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read 4190 vote 0 2003.03.27 (11:21:32)

하루는 부처님께서 설법을 마치시자 청법(聽法) 대중이 모두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는데, 한 여인이 부처님 근좌(近座)에 좌정한 채 자리를 뜰줄 몰랐다. 문수보살이 그 광경을 보고 부처님께 여쭙기를,

"대중들이 모두 돌아갔는데, 어찌하여 저 여인은 자리를 뜨지 않고 저렇게 앉아 있습니까?"

"저 여인이 정(定)에 들어 있으니, 문수 너의 신력(神力)으로 저 여인이 정에서 나오도록 한번 해 보아라."

말씀이 떨어지자 문수보살이 신통으로 백천 문수를 허공주에 나투고, 위요삼잡을 하고, 탄지(彈指)를 해보았는데, 여인은 정에서 나오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그 광경을 지켜 보시고는,

"문수야, 네가 비록 백천신통묘용(百千神通妙用)을 나투어도 너의 신력(神力)으로는 저 여인을 정(定)에서 나오게 할 수 없다. 하방(下方) 42국토를 지나가면 망명초지보살(罔明初地菩薩)이 있는데, 오직 그만이 저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할 수 있다"

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마자 망명 보살이 땅에서 솟아나와 부처님께 예배를 올렸다. 부처님께서 입정(入定)한 여인을 가리키시며,

"저 여인이 정에 들어 있으니, 망명 네가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해 보아라."

하시니, 망명 보살이 여인을 향하여 손가락을 세번 튕기자. 여인이 바로 정에서 나왔다. 그러면, 문수 보살은 과거 칠불(過去七佛)의 스승이며 백천신통을 나투었는데도 무엇이 부족하여 그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끔 하지 못했으며, 어찌하여 망명은 초지 보살인데도 탄지(彈指) 세번에 여인을 정에서 나오게 할 수 있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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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는 지혜를 의미한다. 오른 손에 칼을 들어 지혜의 위엄을 나타낸다. 왼손에 꽃을 들어 미학적 완전함을 나타낸다. 즉 지식은 미학적인 견지에서의 내적인 통일성과 전일성을 유지하므로서 위엄이 있는 것이다.

또 꽃은 영혼을 의미하며 그 영혼의 재생을 의미한다. 칼은 물건을 자르는 도구이다. 미학적 통일성과 전일성을 방해하는 바깥의 군더더기를 잘라내므로서 어떤 극적인 완전함에 도달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위엄을 얻는다. 이는 옥돌의 원석에서 바깥의 흠을 잘라내고 갈아내어 불순물 하나없는 투명한 수정을 찾아내는 것과 같다.

망명초지보살의 초지는 수행의 52단계 지위 중 급수가 낮은 보살로 석가모니의 육체로 모습을 나타내는 화신불이다. 즉 문수는 석가의 지혜를 의미하고 망명은 석가의 육체를 의미한다.

위 공안은 이심전심을 해설한다. 이심전심은 언어와 문자의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직접적 소통을 의미한다. 소통은 커뮤니케이션이며 커뮤니케이션은 공유를 의미한다. 즉 동일한 하나를 어떤 두 사람이 공유하므로서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공유가 없는 어떤 개인적인 수행이나 노력으로는 소통이라는 본래목적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정리하면 깨달음의 목적은 소통에 있고, 소통은 공유에 의해 가능하며 공유는, 육체적, 직접적인 교감이다.

참고로 말하면 위의 공안은 질문이 아니고 답변이다. 위의 공안을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한 아무런 깨달음도 얻지 못한다. 즉 어떤 질문에 대한 답으로 위의 반어법적 질문이 있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면 누군가가 석가에게 『이심전심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원리』를 질문했고 석가가 이심전심이 어떤 원리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극적인 미학적 완전함에의 도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두 사람 이상이 어떤 하나를 공유함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비유하면 컴을 자꾸만 업글한다고 인터넷이 되는게 아니고 무선랜을 깔아야만 이심전심이 된다는 뜻이었다. 이렇게 쉽게 이야기해조도 모르는 사람은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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