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인은 독립적인 인격을 갖춘 사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 독립적인 인격이란 무엇인가? 지성(知性)의 성(性)은 요소를 말한다. 요소는 물질에 비한다면 산소나 수소, 헬륨과 같이 바탕이 되는 알갱이로서의 구성성분이다.
요소는 양파껍질을 까고 또 까서 최후에 남는 그 무엇이다. 근본적인 차이,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지성이 있다는 것은 남에게 없는 무언가가 나의 머리 속에 있다는 거다.
지성인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지식의 본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가진 자식이 타인에게서 빌린 것이 아니라, 내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지식이라는 거다.
머리 속에 지식의 공장을 한 채 가지고 있어서, 내 머리속에서 지식이 생산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지성인이다. 그렇다면 그 지식의 본성, 그 지식의 알갱이, 지식의 요소, 지식의 생산공장이 무엇인지가 문제로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깨달음이다. 또는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역사관, 이런 것이다. 철학이다. 지성인은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그 깨달음은 뭐고 가치관은 뭐고 세계관은 뭐고 인생관은 뭐고 역사관은 또 뭐냐가 문제이다.
답은 간단하다. 관계설정이다. 세상과 나와의 관계설정이 곧 가치관이다. 지성인과 비지성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세계에 대한 책임감의 여부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으로 부터 인정받으려 하고, 주위로부터 좋은 평판을 들으려 한다면, 그것으로 제 인생의 좌표로 삼는다면 지성인이 아니다.
지성인은 이 세계라는 무대에서 나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세계가 잘못되면 내 책임이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므로 타인들의 간섭과 평판은 일단 무시한다.
이 우주가 남의 별이 아니고 내 별이다. 세상이 잘못되면 남의 책임이 아니고 내 책임이다. 내가 내 별을 잘 관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인은 잘못된 세상과 부딪혀가며 싸우는 사람이다. 그런 방식으로 지성인은 세계와 나와의 관계를 설정한다.
인생관이니 가치관이니 세계관이니 하는 단어들은 그 세상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내용들이다. 인생과 나와의 관계, 가치와 나와의 관계, 세계와 나와의 관계 말이다. 관계는 곧 역할을 의미한다. 역할은 그 무대 위에서 나의 맡은 바 배역이다. 엑스트라이냐 주인공이냐이다.
예컨대 이라크전쟁을 두고 『그 문제는 이라크인들이 걱정할 일이지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성인이 아니다. 그들은 엑스트라이다. 세상과의 관계설정에서 세상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성인들에게서는 이라크 전쟁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어야 한다. 그것이 내 일임을 받아들이고 그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고 사회를 향하여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지성인은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다.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다는 것은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죄의식은 사회적인 개념이다. 예컨대 내가 고립된 무인도에 살고 있다면 죄라는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죄라는 개념은 자신의 행동이 야가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지우는 거다. 즉 자신의 행동에 대한 뒷수습을 자신이 하지 않고 사회에 떠넘기는 것이 죄다. 예컨대 살인자가 사람을 죽이면 그 뒷처리는 사회가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죄다.
『혹시 내 행동이 죄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지성인의 태도가 아니다. 지성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언제나 자신이 진다. 물론 지성인도 죄를 지을 수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 가장 많다. 그러나 이건 죄가 아니다. 그건 사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사회를 바꾸려 한 일이다. 내 잘못을 사회에 책임전가 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회의 잘못을 내가 책임진거다.
마광수나 장정일, 김인규교사는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실로 죄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사회를 향하여 발언하고 투쟁한 것이다. 거꾸로 사회의 잘못을 개인이 책임진거다. 그 순간 그들은 사회를 책임졌으며 그것이 지성인의 태도이다.
요소는 양파껍질을 까고 또 까서 최후에 남는 그 무엇이다. 근본적인 차이,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거다. 그러므로 지성이 있다는 것은 남에게 없는 무언가가 나의 머리 속에 있다는 거다.
지성인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지식의 본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가진 자식이 타인에게서 빌린 것이 아니라, 내 머리 속에서 만들어낸 지식이라는 거다.
머리 속에 지식의 공장을 한 채 가지고 있어서, 내 머리속에서 지식이 생산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지성인이다. 그렇다면 그 지식의 본성, 그 지식의 알갱이, 지식의 요소, 지식의 생산공장이 무엇인지가 문제로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깨달음이다. 또는 가치관, 세계관, 인생관, 역사관, 이런 것이다. 철학이다. 지성인은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그 깨달음은 뭐고 가치관은 뭐고 세계관은 뭐고 인생관은 뭐고 역사관은 또 뭐냐가 문제이다.
답은 간단하다. 관계설정이다. 세상과 나와의 관계설정이 곧 가치관이다. 지성인과 비지성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세계에 대한 책임감의 여부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으로 부터 인정받으려 하고, 주위로부터 좋은 평판을 들으려 한다면, 그것으로 제 인생의 좌표로 삼는다면 지성인이 아니다.
지성인은 이 세계라는 무대에서 나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한다. 세계가 잘못되면 내 책임이다.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지므로 타인들의 간섭과 평판은 일단 무시한다.
이 우주가 남의 별이 아니고 내 별이다. 세상이 잘못되면 남의 책임이 아니고 내 책임이다. 내가 내 별을 잘 관리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인은 잘못된 세상과 부딪혀가며 싸우는 사람이다. 그런 방식으로 지성인은 세계와 나와의 관계를 설정한다.
인생관이니 가치관이니 세계관이니 하는 단어들은 그 세상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내용들이다. 인생과 나와의 관계, 가치와 나와의 관계, 세계와 나와의 관계 말이다. 관계는 곧 역할을 의미한다. 역할은 그 무대 위에서 나의 맡은 바 배역이다. 엑스트라이냐 주인공이냐이다.
예컨대 이라크전쟁을 두고 『그 문제는 이라크인들이 걱정할 일이지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니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지성인이 아니다. 그들은 엑스트라이다. 세상과의 관계설정에서 세상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지성인들에게서는 이라크 전쟁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어야 한다. 그것이 내 일임을 받아들이고 그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고 사회를 향하여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지성인은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다. 독립적인 인격을 가진다는 것은 죄의식을 가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죄의식은 사회적인 개념이다. 예컨대 내가 고립된 무인도에 살고 있다면 죄라는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죄라는 개념은 자신의 행동이 야가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지우는 거다. 즉 자신의 행동에 대한 뒷수습을 자신이 하지 않고 사회에 떠넘기는 것이 죄다. 예컨대 살인자가 사람을 죽이면 그 뒷처리는 사회가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죄다.
『혹시 내 행동이 죄가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지성인의 태도가 아니다. 지성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언제나 자신이 진다. 물론 지성인도 죄를 지을 수 있다. 국가보안법 위반이 가장 많다. 그러나 이건 죄가 아니다. 그건 사회에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사회를 바꾸려 한 일이다. 내 잘못을 사회에 책임전가 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회의 잘못을 내가 책임진거다.
마광수나 장정일, 김인규교사는 법원으로부터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실로 죄가 아니다. 그들은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사회를 향하여 발언하고 투쟁한 것이다. 거꾸로 사회의 잘못을 개인이 책임진거다. 그 순간 그들은 사회를 책임졌으며 그것이 지성인의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