구조를 어기면 에너지를 조달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작동하지 못한다. 에너지는 항상 일정한 방향으로 흐른다. 이 부분은 작용반작용의 법칙, 질량보존의 법칙,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으로 해명될 수 있다. 우주는 이 세가지 근본법칙에 의해 지탱된다. 작용반작용은 대칭된다. 대칭에 의해 얽힌다. 얽힘이 구조다. 얽힘에 의해 매듭이 만들어진다. 그 에너지의 매듭을 내부에 감추고 있는 것이 존재다. 구조가 존재를 풀어내면 그 존재의 자궁 안에서 소속, 영역, 파트너, 포지션, 임무가 차례로 풀려나온다. 이 다섯이 자연에서 ‘사건’을 조직하여 ‘일’을 성립시킨다. 구조는 그 풀려진 사건와 얽힌 일 사이에 있다. 존재는 사건이다. 존재는 내부에 에너지의 매듭을 품고 있으며 이것을 풀어내는 것이 구조이고 그것이 풀어 펼쳐지면 사건이다. 사건은 존재가 풀려 전개된 것이다. 이러한 이치를 알아채는 것이 깨달음이다. 존재의 풀림을 따라가는 것이 논리학의 연역이고 그러한 풀림에 의한 사건의 전개를 따라가는 것이 귀납이다. 구조론은 논리학이다. 논리학은 근거와 주장, 전제와 진술, 주어와 술어를 조직한다. 담론은 근거를 풀어 주장을 내고, 명제는 전제를 풀어 진술을 내고, 문장은 주어를 풀어 술어를 낸다. 여기서 앞에 오는 근거, 전제, 주어는 존재를 지시하고 뒤에 따르는 주장, 진술, 술어는 사건을 지시한다. ● 존재는 연역 ↔ 귀납 ● 담론은 근거 ↔ 주장 ● 명제는 전제 ↔ 진술 ● 문장은 주어 ↔ 술어 ● 개념은 원리 ↔ 사실 존재와 사건은 연역과 귀납으로 대칭된다. 그렇게 만유의 토대가 되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성립시키는 것이다. 존재를 풀면 사건이 성립한다. 반대로 사건을 조직하면 존재에 도달한다. 구조가 존재를 풀어내면 소속≫영역≫파트너≫포지션≫임무가 차례로 풀어져 나온다. 이 순서가 에너지가 흐르는 경로다. 엔트로피의 법칙에 따라 에너지는 일정한 방향으로 흐른다. [존재의 연역적 풀기] ● 소속(팀, 자궁) ● 영역(그라운드, 무대) ● 파트너(선수, 짝) ● 포지션(공격과 수비, 상대적인 관계) ● 임무(골, 최종적인 접촉대상) 존재가 자연에서 에너지를 풀어내면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은 구조가 존재를 풀어내는 모습을 인간의 눈으로 관측하여 귀납한 것이다. 자연에서 모든 사건은 연역적으로 풀리며 귀납은 인식에서만 성립한다. 존재론은 자연의 풀림을 의미하고 인식론은 사건의 얽음을 의미한다. 구조론은 존재론과 인식론이라는 두 기둥으로 크게 이루어진다. 존재론과 인식록, 연역과 귀납, 풀기와 얽기, 존재와 사건으로 대칭된다.
[사건의 귀납적 얽기] ● 반복(event) ● 연속 ● 가역(structure) ● 분할 ● 순환(work) 존재는 자연의 존재이며 인간의 의식 속에서는 개념이다. 개념은 인식론의 전개를 따라 사실≫의미≫가치≫개념≫원리로 발전한다. 그러면서 점차 완전해진다. 인간 귀와 눈과 코로 포착하는 인식은 원래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존재가 자연에서 나타나는 사건은 event에서 structure를 거쳐 work로 발전한다. 반복≫연속≫가역≫분할≫순환은 event가 work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 존재의 존재론적 전개는 소속≫영역≫파트너≫포지션≫임무 ● 사건의 인식론적 전개는 반복≫연속≫가역≫분할≫순환 [존재 ← 개념 → 사건] 팀 ← 원리 → 순환 무대 ← 개념 → 분할 파트너 ← 가치 → 가역 포지션 ← 의미 → 연속 임무 ← 사실 →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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