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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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read 13353 vote 0 2012.04.26 (00:28:22)

 

어려울때는 가까운 친척을 찾고 큰 꿈을 이룰 때는 멀리있는 친구를 찾아가라.

 

상피(相避)라는 것이 있다. 화장실과 사돈댁은 멀수록 좋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피할 것은 서로 피하는 것이 상피다.

 

조선시대 지방관은 자신의 고향에 수령으로 부임할 수 없었다. 지역 토호로 눌러앉아 부패를 저지르게 되기 때문이다. 고려 귀족국가와 조선 선비국가의 이념적 차별성이 거기서 얻어진다.

 

상피는 예(禮)다. 본래 짐승이었으나 예를 얻어 비로소 인간이 된다. 예는 이성이고 욕망은 본능이라고 여기기 쉽다. 천만에. 흔히 이성과 감성, 지성과 본능으로 대비시키지만 잘못이다. 이는 수준낮은 흑백논리, 이분법적 사고다.

 

상피는 본능이며 또한 자연의 법칙이다. 천륜이라는 말이 있다. 예의 본질은 하늘의 질서이며 자연의 법칙이다. 윤리나 도덕의 근본은 인간의 작위가 아니라 유전인자에 새겨진 자연의 법칙이다.

 

상피가 별다른 것은 아니다. 청춘남녀가 우연히 마주치면 수줍어 하며 서로 얼굴을 돌리는 것이 상피다. 서로 피하는 거다. 피하라고 가르쳐서 피하는게 아니다. 원래 피한다. 왜? 뻘쭘하기 때문이다.

 

뻘쭘한 이유는 구조의 모듈화 원리 때문이다. 상대의 전체를 얻어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는데 당장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상대방의 어떤 부분만 얻으려 하면 여러가지 모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어색함이다.

 

남녀가 서로 끌리는건 본능이다. 그런데 서로 피하는건 뭘까? 일곱 살 꼬마가 TV를 보다가 야한 장면이 나오면 웃으면서 얼굴을 돌린다. 왜 꼬마는 그 장면에 흥분하여 웃으면서도 얼굴을 이불에 파묻을까?

 

마음이 끌리는 것이 본능이듯이 민망하여 얼굴을 돌리는 것도 본능이며 두 본능은 모순되게 공존한다. 시소의 두 날개처럼 서로 대칭을 이루고 인간의 삶을 조직한다. 그런데 잘못알려져 있다.

 

욕망은 본능이고 예는 이성 혹은 학습의 결과라고 잘못 판단된 것이다.

 

남매간에 결혼하는 사람은 없다. 근친관계를 피하는 것이 또한 상피다. 프로이드는 네 살 때 어머니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성욕을 느꼈다고 한다. 과연 근친을 보고 성욕을 느낄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 이다.

 

성적 본능은 근친인지 타인인지 안 따진다. 근친을 보고 성욕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왜 인간은 근친혼을 하지 않을까? 흔히 기형아 출산을 막기 위하여라고 한다. 천만에. 상피는 아무 것도 모르던 원시 시대에도 있었다.

 

‘위하여’라는 표현 들어가면 이미 틀렸다. 인과율과 어긋난다. 답은 언제라도 ‘의하여’다. 기형아를 막기 위하여가 아니다. 의하여다. 무엇에 의하는가? 인간의 본능에 의하여, 자연의 질서에 의하여다.

 

기형아의 출산을 막기 위해 근친혼을 피한다면 동물은 기형아가 탄생하지 않아서 근친혼을 예사로 할까?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로 분지는 화산 분화구라서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어 있는데 20여마리의 사자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근친이다. 근친혼을 거듭해서 확실히 얼굴이 못생겨지지만 결정적이지는 않다. 큰 문제없이 잘 살고 있다.

 

인간이 근친혼을 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상피의 본능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무인도에 남매가 홀로 남겨진다면 별수없이 근친혼을 하는 수 밖에 없다. 근친혼 관습은 특히 고립된 섬지역에 많다.

 

옛날 일본의 일부 지역에는 손님을 자신의 부인과 동침시키는 풍습이 있었다. 만약 손님이 부인과의 동침을 거절하면 모욕을 당했다고 하여 손님의 면전에서 부인을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때 주인의 살인은 손님에게 무례를 저질러 화나게 한 부인에 대한 징벌일까 아니면 부인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퇴짜를 놓음으로써 그 집안을 모욕한 손님에 대한 복수일까? 둘 다 해당된다.

 

말갈 풍습에는 부인의 사통을 누군가가 남편에게 꼰지르면 그 부인을 죽이고 그 사실을 꼰지른 고발자도 죽였다고 한다. 만약 부인이 결백하지 않다면 벌써 도망쳤을 것인데 도망치지 않고 남편에게 칼맞아 죽었다면 이는 결백하다는 증거이고, 결백한 사람을 무고하여 죽게 만들었다면 그 고발자도 당연히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발하면 두 사람이 죽는다.

 

일본 풍습에서 부인 살해는 무례를 저지른 손님에게 할복을 요구하는 방법이다. 실제로 일본의 할복 관습은 이와 유사한 데가 있다. 누군가와 마찰이 일어나면 자기 하인을 먼저 죽여놓고 손님에게 명예롭게 처신하라고 압박하는 거다.

 

삼국유사에도 의미심장한 장면이 등장한다. 차득공에게 자신의 처첩으로 하여금 시중들게 한 안길의 예가 그러하다. 김유신의 누이 문희와 김춘추의 야합한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왜 김유신은 누이를 죽이려 했을까? 누이와 김춘추와 사통이 가문의 수치로 되었기 때문이라는데 만약 그렇다면 이는 아랍의 명예살인과도 같다. 그런데 김유신이 명예살인을 의도했다면 반드시 누이를 살해해야 한다.

 

김유신은 연기를 피워 소동만 벌이고 누이를 죽이지 않았다. 아랍에서는 명예살인을 저지르지 않으면 그것이 가문의 수치가 되어 부족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하여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는데 김유신의 경우는 이와 다른 것이다.

 

김유신이 누이를 죽이지 않은 것은 그것이 가문의 수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요바이 풍습과 같다. 고대의 모계관습에서 성적 결정권은 여자에게 있다. 김유신은 관여하지 않는게 정상이다.

 

일본의 요바이 관습은 남자가 밤에 여자의 집을 찾아가서 동침하다가 새벽에 빠져나오는 풍습이다.

 

정확히 말하면 김춘추가 누이를 모욕했기 때문에 김유신은 누이를 살해하려 한 것이다. 요바이 풍습에서 남성이 여성의 집을 방문하였다가 여성의 얼굴을 보고 못생겼다 하여 동침을 거부하거나, 혹은 여성을 임신시켜 놓고 결혼을 거절하면 이는 가문에 대한 모욕이 된다. 그 경우 몽둥이 찜질을 면할 수 없다. 심한 경우 살해될 수도 있다. 요바이 잘못하면 인생이 결딴난다.

 

김춘추가 임신한 문희를 거절했다면 그 뱃속의 아이가 내 자식이 아니라는 의미다. 문희가 다른 남자와도 사통했다는 뜻이 되는데 이는 김유신 가문에 대한 모욕이 되기 때문에 동생을 죽이려 한 것이다. 일본의 귀족 가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문희가 죽은 다음에는 김춘추가 할복해야 하는 수가 있다.

 

요바이 풍습에서 여성이 한 명의 남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면 대개 결혼으로 이어진다. 물론 중간에 남자를 바꾸면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는 모두 여자가 결정한다. 모계사회의 관습이다. 1950년대까지 있었다고 한다.

 

김유신은 누이의 사통한 죄를 물은 것이 아니라(물론 액면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김춘추가 김유신 가문을 모욕한 죄를 김춘추에게 물은 것이다. 친족살해는 결백을 입증하여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실제로는 결정권이 선덕여왕에게 있었고 김춘추가 선덕여왕의 눈치를 보는 바람에 일이 그렇게 된 것이다. 이는 혼인의 결정권이 여성에서 남성 가부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사건으로 봄이 적절하다.

 

일본도 귀족사회에는 요바이 풍습이 없거나 변형되어 있다. 요바이를 물리치고 가장이 정해준 상대와 정략결혼해야 한다. 평민과 귀족 사이 애매한 부분에서 드라마의 온갖 사건 사고가 일어남은 물론이다.

 

차득공과 안길의 예로 보면 남녀가 동물적으로 끌리는 본능과 이를 기피하는 상피본능이 공존하며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인간사회가 문명화 되면서 전자보다 후자를 강조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프로이드는 초자아라는 표현을 썼다. 동물적 욕망이 이성에 우선한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이성으로 본능을 억눌러야 한다는 칸트 이래의 근대 계몽주의 사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이는 거대한 정신의 혁명이다.

 

그러나 잘못된 것이다. 이성으로 본능을 극복해야 한다는 계몽주의 관점도 틀렸고, 본능이 이성에 앞선다는 프로이드의 초자아 개념도 틀렸다. 감성 대 이성, 욕망 대 예절로 나누는 자체로 봉건적 관점이다.

 

상피본능이 존재한다. 예절을 지키려는 본능이 있다. 완전 누드로 생활하는 아프리카의 부족민도 어린이가 모르고 그곳을 빤히 쳐다보다가는 몽둥이로 대갈통을 맞는다. 부족민 사회에도 예절은 있다. 오히려 더 엄격하기도 하다.

 

끌리는 마음도 본능이고 민망한 마음도 본능이다. 근친이면 끌리는 본능보다 민망한 본능이 더 크게 작용하므로 인간은 상피한다. 김춘추와 문희의 설화는 끌리는 본능에서 민망한 본능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사회의 모순을 보여준다.

 

두 본능은 인간 본래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근친에 욕정을 느끼는 것도, 그것을 거부하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다. 다만 그것을 거부하려면 뇌가 상당히 학습이 되어야 한다. 일단 근친임을 인식해야 한다.

 

사랑은 자신의 뇌를 조직하여 가는 과정이다. 가족의 일원인 부모를 사랑하고 누이를 사랑하는 것은 뇌가 그러한 고도의 판단을 한 것이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구조적으로 고도화 된 바 모듈화 된 감정이다.

 

성적 충동은 파편화된 부스러기 본능이고, 상피는 모듈화된 보다 전략적인 본능이다. 상피본능은 부끄러움, 어색함, 민망함, 스트레스로 나타난다. 인간이 예절을 추구하는 것은 야만행위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불편해서다. 이는 한 순간의 욕망을 충족하는게 아니라 인간 행동의 전반을 규율하려는 뇌기능 때문이다.

 

무엇인가? 근친혼은 공동체 안에서 불리한 전략이다. 근친혼을 한 즉 외부인과 혼인할 기회를 놓친다. 외부에서 세력을 얻을 기회를 놓친다. 부모로부터 독립할 기회를 놓친다. 뇌는 본능적으로 이것을 안다. 인생 전체를 일관되게 디자인 하려는 모듈전략 때문이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한국계 미국인과 인도계 미국인이 경찰에 쫓기다가 텍사스의 어느 시골집을 방문하였는데 한밤중에 부부가 맹렬하게 다투고 있었다. 베개를 던지고 빗자루를 휘두르며 쟁투하다가 손님이 오자 태도를 돌변하여 다정하게 인사를 한다.

 

두 불청객은 매우 불편해졌다. 남의 부부싸움 장소에 공연히 난입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상하다. 부부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서로에게 매우 다정한 모습을 보였다. 싸우다 보면 분이 덜 풀려서 씩씩거릴 법 한데 전혀 화를 내지 않는다. 부부는 서로 손발이 척척 맞았으며 손님의 방문에 매우 즐거워 보였다.

 

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이야? 그들은 웃으면서 싸운 것이다. 무엇인가? 이때 부부는 농담으로 말한다.

 

“텍사스에서는 남매간에 근친혼을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손님이 찾아오면 외눈박이 자식을 지하실에 가둬두곤 하죠.”

 

물론 농담이겠지. 그런데 진짜로 지하실에 기형아가 있었다. 그 부부가 맹렬히 싸운 것은 실은 남매였기 때문이었다. 진짜로 싸운게 아니라 오빠 동생 간에 흔히 있는 일상적인 생활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원래 그렇게 생활한다.

 

인터넷 게시판에 자주 오른다. 누이가 집에서 오빠와 다툴 때는 전혀 여성스럽지 않고 사납다. 집에서는 깡패처럼 행동하다가 밖에서 남친을 만날 때는 다소곳하게 변한다.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근친혼을 하면 부부간에 전쟁터가 되어 집안이 난장판 된다는 거다. 부인은 남편에게 접시를 던지고 남편은 아내에게 걸레를 던진다. 청소할 사람이 없다. 엉망이 되고 만다. 누이가 오빠 앞에서 방귀를 트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근친혼은 민망하고 어색하며 불완전하고 결국 실패로 된다. 단지 기형아 출산이 우려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도 하나의 요소이나 원래 인간에게는 상피본능이 있다. 근친혼을 피한다. 요바이 관습을 피한다.

 

김춘추의 요바이 행위가 문제로 된 것은 왕족이었기 때문이다. 평민간의 일이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바이 결정권은 여자에게 있는데 김춘추는 왕족이므로 문희에게 결정권이 없다. 선덕여왕의 결재가 없이는 김춘추가 문희와 결혼할 수 없다.

 

그래서 문제가 생긴 거다. 문희와 김춘추의 결혼은 그나마 거리가 먼 결혼이다. 불완전하지만 상피의 법칙이 일부 지켜졌다. 평민이 왕족과 결혼한다면 매우 유리한 거다. 크게 세력을 얻기 때문이다.

 

세력을 얻으려면 근친혼을 피해야 한다. 요바이를 피해야 한다. 여자가 가만이 앉아서 외부인을 불러들이는 식으로는 세력화에 한계가 있다. 다행히 김춘추와 문희는 먼 집안이지만 실제로 일본의 요바이는 점점 근친혼이 된다. 무주구천동 두메산골에는 구씨와 천씨만 사는데 구씨와 천씨가 계속 결혼하면 모두 친척이 되어버린다.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일본인 얼굴이 못생겨진 것이 근친혼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인간이 상피하는 본능은 외부에서 세력을 얻으려 하는 본능 때문이며 세력권 바깥에 자기편을 확보해 두려는 책략인 것이다.

 

안길이 차득공에게 처첩을 바친 일 또한 그러하다. 처첩을 바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못된다. 근친혼처럼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상피본능이 원래 외부에 세력을 얻으려는 본능에서 유래한 만큼 서울의 귀족인 차득공을 얻을 수 있다면 무방한 것이다.

 

차득공 설화와 김춘추 설화는 공통적으로 근친혼을 하려는 성적 본능과 그것을 거부하려는 상피 본능이 충돌한 모순된 사건이다. 앞뒤가 안 맞는 부자연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다행히 수습이 되었지만 문명사회에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종은 위기에 처하면 많은 자손을 퍼뜨려 생존확률을 높이려 하고 반대로 환경이 좋으면 적은 숫자의 우량종을 키워 세력을 얻으려 한다. 그러므로 환경이 나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암컷이 다수 태어나고, 환경이 좋으면 수컷이 다수 태어나는 것이다. 수컷은 세력을 얻는데 도움이 될 뿐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계사회의 족장은 그 부족 안에서 가장 많은 아들을 낳은 여인이다. 아들들의 힘으로 부족의 통치자가 된다. 반면 딸을 많이 낳으면 흉년이나 재난이 일어났을 때 유전자를 남길 확률이 높아진다.

 

프로이드가 어머니의 목욕하는 몸을 보고 욕정을 느꼈다면 이는 생존본능이다. 그것을 극복했다면 이는 이성의 판단이 아니라 상피본능이다. 둘의 차이는 모듈화된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생존본능은 단기전이고 세력본능은 장기전이다. 단기적으로는 어떻게든 살아남고 봐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힘을 길러 세력을 떨쳐야 한다. 그것이 유전자의 명령이자 자연의 질서이다.

 

강가의 억새풀도 환경이 나쁘면 좁은 곳에서 빽빽하게 밀식하지만 환경이 좋으면 최대한 멀리 줄기뿌리를 뻗어 그곳에서 새로 싹을 틔운다. 다수의 수컷이 있으면 자손을 멀리까지 보내서 새로 바운더리를 확보하고 외곽에서 자신을 지원하게 할 수 있다.

 

근친과의 관계는 텍사스의 시골집처럼 고립을 낳는다. 텍사스의 평균 아이큐는 87이고 뉴욕은 112라고 한다. 그 영화의 내용이 결코 우연은 아니다. 상피를 거부한 즉 고립과 멸망이 기다릴 뿐이다.

 

종은 생존본능과 세력본능이라는 두 마리 말의 쌍두마차에 의해 진화한다. 코끼리의 코가 점점 길어지거나 귀가 점점 커지고 상아가 점점 길어지는 것은 세력본능이다. 문제는 코끼리의 코만 커진게 아니라는 거다. 장점을 강화한다.

 

종은 건강하고 우수한 유전자를 얻으려 하는게 아니라 풍부한 유전자 조합을 얻으려 한다. 백인 남자는 아시아계 여성을 선호하고 백인 여성은 흑인 여성을 선호한다. 흑인 유전자가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다. 풍부하기 때문이다.

 

유전적 우월성이 아니라 유전적 다양성을 원한다. 물론 우월성과 다양성은 상당히 겹치는 점이 있다.

 

인간에게는 세력본능, 예절본능, 상피본능이 있기 때문에 청춘남녀가 서로 마음이 끌리면서도 얼굴을 붉히고 외면한다. 이에 강력한 동기부여를 얻어 큰 꿈을 이룬다. 남자는 상피본능이 작용하여 여성에게 함부로 다가가지 못하고 또 여성에게 거절당함으로써 고향을 떠나 만리타향에서 큰 인물로 성장한다.

 

만약 인간에게 상피본능이 없다면 어떨까? 바로 야합 들어간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결혼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은 부모 아니면 누이다. 근친혼을 한다. 혹은 소꿉친구다. 소꿉친구와 결혼해서는 큰 꿈을 이룰 수 없다.

 

소꿉친구와는 서로 티격태격하게 되기 때문이다. 부인은 남편을 골탕먹일 생각이나 하고 남편은 부인을 골려먹을 생각이나 한다.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엿먹인다. 이는 남자끼리의 또래라도 마찬가지다.

 

필자가 갓 스물이었을 때다. 공장에서 일했는데 어느 순간 모두가 서로를 ‘또라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 씹탱구리.’ 정도의 욕설은 기본이었다. 이게 망하는 길이다. 동기를 잃는다.

 

큰 인물이 되려면 고향을 떠나야 한다. 근친혼을 거부해야 한다. 골목에서 붕알 내놓고 오줌 갈기며 시시덕거리는 또래친구가 아니라 만리타향에서 예를 갖추어 귀한 차 한잔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텍사스의 남매결혼처럼 되면 부부가 아침부터 서로에게 베게와 걸레를 던지며 싸워서 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부인은 남편에게 “야이 미련퉁아. 설거지나 해.” 하고 고함을 지르고, 남편은 부인에게 “야이 밥통아. 니가 하면 손이 닳냐.” 하고 맞받아친다. 문명이 퇴행하고 마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와 다른 존재, 이질적인 존재, 유전적 거리가 먼 존재에 호감을 보인다. 백인 남성은 아시아계 여성에게 호감을 보이고 백인 여성은 아프리카계 남성에게 호감을 보인다.

 

그러므로 세력을 얻어 문명이 떨치고 일어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있다. 남매가 평생 헤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부모로부터 독립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또래집단을 유지하는 본능도 있다.

 

원숭이들은 생김새가 다른 종류가 매우 많은데 작은 집단과 큰 집단이 있다. 20여마리의 작은 집단은 서로 얼굴을 비슷하게 해서 잘 알아보려고 한다. 만약 헷갈려서 다른 무리를 따라갔다가는 죽음을 맞이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글에는 꽤나 많은 다른 종의 원숭이류가 공존하고 있어서 어린 원숭이가 모르고 다른 원숭이 집단을 따라가서 죽는 일이 흔히 있다.

 

반면 100여마리 이상의 원숭이가 대집단을 이룬 경우 동족을 알아볼 필요가 없다. 주변에 있는 원숭이는 어차피 동족이기 때문이다. 헷갈려서 다른 무리에 휩쓸려 들어갈 일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서로 얼굴을 다르게 하려고 한다. 그래서 닮지 않았다.

 

왜 인간은 원숭이와 다르게 얼굴에 털이 없을까? 왜 인간만이 원숭이와 다르게 말을 할까? 왜 인간만이 원숭이와 다르게 웃을 수 있고 울 수 있을까? 인간처럼 다양한 표정을 가진 동물은 전혀 없다.

 

이는 인간 종이 본래 큰 무리의 원숭이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원숭이 무리가 커봤자 영토를 가지고 정주생활을 하는 아프리카의 고원 원숭이 수천마리 정도인데 인간은 그 이상의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상피본능이 작동하여 서로를 차별하느라 다양한 목소리와 얼굴표정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보디랭귀지로 발전하였으며 차츰 언어로 진화해 갔다. 달라야만 살아남는게 인간이다. 목소리가 다르고 표정이 다르다.

 

반면 물개집단이라면 어차피 다 근친이다. 한 마리의 수컷이 절대 다수의 암컷과 짝짓기 때문이다. 그들은 같아야만 살아남으며 근친혼의 피해가 적다. 인간이 유난히 근친혼이 안 되는 것은 인간 특유의 진화전략이다.

 

인도네시아 정글의 부족민들은 서로 얼굴을 같게 하기 위하여 얼굴문신을 한다. 그런데 문신이 아니라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같은 부족은 남자든 여자든 얼굴 생김새가 완전히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근친혼을 한다.

 

근친혼 뿐만 아니라 그들은 언어도 부족마다 다르게 한다. 인도네시아 정글 부족의 언어는 인도네시아 외의 전 세계의 모든 언어를 합친 숫자보다도 많다고 한다. 인구가 100명만 넘어도 다른 언어를 쓰기 때문이다.

 

왜? 외부세력과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이다. 외부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즉 부족의 정체성을 잃게 된다. 그들은 세력본능을 억제하고 생존본능을 강화하였다.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낙후한 신세가 되었다.

 

인도네시아 정글족은 식인풍습이 남아있다. 식량이 부족해서 식인한다는 것은 착각이다. 부족의 명예와 존엄을 위해 식인한다. 사람을 먹어야 강한 힘을 얻으며 타 부족의 존경을 받는다. 사람을 먹지 않으면 여타 한심한 부족처럼 되어버린다고 여긴다. 그들은 자신을 외부와 고립시킬 의도로 식인한다.

 

그런 고립전략은 생존확률을 높였다. 남태평양 섬들에도 대부분 식인풍습이 있다. 그것이 생존확률을 높였다. 대신 지능을 낮추었다. 인도네시아 정글은 유전자의 보고다. 그들은 다양한 유전자를 보존하는데 성공했다. 대신 부족이 망했다.

 

생존전략과 세력전략 중에서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종은 위기 때 생존전략을 택한다. 위기가 지나면 세력전략을 택한다. 정글은 식량이 부족하고 이동이 쉽지 않아 바닥이 좁으므로 항상 위기다. 이에 생존전략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남아메리카의 정글도 비슷한데 아마존의 부족들도 많아야 200여명 정도이고 그 적은 숫자도 낱낱이 쪼개져 흩어져 있으므로 MBC 다큐팀이 부족민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어렵게 찾아냈더니 적은 숫자가 있었다.

 

그들은 서로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 어차피 사냥감은 원숭이 정도인데 많지 않다. 인구를 줄여야 생존확률이 높다. 그들은 세력전략을 버리고 생존전략을 선택했다. 그들은 텍사스식(?) 근친혼을 선택했다. 일본도 어떤 의미에서 고립된 섬이다. 근친혼을 선택한 것이 당연하다.(물론 모든 텍사스인이 근친혼을 일삼는다는 말은 아니다. 영화의 설정이 그러할 뿐이며 이를 비유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행운목에 물을 주지 않으면 꽃을 피운다. 바위솔도 그러하다. 꽃을 보려면 땡땡 가물어야 한다. 행운목이 꽃을 피우고 난 다음에는 죽는다. 그러므로 행운목은 꽃을 보기가 어렵고, 따라서 꽃을 보는게 행운이므로 이름이 행운목인 것이다. 그런데 반대다. 죽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은 포기하고 자손이라도 남기려고 꽃을 피운 것이다. 나무 입장에서는 불운목이다.

 

행운목이 자라는 열대우림은 환경이 좋다. 그러므로 꽃을 피우기보다 세력을 떨쳐서 남보다 조금이라도 많은 햇볕을 차지하는게 유리하다. 자손을 남겨봤자 정글의 그늘에서 햇볕도 못 보고 죽는다.

 

정글에서 식물은 생존보다 세력이 우선이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핀치에 몰리면 생존전략을 선택한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마지막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자신은 죽는다.

 

악어알은 온도가 내려가면 암컷이 되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수컷이 된다. 공룡의 멸종이 소행성 충돌로 지구의 온도가 내려가서 공룡알이 전부 암컷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정리하자. 종은 생존전략과 세력전략을 동시에 사용한다. 생존전략은 단기전이고 세력전략은 장기전이다. 죽음 앞에서는 생존전략을 선택하고 여유가 있으면 세력전략을 선택한다.

 

세력전략이 예로 발전한다. 윤리와 도덕이 된다. 그러므로 의식이 족하면 예절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세력전략은 가까운 이웃과의 친교보다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을 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에는 어떻게 나타날까? 하층민은 생존전략을 채택하므로 가까운 곳에 표를 몰아주는 지역주의를 선택하고, 외부에서 찾아오는 다문화를 배척한다. 그들은 새누리당을 찍는다.

 

지식인은 세력전략을 채택하므로 이념과 지역이 다른 멀리있는 세력과 힘을 합쳐 야권연대를 이룬다. 그들은 다문화를 받아들이고 민주당을 찍는다. 멀리서 찾아온 손님과의 친교가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국내로도 부족하고 외국으로 날아다녀야 한다. 어차피 지식은 국내에서 발생하는 것보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세력전략을 선택하며 하층민의 지역주의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층민의 생존전략은 본능이다. 지식인의 세력전략도 본능이다. 단 모듈화된 정도가 다를 뿐이다. 단기전이냐 장기전이냐 고립지역이냐 개방지역이냐다. 인간의 뇌는 무의식 중에 이를 판단해낸다. 근친혼이 불리한 전략임을 알아챈다.

 

자식이 부모와 결혼하고 형제와 결혼한다면 이는 외부로 뻗어나갈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며 인생이 피곤해지는 것이다. 텍사스의 남매처럼 걸레와 배게를 던지고 서로에게 욕설을 퍼부어야 한다.

 

본능적으로 이건 아니야 하고 고개를 돌리게 되며 그 때문에 부모의 벗은 모습에는 욕정이 발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인도에 고립되어 일체의 희망이 사라졌다면 근친에게도 욕정을 느끼게 된다. 뇌가 그것을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경우 본능적으로 자손을 남기려고 한다. 물론 스님들은 예외일 것이다.

 

생존이냐 세력이냐. 이러한 판단은 의식적으로 머리를 써서 궁리하는 것이 아니다. 자라면서 보고들은 것에 의하여 저절로 결정된다. 유전자에 의해 뇌 안에 미리 프로그래밍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이코패스들은 예외다.

 





 

 0.JPG

 

멀리 있는 친구를 사귀면 포지셔닝에서 이미 이겨 있습니다.

물론 이를 현실화 하는 데는 중도에 많은 시행착오가 따르고 또 시간이 걸리지만 인내하며 끝까지 가면 반드시 이깁니다.

 

 

http://gujoron.com




[레벨:4]토마스

2012.04.26 (01:16:42)

근친혼을 하면 실제로 기형아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사실인가 보네요.

 

옛날 셜록홈즈 같은 영국소설을 보면 사촌이나 친척간의 결혼은 영국같은

나라에서 용인되는 부분이더군요.  어디까지를 근친혼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동성동본 결혼금지 폐지'를 오래전부터 맞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기형아를 안전하게 벗어나는 근친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근친혼만 선호 하고 생존만 고집하는 새누리당과

세력을 만들어 이기려는 야권세력과의 전투를 앞두고

비장한 느낌까지 듭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04.26 (01:24:34)

근친혼이 기형아 비율을 높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생태계의 한 축일 뿐 절대적인 법칙은 아닙니다.

 

자연에는 다수의 근친을 만드는 전략도 분명히 있습니다.

숫사자가 새로 무리의 짱이 되면 씨가 다른 어린 숫사자를 모두 죽이는게 그렇습니다.

자신의 자손들로 구성된 강력한 근친집단을 구성하려 합니다.

 

좁은 지역에서 자기 씨를 계속 퍼뜨리면 결국 모두 근친이 되어버립니다.

 

종의 진화는 근친위주 생존전략과 상피위주 세력전략이 일정한 균형을 이루며

좁은 지역, 고립된 지역에 근친전략이 다수 나타납니다.

 

작은 무리 원숭이들은 검은 원숭이나 흰 원숭이 중 하나를 택해야 하며

만약 피가 섞여서 회색원숭이가 나타나면 굉장히 피곤해집니다.

어린 원숭이가 헷갈려서 길을 잃고 헤매는 거지요.

 

그 경우 무리의 단합이 깨지고 무리가 파멸하는 원인이 됩니다.

다른 원숭이 집단과의 전쟁에 져서 무리가 몰살되기도 합니다.

 

근데 큰 무리의 원숭이 집단은 회색원숭이를 잘만 만들어 냅니다.

근친혼을 거부하고 개성을 살려서 자기를 뽐내려 하지요.

 

근데 작은 집단 원숭이들은 근친혼을 해서 전부 얼굴이 똑같아요.

 

인간도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든 튀어서 저 잘난 척을 합니다.

근데 시골 사람들은 튀는 사람을 조져서 개성없는 획일사회가 됩니다.

 

프로필 이미지 [레벨:15]aprilsnow

2012.04.26 (03:24:27)

한국인의 뇌에

지역의 생존만이 아닌

인류의 세력이 될 수 있다는 비전을 인식시켜야 할텐데...

그리고 그것이 현실의  대형빵을 안겨줄수 있다는

구체적 욕망을 부채질해야 할텐데...

그리고 그럴만한 용맹성과 실력을 입증해야 할텐데...

 

한국은 이제 그들을 안타깝게 열망하고 있소.

하지만 무임승차는 없소.

 

 

[레벨:4]토마스

2012.04.26 (08:21:28)

 

아쉽게도 인간은 80년정도 밖에 못 살고

문명은 너무 발달했습니다.

 

나 죽기전에만 지구 안망하면 된다.

이렇게 발전된 문명 시스템하에서 어찌되었든 대책이 있을거고 다 알아서

돌아갈 것이다 라는 생각

 

70년대만 해도 '30년후에 석유 고갈된다'는 생구라치면 온국민이 한걱정하고

당장 전기 아껴쓰고 그랬지만 지금은 5년뒤에 석유 고갈된다고 떠들어도

'윗분들이 알아서 대책을 세워주겠지'라고 생각하고 휘발유 펑펑 쓰고

다니는 시대가 되었지요.

 

생존보다 세력이 중요하다는,  '사익'보다 '공익'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일 것입니다.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보다 우리동네 와서 다리 하나 놓아주겠다는

사람을 찍는 것이 '지방투표'의 전형이니.

프로필 이미지 [레벨:30]id: 김동렬김동렬

2012.04.26 (09:32:45)

중앙에 시비를 걸고 안티를 해서

중앙의 존재를 발견하려 하는 거죠.

 

뭐 다 좋은데 쪽수가 적은 제주도가 그러는건 이해가 되지만

쪽수가 많은 경상도가 그러는건 넌센스죠.

 

그렇게 잘났으면 지들이 중앙을 하든가

아니면 중앙과 적극 라인을 연결해야 하는데

 

무슨 똥배짱이라고

'싫음 말고 흥 나 안해 나 삐졌어.' 전략을 쓰냐 말이지요.

프로필 이미지 [레벨:4]LarJY

2012.04.26 (10:34:43)

흥미롭네요.

안그래도 이틀 전, ebs에서 인간관계에 대해 다룬 '링크' 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었습니다.

 

방송 중 흥미로웠던 점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약한 연결 고리'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관계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더군요.


특히 사회적으로 우리에게 밥을 먹여주고 일거리를 주는 것은 

자신과 가까운, 친밀도가 높은 관계보다 그렇지 않은 관계에서 더 많이 제공되어진다고 하더군요.


거기에서 그 이유를 동렬님이 말한것과 비슷하게 이야기 하더군요(큰 틀에서 봤을 때)


안그래도 그 프로그램 보고 의아한 점이 많았었는데

마침 이렇게 글을 올려주셔서 많은 부분이 해소되었네요.^^ 

[레벨:1]장선일

2012.04.28 (00:47:11)

위하여가 아니라 의하여란 말씀이 꽂히네요

목적이이아니라 원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그럼 훌륭한 뜻은 우리들 앞에 있는것이 아니라 이미 있어야 하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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