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6870 vote 0 2003.05.09 (22:10:59)

아기의 손아귀 힘은 의외로 세다. 갓난 아기의 손에 막대기를 쥐어주면, 몸통을 공중으로 들어올려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힘껏 잡는다. 잡았던 손을 놓는 일은 없다.

이때 만약 아기가 꽉 쥐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엄마원숭이 등에 매달린 아기원숭이는는 엄마를 놓치고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다.

인간이 원숭이였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어미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어미 등의 털을 쥐어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 아기가 그러한 본능을 가지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담뱃불 끄는 개]
TV에서 보았는데 담뱃불을 끄는 특이한 개가 있었다. 여러마리의 개를 데려와서 실험을 했는데 대부분의 개는 불을 무서워하여 멀찍이 달아났다. 그 진돗개만 불 붙은 담배를 앞발로 밟고, 몸통으로 눌러 문지르고 하여 기어이 불을 끈 다음 흙 속에 파묻어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해낸다. 물론 이러한 행동은 전혀 훈련된 것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불을 끄기 위해 침을 뱉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그 진돗개는 입안 하나가득 침을 모았다가 불 붙은 담배꽁초를 향하여 뱉는다. 그 침의 양은 매우 많아서 의도적으로 입 속에 침을 모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때 침이 정확하게 담배에 명중하는 일은 거의 없다. 즉 그 개는 침을 뱉으니까 불이 꺼지더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침이 담뱃불에 명중하여 불이 꺼지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 그 개의 침뱉기는 경험적으로 학습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개는 왜 담배를 향해 침을 뱉었을까?

불끄는 개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분포되어있다. 최자의 보한집에도 나오는 전북 임실군의 오수견 이야기는 유명하다. 문제는 이와 유사한 의견설화가 전국적으로 23군데나 분포한다는 것이다. 중국에는 2000년 전에 이미 오수견 이야기와 거의 흡사한 의견설화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오수견 이야기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정말 개가 잠든 주인을 구하기 위해 불을 끄고 불에 타 죽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주인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개의 일부 혈통에는 불을 끄는 본능이 있다고 봐야 한다.

주인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부싯돌을 켰을 것이고, 풀섶에 불씨가 옮겨붙었을 것이다. 그 불이 특별히 위험하지는 않았으므로 주인은 그냥 구경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불끄는 본능을 가진 개는 본능적으로 불을 껐을 것이다.

주인은 이웃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했을 것이고,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쉽게 믿었을 것이다. 이야기는 조금씩 과장되어 마침내 기록에 전하는 중국의 의견이야기와 섞여버렸을 것이다.

개가 불을 향해 침을 뱉었다는 것은, 물과 불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의미다. 어떻게 알았을까? 과연 진짜로 알고 있을까?

텔레비전에 출연한 불끄는 개는 말뚝에 담배꽁초를 향해 침을 뱉었을 뿐 몸에 물을 적셔서 불을 끄는 장면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 개는 말뚝에 매여져 키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몸에 물을 적실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 개가 오수견과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몸에 물을 적셔서 불을 끄려고 시도했을 지도 모른다.

[배설물을 묻는 고양이]
고양이는 배설물을 모래 속에 파묻는 본능이 있다. 그런데 실내에서 키워진 고양이는 모래가 없어서 파묻을 수 없다. 이때 고양이는 모래가 없는데도 파묻는 시늉을 한다. 모래도 없는데 왜 고양이는 허공에다 대고 배설물을 파묻는 시늉을 할까?

내가 키운 고양이는 배설물을 잘 파묻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잘 파묻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앞발로 모래를 파기는 했는데 배설물이 정확하게 모래에 묻히지 않았다. 고양이는 배설물을 파묻는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이 왜 그러한 행동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훌륭하게 파묻을 수 있게 되었다. 고양이는 점차로 학습하여 자신이 배설물을 파묻는 이유를 어렷품이 알아낸 듯 했다.

쥐가 고양이 냄새를 맡으면 고양이 근처에 얼씬도 않을 것이다. 쥐를 속이기 위해서는 자기 냄새를 제거해야만 한다. 처음에는 쥐를 의식하지 않고 막연하게 동작했을 것이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배설물냄새와 자신의 행동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게 되고 그대부터는 냄새가 없어질 때 까지 파묻는 행동을 하게 되었으며 점차 숙달되어 배설물을 잘 파묻게 된 것이다.

둥지를 틀지 못하는 초보 새
대부분의 새들은 둥지를 잘 틀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둥지를 트는 처녀 백로는 둥지 장소를 잘못 골라서 둥지틀기에 실패하는 수도 있다. 그 백로가 물어온 나뭇가지들은 가지 사이에 걸쳐지지 않고 나무아래로 떨어져버려서 도무지 둥지가 지어지지 않는다.

반면 여러번 둥지를 튼 경험이 있는 노련한 백로는 소나무가지가 복잡하게 얽혀진 적당한 장소를 골라 완벽하게 둥지를 만들어낸다.

동물의 본능은 상당부분 불완전하다. 그 불완전한 부분은 학습을 통하여 점차 보강된다. 이러한 경향은 고등동물일 수록 분명하다. 반면 누에가 고치를 짓는 경우는 처음부터 완벽하다. 경험부족으로 고치짓기에 실패하는 누에는 없다. 그들은 일생에 한번 밖에 고치를 짓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동물원에서 키워진 경우이다. 야생에서는 같은 무리에 속하는 다른 어미들을 통하여 학습하지만 동물원에서는 잘 학습하지 못한다. 동물원의 동물들에서 특히 새끼를 키우지 못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담뱃불 끄는 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불 끄는 개는 자신의 침과 담배꽁초의 불이 모종의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불은 뜨겁고 물은 차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터득하였을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러한 경험이 유전인자에 남는다는 것이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틀려있다. 많이 사용하는 것이 발달한다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간의 심장은 자꾸만 커져서 기형이 되고 말 것이다. 다른 각도에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응용할 수 있다. 즉 동물의 경험이 어떤 형태로 유전인자에 각인되는 것이다.

인상을 쓰는 사람
고양이는 적을 만나면 몸의 털을 곧추세워 몸이 커보이게 한다. 사람은 화가 나면 미간을 찌푸려 이마에 주름살을 만들어보인다. 그 원리는 같다.

양아치가 행패를 부릴 때 짝다리를 짚고 서서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히고 눈을 아래로 치켜뜨는 것도 몸이 커보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즉 인간은 고양이보다 좀 더 나은 존재가 아닌 것이다. 이건 학습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또한 본능이다.

더 확실한 예를 들어보자. 사람의 눈이 자동으로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훈련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명백히 본능이다. 그러나 타자기의 자판을 치는 것은 분명히 훈련된 것이다.

자판에 능숙한 사람은 손가락에도 눈이 생긴다. 자판을 보지 않아도 글쇠의 위치를 잘도 알아낸다. 여기서 본능과 학습의 경계는?

젖을 먹는 아기
아기가 젖을 먹을 때 입과 입술과 혀와 이빨과 기도와 식도와 배는 일련의 연속동작을 한다. 공장의 기계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간다. 만약 이 하나하나를 별도로 학습해야 한다면?

여기서 아기의 본능은?

1) 냄새로 자극받아 젖을 빨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본능
2) 젖을 입에 무는 본능
3) 입술로 젖꼭지를 빠는 본능
4) 혀로 젖을 삼키는 본능
5) 식도와 기도가 적절히 젖을 이동시키는 본능

이들 여러 가지 본능들이 각각 별개의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어서 따로 논다면 아기는 젖을 먹을 수가 없을 것이다. 즉 이 모든 행동들은 하나의 매커니즘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그 하나로 합치는 능력의 원천은?

하품과 재채기
콧털을 뽑으면 재채기를 하는 수가 있다. 재채기는 굉장히 많은 근육이 참가하는 복잡한 동작이다. 이때 콧털을 뽑는 행동과 재채기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곧 콧털을 뽑았는데 재채기를 해야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콧털을 뽑히고도 재채기를 안했다 해서 손해보는 일은 없다. 콧털 뽑히고 재채기 안해서 생존경쟁에 밀려날 이유는 없다.

하품도 이와 비슷하다. 하품을 할 때 눈물이 나기도 한다. 눈물이 나야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하품을 안해서 생존경쟁에 밀려날 이유는 없다. 하품이나 재채기의 본능은 매커니즘 때문이다. 즉 인체의 여러 근육들의 운동을 하나의 매커니즘이 동시에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콧털이 뽑히는 것과 같은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재채기를 하게되는 것이다.

최종결론
본능의 진화원리 중 하나는 여러 가지 근육을 동시에 통제하는 매커니즘의 존재이다. 이 매커니즘은 상관관계가 있는 몇가지 동작을 묶어서 연속동작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 때문에 본능의 학습이 일어나는 것이다. 즉 본능이 진화하는 것이다.

주인이 던진 공을 물어오는 개, 둥지를 짓는 백로, 불을 끄는 개, 정교한 사회생활을 하는 개미 이들 동물의 본능은 여러 가지 동작을 동시에 통제하는 매커니즘의 존재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이 매커니즘에는 학습능력이 있으며 그 학습된 것이 반영되는 형태로 본능의 진화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아직도 화가 났을 때 이빨을 드러내어 상대방을 위협하는 본능이 있다. 현대인에게 이 이빨드러내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송곳니가 짧은 인간들에게는 이빨 드러내기 보다는 언성높히기가 먹힌다. 이빨 드러내기는 긴 송곳니를 가진 개코원숭이에게나 소용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들은 화가 나면 자기도 모르게 씩씩거리며 이빨을 드러낸다.

즉 생물의 진화는 몇가지 별개의 유전적 요소들을 어떤 하나의 범주로 묶어내는 기능이 있으며 이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 범주만들기, 패러다임 만들기가 진화의 핵심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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